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쓰고 나면 더이상 영화비평이 아닐 것 같다는 말로 접어두었던 영화. 경험과 무관하게 글을 쓴다는 것이 불가능하겠지만 노력은 할 수 있는 법. (좀더 적극적인 블로거가 되어보려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azrael의 Fat Girl 을 읽고 용기를 내어 써봅니다. ) 감독은 10대 소녀들의 첫경험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험을 한다. 당연히 수많은 첫경험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탔는데 차비가 없어서 울었던 경험,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는데 담배를 거꾸로 물어놓고는 빨리지 않는다고 툴툴대던 경험 등. 그러나 우리는 역시 당연하게 '첫경험'이라는 말에 동일한 무엇을 떠올린다. 무엇이 그 경험을 그리 특별하게 만드는 것인지를 물을 새도 없이. 아나이스와 엘레나는 서로 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경험,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첫경험. 서로 다른 기대는 역시나 서로 다른 배반으로 결말짓는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첫경험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 의한 폭력으로. 그러나 두 가지 기대는 여성의 욕망이 여성의 눈과 입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며 결말 역시 여성의 경험이 남성에 의해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여성의 욕망과 경험이 남성의 욕망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여성의 입으로 말할 때에도 스스로를 남성의 대상으로밖에 설정할 수 없다는 것. 엘레나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첫경험'을 시도하는 순간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오늘 이후로도 이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를 묻지 못하고 이 남자가 여전히 나를 사랑해줄까,를 물어야만 한다. 아나이스는 수영장의 기둥을 오가며 남성에게 굴복되지 않는 욕망을 그대로 '발설'하는 상황을 그려보지만 사랑이고, 뭐고를 따져볼 틈도 없이 강간이 첫경험의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온다. 사고를 처리하기 위해 온 경찰들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이야기조차 하지 못한다. '안 믿어도 좋아요.'라는 말을 남기는 아나이스에게도, '죽고 싶다'던 엘레나에게도, 자신의 욕망과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영화는 도대체 '첫경험'이라는 말이, 아니 '첫경험'이라는 말을 둘러싸고 있는 의미작용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는 질문을 던져보게 한다. 그리고 한치의 환상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면, 매력-힘들었지만-이다. 남성의 시선을 거부하는, 동시에 남성적 시선으로부터 배제된 아나이스에게도 '여성의 경험'은 동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빤히 보여주니까. *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했던 '피아니스트' 역시 비슷한 고민을 던지는 영화다. 여성의 욕망과 경험이 남성적 욕망구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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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4 15:54 2004/09/0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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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t girl

    2004/09/04 15:55

    봤다. 힘들었다, 힘들다, 는 말밖에, 지금은 못하겠다. 아마 결말을 대강 알고갔다면 좀더 찬찬히 내 경험을 돌아볼 수 있었는지도. 어쨌든 누구에게도, 권하기 힘든 영화다. ...

  2. 내 자매에게- Fat girl

    2004/12/13 03:37

    영화는 '첫(성교)경험'에 대한 여자아이들의 모순된 마음(?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음)과 현실을 적나라 하게 보여준다. 언니 엘레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첫 경험을 해야 하고, 그에게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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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umilieu 2004/09/04 16:1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누가, 본문에 링크거는 방법을 알려주면 좋을텐데... ^^;

  2. hi 2004/09/04 16:5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본문에 링크걸고싶은 단어나 문장을 블록으로 지정한 후(마우스로 드래그하면 까맣게 되죠) 제목 창 바로 아래 쪽에 '링크'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지긋이 누지르세요. 그럼 링크 창이 뜨구요, 그 창에다가 원하는 곳의 주소를 집어넣으면 끄~~읕~~! 이랍니다.

  3. aumilieu 2004/09/04 17:2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음, 그럼 제가 링크를 걸지 못하는 것은 '제목 창 바로 아래쪽에 '링크'라고 되어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겠군요. --;
    고마워요. 아마 뭔가 문제가 있나봐요.

  4. hi 2004/09/04 17:3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글을 작성하실 때 항상 보이는데요... 이 글에 걸고싶으시면 위에 "수정"을 누르셔서 다시 글 작성모드로 들어가보세요. 거기 글자 색, 글자 크기 등등 지정하는 메뉴판에 링크모드가 있습니다. 홧팅~~!!

  5. aumilieu 2004/09/05 14:2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러게요. 그게 처음에는 보였는데 며칠전부터 안 보이더라구요. ^^;

  6. 진보네 2004/09/05 17:0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앗. 혹시 익스플로러 5.5이하 버전 이거나, 파이어폭스등의 브라우저를 쓰시면 텍스트 에디터를 지원안한다네요. 죄송.
    링크를 거는 태그를 알려 드리지요. [a href="링크걸고자하는 문서 주소"]내용[/a]로 하시면 되요 [<--이걸 < 이런 괄호로 바꾸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