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징조들

일주일 넘게 잠을 제대로 못 자서인지 눈이 뻑뻑하다.

그렇다고 졸리지는 않다.

아니, 몸이 졸려하는데 정신이 그것에 대해 반응하는 요령을 잊어버린 것일 지도.

온몸에서 기운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

 

그래서

잠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만한 이상한 징조들.

 

어제는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오래전 읽다가 접어두었던 이진경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을 집어들었다.

(이것부터가 미친 짓이지.)

그런데 한 두세시간쯤 읽고나니

갑자기 아주 편안해지는 느낌,

어수선하게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잡념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 단정하게 들어앉고

온몸의 세포들이 구령에 맞춘 듯 일제히 호흡하고

물 속을 유영하듯 몸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주 편안한 느낌이 찾아들었다.

!

 

편안한 느낌을 잠시 즐기는 동안

갑자기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던진 말이 떠올랐다.

(그 엉뚱함이란...그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가 '생각난' 것은 이번이 처음)

나는, 사랑 따위는 없다고 말할 정도로 당돌하지는 못하지만

사랑? 그런 게 있을까? 라는 생각은 종종 하는, 아니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유명했던 그 대사가 와닿을 틈이 없었는데

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조금 다르지만 최근까지도, 당분간 앞으로도 나는

한번 좋아했던 사람을 싫어하게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고민이다.

주위의 경험들을 보면 질문같지도 않은 질문(일 것까지야)일 수 있지만.

그러게, 이것도 미친 짓인가? )

지금까지 나는 좋아했던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것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는데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아주 갑자기.

싫어지는 것이 사람일지, 시간일지, 기억일지는 모를 일이지만.

 

뭐, 이런 이상한 징조들.

이상하다기보다는, 얼굴 구석에 작게 솟아오른 뾰루지처럼,

혹은 옷에 살짝 튀긴 김치찌개 국물자국처럼,

괜히 신경쓰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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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2 17:41 2004/09/0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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