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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화장실 사용기

[그대들의 위안을 위하여] 에 관련된 글.

채식주의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에서 ‘인정받는 소수’로 변한 경험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었죠.
('채식하기는 좋네요')

그런데... 사실 훨씬 더 극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먹는 것과는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것, 바로 화장실입니다..
‘존재 자체가 희박한 소수’에서 ‘지배적인 다수’로 변한 것입니다.

처음 방을 소개받고, 화장실에 갔을 때 뭔가 수상한 물건이 보였습니다.



저 양동이 안을 잘 보시면...



페트병 아래 부분을 도려낸 듯 한 물건이 양동이 위에 동동 떠 있었습니다.
혹시... 설마... 했지만, 일단은 편하게 잘 썼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최고급 호텔 화장실에 들어가서야... 깨달았습니다.
(호텔에서 묵었다는 얘기는 아니구요... 한참 걷다가 다리도 쉴 겸... 공짜 무선인터넷이 되는 지도 확인해 볼 겸 들어갔었습니다. ㅋㅋ)



변기 옆 쪽에 뭔가가 보이시죠?
확대해 보겠습니다.



화장실에... 비데도 아니고... 샤워기도 아니고... 저것이 무엇인가.
바로... 똥꼬를 씻는 데 쓰는 물건인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레이시아는 화장실에서 휴지가 아닌 손과 물을 씻는 나라였던 것입니다.
오기 전에는 전혀 몰랐죠.
아무튼 저 물건은... 아주 편하더군요.

그러나... 여기서 갑작스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변기 위에 묻어 있는 물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엉덩이에 묻어 있는 물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생각해 보니 앉을 때 변기에 물은 묻어 있지 않았습니다.
혹시 휴지로? (최고급 화장실이라서 그런지... 물론 휴지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휴지는 에티켓 교본에 나오는 것처럼 삼각형으로 접혀 있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사람들은 물로 씻고 휴지로 여기저기의 모든 물을 제거하는 수고스러운 에티켓을 기본으로 한다는 말인가?
집에서야 전용 수건으로 닦았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나와서 세면대를 보니...



손수건이 있더군요.
손씻고 물기를 닦는 일회용 종이 손수건은 따로 있었습니다.
헉. 그렇다면...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수건 한 장을 갖고 들어가서 해결을 하고 나오는 것이군.
아니 이리 깔끔할 수가.

그러나... 여기는 그저 최고급 호텔의 화장실이었던 것이지요.
다음에 만난 화장실은... 그냥 다음과 같이 생겼습니다.



호텔의 화장실은 원터치 레버에 여러 줄기로 물이 나오는 데 비해서...
이쪽은 그냥 평범한 호스죠. 이런 애들이 다수입니다.
휴지? 없습니다. 다수의 횡포라고나 할까요? ㅋㅋㅋ
손수건? 에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나마 이 화장실은... 칸막이 안에 세면대가 있는 특이한 곳이구요.
보통은 그냥 호스만 있습니다.
당연히 훨씬 더 지저분하고 더 열악한 화장실들도 있지만... 여기에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ㅠㅠ



그냥 물 나오는 기능만 있는 초간단 비데입니다.
가끔 백화점 화장실 같은 곳에 있기도 합니다만... 영 불편합니다.
아마 누구에게도 그다지 좋을 것 같지 않더군요.

가장 편했던 것은 아래의 화장실입니다.



비데같아 보이지만 비데가 아닙니다.
물이 똥꼬까지 닿지를 않습니다.
똥꼬 근처까지만 와서... 손을 대면 딱 적당한 위치로 물이 옵니다.
물이 위에서 쏟아지는 게 아니어서, 변기에 물이 묻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사실 변기에 묻는 물은 지저분한 물은 아닙니다.
똥꼬에 닿은 물은 당연히 아래로 내려가 버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음 사람이 앉을 때 기분이 문제죠.

그런데 이 문제의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죠.



애초에 변기에 묻는 물이라는 문제 설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죠.
게다가 위에서와 같은 바로 엉덩이 뒤에서 물이 나오는 꼭지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편하고... 깨끗하고... 친환경적이고... 말레이시아의 전통과 현대적 요업 기술이 조화를 이룬 최적의 변기라 하겠습니다. ㅋㅋ

여전히 남은 문제는 엉덩이에 묻은 물입니다.
물론 바른생활 초희나 돕헤드의 경우는 수건과 물통을 가지고 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만...
("뒷물통을 만들었다")
저는 거기까지는 영 귀찮더군요.
그냥 왠만하면 미리미리 집에서 해결하고 말았죠. 하루에 두 번가는 일은 별로 없으니... ㅋ
게다가 여기 사람들 모두가 수건을 화장실 전용으로 갖고 다닌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물어보자니...
화장실 얘기는 사실 친한 친구끼리도 쑥쓰러운 법.
만난지 얼마 안 된 현지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영 거시기한 일이었죠.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다수의 한 사람으로써... 아주 편하고 당당하게 잘 먹고 싸고 살았습니다.
한편... 한 번도 절대 다수임을 의심해 본 적도,
소수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던...아규는... ㅋㅋ (알아서 상상하시길...)

그러던 어느날.
여기에 광주 518재단에서 개최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한 적이 있었던 친구와 얘기를 하게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놀라웠습니다.
한국에 갔을 때 화장실에 갔는데... 물이 없어서 너무 당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자기는 휴지로 닦는 것도 나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냥 썼지만...
자기 친구는 절대로 휴지로는 안되다면서... 그대로 세면대까지 엉금엉금 나와서 뒤를 씻었다는 겁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한 번만 다시 생각하면 당연한 얘기지만...
휴지로 닦는 것이 더 깨끗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냥 하던 대로... 손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손을 쓰는 것이 더 깨끗하고 좋기 때문에 손을 쓴다는 것이죠.
게다가 ‘휴지를 쓰는 소수자’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자신도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저 관용적이고 열려있는 다수자의 자세!!!

암튼 저 여유로운 다수자의 자세로 인해...
편하게 얘기를 계속할 수 있었고...
결국 한달 넘게 궁금하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엉덩이에 묻은 물의 처리에 관한 그들의 대답은.... 바로...

I don't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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