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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0/11
- 추석 이야기 5-노력 그리고 고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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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0/11
- 추석 이야기 4-미루, 인기 끌다(2)
"상구,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응...그래.."
집에 내려가기 전 날 밤
주선생님이 저한테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어머니한테 괜히
여성과 남성이 평등해야 한다는 걸 설명하지 말고
혹은 강변하지도 말고
대신 어머니한테
"어머니도 같이 식사하세요~"라고 말하고
자연스럽게 남자와 여자가 같이 식사하는 분위기부터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싫다고 할 걸?"
"그러면..인제 어머니도 그럴 위치 되셨으니까
같이 식사하시자고 하자..응?"
전 주선생님 말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상구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친절하게 잘 하면서
부모님한테는 꼭 설명하고, 설득할려고 하고 그러더라..
그래 가지고 맨날 싸우고, 분위기 안 좋아지고 그러잖아.
이번에는 그냥 편하고 자연스럽게 ..알았지?"
사실 지난 설에는
시골에 내려갔다가 외가에 들렀었는데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제가 부엌으로 당당하게 진격을 했었습니다.
설거지라도 할 참이었습니다.
"남자도 부엌일 같이 해야죠..언제까지 숙모들만 일하시게요..."
잠시 파문이 일었습니다.
거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외숙모들 중 한 분은 좋아서 박수치시고
또 한분은 저를 말렸습니다.
외삼촌 중 한 분은 "야...니가 그러면 우리는 어쩌라고.."라고 하셨고
두 분은 그냥 황당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외가에서도 저는 큰 외손자입니다.
제가 뭘 하면 사람들이 아예 무시하진 않습니다.
모두가 어떻게 해야 하나 몰라할 때
어머니께서 한마디로 정리하셨습니다.
"상구 너 저리 안 가~~?!!!"
이번 추석에는 확실히
좀 더 자연스러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계획이 다 틀어졌습니다.
차례상 준비는 몇 달 전에 결혼한 제 남동생이랑 제수씨가
이미 다 끝내놓은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저는 미루한테 매달려 있느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추석날 아침,
제사가 끝나고 식사 시간이 됐습니다.
항상 그런 것처럼
남자들은 다 모여서 밥을 먹고
어머니는 남자들 밥 다 먹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선생님, 제수씨 등은 배가 고파서 울상입니다.
전,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약속했던 대로 해야지...'
"상구 넌 왜 밥 안 먹고 부엌에서 얼쩡 거려..?"
"네? 아..저기 저 숟가락이 없어가지고..
근데, 어머니.."
"왜?"
그 말 한번 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심호흡을 한번 크게 했습니다.
그리고 힘을 잔뜩 줘서 얘기했습니다.
"어머니도 밥 같이 먹어요.."
어머니는 더 힘을 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 빨리 가서 밥 먹어.."
"네..."
결국 이번 추석에는 부엌일도 따로 못하고
어머니를 남자들 밥 먹을 때 상으로 오시게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제가 미루를 하도 열심히 보니까
뭔가 감을 잡은 듯 주선생님한테 이렇게 얘기했답니다.
"우리 아들 그만 좀 부려먹어라..."
주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그런 일 다 같이 할 줄 알고 결혼한거예요.."
역시 씩씩한 주선생님입니다.
추석날 밤
하루 내내 시달린데다
오랜만에 4시간쯤 걸려서 외할아버지 산소에 갔다 오느라고
완전히 녹초가 됐습니다.
햇볕이 비쳐서 후끈해진 차안에서
미루를 안고 왔다갔다 하는데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온 몸이 쑤셨고
주선생님은 거의 절망적인 편두통이 왔습니다.
추석이 끝나고 인터넷에 보니까
'성균관 유림도 명절엔 남자가 부엌일을 도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그 기사를 출력해서 다음 설에 가져갈까 생각 중입니다.
주선생님의 시댁에 내려갔더니
어머니께서 미루 전용 요와, 이불 그리고 베개를 사 놓으셨습니다.
이불과 요가 참 이쁩니다.
제가 태어나고 12750일 동안
덮고 잔 모든 이불 보다 이쁩니다.
미루가 태어난 지 140여일만의 쾌거입니다.
완전 호강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신 '큰 집'으로 갔습니다.
부모님 집과, 큰 집은 200미터쯤 떨어져 있습니다.
두 분이 나란히 앉아 계십니다.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시고,
할아버지는 최근에 무릎 수술 후 회복 중이십니다.
두 분 입장에서 최초의 증손주이자
6대 장손인 미루가 안 이쁠 수 없습니다.
"어이구, 우리 애기...이리와..한번 안아보자..."
저는 순간 멈칫했지만
할머니께 미루를 건네줬습니다.
매우 과감한 행동입니다.
할머니는 치매에다가
몸에 힘까지 없으셔서 평소에
무거운 걸 잘 안 드십니다.
그래도 마음은 따뜻해졌습니다.
몸은, 팽팽히 긴장됐습니다.
"근데, 애기 몇 달 됐냐?"
"네달이요, 할머니.."
"아이고, 이 놈의 자식~!! 또렷또렷한 거봐..
애는 이래야 명이 길어..."
보통 어른들은 애가 총명하게 생겨서
공부를 잘 하게 생겼다든가
엄마 말 잘 듣게 생겼네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미루가 만수무강하기를 비십니다.
좀 이른 감이 있습니다.
"애기 몇 달 됐냐?"
"네달이요.."
옆에 계신 할아버지가
토를 다십니다.
"하이고..물어본 거 또 물어보기 시작하네..
방금 두번째 물어봤으니까 앞으로 10번은 더 물어볼 거다.."
미루는 처음 뵙는 분들 앞에서
좀 잘 보이려는 지 얌전히 있습니다.
"애기가 차~암 순하네..즈그 아빠 닮아서 순한가 보네..
근데, 애기가 몇 달 됐냐?"
"네달됐어요. 할머니..."
"인제 9번 더 물어볼 것이다.."
"할아버지 무릎은 좀 어떠세요.."
"무릎.? 전보다 나아지긴 했어도, 멀리는 못 다녀.."
"네..운동은 계속 하시죠?"
"상구야, 애기 몇 달 됐냐?"
"앞으로 8번 남았다..."
다음날이 됐습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미루한테
집에서 제일 이쁜 옷을 입혔습니다.
미루와 그 일행이 큰 집에 들어서는 순간
바글바글 모여 있는 친척들이
환호와 함성을 지르며 우리를 맞이하는 장면을 머리 속에서 그렸습니다.
아,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광경입니다.
그 중에는 틀림없이
상구가 인제 사람 구실했다고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미루를 데리고 큰 집으로 갔습니다.
바람도 상쾌한 아침입니다.
드디어 큰 집 대문을 들어섰습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왔습니다.
생각보다 날씨가 덥고 미루가 싫어해서
이쁜 옷을 다 벗기고, 그냥 집에서 입던 걸로 갈아 입혔습니다.
그러고도 한참 있다가
친척들이 하나둘씩 모이긴 했었는데
올해에는 유난히 사람들이 별로 안 왔습니다.
꿈에 그리던 환호는 전혀 없었습니다.
소리지르는 건 미루 뿐이었고
할머니만 부지런히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즈그 아빠는 용해 빠졌는디...이 놈은 울락불락허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습니다.
미루가 계속 떠듭니다.
"즈그 아빠는 용해 빠졌는디...이 놈은 펄렁펄렁허네...
상구야, 애기 몇 달 됐냐..?"
저는 순한데
미루는 안 순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변에 모인 몇 안된 친척들은
그래도 오며 가며 미루를 이뻐해주셨습니다.
전엔 안 그랬는데
갑작스레 용돈을 주시는 분이 계셨고
주선생님은 어머니한테서 옷을 얻어 입었습니다.
아마도 미루가 한몫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쁜 짓은 미루가 하고
이익은 우리가 챙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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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변화가 혁명보다 힘들다니깐요...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형제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면서 죽이 맞아서... 첫 명절때 어머님 아버님 황망해하시고 할머님 잔소리하시는 틈에서 각자 자기 아내 옆에 죽치고 앉아 전부치기를 장악했어요. 그 다음 명절때는 설겆이대를 장악하고 또 그 다음 명절때는 송편을 장악하고... 게다가 며느리 둘이 비슷한 시기에 임신해서 애낳는 바람에 며느리들 애보는 동안 남편들이 전부치고 설겆이하고 송편빚고 했지요... 물론 시어머니와 숙모님이 '더' 많이 일하셔야 했지만... 그런데 여기까지 오기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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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구려~~ 상구백 옆에서 한숨 쉬고 있다우~~우린 차라리 이혼을 꿈꾼다우~~ 결혼 프로젝트에 이어 이혼프로젝트 ^______^;;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