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루스 노부스

  • 등록일
    2004/09/01 09:02
  • 수정일
    2004/09/01 09:02
  • 분류


 

 

직접 스캔하셨노라!!!

이 그림을 보고 울었다는 저자 진중권. 나는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마사루 개그컷이랑 너무 똑같이 생겨서!! 두둥~
←이것이 마사루식 개그컷 그리기.
                                                                                   실제로 나보다 훨씬 못 그린다.

 (개그컷을 찾아봤는데 게을러서 더는 못 찾겠다. 스캔도 요원하고~~)

 

 

 

진중권은 여기서도 탈근대적 미학 찾기를 위해 분주히 뛴다. 근대의 합리란 폭력으로 매장된

광기, 우연, 자연미 등의 숭고 미학을 살리기 위한 줄기찬 10개의 글. 나는 이 사람의 글이 참

읽기 쉽다. 익숙해져서 그럴 거다. 근데 솔직히 이 책은 좀 지겨웠다.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일반 독자를 상대로 한 에세이 형식이라서일까? 솔직히 미학이 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미학같은 게 필요할까 싶기도 하다. 느끼고 받아들이는 거라면 이런 이론 없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식의 회의론은 대화할 수가 없으니... 셧업.

 

앙겔루스 노부스를 보고 웃어버리는 내가 슬프다. 혹시 마사루 작가는 파울 클레에 대한 오마쥬로서 개그컷을 그린 걸까? 아닐 것 같다...-_-;;; 파울 클레를 몰라도, 어린이들은 그림을 그린다.

나는 어린이들의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어른을 따라 그린 그림도, 순진무구하게 못

그린 그림도 별반 감흥이 오지 않는다. 그보다 내 친척동생이 그린 그림이나 글을 보면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싶어서 매우 흐뭇하긴 하다=_=;; 언니한테 메일 보낸 거 읽을 때도 가끔 얘기를 나눌 때도

와 세월 빠르다 싶고 어떻게 이렇게 사람으로 자랐을까 신기하다... 므흣 뭔 소리~

 

지금은 현대미학강의 읽고 있다. 훨씬 재미있다. 이것은 자세히 열심히 읽으리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인형의 집

  • 등록일
    2004/09/01 08:56
  • 수정일
    2004/09/01 08:56
  • 분류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 책정리하는데 눈에 자꾸 밟혀서 빌렸다.

현대에 살고 있는 내겐 요즘 작품들보다 옛날 작품들이 신선하다.

그냥 요즘식으로 드라이한 거는 정말 구미도 안 땡기고. 드라이쓰~~

 

총 3막으로 행복한 가정, 서서히 다가오는 위기에 대한 두려움, 위기의 증폭과 파국 내지 새로운 삶.

뭐 이렇게 나누어 보겠다.

되게 재미있는 게, 노라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절정은 전광석화같이 지나간다. 나는 보통 책을

읽을 때 절정을 향해 막 치닫는데, 내 스타일에 따르면 이 희곡은 절정이 좀 김빠질 수도 있다.

긴장하기도 전에, 절정이어야 할 사건은 그냥 지나가고 사건이 야기한 문제만 남았으니까.

 

집안에서 돈이나 써대는, 치장하는 거나 좋아하고 철없는 여자인 것 같은 노라.

그것은 아버지와 남편이 만들어낸 이미지였고, 노라는 거기에 충실히 살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자신을 사랑한다 믿었으므로. 자신의 역할에 재미도 느꼈지만 그뿐이었다는 걸,

가정에 다가온 위기를 남편이 단지 자신의 명예에 대한 위기로만 인식하는 남편을 보고 깨닫는

노~라.

 

당시엔 신여성의 표본(?)으로 보여졌던 듯 하다. 토지에도 카르멘과 함께 노~라가 언급되더람.

아이와 남편 등 가정을 내팽겨치고 집을 뛰쳐나갈 수 있는 노라는 별로 신여성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오랫동안 쌓아온 모든 기반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용기,

아니다 싶을 때 잘라낼 수 있는 용단, 뜻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지. 이런 부분이 아직까지

물체로 취급되던 여성해방에 관한 것인가 보다으.

 

노라는 아픈 남편을 위해 남편 몰래 돈을 꾸는데 보증을 받아 오라는 말에 아버지를 떠올리지만

투병 중으로 곧 돌아가실 아버지께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 자신이 아버지 싸인을 위조한다

(그것도 아버지 돌아가신 날짜 이후의 날짜를 써서...-_-)

이것이 범죄가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 한다. 아내에게 아픈 남편을 위해 돈을 꿀 권리가

없다는 법이 있다면 그 법은 잘못된  법이라 한다. (이에 대해 돈 꿔준  그 인간이 말한다.

"법은 동기를 묻지 않습니다" 아 짜증나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판결시 양형에 참작은 된다. 법률의

부지니까 위법성 조각도 안 된다. 이럴 때 배심제라면 어떻게 될까? 나같은 보통 사람의 정서로는

무죄 내릴 것 같은데.. 살인범도 무죄 받는 세상인데 뭠)

철부지 아내인 척 돈을 헤프게 쓰는 듯 남편에게 연기를 하며 자신의 용돈을 쪼개서 몰래 돈을 잘 갚아나가던 중 일이 꼬여서 남편한테 모든 상황이 들통나게 생기자 죽을 결심까지 한다.

노라는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절망에 빠져 있는데 죽을 각오를 하는 만큼이나 남편의 구원을

절실히 바란다. 근데 남편은 모든 상황을 알자 내 명예를 더럽혔다며 불같이 화내고... 폭로하지

않겠다는 편지를 곧 받고서는 완전 돌변해서 당신을 용서한다고, 뭘 그리 걱정하냐고 하하하거린다. 이에 싸늘하게 식은 노~~라.

 

아 역시 계속 생각해서 써야겠다. 너무 좋은데 실체가 안 잡혀-_-

 

(퀴이담님께서 희곡읽기를 더 좋아하던 한 때 매우 좋아했던 작가라고 하심. 퀴이담님

너무 좋아요>_<)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