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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25
    인사동에서 친구(들)을 만나다.(16)
    자일리톨
  2. 2005/01/23
    어제 오프모임 사진(20)
    자일리톨
  3. 2005/01/23
    제대로 된 요리를 해먹자(5)
    자일리톨
  4. 2005/01/17
    주말이면 어김없이 걸리는 병...(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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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1/16
    나의 아름다운 정원 - 심윤경(2002)(4)
    자일리톨
  6. 2005/01/14
    낭만적 사랑과 사회 - 정이현(2003)(12)
    자일리톨
  7. 2005/01/13
    뉴라이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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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1/11
    모니터를 얻다(10)
    자일리톨
  9. 2005/01/11
    영웅 알베르 - 자끄 오디아르(1996)(2)
    자일리톨
  10. 2005/01/11
    룩앳미 - 아네스 자우이(2004)(8)
    자일리톨

인사동에서 친구(들)을 만나다.

인사동에서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2달전에 결혼한 그 친구는 지금이 참으로 행복하다 하였다.

모 단체의 상근자인 그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맛난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다음달에 하이타이를 들고 그 친구의 집들이에 가기로 하였다.

친구와 헤어져서 걷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여자친구와 상봉하였다.

나 또한 오늘밤은 행복하였다.

 

윗글을 읽어보니 유치하였다. - 자일리톨 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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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프모임 사진

*이것은 리버미님의 쿵후허슬보기off와 관련된 사진입니다.

 

★1차 고대학생회관(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후원의 밤)에서..

 

[사진1 "블로거끼리 한컷~ 찍사가 좋아 명작이 나왔다"]



[사진2 "참석블로거끼리 또 한컷~ 지나가던 행인을 협박(?)하여 모두 찍을 수 있었다. 아래편에 조커님의 손도 보인다"]

 

 

[사진3 "담배피우다 스머프님에게 딱 걸리다"]
 



[사진4 "리버미님의 눈썰미덕에 오프라인에서 상봉한 정양님. 자칫했으면 이산가족으로 남을뻔했다"]



 

[사진5 "진보블로그 지하에서 암약하다 드디어 땅위로 올라오신 언더그라운드님"]

 


[사진6 "스머프님과 차일드캐어님이 다소곳이 한장~"]




[사진7 "차일드캐어님과 산오리님의 술상을 넘어서 한장~"]

 


[사진8 "먼곳을 응시하며 詩想을 떠올리는 산오리님. 여기서 창작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사진9 "극구 사진을 찍지 않으려던 조커님. 카메라 렌즈를 잘도 피해다녔다"]




★2차 안암동 모처에서..

 
[사진10 "열변을 토하시는 차일드케어님"]



 

[사진11 "흐릿한 불빛아래 드디어 조커님이 모습을 보였다"]


 


[사진12 "다시 돌아온 지하세계에 안락함을 느끼던 언더그라운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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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요리를 해먹자

유치원도 들어가기전이니까 6살정도 되었을까? 그때 내가 만들 줄 아는 유일한 음식은 라면이었다. 어느날 엄마가 매우 급한전화를 받고 외출을 하면서 "점심은 네가 좀 알아서 챙겨먹어"라고 했다. 그런데 찬장을 봐도 라면이 보이지 않았고, 전기밥솥엔 밥도 없었다. 지금같아서는 밥도 앉히고 찌개도 새로 끓여서 먹었겠지만 그땐 정말 암담했다. 그저 무작정 엄마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돌아온 엄마에게 난 밥부터 달라고 칭얼댔다. 엄마가 놀라며 "점심때 밥 안 먹었어?"라고 되물었다. 그 이후로 엄마는 급한 외출을 할 때마다 먹을 것을 준비해놓거나, 용돈을 조금 주면서 사먹으라고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현재의 내 모습을 바라보며 그때의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대학시절 난 운동을 하는 친구들 주변에서 맴돌았다. 내 곁에는 항상 자신의 인생의 무게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내가 그들의 짐을 함께 들어준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여느 대학생들이 그렇듯, 세상에 나갈 세속적인 준비를 남들만큼은 했고, 또 때가되어 졸업했기에, 지금의 일상은 친구들에 비해 기름지고 안락하다.

 

그럼에도 지금 "진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과 실오라기만큼의 끈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언젠가 한 친구가 내게 "부채의식 때문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니라고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맞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무언가 빚을 진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요즘 블로그를 통해서나 내가 주기적으로 나가는 모임을 통해서, 실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힘을 얻고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떤 만남은 실망스럽고 때론 아프기조차하다.

 

어제는 잠들기 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이나 영화는 라면과 같은 일종의 가공식품이라는 생각을. 세상은 갖가지 요리의 재료처럼 다채롭지만 그 속에는 나쁜 재료도 있고 조리과정에서 손을 베이거나 데일 수도 있다. 나는 그런 과정이 두려워 작가가 나름대로 소화한 책이나 영화를 통해 편리하게 낼름낼름 라면만 끓여먹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선택한 특정작가표 라면은 항상 내게 일정 정도 이상의 심리적, 지적 만족감은 안겨준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의 실제는 아니다...

 

때문에 이젠 제대로 된 음식을 해먹어야겠다. 가끔 손을 베이고 배탈이 나더라도 세상 그 자체는 향기로운 풀들과 기름진 고기, 그리고 담백한 생선들까지 너무나도 다채로운 재료를 가지고 있는 곳일테니.

 

여섯살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

차이가 있어야 할텐데...

 

덧1)실로 많은 일들로 인해 머리가 혼란스럽다가, 오늘 블로그에서 어떤 글을 읽었습니다. 가끔 한편의 글이 사람보다 더 큰 힘을 주는 걸 보면 전 아직 정신적으로 어린가 봅니다. 그 글과 "루시드 폴"이 백주대낮에 이런 산만한 글을 쓰게 만드는군요. 핫~ @.@;

 

덧2)리버미님 계좌번호 꼭 가르쳐주세요. 오늘 카드를 써보니 되네요. 어제는 아마 은행시스템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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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어김없이 걸리는 병...

난 주말이면 어김없이 병에 걸린다.

이름하여 신체리듬문란병

 

금요일 퇴근하면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냥 자기 뭣하쟎아?

그래서 친구랑 늦게까지 놀거나

집에 들어와서도 영화보고, 읽을 것 좀 뒤적뒤적 하다보면

어느새 서너시...

그렇게 금요일, 토요일밤을 보내고 일요일에 낮잠 좀 자고 나면

일요일 밤에는 잠이 안 온다

 

어제도 시계가 4시반을 가리키는 것까지 보고 잠이 들었는데

출근을 하니 내 몸이 아직 시차적응에 실패해서인지

정신이 멍멍하다

오후가 되도 머리가 멍한 증상은 없어지질 않네

에라, 커피나 마시자

 

그래도, 주말이면 밤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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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심윤경(2002)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 때문에 읽게됐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곳은 경복궁 옆의 인왕산 아랫동네.

바로 나의 친할머니가 사는 동네다.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서 신식빌라촌이 되어버렸지만, 그전만 하더라도 슬레이트지붕에, 흙벽, 퍼세식화장실로 대표되는 옛날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달동네였다. 

지금도 내가 그토록 미워하는 할머니는 여기서 아버지를 포함해 6명의 아이들을 낳고 길렀다.

 

경복궁과 청와대가 바라다 보이고, 좁고 추레한 골목을 조금만 걸어내려가면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즐비한 이곳에 달동네가 존재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어린시절의 서울구경을 인왕산 아래의 달동네로 기억하곤 한다.

 

이 소설은 언어장애가 있는 한동구라는 작은 아이가 겪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의 기록이다. 자신만 아는 그악스러운 할머니와 고부간의 갈등의 짐을 항상 아내에게만 지우는 비겁한 아버지로 인해 집안분위기는 항상 험악하다.

 

게다가 동구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해서 할머니로부터 툭하면 갖은 욕설과 매질을 당하곤 하며(할머니의 말은 항상 "야이 새끼야"로 시작한다), 아버지도 동구에게 애정과 관심을 표현해주지 않는다.

 

이렇게 동구는 주변사람들의 냉대를 받지만, 마음만은 너무나 착하고 순수해서 6살 터울의 동생'영주'와 자신의 엄마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엄마가 매맞고 부엌의 냉바닥에서 잘라치면 부엌에서 엄마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들고, 아직 아기인 동생 영주를 업어 키우며, 자신이 읽지 못하는 글자를 동생 '영주'가 신동처럼 읽어내자 진심으로 기뻐하며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자랑을 한다.

 

이런 동구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은 오직 동구의 엄마와 담임선생님인 박영은 선생님뿐. 이후 이야기는 동구의 가족사와 남한의 현대사가 뒤섞이며 담담한 결말을 향해 숨가쁘게 흘러간다.

 

소설을 읽다가 몇번 눈물을 흘렸는데, 내가 아직 유치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난 아직도 (동구같이) 이타심을 가진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볼때면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선생님 : 동생 영주가 처음 글씨 읽었을 때 식구들이 많이 좋아하셨겠네. 동구는 아직 글씨 잘 못 읽는데, 속상하지 않았어?

 

동구 : 사실은요, 창피할 때도 있는데요, 제가 3학년 되도록 글씨도 모르는데 동생은 아직 어린데 다 아니까요, 저는 사실 창피한데요, 음음... 엄마랑 아버지가 되게 좋아하시거든요.... 할머니도 좋아하시구요. 동생이 글씨 읽고 나서는 엄마랑 아버지랑 한번도 안 싸우셨어요. 얼마 전에는 엄마가 아버지 구두를 닦아놓으셨는데 제가 뛰어나가다가 밟아서 발자국이 났거든요. 그래서 할머니가 저더러 왜 어린 동생만도 못하냐고 그러셨는데요, 할머니는 원래 맨날 그러시니까 괜찮아요.

 

선생님 : 그럼, 영주가 말 안 듣고 동구 속을 썩이는 일은 없어?

 

동구 : 예, 영주가 속썩일 때도 있어요... 사실은요, 어저께 엄마가 선생님한테 오실 적에 카스텔라를 만들어 오실 생각이셨어요. 우리 엄마는 집에서 카스텔라를 만들 줄도 아시거든요. 선생님께 좋은 선물을 드리고 싶어하셨어요. 그런데 엄마가 잠깐 나가신 사이에 영주가 계란 거품에다가 석고 가루를 넣어버렸어요. 영주는 카스텔라를 만들어서 선생님만 드릴 거라고 하니까 심술이 났던가 봐요. 그래서 제가 계란 거품을 뒤엎어버렸어요.

 

선생님 : 왜? 영주가 혼날까 봐서?

 

동구 : 예

 

선생님 : 그럼 네가 야단을 맞쟎아

 

동구 : 예. 하지만 저는 크쟎아요. 영주는 아직 어리니까요

 

선생님 : 많이 야단맞았니?

 

동구 : 예. 하지만 제가 야단맞는 게 나아요. 영주가 혼나는 모습은 못 보겠어요. 엄마랑 아버지도 많이 속상해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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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과 사회 - 정이현(2003)

* 이글은 씨앗님의 우리들의 낭만적 사랑을 위하여-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보라돌님의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문학과 지성사 2003와 관련된 글입니다.

 

 

달군님의 포스트에서 정이현씨의 영화평을 읽고 그가 쓴 글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지막으로 소설읽은 게 도대체 언제냐?-_-a) 그래서 그의 얇은 소설집을 하나 구해서 읽어봤는데, 표지디자인도 이쁘고 재미까지 있다. 이런이런...

 

8편의 단편소설 속의 흥미로운 그녀들.

남성들의 세상에서 '그'들을 절묘하고도 영악하게 가차없이 이용하며 저항한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情夫를 적절히 이용하고(종국에 가서는 죽여버리지만),

꼰대의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비웃어주기도하며,

남편 몰래 동성과의 사랑에 몰입하기도한다(그녀에게 결혼은 단지 위장수단일 뿐이다).

쑈킹하다.

 

개인적으로 젊은남녀 커플의 결혼과정을 그린 "홈드라마"와 조선최초의 modern girl에 대한 이야기인 "이십세기 모단걸"을 재미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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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강유원씨의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내가 그들을 싫어하는 이유"라는 커멘트가 달려 있고

다음의 글이 링크되어 있더라.

 

한홍구교수가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인데,

글 중간의 "비빔밥에 침뱉기"비유가 일품이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로 가기

 

지난번 MBC100분토론에서 진중권씨가 신지호와 함께 나와서

'이런 인간같지도 않은 놈하고 내가 토론하고 앉아있어야하나'라는

표정을 지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듯 싶다.

그때 진중권씨 표정이 가히 압권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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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를 얻다

형이 모니터를 얻는다고 나가서는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이번에 형의 친구회사의 컴퓨터 모니터를 CRT에서 LCD로 교체하는데 회사사장이 기존CRT모니터를 가져갈 직원들은 가져가라고 했단다.

 

현재 우리집 컴퓨터는 공유기를 써서 2대를 돌리고 있다. 한대는 3년전, 또 한대는 5년전쯤에 마련한 것인데, 내가 5년전 컴퓨터본체를 쓰는대신 비교적 좋은 모니터를 쓰고, 형은 3년전 컴본체를 쓰는 대신 나쁜 모니터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형의 컴모니터가 맛탱이가 가는 바람에 모니터의 글씨가 자꾸만 번져보여서 하마터면 시력이 나빠지게 생길 찰나였는데 타이밍이 절묘했다.

 

역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근데 이 인간이 왜 아직 안들어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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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알베르 - 자끄 오디아르(1996)

지난주 EBS세계의 명화에서 봤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머니로부터 "너의 아버지는 1차대전의 영웅이었어"라는 말을 듣고 자라난 알베르는 그 자신도 영웅이 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탕진하다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을 뿐이다. 가난한 어머니는 아버지를 영웅으로 만들어 정부로부터 연금을 타낼 속셈으로 알베르를 속였던 것이다.

그러다 2차대전이 발발하고 알베르의 마을에 독일군이 진주했다가 다시 연합군에 밀려 후퇴한다. 소심한 직물영업사원으로 전쟁에서 몇발자국 비껴나있던 알베르는 자신의 장인과 아내가 레지스탕스, 즉 영웅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고, 이에 굴욕감을 느낀 알베르는 무단가출(?)을 하여 파리로 향한다.

독일군의 지배로부터 갓 해방된 당시의 파리는 온갖 영웅담이 난무하고 있었다.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서 무언가(?)를 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영웅이 되었으며, 출신별로 분파를 만들어 서로 대립한다. 애국심과 국가주의를 통해 부풀려진 이들의 영웅담은 런던에서 '자유프랑스의 소리'를 방송하며 소일했던 망명건달이든, 한적한 시골농가에서 영국공군 조종사를 몇일간 숨겨주었던 농부이든 할 것 없이, 악의제국 독일에 대항한 투사로서 추앙받는다.

이때 파리에서 구걸을 하며 살아가던 알베르는 여러곳에서 주워들은 무용담을 가공하여 그 자신도 영웅의 대열에 합류한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임에도 파리는 레지스탕스 조직별로 모임이 성황을 이루며 나름의 정치조직으로 변모해가고 있었고, 그들 사이의 권력투쟁이 본격화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레지스탕스조직에 가입해본 적이 없어 특정조직과 연관이 없던 알베르는,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프랑스 육군 중령으로 임관을 하게 되고 그는 '공식적인' 전쟁영웅이 된다.

이에 자신의 권력을 만끽하던 알베르는 독일로 끌려간 프랑스인 SS병사들을 체포하게 되고, "프랑스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총살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 일로 충격을 받은 알베르는 자신의 거짓을 털어놓고 당국에 자수하지만, "프랑스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우려한 프랑스 정부는 이 일을 쉬쉬하며 덮어버리고 만다.

지역이든, 종족이든, 민족이든, 국가이든… 그것은 울타리를 어디다 칠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인간을 억압하고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정의라면, 그 울타리를 어디다 치느냐에 따라서 정의가 뒤바뀌고, 불의를 저지른 죄인이 영웅으로 둔갑해서는 곤란하다.

남한만큼 수많은 전쟁영웅이 존재하는 나라도 드물다. 그리고 국민들의 집단적 콤플렉스 때문인지 그들에 대한 애착도 상상을 초월한다. 김훈의 “칼의노래”나 드라마“불멸의 이순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전쟁영웅은 항상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같다. 영웅을 좋아하기에 앞서, 우리는 영웅을 누가 만들어냈는지, 왜 영웅을 만들어냈는지부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순신 동상은 다까끼 마사오가 광화문 앞에 건설했다지 아마?

 

*첨언 : 이 영화에서는 마띠유 카소비츠가 주인공 알베르역을 맡아 열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전 "증오"보고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왜 그렇게 충격적으로 봤다는 사람들이 많은지 난 잘 모르겠어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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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앳미 - 아네스 자우이(2004)

* 이 글은 해미님의 룩앳미 내 목소리로 말하기

   사슴벌레님룩앳미,

   리버미님의 룩앳미-인간관계내 권력들여다보기에 관련된 글입니다.


 

 

 

한가한 토요일, 집에 있으면 뭐하나싶어 그냥 혼자 나가서 봤다.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등장인물을 보니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이다. 가만히 보니 영화"타인의 취향"의 매력적인 "마니"(아네스 자우이)였다. 그 옆에 보니 같은 영화의 대머리아저씨(장 피에르 바크리)도 있네? 나중에 알고보니 실제로 둘이 부부이며 시나리오작업도 같이 했다고 한다. 암튼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아네스 자우이를 다시 보게 된 것은 행복한 일이다. 왜? 너무 매력적이니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해미님이 아주 정확하게 지적해 주셨다. 그 사람의 권력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한, 조그마한 권력조각을 쥔 사람이 타인의 호의를 진심으로 바라보기란 훨씬 더 어려운 것임을 이 영화를 통해 실감했다.

 

영화의 후반부, 실비아선생과 세바스티앙은 에띠엔의 권위의 城(?)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는 길을 택한다. 멋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나라면 과연 그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레니가 군훈련소에 입대했을 때 차렷!이라는 구령에 자신의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보냈던 20여년의 교육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구나"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듯이, 나도 20여년간 권력관계를 파악하고 그에 최대한 적응할 것을 교육받아왔다. 내게 있어서도(특히, 내 몸에 있어) 권력은 여전히 저항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순응해야 할 대상이다. 그것이 아무리 미시적인 권력일지라도.

 

그런데 애매한 것은 에띠엔느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다. 주인공 롤리타의 아버지인 에띠엔느는 극히 자기중심적인 인간이기에 주변 사람들을 자기가 소유한 권력으로 붙들어매어두고 상처를 입히지만, 그가 하는 많은 행동들은 때로는 예쁜 악동처럼 코믹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권력은 취향의 문제는 아닐터인데... 감독은 에띠엔느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참, 위에서 레니를 인용한 것은 영화를 보고나서 광화문쪽으로 걷다가 우연히 레니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예의 그 김영하스러운 웃음을 짓고서 내가 나온 극장안으로 사라진 레니... 마치 화장실칸에서 나오다가 마주친 친구처럼 어색했다. 그때가 눈이 흩날려서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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