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평 지상에서 가장 작은 내 방 하나

  • 등록일
    2004/09/01 08:54
  • 수정일
    2004/09/0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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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감

 

     이종

 

  한 구덩이에 묻으려고 몰아오더니 뭉치는 힘에 겁이 나서 흩어낸다. 제 살을 깍아 내는 정신부대, 고랑과 밧줄에 피를 흘리며 끌려간다. 양풍의 거리에 화려한 간판 트인 한울에 태양이 어둡다. 출발과 배웅의 인파를 가르며 정치범의 이감에 총안의 감시. 접근을 못하는 눈들이 부모와 형제들을 찾는다. 출발신호에 역로가 붐빈 대전역. 수인전용 열차의 기적이 봄 하늘을 찢으며 고향 아닌 또 하나의 감옥으로 달린다.

  10년 만에 보는 강산에 여전한 춘궁지대. 벗은 산 메마른 들에 풀뿌리를 캐고 풀잎을 뜯는 영양실조의 얼굴에 해가 길다. 실버들 개나리가 봄빛을 잃은 호송과 경비의 역참마다 출발과 도착에 밝아야 할 젊은 세대들이 군복과 총으로 무장하고 탈출을 경비한다.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낯선 황토색. 묶여 가는 이방의 차창을 내다본다. 백마산 기슭에 묻힌 육친과 전우. 피에 물들은 진달래 핀 유격루트의 오솔길이 해방기 날리던 영동 거리가 달려오고 떠나가며 돌아온 기약을 묻는다. 추풍령 치닫는 기적이, 분명한 건 싸움길이고 고향길은 멀다고 길게 소리친다.

  새마을 건설의 연도 풍경. 군사시설과 양갈보 문화가 겉만 보면 그럴 듯하다. 대구역에 도착하니 특경대 기동대가 혁명군에 대항하듯 겹겹이 에워싸고 방아쇠를 잡고서 감옥으로 호송한다. 마주치는 눈들이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낙동강만 오열한다.

  모아 놓으면 뭉치고 흩어 놓으면 번진다.

 

 

 

이미 2000년에 나온 책. 비전향 장기수 할배들이 북한에 건너가기 직전에 나온 7인의 회고록이다.

인생과, 감옥과, 남한의 친구들과, 가족. 남한을 조금씩 비판하기도 하고.

<선택>이 여기 실린 김선명 할배의 글로 만든 영환가 보다. 책정리하다가 누가 반납해서 고맙게도 알게된 책이다.

 

정말 칠팔십, 게다가 구순까지 되신 분들이 이런 글들을 직접 쓰신 것인가, 놀랍다. 조리 있고 간결하다. 신세타령따위 없다. 우와... 하긴 박완서 할매도 벌서 팔순이시던가... 대충 그렇지 아마.

 

이들은 나와 뭐가 다를까? 아아 그 말로 할 수도 없는 고문과 학대 폭력 살인행위에 대해 회고하는 모습도 담담하다. 세월이 흘렀으니까 이제 무덤덤해졌을까. 그 분노와 모멸감을 잊을 수 없겠지. 그러나 그따위는 이들의 대업-통일사업-을 이룩치 못한 자아비판, 그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대체 그 긴 세월을 견뎌낼 수 있는 원동력이 뭐였을까. 단지 신념. 외세의 개입없이 조국이 평화적으로 통일되기를 바라는 그 절절한 마음. 그것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나는 연합이나 연방이나 어느 것이나 좋다. 통일도 좋다. 그러나 굳이 통일하려고 시간을 소모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가자. 다른 나라보다 가깝게, 비자없이 왕래 자유롭고 기차로 다닐 수 있게, 한민족인 건 알 수 있게, 그러나 괜히 한 쪽 체제 우선시키지 않기 위해서 통일 말고 2체제로 가자.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영화들을 보고는 어떻게 느끼는가.

그들의 대업에 동감하는 면이 있다. 감정적으로는 나도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민족적 이유- 그것이 경시될 수 없다고, 그것이 다라는 것이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라고, 나도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그런 이유는 막연하게만 다가온다. 이 분들의 삶과 신념이 한 때의 얘깃거리는 될 수 있지만 내 사상에 영향을 주기에는... 막연하기만 하다. 민족자주의 길을 위해 헌신하셨구나, 감히 말로 할 수조차 없는 억압을 견디면서까지 신념을 지켜내셨구나, 다만 모두가 평등하게 함께 가는 세상을 원하셨구나. 하지만 모두 함께 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이 있을 수 없지만.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없었다. 대의야 모두 같다.

 

 

 

 

 

 

 

==============

참 사람 생각이 많이 변하네. 이 글을 쓸 때는 어찌 됐든 '민족'이란 개념을 긍정하고 있지 않은가!

민족이라는 허구의 "단일성의 신화"보다 이산가족의 슬픔이 통일 문제에 있어 내 화두였고

그래서 국가 단위로 통일할 것이 아니고 평화적 공존을 통해, 보다 더 가깝게 지낼 수 있게

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었지만, 이 때까지는 민족이란 개념 자체에는 딴지를 걸지 않았네?

쓴지 몇 달이나 됐다구... 생각이 변한 게 아니고, 아무래도 별 생각없이 그 말을 쓴 것 같다.

나도 메멘토라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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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으로 모자랄 여자 이야기

  • 등록일
    2004/09/01 08:48
  • 수정일
    2004/09/0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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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출판사가 어디더람. 그기서 퍼내는 씨즌잡지가 있는데 그기서 광고를 보았더랬고

박완서 선상님이 발문 써주신 걸 알구는 꼬옥 읽어보구 싶었더랬고

책의 존재를 알자마자 울 외할무이 인생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졌고

책에 대해 잊고 있는 동안에도 이 생각은 무럭무럭 자라나 급기야는 다달이 10만원 모아

중고라도 노트북을 숭디에게 사주고 주말마다 대여해서 할무이 인생을 속타로

적어내려가야지 그러나 대체 언제 사서 쓰냐 이러다가 이 책을 딴 책 찾다가 우연히 발견,

읽구 나서는 난 울 할뮈의 손녀니까 들은 거 고대로 안 적고 쪼깨 나중에 내가 적어도 그것은

위대한 구비문학이 되지 않겄는가 생각을 해보았다.

 

할머니들은 누구나 사연이 구구절절하고, 그래서 신세한탄조가 지배적이고, 응석쟁이다.

난 단 한 분의 할뮈라도 잊혀지는 게 두렵다. 절대 영구장대히 죽은, 살은 모든 사람을

기억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냥 울 할뮈 인생은 내가 잘 알고 있어야잖겄는가,

난 울 옴마 인생도 거진 모르니께로. 울 할뮈는 내가 알아줘도 넘들은 누가 알아준댜.

이러코롬 책이 나왔지만 요런 기회없이 속속 죽어버리는 할마씨 할배들은 어쩔 것이여.

한도 끝도 없는 이야그지만... 만날 스러져가는 것들을 그냥 냅두라믄서 이리 집착한댜.

혹시 나야말로 쿨하게 살려는 인종인 것이여? 그거이 아녀ㅠ_ㅜ 기록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다구.

하기사 그랴서 시를 안 쓰려니께 기억조차 안 하더만. 기록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어.

그리고 영원히 살고 싶어. 영원히 모든 걸 기억하고 싶어. 슬퍼. 뭐여 이거 시방...

 

할뮈들은 노래를 잘 하신다. 나와는 음계의 차원이 다르므로 나난 잘 이해 못한다.

글쎄 책에 나오는 할뮈맹시롱 울 할뮈도 노래 지어 부르는 거 있지 캬캬

 

"울 손녀 딸이 날 보러 왔네~"

 

아하하 웃겨서 기절할 뻔 했다. 앞으로도 많이 지어달라 해야지.

나도 길 거니면서 노래를 쫌 지어부르는데 음이 영... 페스티쉬 아닌 창작곡의 경우

곡이라 하기 욕나오는... 어째 그게 안 된댜.

 

남편한티 뚜드리맞고 쎄빠지게 일하고 아 놓고 키우고 치닥거리하고 하이고마...

그거사 다 알아서 쭐인 것 같더만 그거 빼면 할뮈들 인생에 뭐가 남을까?

아따 시방 또 일반화의 오류 범해불고 지랄이여. 각 할뮈들의 말씀 듣고도 정녕 고땀시로 말이 나오당가?

 

넘으 인생에 뭐 남나 따지지 말고 스스로를 생각해 보란 말가. 글타.

할뮈들 앞으로 워째 살고 싶은신겨?

울 할뮈는 거진 6년간 계속 죽고 싶어하셨다. 뭐 당연도 하지만... 그러다가 최근 기운 쫌

차리신 것도 같고. 내가 몇 년간 주입한 장밋빛 미래가 효과를 보는 듯도 하고.. 흐흐

할뮈 위해서라두 공부해야 혀! 대체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 북돋아 주는 것들이 얼마나 많냐?

 

 

으읍 참 시끄럽다... 미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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