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

사람이 두세명 지나다닐 만한 인도였다.

한켠에 무슨 짐들인지, 잔뜩 쌓여있어서 길이 좁아져있는데

맞은편에서 리어카를 끌고 한 아저씨가 허공에 대고 자맥질을 하듯 발을 옮기신다.

건물 쪽으로 몸을 바싹 붙여 지나가려는데

아저씨가 나지막한 목소리에 살짝 웃음을 담아 '빵빵~' 하신다.

아저씨가 무슨 생각으로 그러셨는지는 모른다.

내가 시력이 안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내가 멍하게 걸어오다가 부딪칠까 걱정을 하셨는지.

 

그냥, 갑자기 지난주 있었던 장애인 차별철폐 대행진이 생각났다.

동대문 근처를 지나다가 잠시 대로를 막아선 채 구호를 외치고 선전을 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대로에 늘어선 차들이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삿대질하는 운전자도 있었고

차에서 걸어내려와 따지는 운전자도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제각각 사정이 없지야 않겠지마는

자기의 5분은 소중한 줄 알고

장애인들의 5분은 소중한 줄 모르는 사람들인 것만 같아 화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일제히 울려대는 경적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었었는지...

5분이면 비장애인들이 이동하는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장애인들에게는 5시간이 필요한 현실을, 함께 바꿔나가기 위해 필요한 게 뭘까,

뭐 이런 생각하다가 행진을 계속했다.

 

그 경적소리가

오늘 들은 육성의 경적소리와 겹치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느리게 이동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느리게 이동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자동차 엔진의 속도로는 우리네 삶의 속도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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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범민중재판운동 발기인명단을 총화하느라

정신없이 메일과 문자메시지를 들락날락거리다가

 

문득

 

그래, 조금 느리게 가도 되지, 뭐...

 

이런 생각이 들어 오늘 아침에 있었던 '사건'을 두고 글질하고 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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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0 13:46 2004/09/2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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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깨꿈 2004/09/21 02:1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것이 자본의 세상이고 속도라 생각함다. 자신만의 속도이고 더 빠르면 빠를 수록 돈이되고 숭배받는 세상에서 어짜피 늦어버린 삶.. 모든 것에서 빼앗긴 삶. 그리고 악랄한 차별을 무관심으로 관통되는 세상의 한가운데 .. 여전히 장애인은 없지요.. 아무리 존재가 있다고 외쳐도 아직 우리의 투쟁이 .. 우리의 피를 요구하고 있지요 .. 팍 .. 존재의 있음을 말해야겠지요

  2. 미류 2004/09/21 16:1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앗, 이렇게 들르실 줄이야... 근데 1촌 신청은 안해주세요? 제가 그거 할 줄 모르거든요. 그리고 1촌 등록 안돼있으면 미니홈피 찾아갈 줄도 몰라요, 흑흑. 앞으로도 투쟁의 현장에서 더욱 자주 뵐 수 있기를, 아니 그러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3. 어깨꿈 2004/09/22 01:0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일촌 신청을 했어요 ... 꼬옥 받아주기를 바람다.

  4. 어깨꿈 2004/09/22 01:0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왜 미류인가 물어보았더니.. 미류나무에서 미류라 그러는데 맞나요?

  5. 미류 2004/09/22 12:0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게 -.- 미류나무에서 '미류' 빼고 다른 거 전부입니당.
    뭐, 그냥... 이란 거죠. 아니, 사실 아직은... -.- 다음에 기회되면 말씀드리겠슴다.
    글구 네이버 검색해봤더니 '미루나무'래요. ^^ 홈피 자주 들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