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복잡해서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선체조사위원회 보고서가 두 개로 나오게 된다는 소식, 참 당혹스러웠다. '내인설'과 '열린안'이라니, 더 당혹스러웠다. 두 개의 가설도 아니고, 단지 열어놓기 위해서 또 하나의 보고서가 필요했다니.
진상규명은 진실을 밝혀가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증거와 진술에 의존해 진실을 밝히는 것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한 설명을 찾아가려고 진상규명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 위원회의 활동 결과 어떤 설명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그 설명으로 부족한 것은 무엇이고 검토해야 할 다른 가능성은 무엇인지 등이 보고서에 담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의 보고서에 충분히 담길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왜 두 개의 보고서가 나와야 했던 것일까? 열어놓기 위해서?
진실은 언제나 열려있어야 한다. 새로운 증거나 진술은 언제든 발견될 수 있고 조사될 수 있다.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에 대한 강조는 타당하다. 참사 이후 우리가 겪어야 했던 은폐와 왜곡 시도에 비추어본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설명이 가능해질 때까지 어떤 가설도 채택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진상규명은 어떻게 진전시킬 수 있나. 외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열린안'은, 의도한 바인지 모르겠지만, 외력 가능성을 포함하지 못한 '내인설'을 배제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열린안'은 진실을 열어놓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진실'에 대한 이해를 닫아버린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열린안'의 주장대로라면 외력을 통한 설명이 아닌 모든 가설은 언제나 기각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내인설'은 박근혜 정부 당시 검경과 해심원이 취한 입장이기도 했으니.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밝히고 싶은 진실이었던가? 단지 열어놓기 위해 너무 많이 잃는 것은 아닌가? 박근혜 정권의 해로움이 막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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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2 17:41 2018/08/1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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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류 2018/08/12 18:1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두 개의 보고서가 낳은 효과 두 개 더. '내인설'과 '열린안' 중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것처럼 만들어버린 것. 앞으로 남은 진상규명의 영역과 과제에 대한 관심을 제한해버린 것. : 물론 두 개의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 투쟁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 전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2. 미류 2018/08/12 18:1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두 개의 보고서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 : 피해자의 질문을 무시하는 진상규명은 불가능하다. 진상규명은 피해자와의 대화여야 한다.

  3. 미류 2018/08/19 12:3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우리는 그간 5.18의 역사 쓰기, 사회과학 쓰기에서 '진상규명'을 의식하여 그간 사망자의 숫자, '발포 명령자는 누구였나?', '누구의 명령으로 공수단이 작전을 했는가?' 등의 이른바 '사실'에 치중해왔고,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것에 대해 좌절을 느껴왔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사실'들이란 주로 밖에서 본 모습들로서 법적인 의미와 중요성이 있는 사실들이며, 우리가 이러한 사실들에 매달려왔다는 것은 5.18의 '진상규명'을 복수의 수단으로만, 제삼자에게 복수를 구걸하기 위한 제물로만 생각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5.18의 진상은 광주시민 모두에게, 그리고 그 참담한 '시대의 정신'에 참여했던 모든 국민들에게 명쾌한 것이며, 그 '진상'마저 우리가 군부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과연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거짓이 우리의 진실을 박탈할 수는 없다. 5.18의 진상은 엄연히 우리 몸 안에 있는 것이며 그들이 숨기고 있는 사실들은 진상의 아주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