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질병/배제

이 글은 순수 님의 '끊임없이 아파야 한다' 에 트랙백한 글입니다.

 

질병이 '발명'된 것이며 과학/의학이 질병을 사회로부터 배제함으로써 '건강'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또한 건강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고통마저도 의학에 의해 착취당하는 현실에 저도 불만이 많답니다. 무척 반갑네요. ^^

 

예를 들어, '비만'은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이겠죠. '비만'이 '질병'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전부터 인간,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강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해왔습니다. 그것이 '의학'의 이름을 빌어 더욱 확고해졌죠. 비만은 고혈압의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등등의 담론은 현대사회에서 매우 익숙해져버린 논리지만 이러한 논리에 따라 현대인은 끊임없이 스스로의 몸을 감시해야 합니다. 감시의 내재화로 인해 여성의 몸을 옭아매는 자본의 욕망과 가부장성은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오직 '치료'가 남을 뿐이죠.

 

하지만, 정신질환이든 여타의 신체질환(?)이든,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이것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겠더라구요. 이반 일리히 역시 '병원이 병을 만든다'에서 매우 날카롭게 의료화의 문제점과 의료서비스산업의 지배에 대해 지적하고 있지만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이 자율성을 회복하고 의료서비스의 투입을 신중하게 할 것을 제안합니다.

 

정신질환 역시 경계만들기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질병'이지만 치료가 필요한, 혹은 치료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물론, 치료가 필요하다거나 치료를 원한다는 것 역시 사회적 맥락에서 떨어져있는 것은 아니죠. 어쨌든,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적어도 편견-이상하다, 비정상이다 류의-이라도 떨쳐야 한다는 생각에 글을 써보았던 것입니다.

 

'신기한'이라는 말 역시 부족했나봐요. 아마 정신질환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제가 주로 '정신분열증'을 염두에 두어서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도와주세요. ^^



 

‘건강’이라는 말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유행어이다. ‘건강’을 위한 웰빙 문화가 대표적인 것인데 수많은 영역에서 우리는 은연중에 ‘건강’을 이야기한다. 옷과 음식과 화장품, 주방용품, 아파트... 수많은 광고들은 그것이 건강에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강조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뿐이 아니다. ‘건강’이라는 은유 또한 주위에 널려있다. ‘건강가족기본법’은 ‘건강’이라는 말이 얼마나 소름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까운 예다. 굳이 나누어보자면 우리는 ‘건강하다’의 반대말로 ‘아프다’와 ‘불건강하다’는 말을 떠올리며 각각의 의미를 새겨볼 수 있다. 이렇게 ‘건강’은 개인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질병상태에 놓여있지 않음을, 또한 ‘건전’한, 즉 사회적으로 배제되지 않을 수 있는 경계의 안에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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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건강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특히 두 가지 지점을 주목/주의해야 한다. 하나는, 건강이 객관적 타자-특히 의료전문직-에 의해서 평가되는 것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물론, 의료전문직과 거대한 의료산업에 의해 인간의 몸이 관리받는 것은 이미 너무나 익숙한 일이라 문제삼기 쉽지가 않다. 이반 일리히가 ‘병원이 병을 만든다’며 지적했듯이 의학/기술은 끊임없이 우리의 몸을 가로질러 얽어맨다. 비만은 ‘심혈관계질환의 위험을 높이므로’ 다이어트를 권하고 흡연은 ‘폐암의 발생률을 높이므로’ 금연을 권하는 식의 담론은 별로 어색하지 않다. 다양한 질환에 대한 정보와 주의사항을 많이 알고 따르는 사람들은 건강을 위한 자기관리 능력이 뛰어나고 철저한 사람으로 추켜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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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가 ‘정신병’으로서의 왜곡된 이름을 벗어던진 것은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가 DSM-II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이후다. 그러나 왜곡이 공식적으로 시정되었을지 모르나 여전히 편견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고 의학은 성정체성과 성역할과 관련된 고정관념들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여전히 자임하고 있다.


여전히 ‘성 정체감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 '성주체성 장애’라는 번역도 있으나 DSM-IV의 한국어 공식번역은 ‘성정체감장애’다)’가 DSM-IV에 남아있는데 그에 따르면 성정체감장애는 ‘강하고 지속적인, 반대 성에 대한 동일시로 특징지어지며, 생물학적으로 지정된 자신의 성에 대한 지속적인 고통이 동반’된다고 설명된다. 동일한 성에 대한 성적 이끌림 등 동성애를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정의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성에 대한 고정적인 성역할이 있음을 암시하는 위 정의는 이성애주의에 근거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물론, 전형적인 성역할 행동에 대해 ‘단순히 동조하지 않는 경우’와는 구별해야 한다거나 ‘단순히 남성다움이나 여성다움에 대한 문화적인 통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진단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진단기준에는 ‘놀이에서 강력하고 지속적인 반대 성 역할에 대한 선호’라든지, ‘반대 성의 놀이 친구에 대한 강한 편애’와 같은 기준들이 제시된다.


실제로 의학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성담론에 개입하는데 간성(intersex) 역시 그 중 하나다. 현대의학은 간성으로 태어난 아이에게 가능한 한 하나의 성기와 하나의 성역할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양성의 성기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는 ‘질병’ 중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따르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의 ‘질병’은 양성(benign)임에도 수술을 하게 된다. 이성애주의가 견고한 사회에서 간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의 부모는 그/녀들을 어린 나이에 수술대 위에 올리는 것일 테고 의학/기술은 더욱 훌륭한 수술방법을 고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그/녀 본인의 선택이 배제된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생리학적으로 좀더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성을 부여받지만 성장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성에 항상 만족스러워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즉, 그/녀들이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은 성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고는 못견디는 의학, 그 뒤에 버티고 서있는 이성애주의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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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사회로부터 개인을 배제하는 작용을 한다. 이는 단순한 은유를 넘어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병자’는 ‘노동력이 없는’ 사람에 다름아니다. 노동하지 않는 자는 쓸모없는 자, 먹여살릴 필요가 없는 자다. 그러나 병들고 아픈 것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노릇, 무조건 배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래서 사회는 그/녀들에게 환자역할을 요구한다. 노동하지 않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지만 아프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는 친절함! 이해와 배려를 구하기 위해 아픈 사람은 철저히 환자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AIDS와 같은 전염성질환에서는 그것이 더욱 철저히 요구되어 각종 감시와 통제의 근거가 되기도 하며 각종 은유가 들러붙어 낙인과 배제의 전형을 보여준다.

군입대에서의 배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은 인격장애 및 행태장애로 성주체성장애와 성적 선호장애를 규정하여 ‘심각한 증상이 있어서 군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군입대를 면제받을 수 있게 된다. 군복무의 면제는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기대하게 되는 것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규칙은 동성애를 질병으로 간주하여 배제하는 것일 뿐 동성애자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보기 힘들다. 질병으로 인한 사회로부터의 배제는 인간이 노동력으로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자본주의사회에서 기대되는 만큼의 노동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용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환자역할을 수행할 때에만 해당하는 것이다. 즉, 동성애를 질병으로 받아들이고 동성애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수행하는 것을 사회로 포섭하는 조건으로 제시한다. 그 결과, 군대 안에서도, 군대 밖에서도 동성애는 사라지게 된다. 군대는 숱한 아웃팅사건이 발생함에도 동성애자가 없는 공간으로 규정되며 군대 밖에서는 동성애가 질병이기 때문에 오직 ‘환자’가 있을 뿐 동성애자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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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또는 정신의학과 관련지어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 중 하나는 질병의 사회적 맥락이다.  정신질환의 대부분은 어떤 ‘장애’-증상이나 감정 등-가 ‘임상적으로 심각한 고통이나, 사회적, 직업적, 혹은 다른 중요한 기능영역에서 심한 장해’를 일으키는 것을 진단기준에 포함한다. 이러한 정의는 혈액검사나 방사선검사와 같은 지표들보다는 개개인의 주관적이며 심리적인 불편함을 중요하게 다루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 개인적 경험은 ‘증상 그 자체’에 의한 것으로만 다루어지는 한계를 갖는다. 예를 들어, 성정체감장애로 인한 ‘장해’는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특정 성에 대한 고정적인 성역할관념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 성역할에 적합/부적합하다는 느낌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적응장애는 어떤 심리사회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3개월 이내에 부적응적이고 지나친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 이에 대해 의학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약물요법이나 심리치료를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스트레스 반응을 줄일 수 있는 대처 방법을 교육할 수 있지만 스트레스원을 최소화하거나 없앨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원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한 여성노동자의 적응장애를 치료하는 것은 약물과 교육일 수 있다. 그러나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해 여성노동자의 건강이 끊임없이 침해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치료가 아닐까. 불편함이나 생활에서의 고통이 사회적 억압과 편견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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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6 13:20 2004/09/0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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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신 질환은 없다.

    2004/09/08 20:40

    * 이 글은 미류님의 [발명/질병/배제]의 덧글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질환'이라는 말은 더욱 견고하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요? 제가 순수님의 생각을 충분히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umilieu 2004/09/07 12:5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정신질환은 질환일 뿐이다, 라고 쓰는 것이 좀더 적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질병'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의미를 강하게 함축하고 있다면 '질환'은 그나마 생의학적 관점에 가까운 느낌을 주니까요. 여전히 생의학의 한계를 주의해야 하겠지만...

  2. 순수 2004/09/08 00:3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질환"이라는 생의학적 용어가 오히려 더욱 과학이란 이름으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지요. 20C로 넘어오면서 임상의학에 의해 이런 "발명"의 효과는 훨씬 강력해졌습니다.

    정신질환이 "질환"이라면 어떤 생의학적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 동성애자들을 치료할 때 처럼 전기로 지지직?

  3. aumilieu 2004/09/08 12:4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럴 수도 있겠죠. '질환'이라는 말은 더욱 견고하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요? 제가 순수님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질환'-감기, 맹장염 등-은 허구라고 생각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정신질환' 혹은 '정신병'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인지...
    참고로, 정신분열증이나 우울증 등에 대해서 현대'의학'은 약물'치료'를 기본으로 놓고 있습니다.

  4. 순수 2004/09/08 20:4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트랙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