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콘돔이 아니다
S/H/G
2004/09/04 17:09
9월 1일자 문화일보에는 여성부와 복지부가 '집창촌'에 콘돔을 배포하려는 계획을 두고 난감해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복지부는 에이즈 예방 차원에서 콘돔을 대량 구매하여 배포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여성부는 정부가 불법 성매매현장에 대해 의료지원을 하는 것은 성매매를 용인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어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현실적인 질병예방효과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모호한 입장이라고 한다.
얼마전 에이즈 예방법(정식명칭은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의 인권침해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한 글을 썼었다. 그 중 하나는 성매매여성에 대한 강제검진조항과 취업제한조항이다. 물론, 예방법은 성매매여성을 암묵적으로만 전제하고 있어, 강제검진의 대상은 다방의 여자종업원, 유흥접객원, 안마시술소의 여자종업원, 특수업태부 등이다. 그녀들은 1년에 두번씩 강제검진을 받아야 하며 만약 HIV 양성으로 밝혀지면 강제로 치료받아야 하고 위 업종에 취업할 수가 없다. 이것은 마치 성매매여성의 건강을 염려하는 듯한 외양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 감염자 중 남성이 훨씬 많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의심되며 오히려 피감염자가 되기 쉬운 계층을 예비범죄자로 다루고 있는 반인권적 조항이다. 또한 취업제한조항 역시 국가의 성구매자에 대한 서비스에 다름아니다.
강제검진조항과 취업제한조항 등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성매매를 용인할 뿐만 아니라 성구매자에게 '친절하게도'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일 뿐이라는 것이, 겨우 --; 정리한 입장이었는데 기사를 읽으면서 묘하게 어긋나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예방법 개정을 주장하기 위해 국가가 성매매를 용인하는 거 아니냐는 근거만 부각시켜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불법 성매매현장'이라고 하더라도 의료지원이 필요하다면 지원해야 한다.
의료지원이 아니더라도 이미 국가는 성매매를 용인, 심지어 관리하고 있다.
오히려 '집창촌'에의 콘돔 배포가 현실적인 질병예방효과를 가질 지 의문이다.
는 것까지 정리.
강제성병검진제도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이 제도는 성매매여성에 대한 통제를 목적으로 한 공창제의 실시와 함께 시작된 것으로, 자연스럽게 유럽의 폐창운동은 '전염병법' 반대투쟁으로 시작되었다. 즉, 전염병법에 따른 강제성병검진제도는 성매매여성을 질병의 온상으로 간주하여 안전한 성매매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국가정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호받아야 할 것은 성구매자가 아니라 성매매여성이다. 성매매여성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콘돔이 아니라 성구매자의 처벌과 절멸(쓰고 나니 단어가 좀 살벌한 느낌이군 --; 하지만 절멸해야해!!!)이다.
성매매여성에 대한 강제검진조항을 그대로 두고 콘돔이나 뿌려대는 것은 성매매여성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성매매를 위한' 정책이다. 그래서 의료지원을 하는 것이 난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국가가 성매매를 용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 아니다. 성매매는 이미 국가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다만 국가의 성매매'근절' 정책이 '성매매여성을 근절'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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