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의 시

2007/08/03 00:53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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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자주 써먹어서 창피하지만, 그래도 써먹고 써먹어도 좋은 시.
 나 역시, 누군가를 향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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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무한한 연습 2007/08/03 01:29

    황지우의 이 시를 접할 때면,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로 시작하는 나희덕의 <푸른 밤>을 함께 떠올리고는 했어요. 이 시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도 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접했는데도, 마음 한 구석이 무너지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오징어땅콩님의 말처럼, "써먹고 써먹어도 좋은 시"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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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징어땅콩 2007/08/04 01:07

    그러게요. 이 시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주루룩 흘리지 않으려면 정말 ' 무한한 연습' 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무연님께 시 하나 추천받아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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