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해 준 책인데, 1권을 절반쯤 읽다가 책을 덮었다. 너무 재미가 없었기에..

그런데, 그 친구가 넘 재밋다고 2권까지 꼭 보라고 하기에 병원에 드러누워 읽었다.

2권에 가서야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긴 했지만, 여전히 지루하고 별로 재미는 없었다.

가끔 초등학교 6학년생 주인공 지로가 바라보는 세상과 그들의 세계가 재밋게 그려지기는 했다.

그의 아버지가 그리던 세상은 멋진 세상이기는 했지만,

그 세상이 지금은 이룰수 없는 세상이 되었고,

천덕꾸러기 꿈이 되고 말았다는 것인데,  그 꿈은 누군가 이루어 내야 할 꿈인것은 분명하다.

 

꿈을 꾸고, 그걸 위해 평생을 투쟁하지만, 

그꿈은 역시 이 살벌한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함께 꾸는 꿈이 아닌것 또한 분명하다.

그래서 마지막 발악으로 택한 것이 남쪽에서 개발과 맞써 싸우는 것이었다.

 

이런 꿈들이 헛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꿈이 되어야 하고,

함께 투쟁하는 세상이 되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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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9 23:09 2007/04/09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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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인터넷 서점을 뒤지다 고른 터키 소설이다.

야샤르 케말이라는 작가는 터키에서 유명한 작가이고, 노벨상 후보로도 올랐다는 사람이다.

정부를 비판했나든 작품을 써서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고, 터키 작가노조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단다.

 

이 소설집에는 딱 두가지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는데,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와 '아으르 산의 신화' 이다.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는  이슬람 권에서 계속되고 있는 명예살인을,

그리고 '아으르 산의 신화'는 오스만 제국과 쿠르드족의 갈등을 그린 내용을 담고 있다.

 

'독사를...'는 내용이 단순하고 또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흥미진진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어머니와 아들은 물론, 그 주변의 가족들의 심리를 잘 그리고 있고 여러가지 사건의 전개도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오랜 전통(?)이 죄 없는 어머니를 아들이 죽이도록 만들고 있고, 아직까지도 이런 사건이 가끔은 일어난다고 하니까, 세상에는 참 여러가지 전통이 있고, 세월이 흘러도 잘 계승되고 있다.

여기서도 가부장적 제도와 그로 인한 여성의 피해가 주된 내용이다.

 

'아으르...'는 읽는 동안 쿠르드족의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이게 오스만족과의 갈등이라는 내용이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하긴 그 동네의 역사와 그 사람들의 가슴에 흐르는 정서를 알 수없는 산오리로서야 그저 우리나라 소설 읽듯이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뒤쪽으로 가면서 아으르 산을 중심으로 쿠르드족 수십만이 모여들고, 이에 굴복하는 오스만제후의 모습에서 투쟁의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전율이 일어난다.

이 이야기는 신화나 설화를 소설로 옮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옮긴이 오은경이 쓴 작품해설에서 조금 퍼오면...

 

- 야사르 케말은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자 했던 작가이다. 제3세계적 한계 상황에서 야샤르 케말의 글쓰기는 저항이며 고단한 투쟁의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제3세계 문학을 읽는 것은 어 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난과 기아, 분쟁, 소외, 투쟁..... 치열하고 숨이 막히는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권력과 지배의 그늘에 가려진 수많은 그림자들의 절규를 지켜보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오늘, 투쟁의 현장에 남이 있기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해설이 더 멋있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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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0 13:06 2007/03/2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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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from 읽고 보고 2007/03/19 19:04

회사의 동호회는 '영화보기 동호회' 가 아니라 '영어듣기 동호회'였다.

영어듣기 동호회가 영어를 잘 듣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튼 요즘 이 모임의 총무(인가?)인 안 낭자가 시간이 좀 나는지,

영화벙개를 잘 때린다.

 

 



영화 보기 벙개를 때렸는데, 본 영화는 300 이었다.

300인지, 3000인지 새로 나온 영화에 관심 없는 산오리로서는

그게 도체 무슨 영화인가 했는데, 스파르타 군사 300명이 수십만인지 수백만인지 하는 페르시아 군사와 싸움을 벌이는 과정을 그린 거다.

만화가 원작이라는데, 영화도 그저 한편의 만화였다.

첨에는 약간 섬뜩함이나 기발함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너무 지루하게 전쟁과 사람을 죽이는 장면만 나오니까 하품이 나오고 몸이 뒤틀렸다.

그걸 두시간이나 보고 있었다니...

 

한결 - 저걸 영화라구... 시끄러워 죽는줄 알았네..(당초부터 영화보는 동안 따로 술마시고 있으면 안될까 하더니..)

안, 배 - 몸짱들은 정말 볼만 했는걸...(여자들은 그럴테지..)

민 - 영화 좋지 않았어요? 그렇게 혹평할줄 몰랐네.(문화체험 동호회 총무이자 영화평론가이니까 그럴만도..)

변 - 그냥 볼만한 영화..(그랬던가? 별 불평이 없었던가...)

산오리 - 영화에 대해 아는게 없어서 그냥 있는대로, 보이는대로 보는 것에 만족할거야.

 

영화보고 나와서는 영화보는데 빠진 친구들까지 불러서 술한잔 마시는데, 꽤나 오래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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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9 19:04 2007/03/19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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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이 책의 광고를 봤는지, 아니면 누구 글에서 보고서 읽고 싶다고 생각해서 샀는지 모르겠다.

일본소설을 요즘들어 몇개 봤는데, 본 것들은 거의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이다.

현대의 삭막함에 갇힌 사람들이 겪는 자잘한 에피소드들의 연속, 그기다 약간 발랄한(?) 상상력...



그래도 死神 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발랄한 상상력이었다.

 

사신이 만나는 고객들은 다양하다.

전자제품회사의 고객불만을 처리하는 여성, 조폭, 평범하지만 무슨 이벤트에 당첨되어 산장에 놀러온 사람들, 짝사랑을 하는 남성, 살인용의자, 그리고 미용실을 하는 노파까지.

그들을 일주일동안 만나면서, 조사(?)를 하고 죽는 것을 결정해 주는 것이 사신의 역할이다.

 

죽을 만한 사정이 있거나 없거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 삭막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삶과 애환을 듣고, 사신의 입장에서 기이한 느낌을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신이 사람들의 정에 이끌리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단호하게 처리하는 모습조차도 현대인의 삶과 닮아 있거나 맞닿아 있다. 지극히 현대적인, 삭막한 사신인 셈이다.

 

그래도 무감정의 사신까지도 결정의 순간에 망설이게 되는 장면이 있는 걸 보면, 인간의 따뜻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려 한게 아닌가 한다.

 

사신을 알게 된 노파처럼 사람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담담하고 여유로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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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3 10:16 2007/03/1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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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부터 책은 딥따 샀는데,

그 산것에 반비례해서 읽는 책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펼쳐서 몇장 보다가, 덮어두거나,

반쯤 읽다가 쳐박아 놓거나,

아예 펼칠 엄두를 내지도 못하거나 한다.



그래도 고전 소설의 형식을 그대로 갖추고 있고,

인물과 줄거리가 있고, 상황설정이 공감이 간다.

작가가 김포에서, 공항동에서 살았기에 거의 실화같은 느낌이 든다.

실화일 가능서이 높아 보인다.

 

- 박철의 소설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포스트'가 운위되는 '지금 여기'에서, 그의 소설은 역설적으로 새로움을 부여받는다. 근대적 일상의 폭력성에 응전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이 지나치게 정직하기 때문일까.  아니,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고향을 되새기고, 타자(세계)와 의 소통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정이 이러한테 어찌 박철의 소설을 두고 낡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고인환(문학평론가)의 해설에서--

 

해설가의 해설이 뭔말인지 모르는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읽고 나서 이 해설가의 말이 이해가 되는 것을 보면 읽기에 좋은 소설이고, 느낌이 있는 소설이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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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9 16:28 2007/03/0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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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수 위원장 집을 찾아간다는 것도 취소되고,

운동을 가려니 여전히 담결려서 아프고,

그 참에 영화보기 동호회에서 영화 보러 가자 해서 따라 나섰다.

 

좋지 아니한가....



너무 웃을 만한 요소가 적고,

그렇다고 가족영화라고 하기에도 적절하지 않았다.

 

가족과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상사를 차분하게 그렸다.

약간 과장된 게 있지만, 그렇다고 크게 과장하지는 않았다.

 

영화의 가족은 그래도 밥먹을때는 한자리에 모여서

말없이 밥을 먹기라도 하지만,

산오리네 가족은 그거마저도 거의 없으니

영화보다도 더 영화같은 삶을 살고 있는 셈인가?

 

가족 구성원들에게 어떤 전형을 부여한 것이겠지만,

아버지는 너무 고리타분한 꼰대로,

그리고 어머니는 60년대의 어머니로 그리고 있어서

너무 과거의 전형에 틀을 끼워 맞춘듯한 느낌이었다.

요즘 세상에 그런 전형이 어디 얼마나 있을라구...

그리고 마지막은 결국 '어쨌든 가족밖에 돌아갈 곳이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거 같아, 새마을 운동 시기의 계몽영화 같아서 찜찜했다.

 

그나마 우리 나라 영화 어디서나 나오는

피 튀기는 조폭(같은)의 싸움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조폭 빠지면 영화가 안되는 현실인데....

 

나홀로 가족으로 살아 온 산오리로서야

그 가족의 의미란게, 좋은지 어쩐지 아직도 잘 모르겠고,

또 그리 새롭거나 새로운 주제도 아니어서

별다른 재미는 없었다.

 

중간쯤에 졸음이 쏟아져 그냥 잠들까 하다가,

그래도 영화비 생각하면서 끝까지 봤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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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9 13:59 2007/03/0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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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세살의 선택, <씨네 21> 편집장 자리와 맞바꾼 회심의 첫작품

 

그냥 책 선전을 하는 이 문구에 호기심이 가서 샀다.

마흔 세살에 하던 일 때려 치우고 소설쓰기에 나섰다는데,

아마도 43년의 인생관록이 붙어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제목도 비교적 맘에 들고...



읽기에 좀 지루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리 지루하지는 않게 읽었다. 읽혔다.

장황한 상황 설명이나 짜증나게 하는 심리묘사가 많지 않고,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고 진행되어 갔기에 그랬으리라...

이건  두 사람(이영준, 박인호)의 애기를 한권씩

써 내려갔기에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이고, 어차피 짜여진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아니 그렇지 않고 현실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좀 어설프게 생각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야기 전개가 이어지는 것들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민혁이 다른 이사들의 의견과 달리 혼자서 회사를 통합한다는데 대해

영준은 모든 걸 포기하고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도 어딘가 엉성해 보이고,

인호가 정신과 치료를 하면서 민혁과 섹스를 하는 장면도 어설프게 느껴졌다.

영준과 민혁의 갈등구조를 좀더 첨예하게 부각시켰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고,

인호의 선택도 좀더 다른 방법을 택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혜를 집으로 데려온 것은 오히려 따뜻함이 느껴졌다.

 

대체로 386이나 운동권 학생 출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소설들은

이제 어느정도 한계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별로 특색 있는 얘깃거리도 없거니와

운동권 활동을 하나의 추억으로 되씹고 있는게 대부분인 거 같아

씁쓸하다.

 

그래도 어쨌거나 마흔 세살에 하던 일 때려치우고

소설쓰기로 나선 작가의 용기가 부럽고,

그 용기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게 한없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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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7 22:47 2006/08/27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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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고래>라는 제목이 맘에 들어 샀다.

막상 사 놓고 보니까, 책 두께도 만만치 않게 두꺼운데다,

면마다 박힌 글자도 작고 촘촘한 편이라 쉽게 읽혀질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마침 을지훈련이라 하루내내 지하실에 박혀 있어야 했는데,

책을 펼쳤더니, 어라, 이거 너무 재밋네...

 

무협지를 거의 안봐서 모르겠는데,

무협지 수준의 이야기 전개가 아닌가 싶다.

3대를 걸친 여자들의 무모한 도전과 사랑, 야욕과 성공, 그리고 인간적인 모습 등...

일제와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정권에 이르는 주변의 상황과 맞물려

재미와 잔혹함이 함께 그려져 있다.

너무 쉽게 잔인하게 죽이는 것들은 무협지를 떠올리게 하고,

수많은 반전과 수많은 주인공들의 등장은 간단한 코미디를 떠올리게 한다

글을 썼지만, 말로 하는 거 같은 글쓰기도 읽기에 편하고,

그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면서

한순간도 끈을 쉽게 놓지 못하도록,

몰입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물론 뒤로 가면서, 허황된 얘기들이 더 늘어나고,

그래서 오히려 재미가 반감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말 재밋고 우습고,눈물난다.

 

특별한 재능이나 전문지식을 끌여대지 않고서도

이렇게 쉽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도 좋다.

 

이런 이야기 하나 써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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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2 23:45 2006/08/22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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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써 달라고 두꺼비가 부탁을 했는데,

도대체 책을 읽고 나서도 쓸말이 별로 없었다

쓸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서평이라고 쓰려면 그래도 내용이 좀 되야 할 거 같은데,

그렇게 길게  쓸 게 없었던 것이다.

 

그냥 내맘대로 써서 주고는

(써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써줄수는 있지만,

 당신들 맘에 들고 안들고는 상관하고 싶지 않다)

어디다 싣든 말든 맘대로 하라고 했더니,

 

돌고 돌아서 네트워크 8월호 북마크에 실렸다.

다시 봐도 어디다 실을 글이라면

쓰지 말아야 한다는 걸 실감하게 된...



36호 북마크
나를, 우리를 춤출 수 있게하라!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최세진 지음, 메이데이, 2006.5)

곽장영 / 블로거   blog.jinbo.net/sanori
조회수: 13 / 추천: 0
언젠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구호와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이 있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란 책인데, 신문과 방송에서 홍보와 칭찬이 자자했던 것은 물론이고,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그 책 한권씩 끼고 다니거나 얘깃거리가 되곤 했다. 그 와중에 어찌 유행에 뒤질까 싶어 1권을 사서 꼼꼼히도 읽어 보았다. 지금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맞배지붕’이라던가, 이런 생소한 말 한두 마디 정도다. 산에 자주 다니는 덕분에 산 아래 있는 절에도 들러 탑이나 절 건물을 보게 되면,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된 문화재라는 친구들의 자랑(?)도 곁들여지곤 했는데, 책을 읽어도 읽을 때 그때뿐인 나로서는 ‘알지도 못해서’ 보이지도 않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얼마 지나서 다시 2권이 나왔는데, 그 책도 읽어보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샀는데, 조금 읽어보다가는 ‘내가 왜 이걸 읽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접고 말았다. 머리가 나쁘고 기억력이 좋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 문화재가 무슨 양식으로 지어졌고, 어떤 사연을 안고 있는지를 세세하게 알만큼 생활의 여유나 사고의 여유가 없기도 하다. 그래서 이즈음 어느 절을 가도 그 절이 그 절 같고, 그 탑이 그 탑 같은 탓에 절 구경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뭔가 복잡한 게 있으면, 그리고 쉽게 읽혀지지 않으면 몇 장을 들춰보다가는 이내 덮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소설을 열심히(?) 읽는 편인데, 그 복잡한 인물들의 이름을 기억해 내야 하는 러시아나 남미의 소설은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아마도 책이 나오기 전에 책을 쓴 최세진을 알지 못했다면, 이 책도 굳이 읽지 않았을 것이다. 책방에서 이 책을 보았더라도 제목도 그리 가볍지 않은데다가 책 속을 들여다보고서도 어디서 한두 번 듣거나 본 내용이거나, 아니면 전혀 알지도 못하는 것도 있어서 선뜻 읽어보고픈 유혹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스쳐 지나치면서 만난 것은 꽤 여러 번 되겠지만, 소주잔이라도 앞에 놓고 얘기를 했던 적은 한두 번 있었을 것이다. 그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이미 그의 명성(?)은 주위에 잘 알려져 있던 터라 이번에 낸 책을 보고서도 그리 놀라거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평소에 그가 가졌던 철학과 생활이 그대로 책 속에 드러나 있었기에 불만도 없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머리도 나쁘고 기억력도 좋지 않은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인간들이 최세진 같은 사람들이다. 책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오래된 역사에서부터 현재의 첨단 게임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게 없고, 그 깊이도 엄청나기 때문에 나는 감히 약간의 생색이나 베끼기조차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는 이 책 속에는 내가 조금씩은 알고 있었던 주제들이 대부분이고,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내용들도 몇 꼭지 있지만, 책을 들면 쉽고 재미있게 읽혀 진다. 히틀러가 사랑했던 바그너, 천재음악가로 비참하게 산 쇼스타코비치, 러시아 시인 마야코프스키 등에 관한 얘기는 대부분 내가 잘 모르는 내용이었다. 우리 문화유산에 별 관심이 없듯이 저 먼 나라의 예술가들에게 큰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무식하기 때문이다. 책 읽고 나서 이런 예술가들의 어려운 삶도 알게 되었으니 엄청난 소득임에 틀림없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건 역시 스스로 체험한 것이 있는 내용들이었다. 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에 수많은 금지곡 리스트가 발표되었고, 그런 노래들은 내가, 우리들이 열심히 부른 노래들이었다. 무슨 노래인지도 몰랐던 것들이라도, 금지곡이라고 발표되면 어디선가 악보를 구해오고 서툴게 노래를 불러보기도 했고 입에서 입으로 잘 퍼져 나갔다. 산과 바다로 놀러가거나 술집에 앉아서, 옆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금지곡들을 불렀다. 금지곡을 알고 있고, 금지곡을 부르는 것이 쾌감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금지된 노래라도 부르면서 ‘너희들을 반대한다’고 외치고 싶었고, 외쳤던 것이 아니었을까. 정미조의 ‘불꽃’은 좋아하는 노래였고, 많이 흥얼거리기도 했던 노래인데, 이런 노래조차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니...

언제부턴지 내 가슴속에/꽃씨 하나 심어 졌었지/가을 지나듯 봄이 오더니/어느 틈에 싹이 돋았지/바람 불어 잠 못 자던 날/웬일인지 가슴 뛰던 날/아아 꽃은 피었지/뛰는 가슴에/불꽃처럼 피었지 사랑의 꽃/행복의 꽃 생명의 꽃 영원의 꽃/나는 타오르는 불꽃 한 송이
-<불꽃> 중 (책 241쪽)


아마도 ‘혁명’의 불꽃이 활활 타올라서 자신들을 태워버릴 지도 모른다는 저들의 두려움이 ‘의심스럽다’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최세진은 자신의 일관되고 투철한 좌파적 상상력이 나를 춤추게 하고, 우리를 춤출 수 있게 하는 혁명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거겠지. 멀리서 혁명을 공부(?)하고 있는 최세진의 건강을 빌면서, 그의 이어지는 두 번째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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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6 23:17 2006/08/0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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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소설은 주로 문화혁명 과정을 소재로 한  것들을 읽어왔다.

최근에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요즘 들어서는 옌쩐의 '창랑지수'를 읽고 있다.

 


중국정부에서 출판만 허가하고 일체의 보도나 광고를 못하게 했는데도

2001년 10월 출간이우 소리소문없이 수백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라고 책에는 소개 되어 있다.

 



속도도 나지 않고, 소설도 한권 읽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모르겠다.

세권 중 첫째 권을 읽었는데, 줄거리는 뻔해 보인다...

중국에서도 출세하기 위해서,

그리고, 권력 앞에서 사람들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60-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중국소설만 보다가 이런 소설을 보니까,

중국의 혁명정신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돈 앞에서는 어떤 정신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1권에서는 주인공이 실패의 연속이지만,

2, 3권으로 가면 출세의 과정도 겪게 되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이 소설 한권을 보면서,

나도 이 소설의  주인공과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1권까지만...)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연애 시절에 보더라도 무능력하고,

앞으로도 별다른 출세의 희망이 없어보이는 남자라도 괜찮다고 생각된다면

여자는 결혼해도 괜찮을 듯하다.

또 이 소설 주인공의 아내처럼 결혼 후 새끼가 생기고 나면 모든 걸 새끼에게 걸더라도

그걸 이해하고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남자는 여자와 결혼해도 괜찮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든, 여자든 그게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결혼해서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창랑지수는 굴원의 어부사에 나온다는 말이라네요

滄浪(창랑)의 물 맑으면 내 갓 끈을 씻을 것이고, 滄浪(창랑)의 물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다.

滄浪之水가 淸兮어든 可以濯吾纓이오 滄浪之水가 濁兮어든 可以濯吾足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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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5 18:04 2005/12/2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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