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거기에 없다

숨바꼭질을 할 때에도 술래가 가장 찾기 어려운 자리는 술래와 가장 가까운 자리였지 않니?

이런 생각을 했다.

 

희망을 찾기가 너무나 어려운 시절,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한 시절.

연애를 하면 백일이나 천일을 기념한다는데,

그만큼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관계가 백일이나 천일을 넘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텐데.

158일, 1895일, 1250일, 이런 숫자를,

기념할 수도, 기념하지 않을 수도 없는 모순의 시간을

어쩌지 못하는 시절에 희망이란.

 

그런데 그 희망이 이렇게 가까운 자리에 있구나, 느껴진 하루.

서로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은 자리에서 출발한 버스가

밤을 달려 영도다리에 닿았을 때, 버스에서 내려 맞이한 시원한 바다바람,

그보다 시원한 사람들의 외침과 경쾌한 발걸음,

빛을 바랜 공장 불빛 아래로 다다다닥 내려온 사다리,

위에서 잡아주고 아래서 밀어주며 '경계'를 넘어가던 사람들의 물결,

가짜 주인의 대리인인 용역들이 나간 후 진짜 주인인 노동자들의 작업복으로 채워진 공장의 마당,

환희에 차올라 결의대회를 마치고 이제 시작인가 싶었을 때 이미 밝아진 하늘,

그래도 피곤을 모르는 듯 흥겹게 들썩이던 몸들과 마음들,

이렇게 가까운 자리에 있구나, 아니,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구나, 느끼며 마음이 환해지려는 때에,

 

한 늙은 노동자가 무대에 올라 울부짖었다.

 

나아안 짜알리며언 안 된 단 말이다아아

 

아이는 배가 아파 병원에 가야 하는데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단다.

 

아빠, 우리 치료비 있어?

 

조금만 늦었더라면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 아이들을 이제 줄줄이 대학에도 보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싸운다고 했다.

 

그러나 이유가 왜 필요한가. 

잘리면 안된다는데,

자르는 사람은 이유가 없는데 잘리는 사람은 이유가 있어야 하는 뒤집어진 상황은 도대체 뭔가.

사람을 어떻게 자르나, 삶을 어떻게 자르나.

노동권이라는 말도, 부족하다. 생계도, 가족도, 건강도, 교육도, 생명도, 무슨 말을 갖다대도

한 사람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사람이니까, 잘리면 안되는 거다.

 

그렇게 울부짖는 목소리를 들으며

너무 쉬운 희망에 속을 뻔했던 내 자리가 다시 보였다.

아니, 그건 쉬운 희망이라서가 아니라 '거기'에 있는 희망,

'여기'에 있지 않은 희망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각자의 '여기'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나는 너무 쉽게 무임승차를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몫의 '지금, 여기'의 희망을 찾기 위해 계속 버스를 타야겠다.

그 늙은 노동자의 절망에 함께 빠지고, 그 늙은 노동자가 만들어가는 희망에 함께 몸을 싣기 위해,

나는 계속 가야겠다.

 

희망은 여기에서 쉽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여기에서 못 찾는다면, 거기에도 없을 거라는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며 또 하나 깨닫게 되는 건,

희망은, 만들려는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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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4 23:02 2011/06/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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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태일재단 2011/06/15 16:3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청년창안대회 -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 공모전

    스티브 잡스가 바꾸지 못한 것,
    청년들의 할 일이다.

    포스터
    http://chuntaeil.org/images/popupimages/pop_link.jpg



    청년창안 대회란?
    일터와 대학, 그리고 청년의 삶. 더 나은 곳, 더 나은 삶으로 바꿀 수 있는 좋은 생각이 없을까? 청년들 스스로 이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모아보자.

    응모기간. 2011년 5월 20일(화) ~ 6월 19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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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안료와 상금.
    대상 1편. 100만원과 상패
    최우수상 2편. 50만원과 상패
    우수상 10편. 10만원과 상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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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모방법
    - 하나. 아이디어
    - 둘. 실행계획 *한글 문서에 작성해서 보내주세요.

    심사기준
    - 완성도.
    - 창의성
    - 실현 가능성

    심사 일정 및 발표
    - 예심 발표. 6월 22일
    - 본심 발표와 시상식. 7월 2일

    예심 통과자는 10일 간의 대회 준비 시간을 드리고, 대회 당일인 7월 2일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합니다.

    http://2009idea.makehope.org
    전태일재단. 02-3672-4138
    청년유니온. 02-735-0261

  2. 밥식이 2011/06/20 12:1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부럽소
    한 몸의 절규를
    온 몸으로 빠져드는
    그 힘
    무섭군요
    미안해요 전 밥식이에요- 절망이죠
    희망의 의지를 가져 볼께요

  3. 밥식이 2011/06/20 14:5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새는 좌우 날개가 아니라 온 몸으로 난나"
    (수평하게 읽기/ 어떤 판화가의 글씨중 -새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