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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아픔과 상처를 남기고, 어쓰를 넘겨준 모난라디오 유스포럼 발제

모난라디오에서 투덜거립니다.

 

 

  6월 1일 첫 방송을 시작한 모난라디오 180여일동안 달려왔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겠다 큰소리 치고 시작했지만 사실, 모난라디오 그동안 꽤나 작고 소소한 소통들에 매달려 왔습니다. 비록 깊이는 조금 부족했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었지요.

  고민들은 이렇게 나누고 저렇게 나누면 많이도 해결될 법도 한데. 모난라디오의 그녀들은 여전히 방황하고, 고민합니다. 삶이라는 길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그 어떤한 정의됨도 거부한채 오늘 하루도 보다 까칠하고 모나게 사는 그녀들의 안테나는 그래서 여전히 교신중입니다.

  고민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어느 것 하나로 귀결되지는 않습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니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차고 넘칩니다. 무엇을 고민하고 있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고민하고 있느냐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즘입니다. 모난라디오 앞에, 잠시 고민보따리들을 풀어보면 어떨까요?

 

  교신중이던 난다는 요즘 꽤나 불안합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먹먹해지는 감각적 공포부터 그냥 막연하게 스물스물기어 올라오는 불안감에 때때로 손끝마저 저릿저릿 해지는 요즘입니다. 심지어 그토록 싫어했던 학교를 다시 돌아가 볼까? 하는 생각도 들 지경입니다. 오랫동안 손을 놓았던 해금을 다시 켜기 보다 무언가 나를 든든하게 해줄 것 같은 “공부”를 해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스물 세 살쯤 되면 무언가 안정된 삶을 꾸려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봅니다. 스물 세살을 훌쩍 넘긴 또연은 그런 난다의 기대를 한번에 무너뜨립니다. 또연은 스무살이 되었을 때, 마치 첫 생리를 겪은 것 마냥 가슴이 떨리면서 비릿했다 말했습니다.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뀌면 뭔가 달라질 것 만 같던 스무살때도, 대학을 졸업하면 뭐가 달라질 것만 같던 스물 세 살 때도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맞이하게 될 스물 일곱이 되는 지금도 여전히 삶은 불안하다고 고백 합니다. 미래를 인지하는 한 예측 불가능한 삶은 결국엔 불안 할 수 밖에 없다구요. 결국 또연은 서른살의 안정을 꿈꾸고 있지만 그 역시 자신은 없습니다. 곁에 있던 엠건도 말을 더합니다. 엠건은 요즘 다큐를 만들고 있습니다. 스무살이 되는 과정에서의 불안에 대해서요. 그런데 요즘 19에서 20살의 불안이 특별한 나이 불안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스무살이든, 서른살이든. 마흔살이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불안한 것 같습니다.

 

당신은 무엇이 불안하신가요?

 

 

  쩡열의 요즘 고민은 독립입니다. 엄마돈이 아닌 내 돈으로 나 스스로 먹고 살기를 위한 방도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들 어렵다 어렵다 말하지만 그래도 도전하고 싶은 일입니다. 엠건도, 난다도, 공기도 모두 독립을 꿈꿉니다. 하고싶은 일이 많을수록 집은 내게 안식처가 되기보다 감옥같은 공간이 되니까요. 오랜 독립생활을 하는 또연은 간섭조차 관심처럼 여겨지던 외로운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쉬- 귀에 들려오진 않습니다. 권력관계에서 내가 하위계급인 이상. 수동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관심도 간섭이 되기 일쑤이니까요. 그래서 쩡열은 오늘도 주거권 확보를 위한 가출을 꿈꿉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마음으로 귀가하셨나요?

 

 

  공기는 얼마전 은하해방전선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그 중, 나는 우리가 대화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우리는 대화하지 않았던 것이다 라는 대사가 공기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공기는 종종 사람들과의 소통이 어렵다 말합니다. A를 B라고 이해한 것이 속상합니다. B를 A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속상합니다. 모난라디오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다 대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그저 허공에 떠도는 말이 될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와 소통을 한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입니다. 엠건이 수줍게 말을 건네옵니다. 그래도 너희는 다 소중하니까. 그렇지요. 소통은 대화의 기술이 아닌 마음의 문제인 듯 합니다.

 

오늘 누군가와 말이 아닌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하셨나요?

 

 

  엠건은 요즘 몸을 움직이기가 힘듭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이상하리만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귀차니즘이 시작되었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사실은 이것저것 무거운 것들이 엠건을 꼭 묶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날 돈을 벌겠다던 엠건이 2달여간의 사무직 노동자의 생활을 마치고 도피형 여행을 떠났던 어느 바위를 떠올립니다. 사람이 싫어져서 꽁꽁 숨으려 했던 그 바위에 앉아 엠건은 무슨 생각들을 했는지 다시 곱씹어 봅니다. 도망가고 싶은 그 마음은 귀차니즘이라는 방패를 둘러메고 앞길을 턱 하니 막고 있습니다. 다시 막막해지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무언가 귀찮은건, 그것에서 도망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결국 우리의 고민은 다시 불안함으로 돌아왔습니다.

 

 

  반년이 넘게 모난라디오를 하며 지구마을 젊은 주민들과 함께하며, 많은 것을 배웠지만. 현명해지기보다 고민거리가 늘었고, 희망차기보다 아직은 걱정꺼리가 많은 모난라디오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삶이라는 길위의 다양한 이정표 앞에서 고민합니다. 일러준대로의 길을 거부하다 보니 갈림길이 나타날때마다 고민에 빠집니다. 속도는 더디고, 지치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습니다. 길 건너편에서도, 조금 앞에있거나 조금 뒤에 있거나, 다른길에 서 있거나, 길이 아닌 곳에서 있는 사람들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모난라디오의 발제의 키워드는 삶입니다. 독립된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분법으로 구분된 세상을 3의 방법으로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 당신의 고민을 풀어주세요.

 

 

*

그 옛날 옛적 언젠가 모난라디오를 하던 그 때, 자그마치 2009년에... 유스포럼 발제문으로 굉장히 좋다고 생각하며 불안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그 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만 남겨두고 다 중간에 가버렸고, 나는 홀로 남아 유스포럼을 지켜봤다. 그런데 발제 타임을 안줬다. 아 안되는데.. 우리 이 이야기 정말 같이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발제는 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럼 해보아라는 답이 왔다. 헐 이게 뭐지.. 그래도 모두가 불안할 때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서로 힘이 될 것 같아서 같이 하고 싶었다.

 

그리고 진짜 욕먹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건 '틀린'게 아니라 '다른' 거라는 날 선 답변.(아니 나는 뭐 학교 안다녀서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잖아!!! 왜 그래!!) 대학생 멘토찌끄래기들의 멍멍 헛소리.(너흰 좀 닥쳐줘요...) 뭐 이런 기분으로... 개판으로 마무리 되었다. 엉엉 울어대며 또연에게 난다에게 엠건에게 공기에게 전화했다. 엉엉엉 우리는 같이 잘 해보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화를 내...(그렇게 다음 회의에서 언니들의 분노!! 야! 혼내줄께!)

 

아픔과 상처만으로 남겨진 야심차게 준비했던 발제였지만, 그래도 그 날 어쓰를 얻었다. 하자 흡연실에서 만난 목발을 짚고 있던 어쓰와 3시간쯤?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했다. 고마워 엉엉

 

그 때는 사람들이 왜 그러지... 하고 무섭고 슬펐는데 이제는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모두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그 불안을 나눠서 함께 나아진다면 참 좋지만, 대체로 서로 불안하게 만들고 마니까. 그리고 다들 불안했으니까 그랬겠지. 자신의 약점을 건드린다고 생각했을까? 요즘도 불안에 대한 이야기들은 친한 사이에도 잘 할 수가 없다. 세상이 너무 불안해서 그래.

 

긴 시간 그 날을 상처로 기억하고 나를 공격하고 비아냥거리던 그들을 참 미워했었다. 그렇지만 조금 용서해주기로. 이해해주기로. 그리고 조금 미안해하기도 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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