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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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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0/18
    설거지(4)
    너나나나
  2. 2006/10/18
    우리 동네 아이들(4)
    너나나나

설거지

미루가 제대로 울면

그 옆에서 설거지 하는 게

정말 고역입니다.

 

밥 먹고 바로 설거지 안해서

씽크대에 빈그릇 쌓여 있어도

스트레스입니다.

 

처음 몇달은

설거지통에 빈그릇이

꼭 책꽂이에 책 꽂혀 있는 것처럼

항상 쌓여 있었습니다.

 

요새는 밥 먹자 마자

지체 없이 식탁 치우고, 바로 설거지 하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근데 제 위장은

아직도 적응을 못했습니다.

 

"끙..끄응...."

 

설거지 할 때

20초에 한 번 쯤 제가 내는 소리입니다.

 

밥 먹고 바로 설거지 하면

왼쪽 배 윗부분이 묵직하고 딱딱해지는 게

영 거북합니다.

 

밥 많이 먹으면

가끔씩 아이고 소리도 나옵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밥 먹고 설거지 하실 때

"엄마, 좀 쉬었다 해요~"라고

속모르는 소리 했었는데

어머니는 맨날 낑낑 거리시면서 설거지를 기어이 다 하셨습니다.

 

지금은 제가 그러고 있습니다.

 

수세미에 세제 짜서

지겨운 그릇 닦기하고 헹구고 나면

씽크대도 한 번씩 닦아줍니다.

 

행주 빨아서 식탁도 닦아주고

음식물 쓰레기 따로 모읍니다.

 

미루가 울면,

씽크대 닦기를 빼먹기도 하고

식탁 닦는 것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항상 반복되는 이런 지겨운 일상에

상큼한 식초 같은 일이 오늘 씽크대에서 있었습니다.

 

설거지 다 하고 물을 잠그는데

수도꼭지가 부러져 버린 겁니다.

물은 잠기지 않았습니다.

 

주선생님은 미루 재우러 방에 들어가서

오직 혼자의 힘으로

신속한 처리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물이 계속 나오고 있었습니다.

 

정밀 사찰 결과

수도꼭지 안쪽의 플라스틱 부분이 부러진 것을 알았습니다.

안쪽의 작은 홈에 젓가락을 끼워넣어서 위로 올렸습니다.

물이 잠겼습니다.

 

역시 저의 순간 대응력은

칭찬할 만합니다.

 

인제 젓가락만 씻으면 됩니다.

물을 틀려면 젓가락을 다시 홈에 끼워넣어야 합니다.

정말 그럴 뻔 했습니다.

 

화장실에서 수세미로 젓가락을 닦는 모습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광경이었습니다.

 

지난 번엔 싱크대 문 빠진 건 나사만 조이면 됐지만

이건 전문가를 불러야 합니다.

 

예산 범위 밖의 재정지출이 발생했을 경우

혹은 사전대비가 있었으면 막을 수 있었던 지출이 발생했을 경우

우리는 그런 돈을 흔히 '생돈'이라고 합니다.

지출하는 사람의 감정이 실릴 경우 '쌩돈'이라고도 합니다.

 

쌩돈 나가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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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아이들

36년간 오직 인류의 평화에만 관심이 있던 제가

요즘엔 애들한테 눈길이 갑니다.

 

같은 아파트 9층에는

11살, 7살 짜리 남매가 사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나는 바람에 친해졌습니다.

 

"상구, 쟤네들이랑 같이 놀까?"

 

공원 벤치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어린애들이 가만히 앉아서

조근조근 얘기하는 게 이뻐보였습니다.

 

한 10분 지나니까

한 명씩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우리 집에요, 18개월 짜리 막내 동생이 있는데요.."

 

여자애가 설명하니까

옆에 있던 나무 중간 쯤 올라가던 남자애가

말합니다.

 

"걔는 막내 동생을 막 이 옷 저 옷 입히면서 가지고 놀아요~~"

 

여자애는 어느새

화단 가장 자리에 쳐놓은 줄 위에 앉아서

대롱대롱 거리고,

 

남자애는 10미터 쯤 떨어진

농구대 꼭대기에 올라가 있습니다.

 

"너네들 밥 안 먹었지? 같이 밥 먹을래?"

"엄마한테 허락 받아야 되는데요..."

 

아이들 어머니는

처음보는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자기 애들 밥 준대니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진심을 담아서 설득해야 겠다 싶었습니다.

 

"애들이 너무 이뻐서, 맛있는 거 사줄려구요..."

 

제 말을 듣은 어머니

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할 수 없이 신원보증인을 댔습니다.

이름은 '미루'

 

"어머~몇 개월 됐어요?"

 

같이 집에 와서

애들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어 하는

짜장면과 짬뽕, 그리고 '절대음식' 탕수육을 시켰습니다.

 

음식이 올 동안

애들은 미루한테 가더니

막 만지고, 건들고 하면서 이뻐합니다.

애들한테서 꼬랑내가 났습니다.

 

"저 혼자 다 먹을 수 있어요~"

 

시킬 땐 짜장면 한 그릇, 짬뽕 한 그릇 시켜서

4명이서 나눠 먹자더니

막상 음식이 오니까 애들이 한 그릇씩 차지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의연해야 합니다.

 

11살 남자애는 탕수육부터 공략하고 나서 짬뽕을 먹었습니다.

7살 여자애는 짜장면부터 먹었습니다.

 

남자애의 초록색 화사한 티에는

목부터 배꼽까지

기관총으로 짬뽕 국물을 발사한 흔적이 남았습니다.

 

여자애는 얌전히 먹다가

"더 못 먹겠어요.."합니다. 다행입니다.

 

전 그제서야

남은 짜장면과 탕수육을 조금 먹었습니다.

 

그 후 애들은 1시간 30분쯤 더 놀다가

아이 찾아 3만리를 건너온 표정으로 달려온 엄마 손에 끌려

한참 송편 찌고 있는데 그냥 갔습니다.

 

잘 시간이 다 됐는데

누가 문을 두드려 나가 보니

애들이 북어채를 들고 서 있습니다.

 

"야, 니가 말해~"

"오늘 낮에...감사드린다고요...갖다드리래요..."

"아이고 고마워라, 잠깐만 기다려~"

 

낮에 찐 송편이라도 주려고 봤는데

없습니다.

 

"어쩌지? 송편 남은 거 있나 봤더니 없네..."

여자 아이는 고개를 잔뜩 들고

제 이야기를 듣고 있고

남자 아이는 45도 삐뚤어진 대()자

모양으로 벽에 붙어 있습니다.

 

애들이 참 이쁩니다.

 

나중에 주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까 상구가 걔네들 엄마한테 한 이야기 있잖아..

애들이 이뻐서 뭐 사주고 싶다는 거..그거 딱 유괴범 멘트인거 알어?"

 

애들을 끌고 간 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됐습니다.

 

그래도 미루 아니었으면

애들, 탕수육 못 먹을 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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