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1969년 오늘(9.1) 리비아 쿠테타 일어나 왕정 무너지다.

미안하다. 오늘이 아니라 어제다. 사실 이거 몇명이나 보는지 알 수도 없고 반응도 차가움에도 불구하고 귀찮기는 와방 귀찮은데 확 때려치울까 싶기도 하다--;; 달랑 한 열흘 했는데 이렇게 빨리 위기에 봉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집 인터넷이 갑자기 안되는지라 사무실에서 밖에 못하는 탓도 크다. 이해해달라.

 

1969년 9월 1일 리비아에서 카다피 대위가 쿠테타를 일으켜 왕정을 무너뜨렸다. 60년대 3세계 쿠테타 열풍의 막차를 탄 것이다. 왕정을 무너뜨린 쿠테타 그리고 그냥 쿠테타가 60년대에는 참 많았다. 금방 생각나는것만 해도 터키, 이라크, 한국, 이집트, 리비아...

 

그 공통점은 한국을 제외하곤 제 나라 민중들의 지지를 받은 쿠테타였다는 것이다.(사실 516 터졌을때 좋아했다란 양반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긴 하다.) 식민지 신세에서 해방된 이후에도 빅 브러더들은 자신들이 통제하기 쉬운 통치자를 원했기에 부패한 구 왕족들을 골라서 왕권을 쥐어주고 배후조종을 했던 것이다. 당연히 그 왕가들은 민중들의 이해와 요구는 아랑곳 하지 않고 식민 종주국과 자신들의 이해에만 집중 했었고 불만은 거의 폭발 수준에 달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60년대 동시다발적 쿠테타의 배경이다.

 

60년대에 뽀개진 왕정과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왕정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우디 아라비아.

 

하여튼 리비아 민중들은 쿠테타를 열렬히 환영하고 카다피 대위를 자신들의 지도자로 선뜻 받아들였다. 쿠테타 하자 말자 지 계급장에 지가 별네개씩 다는 짓거리 하는 우리나라 쿠테타 대빵들과 달리 카다피는 쿠테타 이후 이십년이 지나서야 대령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물론 지금 카다피의 공식직책은 국가원수 이다.

 

동아건설의 대수로 공사등으로 인해 우리와도 친숙한 리비아는 카다피 집권 이후 지속적으로 독자노선을 걸었고 카다피는 미국의 공적 2호라면 서러울 정도로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매일 잠자리를 바꾸기도 했다는데...

 

물론 리비아가 꾸준히 독자노선을 걸을 수 있는 바탕에는 풍부한 원유매장량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와 억압위주의 통치가 아닌 민중들의 지지에 기반한 통치가 더 큰 기반이 아닐까 한다. 미국이 섣불리 카다피를 건드리지 못한 것도 그 탓일게고....

 

마냥 멋지기만 하던 카다피도 맛이 가는 모습을 요즘은 조금씩 보이고 있다. 리비아 축구협회 회장인 카다피의 아들이 이탈리아 프로축구팀 유벤투스의 이사가 되지 않나? 페루쟈에 선수로 등록하지 않나...

 

국제적으로도 리비아는 조금씩 변모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팬암 항공기 폭파 사건의 배후로 오랫동안 경제적 제제를 받던 리비아는 이라크가 박살나는 모습을 보고 쫄았는지 모르겠는데 미국과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이라크 하나로도 벅찬 미국 또한 짝짜꿍을 맞추고 있고..

 

카다피가 맨날 들고 다니는 그린 북(green book, 이슬람과 사회주의의 짬뽕)을 보면 주체사상이 생각나기도 한다.

 

요즘 나타나는 카다피의 적극적 세계화(?)가 민중들의 생존과 자유를 위한 것인지 자기 권력의 연장을 위한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