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단체 사진

  • 등록일
    2004/09/01 09:07
  • 수정일
    2004/09/01 09:07
  • 분류
    웃겨


 

 

왤까? 왜 이게 주체 못할 정도로 재미있을까? 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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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숲을 지킨다

  • 등록일
    2004/09/01 09:05
  • 수정일
    2004/09/01 09:05
  • 분류

 나의 고향은 양평이다. 아빠 차를 타고 시골에 내려가는 길에 차창 밖 곳곳에 허수아비들이 많이 보였다. 허수아비는 논에서 곡식을 새들로부터 지켜주기도 하지만 차를 타고 가는 이들의 눈이 즐겁게 여러가지 재미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언니가 밤따러 나무에 오르는 동무들을 지적한 다음부터 우리는 허수아비 찾기에 열중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피켓(?)을 들고 원으로 돌며 각자 연주하는 농악대 허수아비들과 그 주위의 논 곳곳에서 농악대를 향해 서있거나 흥에 겨워 춤을 추는 농부 허수아비들은  꼭 사람같아서 비맞고 있는 모습에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느 마을 길목에선 정승과 함께 곱게 차려입은 삼대 허수아비 일가가 반겨 주기도 했고, 또다른 마을에선 짚으로 만든 소와 말 등에 탄 마을 주민 허수아비들이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호잇'하며 무술하는 모습과 사다리를 타는 모습등도 재미있어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요즘의 영악한 새들이 허수아비를 뭘로 알고 곡식을 막 먹으니까 사람도 착각할 정도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낸 것이 어쩐지 정겨웠다.
 차창 밖 풍경에서 눈에 띈 것은 비단 허수아비만은 아니었다. 7월에 농활 가서 피 뽑았던 일을 상기하며 벌써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벼들을 보니 내가 올농사에 일조했구나 싶어서 자랑스러웠다.
 벌써 시골집에 도착하니 개가 또 새끼를 낳았다. 새끼들은 태어난지 16일이 되어 눈도 반쯤밖에 못 뜨고 몸도 작고 하얀 것이 끔찍하게 예뻤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강아지부터 들여다 봤는데 때마침 식사중이라 엄마 젖에 치열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저녁에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 큰 아빠께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 오셨다. 언니는 강아지를 꼭 끌어안았고 강아지도 추운지 언니 몸 속을 파고들었지만 나는 눈도 채 못뜬 강아지를 만질 수가 없었다. 어릴 때 개한테 물린 이후로 개를 비롯한 모든 동물에게 두려움이 생겨서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뿌리깊은 불신이 있어서다. 어서 동물들과 화해하고 싶은데 아직도 멀었구나 생각하며 강아지 만지길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중3때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만 해도 우리 시골은 '진짜 시골'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직접 지으신 그 집은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마루가 있고 사랑채와 화장실은 본채에서 분리되어 있는, 그리고 집 뒤는 산으로 곧장 연결되는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다. 나무로 만든 대문 옆엔 소 식구들이 사는 외양간이 있었는데 소들은 방귀도 잘 뀌고 똥도 잘 싸고 여물도 잘 먹었다. 마당에 한가득 있는 짚을 작두로 댕강댕강 잘라서 직접 먹여주면 할머니는 소 배터져 죽는다고 그만 주라 하셨다. 어느 날 외양간 뒤쪽이 무너져내려 엄마 소가 똥 누는 걸 구경하게 되었다. 똥이고 오줌이고, 너무나 많은 그 양에 내가 얼마나 감탄했던지! 소는 내가 제일 좋아했던 동물이다.
 집 옆쪽으로 돌아가 보면 닭장이 있었다. 그 때도 지금도 닭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다. 동네 그 어느 닭도 결코 새벽에 울지 않았다. 말그대로 아무 때나 울어댄 것이다. '닭대가리'라는 말을 절감하며 닭장을 지나면 돼지 우리가 있는데 돼지는 참 많았다. 수십 마리들이 꿀꿀꿀... 냄새는 폴폴 났지만 좁은 우리에서 자기네끼리 엎치락 뒤치락대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시골에 오면 언제나 동물들부터 찾았다.
 돼지우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뒷산이 나온다. 뒷산에는 큰 밤나무가 여러 그루 있어서 자기가 주은 만큼 자루에 밤을 담아 집에 가져와서 삶아 먹었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밤은 숯불에 구운 게 최고다. 아궁이에 삭정이로 불을 지피고 뗄감을 넣어 한참떼면 뗄감이 검게 숯이 되는데 그 숯을 화로에 담아 거기에 밤을 넣고 둘러앉아 여남은 분을 기다리면 탁, 탁, 밤이 익는 소리가 들렸다. 앗 뜨거, 하면서도 맨손으로 미친 듯이 숯불을 헤집어 밤을 까먹다 보면 손도 입도 새까매지곤 했었다. 그 때의 그 화로는 지금도 남아 고기를 구워 먹는 데에 요긴하게 쓰고 있다.
 집은 나무랑 흙으로 지은 기와집이었는데 여름에 비가 오면 처마 끝에서 비가 똑똑 떨어졌다. 비가 와서 강물이 불면 냇가에 나가 수영도 하고 고기도 잡았다. 고기는 손으로 잡아서 난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고 그냥 신나서 물가에서 놀았다. 어른들이랑 같이 고기를 잡을 때는 큰 그물을 갖고 갔는데 어른 팔뚝만한 메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기도 했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뒷산에 밤나무는 몇 그루 없고,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집은 2층짜리 양옥집이 되었다. 소랑 돼지랑 닭도 없고 동네 방앗간은 귀신집이 되어 밤에는 근처에 얼씬도 못한다. 풀들이 자라는 흙길은 없고 집 앞까지 시멘트 길이 깔렸다. 냇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지도 않는다.
 몇 년 전에 큰 아빠께서 시골에 정착하게 되셨다. 냇가의 다리 부근에 있는 논에 벼를 벌써 모두 베어내신 것을 보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께서 계실 때와는 많은 것이 변했다. 하지만 시골집엔 개가 있고, 할머니는 두부를 만들어 주신다. 그리고 두 개 남은 아궁이에는 여전히 장작불이 타고 있다.

 

2001/10/10 (글터 탈퇴하느라 갖다놓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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