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불능...

from 나홀로 가족 2004/11/21 23:15

오랜만에 주말에 어디로 움직이지 않고,

집에서 개겨야겠다고 맘먹고 토욜 낮은 잘 버텼다.

낮에 잠간 소진로(소설가 김소진의 이름을 따 문인들이 일산 철길옆의 공원길을 소진로로

붙여 달라 했는데, 시에서 그렇게 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산오리는 그렇게 부른다)로

산책나간 거 빼고는 하루종일 집에서 빈둥빈둥거리며(책보기, 음악듣기, 밥 챙겨먹기 등등) 잘 지내고 있었다.

 



저녁먹고 한참이나 시간이 지났고 애들과 아내까지 집에 다 들어왔는데,

(아내는 전전날 김장 담궜다고 피곤하다면서 오후에 들어와서 계속 잤구나)

전화가 왔다. 산오리한테 전화올 일 없는데, 아내가 받으라는 바람에 받았더니

동희가 있느냐고 묻고, 무슨학원이라고 했다. 그래서 동희한테 전화를 바꿔주었다.

부엌에 있던 아내가 갑자기 동희 방으로 가고, 학원을 갔느니 안갔느니 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내가 전화를 뺏어서 뭐라고 통화하고....

그랬는가 싶었는데, 우당탕탕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악다구니가 들려왔다.

놀래서 동희방에 들어갔더니, 아내는 벌써 동희 '풀스2' 손잡이를 들고 방바닥에 패대기를

쳐 대고 있었다.(순간, 아이구 아까워라, 저거 깨지면 돈푼이 또 들텐데..하는 생각.)

 

"학원안가고, 맨날 엄마한테 거짓말 하고,

 학원 안간다 하면 끊을텐데, 가겟다고 하고서는 왜 안가냐?

 그렇게 하려면 학원 다 끊고 학교에서 자율이나 하다 와라.

 애새끼들이라고 속만 썩여서 못살겠다. 아구 속터져..."

 

하튼 아내의 악다구니는 이런거였다. 언제나 레퍼토리도 일정하다.

결론도 항상 같다.

"아이구 웬수같은 새끼들...."

이 결론은 어찌도 우리 어머니가 우리 형제들 어릴적에 내린 결론과 그리도 같은지..

 

가만히 있다가는 사태수습이 안될 거 같았다.

안그래도 애새끼들 말안듣는 것은

산오리가 대전 내려가 있는 것 때문이라고 아내는 여기는데...

얼마전에는 저렇게 푸념을 늘어놓다가 산오리가 뭐라고 대꾸라도 했드니,

"그래서 가지 말라고 했잖아" 라고 당장 되받아 쳤었다. 대다할 말이 없었다.

 

몽둥이를 하나 찾아서(몽둥이도 그전에는 여러개 있었는데, 다 어디로 사라지고,

겨우 신발장 안에서 마루에 선 안보이게 붙이던 쫄대를 찾아서) 동희를 마루로 불러냈다.

"너 도대체 왜 그러냐? 왜 거짓말하고, 엄마 속을 썩이냐?"

".............."

"학원 가기싫냐?"

"아니..."

"네가 지금 몇살이냐? 고등학교 1학년이면 네할일 좀 알아서 못하냐?"

".............."

뭐 이런 몇마디 있었고, 첨에는 아내의 신경질에도 열이 받아서 정말 오랜만에

좀 두들겨패기라도 해야겠다고 매를 들었는데, 때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때려봐야 쓸모없다는 게 얼마전부터의 생각이었으니까...

여전히 대답도 없고, 때릴려면 때리라는 식으로 서 있는 놈에게 무슨 말을 하랴,,

 

풀스2  하던 텔레비전 철수, 풀스2 철수... 그리고 대충 마무리

 

아내는 조금 있다 한마디....

"매를 들었으면 따끔하게 때려야지, 한대도 못때리냐?"

"...................."

 

일요일까지 집에서 개기는 복은 없었나 보다.

막내동생이 애기를 낳았다고 해서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수원의 병원에 들러서 갓난애기 구경하고,

네째동생네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저녁 느지막히 집으로 돌아왔다.

동희는 머리 깍으러 나갔다가 산오리보다 조금 늦게 들어 왔다.

 

동희와 대화 시도..

"얘기좀 하자!"

동희는 컴화면에 마우스를 가지고 긁어대면서

"해."

"얼굴 좀 보면서 얘기하자!"

"듣고 있으니까 그냥 하라니까."

앉아 았는 의자를 돌려서 산오리를 마주 보게 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 있는 거냐?"

".............."

"문제 있으면 얘기해라"

"아빠가 텔레비 가져 간게 문제지..."

"그야 엄마 속이고 게임만 하고 있으니까 엄마가 뺏은 거잖아. 아빠는 그동안 공부하란 소리는 안했는데, 이제 대학시험보려면 2년 남았는데, 맨날 게임만 하면서 엄마와 싸워서야 되겠냐? 엄마한테 얘기하던지, 이해 시키든지 하면 안되냐?"

"알았어..."

"@#$$%%^&*(()))__&&*@@@"

"응..."

"^&*()$$%%^%%&&##@@@@"

"응....한다니까."

 

소통도 대화도 안된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빼고 나면

40대 아저씨와 10대의 학생이 어찌 소통이 되겠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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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1 23:15 2004/11/2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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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행인님의 [본색이 드러나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집안에서 가족이나 친척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으로,

학교에서 선배나 후배로 만난 사람들은 또 그런 모습으로

회사에서 일로 만난 사람들은 그 모습대로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려진 모습대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당황하게 된다.

 

온라인에서 만나던 사람들이 오프에서 만나면 그렇게 된다.

그래서 산오리는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오프에서 보자고 하면

사실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내가 예상(상상)하고 있던 그의 모습이 있는데,

이것과 다르게 나타나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고,

또 거꾸로  나에 대한 모습도 마찬가지일테고...

그래서 온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대로 온에 남아 있는게

더 아름다울 거란 생각도 해 본다,

그보다는 그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내가 맘대로 그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냥 항상 그렇게 희미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도

좋을 거란 생각도 들고...

 

그래도 어제 그 주점에서

복잡함속에서, 그 시끄러움 속에서

정신없이 이사람 저사람 만나서

손잡고 인사하고, 얼굴 새기려 노력해 보고...

재밋는 오프였네요.

 

한 번 얼굴 보는 것으로 오히려 '본색'을 밝히지 못했기에

좀더 많은 기대와 아름다운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을 거란 기대를 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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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0 15:08 2004/11/2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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