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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km를 달려 다시 방콕.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출발해서,
태국 핫야이, 쏭클라, 방콕, 농카이를 거쳐,
라오스 위엔짠, 왕위엔, 카시, 푸쿤, 루앙프라방, 루앙남타, 위엔뿌까, 훼이싸이를 지나서,
태국 치앙콩, 치앙센, 매싸이, 매쌀롱, 타톤, 치앙마이를 돌아 다시 방콕으로...
 
20km 내내 오르막만 계속되는 산 길,  
자전거로 못 가는 도로도 있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 가파른 길,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는 뜨거운 길,
사막을 연상케하는 붉은 흙먼지가 뒤덮인 길,
핸들을 잡은 손이 얼얼해지는 자갈로 뒤덮인 내리막 길,
중간에 숙소, 식당은 커녕, 변변한 가게 하나 없는 130km 길...
 
고생한 기억들이 워낙 강렬해서 먼저 썼지만, 생각해보니 좋은 길도 많았군요.
변화 무쌍한 메콩강을 따라가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길,
커다란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던 길,
30분동안 짜릿한 내리막만 계속되던 길,
내리막에서 얻은 속력을 작은 오르막들도 훌쩍 넘어버리는 진정한 롤러코스터 길,
온천이 흐르는 계곡을 지나던 길,
타이만과 거대한 석호 사이를 따라난 길,
울창한 열대의 산림과 화전민이 불을 놓은 산이 번갈아 나타나는 길,
새싹이 돋아나는 논밭과 추수가 끝난 논밭이 섞여있는 들판 길...
 
그리고 길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따라 달리며 우리를 응원해주던 고산 마을의 아이들,
음료수를 먹는 우리를 에워싸고 ?어져라 쳐다보던 아이들,
사와띠, 사바띠, 스빠이디, 스바일르 등으로 지역과 민족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말로 인사하며 어김없이 웃어주는 사람들,
총을 들었지만 친절하고 호기심많은 민병대원들,
무엇보다 소중한 물을 나눠준 트럭 운전사,
타이 위스키를 건네며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온 몸으로 얘기하던 아저씨,
터무니 없이 싼 가격에 수박을 통채로 깍아주던 농민들,
대나무로 만든 전통 악기를 연주해 주던 아저씨,
방금 수확해서 쪄온 옥수수를 장에 팔러 가는 길에 싸게 팔던 부부,
온화하기 이를 데 없는 자동차 운전자들,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자전거를 끌고 가던 우리를 태워준 사람들,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1만 여 킬로미터를 자전거로 여행하는 노부부,
단체로 팩키지 자전거 투어를 하는 선수급의 자전거꾼들,
모로코에서부터 출발해서 1년동안 자전거로만 이동해서 라오스에 이른 일본인 여행자,
유럽에 오면 꼭 자기 집에 들르라고 연락처를 적어주는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독일 등 각국의 자전거 여행자들,
한 손에는 양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가는 학생들,
버스 지붕 위에 자전거를 실어 주던 차장 청년,
한 손에 갖난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로 자전거를 타던 아주머니,
한 아이는 등에 업고 두 아이는 짐받이 태운 채로 자전거를 타던 아주머니...
 
그런 길들을 달리고 또 달리다 보니, 어느새 자전거 미터기가 1000km를 넘었네요.
그리고 지금은 방콕에 '지적재산권과 정보/문화/지식에 대한 접근권'에 관한 아시아 회의가 열리는 한 호텔 방에 와 있습니다.
그동안 묵었던 숙소들과는 너무나 다른 이 곳에서, 지나온 길들을 돌이켜 생각하니 꿈만 같네요.
3일에 걸친 회의가 오늘 끝났고, 내일이면 또 어디론가 떠나야 합니다.
회의하느라 정신이 없었던지라 어디로 갈지도 아직 못 정했군요.
 
아무튼 저희는 무사히 잘 다니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음에는 3월 말 경에 쿠알라룸푸르에 돌아가서나 또 글을 올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서울도 곧 봄이오겠군요.
다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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