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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펙 이란 배우

* 이 글은 NeoScrum님의 [가시리와 Harry Belafonte] 에 관련된 글입니다.

벨라폰테가 두 딸과 함께 그레고리 펙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진이 있군요. 전 펙에 대해서 좀 써볼랍니다. 

 



하퍼 리의 유일무이한 출세작이자 장편소설인 '앵무새 죽이기'를 책으로 읽은 사람들 많을 겁니다. 사백몇십 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소설이지만 책 앞 뚜껑을 열면 마지막 장을 넘길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책이죠. 박진감 넘치는 전개 외에도 주제의식, 남부 시골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 어린 소녀를 나래이터로 내세운 특이함 등의 뛰어난 장점들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퓰리처 상도 받았을 겝니다. 재작년인가.. 출간 40년을 맞이해 미국전역에서 독서캠페인으로 앵무새 죽이기 다시 읽기 운동을 벌이더군요.

동명의 영화도 참 유명한데요. 영화는 글쎄요...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박진감 넘치는 장면에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박진감 나는 음악^^이나 너무나 반듯한 모습들이 약간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관객을 쥐었다 놓았다 하지요. 앨런J 파큘라가 제작했다지요. 이 영화를 테잎이나 디비디로 보긴 그리 쉽지 않은데 가끔 EBS에서 해줘요. 그리고 EBS영화의 장점 중 하나는 더빙 대신에 캡션을 보여준다는 점인데..그레고리 펙의 낮게 깔리는 목소리도 멋집니다.

 

아파르트헤이트와 별 다를바 없던 미국남부의 인종 차별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본 이 영화는 62년 작품입니다. 미시시피 버닝 같은 영화가 주제의식 면에서 더 뛰어날 순 있겠지만 제작년도를 감안해본다면 이 영화는 더 대단하죠.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의 상징이 엉클 톰스 캐빈 이었던 것 처럼 흑인민권운동과 반전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위대한'60년대를 시작한 소설/영화를 '앵무새 죽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레고리 펙..이 사람만큼 기품과 신사다움 이라는 두 단어가 어울리는 배우를 찾기 힘듭니다.(뭐 어차피 스크린에서 나타난 모습이긴 하지만요. 게다가 잘 나가던 미국의 잘나가던 배우라는 한계점도 있지만)
모비딕, 나바론의 요새, 케이프 피어(이 영화에서 로버트 미쳠과의 불꽃튀는 대결에 비하면 리메이크 작에서의 로버트 드 니로와 닉 놀테의 대결은 새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로마의 휴일...아 또 오멘도 있군요. 연기변신이 너무 부족했던 건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배우의 흐트러진 모습을 영화 안에서든 밖에서든 찾기 힘들죠.

AFI는 '앵무새 죽이기'에서 그레고리 펙이 분한 '애티커스 핀치'를 미국 영화 백년 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선정했습니다. 펙에게 오스카를 안겨준 '애티커스 핀치'는 소설에서나 영화에서나 신사다움, 유머, 따뜻함, 자녀에 대한 사랑,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 정의감의 화신입니다. 너무 완벽해서 리얼리티가 떨어져 보인다는 것이 흠인데 펙의 아우라는 그 흠결을 메우고도 남음이 있지요....

 

독립기념일에 직접 전투기에 올라타고 외계인을 공격하는 대통령, 전용기를 납치한 테러리스트를 다 때려잡는 싸움 잘하는 대통령, 가족의 소중함을 설파하며 수백명을 파리 잡듯 잡아버리는 LAPD등등 요즘의 유치한 영웅들을 두고 가난한 시골 변호사를 최고의 영웅으로 선정한데서 그나마 헐리우드의 저력 혹은 무서움을 느낄 수 있더군요.

펙은 스크린 안에서 뿐 아니라 스크린 밖에서도 영웅(?)의 면모를 지켜나갔었습니다. 총기협회 회장으로 온갖 오버를 다 떠는 찰턴 헤스턴에 비교하면 그의 모습은 더 돋보이죠. 아마 미국 암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것으로 기억이 나고 자신의 아들을 베트남 전에 참전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반전시위에 앞장섰고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국민의 도리는 다하지만 국가가 잘못한 일은 반드시 지적해야만 한다'고 이야기 하면서요.

 

이즈음에 민주당에서 펙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밀어야 된다는 운동도 있었을 정도라고 하니...

80년대 레이건이 스타워즈 계획이다 뭐다 하는 진짜 영화 같은 군비 확충으로 구 소련을 압박하던 시절 70의 노구를 이끌고 고르비의 초청을 받아 소련을 방문해서 핵 없는 세상과 인류의 생존을 외치며 전략핵무기 감축에 관한 고르비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기도 햇습니다. 같은 영화배우 출신의 캘리포니안 레이건과는 참 다르죠. 게다가 레이건은 배우노동조합 위원장 출신이자나--;;

스크린 쿼터제에 관한 안팎의 갈굼이 거세어지고 전세계를 획일화 시키는 헐리우드의 해악을 입에 거품 물고 씹어대면서 헐리우드 배우를 보며 입을 헤벌리고 있는 이중적인 내 자신이 좀 우습기도 하고 펙의 모습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백인 영웅에 대한 미국언론의 지나친 호들갑도 분명히 들어 있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이런 배우 참 괜찮잖아요.

'나를 박애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단순히 내가 믿는 행위에 참여할 뿐이다.' - Gregory Peck (1916.4.5 ~ 200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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