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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지만 꽤나 피곤해진 정신과 몸뚱아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내 너무나 피곤했지만 꾹 참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잘못 내리게 되지 않도록 그 틈새조차 나에게 주지 않고 덜컹임과 함께 집에 도착해 근처 정류장에 내렸을 때에, 순간 너무나 커다란 이질감에 발걸음을 멈추어버렸다.
원인은 안개였다.
평소와 다르게 너무나도 축축한 공기와 희뿌연 시야가 가져오는 이질감은 꽤나 커다란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그 안개속으로 다시 발을 한걸음 내딛었을 때에 세상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냥 하얀 막이 하나 쓰워졌을 뿐.
다시 버스를 탔다. 좌회전과 우회전을 한번씩 하며 2정거장쯤 지나서 도착한 우리동네에 내린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보랏빛 세상이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겁먹지 않고 타박타박 걸어 집으로 향한다. 고작 하얀 막이 하나 씌워졌을 뿐인데 모든 소리가 먹히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막이 모두를 하나하나 따로 감싸안아버려 서로가 고립된 듯한 느낌에 짧게 몸서리를 친다.
집까지 걷는 길은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길이지만 가는 내내 괜한 불안감과 음습함에 종종걸음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또 다시 발걸음을 멈춰버렸다. 그리고 이 안개가 꽤나 무섭고 음습하고 외롭고 불안하게 만들지만, 꽤나 포근하기도 하다는 걸 깨닳았다. 그걸 깨닳으니 여전히 외롭지만 한편으론 포근한 안개속을 사락사락 헤치고 집으로 쏙 들어와서 숨을 잠시 돌리고 침대에 폭 파묻힌다.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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