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세월호 당일 최초 보고 시점을 조작하고,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도 임의로 변경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소식. 감춘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라지만 다시 열 뻗치는 건 어쩔 수 없네.
사실 당일 박근혜의 행적 관련해서는 제대로 확인된 것이 여전히 없다. 최초 보고가 10시였다는 것도 믿기 힘든 일이었으나-청와대조차 9시 24분에 전 직원에게 상황을 알렸다는데 대통령만 모르게 알렸다? 대통령이 사고 발생 사실도 모르는 9시 40~45분에 중앙사고수습본부(해수부)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안행부)가 가동된다? - 그 이후 행적도 증거가 별로 없다.
10시 15분 첫 지시라는 것도 여러모로 황당하다.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이미 때늦기도 했지만, '하나마나 한 말'이라는 점이 큰 문제. 정말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으면 상황이 어떤지 물어본 흔적이든, 회의를 소집하려고 한 흔적이든, 어디 전문가한테 의견 구한 흔적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10시 30분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했다는 것 역시, 아직은 아무런 증거가 없다. 예를 들어 녹취록이든 녹음파일이든 통화기록이든 등등. 혹은 누구의 전화기로 어떻게 연결해서 어떻게 연결됐다는 정황이라도. 이 시간 해경청장은 헬기를 타려고 관용차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동선에는 'VIP 지시수신'이라고만 언급돼있다. 게다가 제일 놀라운 건 통화를 했다는 바로 그 시각에 민경욱 대변인이 '대통령이 해경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했다'는 언론브리핑을 했다는 것.
모두가 알고 있는 오후 5시 15분 중대본 방문 전까지는 모든 것이 불투명한 것!
그런데 행적 자체를 밝히는 것이 진상규명의 목표는 아니다.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국가가,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지킬 줄 아는 국가가 되려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진상규명의 목표다. 특히나 세월호 참사는, 세월호가 침몰해서 발생한 참사가 아니라 골든타임 안에 도착해놓고도 구하지 않아 발생한 참사이기 때문에 사고 이후의 대처가 어때야 하는지 교훈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행적을 낱낱이 밝히는 것은 진상규명의 과정 중 하나다. 책임을 묻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면 안되는지를 깨닫기 위한 것. 기존의 지침이 문제라면 지침을 바꾸고, 지침을 이행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다시 점검하고, 지침을 넘어선 판단의 문제라면 이해를 높이고, 정보의 부족이나 왜곡이 문제라면 정보전달체계를 재편하고, 지시의 느린 전달이 문제라면 위기대응체계를 바꾸면 된다. 그런데 304명이나 희생된 참사 이후로도 청와대는 책임을 회피할 궁리만 하면서 지침까지 불법적으로 변경했다니, 참 상상 그 이상이긴 하다.
여전히 박근혜의 당일 행적은 불투명하지만 사실 진상규명의 목표에 비추어본다면 비중이 높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정말 웬만한 인물이 아니고서야, 사고 사실 알고도 심드렁, 무슨 지시를 해야 할지도 몰라도 가만, 중대본 나가려는데 올림머리부터 해, 이런 인물은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박근혜의 당일 행적만큼 중요한 것은 청와대 주요 인물들의 대응이다. 참사 당일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도, 어떻게 참사에 일조했으며 진상규명을 방해했는지. 그래야 우리는 교훈다운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관진 안보실장을 비롯한 주요 보좌진들이 모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조사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 박근혜 같은 인물이 대통령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취소. 여전히 정치권에 있고 아직 정치는 변하지 않았으니, 박근혜의 행적 낱낱이 밝히는 것도 매우 중요하겠다. 아 진짜 뭐 이런 나라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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