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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ewell to Andre Gorz

"사랑하는 아내여, 오늘 그대는 꼭 82세를 맞았소,
그러나 그대는 늘 아름답고 우아하며 사랑스럽소.
생각해 보니 우리가 같이 한지 어연 58년을 맞았구료.
그러나 나는 당신을 그 어느때 보다 사랑하오.
게다가 마치 처음으로 당신과 사랑에 빠진 것 같은 감정을 아주 최근에 느끼기도 했다오.
당신과 함께 나는 생의 활력을 또 다시 느끼고 당신을 내 가슴에 안을때만이 삶이 가득차게 느껴진다오."

"Soon you'll be 82. You've lost six centimetres in height, you weigh just forty-five kilos, and you're still beautiful, gracious, desirable. We've lived together for fifty-eight years now, and I love you more than ever. Just a short while ago I fell in love with you anew, and once again I carry in my breast this gnawing emptiness which alone the warmth of your body against mine can assuage."

앙드레 고르, [아내에게 쓰는 사랑의 편지(Letter to D)] 중 - 블로그, Fusions 에서 재인용


여행을 계획할 무렵, 프랑스에 가면 누굴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앙드레 고르였다.
물론 지네딘 지단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상상이었지만 말이다.

어느새 10년정도 지나버린 얘기지만, [에콜로지스트 선언]을 시작으로
한글로 번역된 그의 모든 글을 찾아 본 적이 있다.
도서관에서 원서를 빌려다 제본하고, 도서관에도 없는 책은 인터넷 서점 아마존을 통해서 구하기도 했다.
물론, 홍지의 [베르사이유의 장미]에 대한 열정과는 감히 비교도 안되는 것이겠지만 꽤나 열심이었던 셈이다.
사실상 '고르를 읽자'에 다름 아니었던 세미나를 열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노동시간 단축 세미나 커리큘럼]
(세상에 이 자료가 아직 있다니... 훌륭하다. 진보넷!)

후기 산업사회 및 정보화 시대의 흐름을 읽는 시각,
근본적인 좌파이자 동시에 생태주의자,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설득력 있는 문체,
무엇보다도 대안과 그 대안으로의 경로을 제시하는 구체적인 제안...
그의 사상에 대한 평가 이전에, 말하자면 왠지 나와 '잘 맞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불과 며칠 전에도 프랑스에서 프랑스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앙드레 고르를 화제로 올리기도 했다.
요새는 뭐하고 지내는데 조용하냐고..,

그리고 오늘 기사에서 그 대답을 얻었다.

지난달 25일 앙드레 고르와 부인 도린은 파리 근교 트로와의 자택에서 한 친구에 의해 숨진채 발견되었다.
그들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에 둘러 쌓인채 나란히 누워 있었다고 한다.
고르는 평생 자신에게 영감을 준 도린이 암에 걸리자 83년 모든 지적활동을 그만두고 트로와로 옮겨가 아내와 조용히 살아왔다.
지난해에는 도린을 돌보면서 느낀 생각을 기록한 책 <아내에게 쓰는 사랑의 편지>를 내기도 했다.


관련 기사에서 발췌
http://afp.google.com/article/ALeqM5gjWhcNZrlESesEMdHb_hDiVUXltQ
http://www.signandsight.com/intodaysfeuilletons/1556.html
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0710/h2007100118274184800.htm

마지막으로 그의 글을 읽은지가 한 참 되었고,
호기롭게 모았던 원서는 제대로 읽지도 못했으면서도,
왜 고르는 더 많은 얘기를 하지 않는가?
왜 우리나라 학자들은 고르를 제대로 읽지도 못할 뿐더러, 하다못해 제대로된 단행본 한 권 번역하지 않는가?
라고 분통을 터뜨리는 동안...

그는 아내를 간병하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두번째의 생으로 떠났다.

"우리는 한 사람이 죽었을 때 홀로 살아남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종종 얘기하곤 했다.
우리에게 두번째의 생이 주어진다면, 또 다시 함께 살고 싶다고...."

Nous aimerions chacun ne pas survivre à la mort de l'autre. Nous nous sommes souvent dit que si, par impossible nous avions une seconde vie, nous voudrions la vivre ensemble.

-
앙드레 고르, [아내에게 쓰는 사랑의 편지(Letter to D)] 중 - Le Figaro 기사에서 재인용.
  (불어를 영어로 자동번역해서 다시 번역한 것이라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는 그의 마지막 책에서 사랑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사랑은 도피가 아니라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에 대해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사랑은, 곧 그의 '세상에 대한 도전'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항상 '현실적인 유토피아'를 꿈꾸던 고르, 고르다운 죽음이라 할 것인가?

먹먹하다.
돌아가서 못 읽었던 책이나 다시 읽으련다.
달리 추모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말레이시아에서 남는 시간에 읽으려고 가져갔다가 역시나 못 읽고 그대로 돌려 보냈던 원서 한 권도 고르의 "Capitalism, Socialism, Ecology"이었군! 쩝쩝. 괜히 미안해 지는군.




- 제일 앞의 인용문은 고르의 마지막 저작인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중 일부분인데...
번역하려고 한참을 애쓰다가 아래 블로그에서 더 좋은 번역를 발견해서 그냥 옮깁니다. 여전히 마지막 문장은 석연치 않습니다만...
어떤 신문 기사보다도 좋군요.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분인데 프랑스 정치에 관한 글 등 다른 글들도 아주 재밌군요.
Fusions, [철학자 고르즈의 사랑을 위한 죽음]

- 고르에 관한 더 많은 자료는 역시나, 위키피디어 [앙드레 고르]

- 고르는 그의 책 제목인 [노동자 계급이여 안녕 farewell to working class]으로 악명이 높기도 했다. 그를 언급하는 글들의 반 수 이상은 '세상에... 노동자 계급이여 안녕이라니!!!' 라며 공격하거나 조롱하는 것으로 그친다. 하지만 그들이 책 제목 이상을 봤을지는 정말 의심스럽다.

- [에콜로지스트 선언]에 나오는 유토피아에는 자전거가 달린다. 자전거가!

- 마침 컴퓨터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들린다. 거 참.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 강풀의 만화 최근작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나오는 장군봉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죽음. 못 보신 분들은 한 번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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