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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10/13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0/13
    젖병으로 젖 먹이기(7)
    너나나나
  2. 2006/10/13
    추석 이야기 7-사위와 며느리(2)
    너나나나
  3. 2006/10/13
    추석 이야기 6-어머니 이야기(3)
    너나나나

젖병으로 젖 먹이기

미루가 깨더니 웁니다.

 

생각 보다 좀 일찍 깼습니다.

 

밥 먹을 시간이 거의 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 더 잘 것 같기도 합니다.

 

안아줬다가 내려 놓으면 울고

달래줘도 내려 놓으면 다시 웁니다.

 

인제는 무조건 빨리 젖을 먹여야 합니다.

 

주선생님은 사무실에 갔고

미리 짜서 냉동실에 넣어놨다가

간 밤에 냉장실로 옮겨 놓은 젖이 있습니다.

 

미루를 안은 상태에서

젖병을 꺼낼려고 싱크대 위쪽 문을 엽니다.

 

문 아래쪽 연결 부위가 팍 떨어져 나갑니다.

제기랄, 별 일이 다 생깁니다.

 

문과 싱크대 본체를 연결한 나사가 풀어졌나 봅니다.

 

젖병을 꺼내는데

하여튼 이런 것 하나도 제대로 못해서

바닥에 떨어뜨립니다.

 

미루는 무거워 죽겠는데

젖병을 소독해야 하고,

젖은 따뜻하게 해서 먹기 좋게 만들어야 합니다.

 

앞이 캄캄해집니다.

 

다시 재워볼까 생각도 하지만

안 될 짓은 안 해야 합니다.

 

일단 미루를 다시 바닥에 내려 놓습니다.

 

"으아아앙~~"

 

미루는 눈두덩이 빨개지면서

다시 울기 시작합니다.

 

혹시 안 울까 하고 공갈 젖꼭지를 물려보지만

확 뱉어버립니다. 성격이 저런 건 아니겠지..생각합니다.

 

애벌레 인형을 던져 줍니다.

다행히 안 웁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부엌으로 막 뛰어가서

가스렌지 불 중 제일 센 쪽에 

물을 올려 놓습니다.

 

"끓어라, 끓어라~~"

 

안절 부절, 왔다 갔다..

미루와 부엌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합니다.

 

"아~! 진짜 미치겠네.. "

물 정말 더럽게 안 끓습니다.

 

미루는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미루야~~미루야~~아빠 여기 있어~~"

멀리서 말로만 안심시킵니다. 효과가 없습니다.

 

얼레! 딸꾹질을 합니다.

기뻤습니다.

미루는 원래 딸꾹질을 하면 안 웁니다.

 

어제까진 그랬습니다.

 

오늘은

딸꾹질을 하면서도

울음을 안 멈춥니다. 이런 모습 처음입니다.

 

매우 많이 배가 고픈 게 확실합니다.

 

하지만 물은 계속 안 끓습니다.

'왜 수돗물에서는 끓는 물이 안 나오는 거야..'

 

다시 미루한테 달려가서

애벌레 인형 대신

주사위 인형을 던져주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물이 조금씩 끓기 시작합니다.

 

살면서 끓는 물에

이렇게 정을 느껴보긴 처음입니다.

 

미루쪽을 한 번 쳐다봤습니다.

옆으로 치웠던 애벌레 인형을 끌어다가

입으로 빨려고 합니다.

 

"빨면 안돼~~~~! 드러워~~"

소리만 고래고래 지르고

 

손으로는 집게로 젖병을 집습니다.

 

끓는 물에

넣었다 뺐습니다.

 

"윽..."

뜨거운 젖병을 그냥 손으로 콱 잡고

젖 보관 팩에 담긴 젖을 부었습니다.

 

이 놈의 팩은 또 왜 이렇게 안 열리는지

5초쯤 혼자 난리를 치다가

그냥 가위로 입구를 잘라 버렸습니다.

 

자, 이제

미루 한테 먹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젖병에 담긴 젖을 뎁혀야 합니다.

 

어휴, 정말..

땀이 삐질 삐질 납니다.

 

미루는 엄청 울어댑니다.

 

할 수 없이 따뜻한 물을 틀어서

젖병을 담그고

미루한테 달려가서 안아줍니다.

 

안고, 뎁히고...왔다 갔다..

 

전화까지 옵니다.

 

"나중에 전화 드릴께요~~"

 

겨우 젖이 적당한 온도가 됐습니다.

 

"미루야, 인제 됐다~ 젖 먹자..

미안해..내가 좀 빨리 준비 했어야 하는데.."

 

미루를 왼손으로 받쳐들고

오른손으로 젖병을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인제 안심이 되었습니다.

미루가 꿀꺽꿀꺽 젖을 잘 받아넘기기만 하면 됩니다.

 

어제 밤에 미리 연습했었는데

아주 잘 먹었었습니다.

 

오늘은

끝까지 젖병을 안 물었습니다.

 

한 시간 내내 실랑이 하다가

결국은 주선생님이 사무실에서 돌아와서

젖을 물렸습니다.

 

심장 떨리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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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야기 7-사위와 며느리

결혼식장에서

우리가 발표한 평등부부 서약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같이 일하고 같이 쉰다'입니다.

 

그거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진짜 고민 많이 해서 썼었습니다.

 

지금은 그 서약서가 어디 있는지

심혈을 기울여서

집안을 뒤져봐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정신만은 생활 속에서 지킬려고 노력 많이 합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두 사람만 놓고 보면

그럭저럭 평등합니다.

 

그런데

각자의 가족이 끼어들면

불평등이 생깁니다.

 

대표적인 불평등이

저는 '사위'이고 주선생님은 '며느리'라는 점입니다.

 

저는 사위로서

양쪽 집 어딜 가도 편하게 있고

 

주선생님은 며느리로서

두 군데 모두에서 큰 의무를 부여 받습니다.

 

장인 어른은

주선생님만 보면

시댁한테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언젠가 한 번은

아르바이트 해서 돈 벌었다니까

"시어머니한테 전화 드려서, 돈을 벌었는데

옷 한벌 사드릴까요?라고 말하고 옷 사서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어디서 돈이 났다면

어머니는 "어이구, 너도 돈 벌 때가 있냐~?"라고 하시지

장모 옷 한 벌 사드리라고는 안 하실 겁니다. 

 

한 번은 어찌어찌 해서

어머니께서 정색을 하고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너, 설마 처가집 가서 설거지 하는 거 아니지?

절대 하면 안된다..절대..!!"

 

36년 동안

이 날 어머니 표정이

제일 무서웠었습니다.

 

이미 처가집에서

설거지를 몇 번 한 뒤였습니다.

 

주선생님은 저희 어머니가 살아 오신 얘기를 듣고

같은 여성끼리 연민의 정이 생겨서

결혼 초기에 자주 전화를 드렸었습니다.

 

그러다 전화가 뜸해 지니까

어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야...요새는 현숙이가 시어머니한테 전화도 안 하더라..?"

 

며느리가 전화하는 걸

일종의 의무로 생각하고 계신 듯 했습니다.

주선생님은 당연히 상처 받았습니다.

 

물론 처가집에서는

제가 전화 자주 해야 한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추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박 2일로 들른

처가집에서

 

저는 이틀 내내 책만 봤습니다.

매일 제가 밥 하다가

장모님이 밥 해주시니까

아~정말 좋았습니다.

 

게다가 미루도 어른들이 봐주시니까

전 그냥 이 방바닥 저 방바닥에 늘어져 있었습니다.

 

이제 주선생님 차례입니다.

 

주선생님은 시댁에 가서

방바닥에 등을 붙일 새가 없었습니다.

 

도착하자 마자

강행군입니다.

 

여기 저기 인사다닐 곳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는 편한 편입니다.

미루 보느라고 예년만 못했지만

그래도 주선생님만큼 힘들진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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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야기 6-어머니 이야기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

무릎 수술을 하신 할아버지

 

두 분 저녁 식사를 위해서

예순이 다 돼신 어머니께서 매일 저녁 마다

큰 집에 가십니다.

 

할머니는 젊으셨을 때

어머니한테 참 시집 살이를 많이 시키셨는데

 

지금은 그 커다란 집에 두 분만 계시니까

어머니가 기다려지시나 봅니다.

 

올해 초 쯤의 이야기입니다.

 

퍼붓는 눈을 뚫고

어머니가 겨우 큰 집에 도착하자

할머니께서 "아이고, 왔냐~~" 하시면서 반갑게 맞으셨답니다.

 

그 뒤에서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 추워~문 닫어~!!"

 

어머니는 이런 분위기에서

한 끼에 30인분씩 밥을 하시면서

시집살이를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어머니 몸에 익은 건

'끝까지 참고, 다 해내기'입니다.

 

이런 성격이 일은 잘 하지만

자기는 몸도 상하고 마음은 더 상합니다.

 

그 짓이 십년 넘어가면

인생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지금도 이러고 계십니다.

 

이번 추석에는 어머니와 함께 항상 손발을 맞추던

작은 어머니 한 분이 암 수술을 받으셔서 못 오시게 됐습니다.

 

작은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이번에 작은 어머니가 못 오시게 될 것 같은데 큰 일이라고 이야기하니까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답니다.

 

"그럼, 혼자 장만하면 되지 뭐.."

 

여기서 혼자 하시는 분은

저희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가 30몇 년 전부터

속에 차곡차곡 키워 놓은 숯덩어리가

이번 추석에도 역시 조금 더 커졌습니다.

 

인제 몸 안에는 더 쌓아 놓을 데가 없어서

요새는 자꾸 몸 밖으로 나옵니다.

 

추석날 저녁에 우리는 집에 모여서

어머니가 할아버지 험담하시는 걸

열심히 들어줬습니다.

 

이럴 때 하는 험담을

속세에서는 물론 뒷다마라고 합니다.

 

뒷다마는 영혼을 맑게 해주는 기능을 하지만

현재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기능도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날 어머니의 뒷다마를 신나게 들었습니다.

 

"내가 진짜 스트라이크를 하고 싶어.."

 

느닷없이 영어를 쓰십니다.

그냥 파업이라고 하지.

 

스트라이크로부터 시작된 어머니 이야기는

이번 추석을 둘러싸고 진행됐던

할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갈등과 투쟁으로 번지면서

정말 흥미진진하게 펼쳐졌습니다.

 

저는 맞장구를 쳤습니다.

 

"파업 한 번 하세요..정말 한 번 해야 돼..."

 

주선생님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러게 왜 이 집안에 시집 오셨어요..."

"그땐 결혼하면 그렇게 되는 지 몰랐지..."

 

결혼하면 그렇게 되는 지 몰랐다는 건

몇 달 전에 결혼한 제 바로 아래 동생의 부인

그러니까 제수씨가 추석날 주선생님한테 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전에 추석 때는 친구들이랑 영화 보러 다니고 그랬었는데...

결혼하면 이렇게 달라질 지 몰랐어요...진짜 힘드네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나아진 게 없습니다.

 

1시간 넘게 진행됐던

어머니의 뒷다마는

예전에도 몇 번 그랬던 것처럼

행동으로 이어지는 어떤 계획을 세우진 못하고

그냥 끝났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기차가 광명역을 지나는 데

갑자기 저녁밥 어떡하나 걱정이 됐습니다.

 

"안 그래도 어머니가 저녁 때 먹으라고 묵 싸주셨어.."

"어..그래? 히히.."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 묵 주시면서?"

"뭐라고 하셨는데?"

"밖에 나갔다 오면 여자들은 저녁 걱정이 제일 먼저 든대...그러면서 묵 가져가라고 하시더라.."

 

주선생님이 산모인 동안에는

제가 식사 당번이니까

그런 얘기는 저한테 했어야 했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절대 안 그러셨을 겁니다.

 

오랫동안 며느리의 고통을 당하셨지만

그렇다고 아들이 밥하는 꼴은 못 보십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어머니 얘기를 좀 더 듣고

제가 할 수 있는 뭔가를 제대로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주선생님은 벌써 시작한 게 있습니다.

 

명절때 마다 주선생님은

양말이나 덧신 같은 걸 사가지고 가서

숙모, 외할머니, 어머니 등등 여자들끼리 모인데서 풀어놓습니다.

 

주선생님 특유의 '여성끼리 연대하기' 작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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