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불꽃은 언제 다 타는가?

'도전은 왜 아름다운가?'라고 마지막에 기자가 물었다.
물론 기자는 아마도 '아름답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거다.
자기 입으로 하기는 쑥스러워도
독자들은 그렇게 읽고 감동받아 주길 바랬을 거다.

나도 그렇게 읽었다.
특히 최익성의 말을 인용한 부분은 지나치게 멋찌구리해서,
여러번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난 지금까지 안 된다는 말만 들어왔다. 야구도 남들보다 늦은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했고, 프로에도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익숙한 나다. 그러나 '끝'이라는 말은 내가 하고 싶다. 지금 그만두는 건 포기다. 포기는 미련을 낳는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더라도 후련하지 못할 것 같다. 내 안에 불꽃은 남아 있다. 내 힘으로 그 불꽃을 태우고, 다 타고 나면 그때 내 입으로 '끝'이라고 말하겠다. 그러고 나서 다른 길을 가겠다."
'내 안의 불꽃'은 어떤가?

그러나 다시 물어보자.
도전은 정말 아름다운가?
도전이 아름답다면 그것은 아마도 비장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도전은 누가봐도 실패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자는 도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도전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말해야 했다.
이승엽의 경우가 그렇하듯이.

최익성.

연도 소속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4구 사구 삼진 병살
1994 삼성 0 1 1 0 0 0 0 0 0 0 0 0 0
1995 삼성 0 3 3 0 0 0 0 0 0 0 0 1 0
1996 삼성 0.252 57 131 18 33 4 52 16 3 12 7 21 2
1997 삼성 0.296 122 480 107 142 22 237 65 33 61 18 81 6
1998 삼성 0.262 110 374 74 98 13 152 42 20 43 23 62 2
1999 한화 0.288 68 163 31 47 9 84 26 11 11 7 34 4
2000 LG 0.257 64 183 21 47 2 68 30 7 22 8 34 6
2001 기아 0.252 60 143 24 36 4 58 9 6 18 8 25 7
2002 현대 0.280 45 75 10 21 1 25 8 2 11 4 15 0
2003 현대 0.191 33 47 9 9 1 16 5 0 8 1 9 1
2004 삼성 0.125 18 16 2 2 0 3 3 0 2 1 6 0
2005 SK 0.237 32 59 11 14 3 26 9 3 10 1 12 3
통산   0.268 613 1675 307 449 59 721 213 85 198 78 300 31

자랑할만한 시즌은 딱 한 번 1997년이다.
라이온스의 주전 1번타자, 3할에 가까운 타율, 22홈런 33도루로 20-20 클럽 가입.
그게 다다.
그 뒤로는 계속 하향세다.
올해 35의 나이까지 고려한다면 이건 슬럼프가 아니라 그의 실력이 다 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그가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다. 그래도 안됐던 것일 뿐이다.
"내 스스로 돌아봐도 운동 만큼은 성실히 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는 '포기는 미련을 낳는다'라고 멋지게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 미련을 낳는 것은 성공이 아닌가?
과거의 그리 크지도 않은 성공.
그는 이미 그 미련 속에서 수 년동안 살아 왔다.
그가 6번의 구단을 거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 구단들 역시 미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단 측의 미련은 작년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의 미련은 지속되고 있다.
포기는 미련을 낳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미련을 남길 뿐이다.
그러나 미련은 그저 묻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던가?

과거의 작은 성공에 대한 기억과 비현실적인 가능성에의 기대.
도박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지 않던가?
올인은 아름답지만, 결과는 정해져있다.

그는 먼저 메이저리그로 떠난 동갑내기 최향남과도 다르다.
최향남의 꿈은 새로운 곳에서 뛰는 것이지만,
“왜 한화 또는 삼성으로 트레이드시켜 달라고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향남은 “내가 살면서 연고가 전혀 없는 곳이다. 이번 기회에 새로운 지역에 가서 생활해 보고 싶다”고 진지하게 답변했습니다.
최익성의 꿈은 국내에서 주전으로 뛰기 위해 시위를 하는 중이다.
“내 야구인생의 목표는 한국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는 것이다. 대만에서 아무리 잘해봤자 국내에서 러브콜이 있겠나. 대만전지훈련때 리그 2위팀과 한민대의 연습경기를 지켜봤는데 생각보다 수준이 낮더라. 멕시칸리그나 도미니칸리그에서 인정받는다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최향남의 미국행은 거의 그의 성격탓이고 그는 그걸 즐긴다.
최향남은 평소 “꿈이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한다. 그는 트리플A에서 시즌을 시작할 때도 “지금 당장 빅리그에 올라가면 오히려 허무할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최익성의 미국행은 거의 고집이고 미련이다.
부친은 “내 아들이 국가대표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야구를 잘해~”라는 말을 남겼다. 부친 생전에 정식경기를 단 한차례도 뛰지 못했던 최익성은 그 때 한이 맺혔다.
“난 아직도 자신있다. 내 몸을 보라. 아까워서라도 은퇴할 수 없다”

한번도 도전하지 않는 것은 소심한 일이고,
두어번 도전하다 그만두면 바보같은 일이지만,
어이없을 정도로 계속하면 나름의 미학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고,
기적적인 해피엔딩이 아니라면 결국은 더욱 치명적으로 바보같은 일로 판명나겠지만.

무모해보이기까지 하는 도전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미련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도전을 포기했기 때문에 도전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꿈을 투사하기 위해서든, 바보라 비웃기 위해서든, 배가 아프기 때문이든....

그럼 그걸 또 애써 부정하고 있는 나는 또 뭐지?
나는 지금 왜 난데없이 멋지게 살고 있는 사람을 두고 이 난리일까?
사실 나는 최익성을 좋아했고, 그의 성공을 바라고 있지 않나?
원래는 '최익성 멋있다'라는 주제로 글을 쓸 생각이었던거 같은데 왜 이런 식이 되어버렸지?
나는 누구한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아...





`시련 있어도 포기 안해` 최익성의 도전 [중앙일보]
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 <259>

최익성(34)은 5일 미국 LA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환송을 나온 사람도, LA에서 마중을 나와줄 사람도 없는 외로운 비행이다. 다시 떠난다고 했을 때, 그에게 많은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야구를 하러 갑니다" 가 전부였다.

최익성. 그는 국내 프로야구에서만 6개 팀을 옮겨 다닌 '떠돌이 외야수'다. 좀 멋있게 '저니맨'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뭐가 다르랴. 1994년 삼성에 데뷔해서 99년 한화, 2000년 LG, 2001년 KIA, 2002년 현대, 2004년 다시 삼성, 그리고 2005년 SK 유니폼을 입었다. 두산과 롯데만 빼고 전 구단의 유니폼을 다 입어봤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이 팀을 옮긴 선수다.

그는 "전생에 무슨 방랑귀신이라도 붙었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해가 바뀌면 팀이 바뀌는 통에 아직 결혼을 못한 노총각이다. 정 붙일 만하면 보따리를 싸야 했고, 그래서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만나기도 어려웠다. 그는 "그래도 어딘가 나를 필요로 하는 팀이 있다는 게 반가웠다. 나를 인정해 준다는 것 아니었겠느냐"고 자신을 달랜다. 그런 주위의 관심도 2005년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SK에서 방출 통보를 받은 그는 시선을 외국으로 돌려야 했다.

처음엔 최향남(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마이너리그)과 함께 운동을 하며 대만 프로야구에 테스트를 받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난 3월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너리그 진입을 타진했다. 그러나 그것도 4개월 만에 수포로 돌아갔다. 7월 말 귀국해서 다시 몸을 만들었다. 그때 친분이 두터운 이승엽과 함께 바벨을 들기도 했다. 이번에 다시 LA로 간다. 시즌을 마친 마이너리그 구단의 문을 두드려 테스트를 받기 위해서다. 안 되면 도미니카건 멕시코건 베네수엘라건 겨울에 야구 하는 팀을 찾아볼 생각이다.

한국 프로야구 12년 통산타율 0.267, 홈런 60개. 주전으로 뛴 기간은 2년밖에 안 되는 대타 전문 최익성이 30대 중반의 나이에 새 팀을 찾아 나서는 건 뭔가. 고집인가, 무모한 도전인가.

"난 지금까지 안 된다는 말만 들어왔다. 야구도 남들보다 늦은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했고, 프로에도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익숙한 나다. 그러나 '끝'이라는 말은 내가 하고 싶다. 지금 그만두는 건 포기다. 포기는 미련을 낳는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더라도 후련하지 못할 것 같다. 내 안에 불꽃은 남아 있다. 내 힘으로 그 불꽃을 태우고, 다 타고 나면 그때 내 입으로 '끝'이라고 말하겠다. 그러고 나서 다른 길을 가겠다."

그의 캘리포니아행이 황금을 캐는 '골드러시'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금을 캐지 못하더라도 '난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을 것이다. 도전은 왜 아름다운가.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그밖의 인용문 출처

최익성
[리얼데이트] 방출 최익성 '8전9기는 시작됐다'
[리얼데이트] 최익성 '아버지의 이름으로'
최익성 “내 몸이 아까워 그만 못 두겠다”
최익성 최근 근황

최향남
[가까이서 봅시다] 미국진출 최향남
‘풍운아’의 꿈★은 이뤄지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