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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0/10
- 추석 이야기 3-'시댁'가는 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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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0/10
- 추석 이야기 2-어른들의 구박(4)
처가집에서 이틀을 보내고
'시댁'으로 출발했습니다.
천만 명 사이에 끼어서
셋이 잘 왔다갔다 할려면
무엇보다도
각오가 단단해야 했습니다.
결혼 하기 전 추석엔
서울에서 전북 김제까지
온갖 별스러운 방법으로 내려가곤 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외버스 10대 갈아타고 내려가기는
여전히 기억에 남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 중심으로
시외버스를 계속 갈아타고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동네가 나왔었습니다.
여행하는 셈 치고
슬슬 내려가면 됐었습니다.
근데 미루를 이렇게 데려가는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으나 사나 기차타고 내려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몇 달 전에 새벽부터 부지런 떨어서
기차표를 구했었습니다.
미루는 태어난지 150일도 안돼서
그 매우 빠른 기차, KTX를 타게 되었습니다.
아기띠로 미루를 메고
한 손엔 2박 3일 생활용품이 가득한 여행용 트렁크를 끌고
다른 한 손엔 이것 저것 넣은 빨간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엔 그러고도 넣을 게 더 있어서 가방을 하나 더 들고
마지막 한 손엔 선물 보따리를 들고
용산역에 도착했습니다.
"상구, 내가 먹을 거 사올께..여기서 기다려..."
"응"
"이 짐들은 일단 다 들고 있을래?"
"알았어...후딱 갔다와.."
손 네개에 들었던 짐이
저한테 다 모였습니다.
주선생님은
가게를 찾아서, 군중 사이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는 미루가 울까봐
몸에 미세하게 바이브레이션을 주고
두 개 밖에 없는 손을
어떻게 잘 써서
짐 네개를 다 들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한 젊은 남자가
껌을 씹고 서 있었습니다.
인상이 참 안 좋은 남자였습니다.
부러웠습니다.
그 남자는 짐이 하나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제 앞에서
제 옆에서, 혹은 저를 스치면서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합니다.
갑자기 슬퍼집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어디로든 튈 수 있는 자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니 맘대로 가봐라"라고 해도
짐도 많고 애까지 딸려 있어서 갈 수가 없습니다.
"상구~도너츠 사왔어..어서 가자.."
"어? 왔네...그래..가자"
KTX를 타고 내려가는 내내
고맙게도 고통이 우리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루가 보채서
두 사람이 한 시간씩 안고 있었습니다.
꼭 이럴 때 똥을 있는대로 싸서
냄새에 둘러싸인 미루를 안고
3번 칸에서 8번 칸까지 뛰다시피 갔습니다.
8번칸은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 칸입니다.
명절엔 KTX에도 입석이 있어서
8번칸 까지 사람들을 헤치고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배도 고파했는데
모유수유실은 그 긴 KTX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싸는 건 되도 먹는 건 안된다는 건지
아니면 아무데서나 내놓고 먹이라는 건지
어쨌든 모유수유실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탄 칸에만 해도
젖먹을 만한 아이가 셋이 있었습니다.
"야...젖 안 멕였냐? 오자 마자 젖부터 멕이네.."
"네.."
"젖 먹이는 데 없대?"
"그런 게 있으면 복지국가게요..."
하여튼, 젖먹는 아이들의
'자유로운 식사에 대한 권리'는
여전히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엄마들이 주고객인 백화점 말고,
아무데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엄마들은 서점에 가서 책을 볼 수도 없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수도 없습니다.
천 몇백만이 본 영화를 아직 안 본 사람이 있다면
그 중 상당수는 '산모'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시댁'으로 내려가는 길은
처음부터 험난했습니다.
하여튼 어른들 많은 데 가면
참 구박을 많이 받습니다.
"이거 봐, 이거 봐~애를 맨날 누워만 키우니까
다리에 힘이 없지..얘가 이럴 애가 아니야..어이구, 어이구~그래, 그래~"
처가집에서 이틀째날 어른 세 분이서
미루를 세워서 들었나 놨다 합니다.
"자기들 힘들다고 계속 눕혀서 키우면 되나,
인제 보행기도 좀 태우고 그래야지..."
우리가 공부하기로
보행기를 태운다고 애가 특별히 빨리 걷는 건 아니랍니다.
"하여튼 8달 되면 걷기 시작해야 하는데
계속 이러면 안돼..."
주선생님은 어릴 때 8달 돼서 걸었답니다.
동물들은 태어나자 마자 걷고
사람은 좀 늦게 걷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 주선생님은 좀 일찍 걸었습니다.
주선생님 집안이 다 그렇습니다.
대개가 8달, 9달째에 걸어서
자기 돌잔치 날에는 떡들고 날랐답니다.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같은 말을 세번 들으니까
슬슬 속이 타들어갑니다.
미루는 아빠 닮아서
남부럽지 않은 허벅지를 자랑합니다.
이쁘다고 얼르다가
다리에 얼굴 한방 맞아 보면
다리 힘 없다는 소리 안 할텐데
아쉬웠습니다.
저는 맞아봤습니다.
그렇게 어른들과 한참 놀던 미루가
두 눈두덩이 빨개졌습니다.
저녁 때 실컷 잤지만
아침 나절에 실컷 놀고 또 잘 시간이 됐습니다.
얼굴에 피곤이 가득합니다.
"아~밤새 재워놓고, 뭘 또 재울라고 그래?"
주선생님,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피곤해 해서 재워야 돼요..."
겨우 재웠습니다.
밖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에 10분만에 깼습니다.
"거 봐라~! 안 잘려는 애를 재우니까, 금방 깨잖아.."
"아니야, 할머니~재워야 돼요..."
우는 미루를 장모님이
안고 나가셔서 왔다갔다 하십니다.
"저게 무슨 졸린 애 표정이야..안 잘려는 구만..."
주선생님의 외할머니
재차 주장하십니다.
"저 눈 초롱초롱한 거봐..근데 뭘 재운다고..."
장인어른이 가세하셨습니다.
주선생님 더욱 완강하게 반응합니다.
"재워야 한다니까~~~!!!"
저도 입술을 굳게 다물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
TV를 켜고, 미루한테 보여줍니다.
"TV도 잘 보네...잘만 노는구만.."
"아빠~!! 안 그렇다니까...재워야돼요..."
저는 더욱 입술을 굳게 다물고
주선생님을 응원했습니다.
"............"
5분이 지났습니다.
미루는 피시방에서
이틀밤샌 청소년 얼굴이 됐습니다.
모두가 TV에 집중하고 있는데
장인어른이 가볍게 한 마디 하십니다.
"저렇게 잘 노는 애를..뭘 재운다고..."
"........................"
"이리와 봐~할아버지가 안아줄께..어이차...
어이구..울지도 않고, 이런 애를 왜 재워..."
저는 입술을 굳게 다물어서
주선생님을 응원하는 거 말고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심호흡을 깊게 한 다음에
같은 소리를 몇 번 들었는지 세어봤습니다.
5번째인가 6번째입니다.
이제 미루는 울기 시작합니다.
"흐으..흐으..으..흐응..흥..으아..으아.."
"야~미루 오줌 쌌나보다..기저귀 좀 봐주라.."
장인어른,
결정적인 순간에 미루를
우리한테 떠넘깁니다.
"아이구, 인제 나가봐야겄다.."
미루를 못 재우게 하는데 선봉에 섰던
할머니께서 인제 나가신답니다.
"나도 요 앞에 좀 나갔다 와야 돼.."
장인어른도 일어서십니다.
두 분이 나가시고 나서도 한참 동안
미루는 계속 울었습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마음 속으로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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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에 새로 생긴 서점 '소빅스'에는 수유실도 있고 아기침대도 있어요. 그래서 꽤 자주 놀러갔는데... 오늘 보니 결정적으로 화장실 칸에 아기 거치대가 없더라... 오늘 아기 데리고 볼일 보러 갔다가 어떻게 해결했는지... 비밀!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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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걸기는 애기가 생겨도 김제까지 갈 일이 없다는 건 복인가?참 힘들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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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데리고 먼 길 가는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저희는 친정서 차를 빌려 타고 가는데 오가는 길이 꽉 막혀서 달래지지 않는 아가 덕에 아랫배가 작살이 났었답니다. 하도 발로 차는 바람에...(이눔, 성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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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아직 영화 '괴물'을 못봤는데, 그 영화를 못 본 사람의 대부분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닐까라고 얘기했었지요. (차라리 '산모'일 때는 영화를 보러 다녔었는데..)글고 추석때 왔다갔다 하면서 우리도 짐이 거의 이삿짐 수준이었는데, 정말 차없이 이동하는 것은 죽음이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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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맘/ 소빅스...저희도 가봐야겠네요...히히. 글구, 저희들은 지금까지 둘이 같이 다녀서 화장실 갈 때는 다른 한 사람이 애를 봤기 땜에 거치대의 필요성은 별로 못 느꼈었거든요...근데, 화장실 거치대..그거 정말 필요할 것 같네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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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걸기/ 고마워...알아줘서...ㅠㅠ..ㅠㅠ..ㅠㅠ...울음이 그치질 않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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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 맞아요, 사람이 할 짓이 아니예요...저희도 이번에 제 외할아버님 산소 갔다 오는데 차 안이 감옥같았어요...덥기도 무지 더웠구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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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ropy/ 요새 계속 차를 살까 고민 중이예요..매번 이사를 다닐 수가 없어서...근데 돈이 없어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