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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아버지? 표현과 관계 맺기 - 유진

아빠/아버지? 표현과 관계 맺기

 

유진

 

 너는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냐?”

 아버지가 니 친구야? 반말을 쓰게? 부끄러운 줄 알아.”

 

 평소에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남성인 어버이아빠라고 부르며, 편하게 반말을 쓰던 나인데 저런 꾸중을 듣고 난 후로는 남들 앞에 있을 때는 꼬박꼬박 아버지라 부르며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매우 부자연스러웠지만, 아빠라고 부르며 반말로 하늘 같은 아버지를 대하는 것이 혼날 만할 일이고, 부끄러워야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왜 어색하게 갑자기 존댓말을 쓰고 아버지라 부르냐고 물으며, 편하게 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반말을 쓰고 있다. 서로가 일종의 합의 하에 호칭을 정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순간 나의 남성인 어버이를 부르기 전에 잠시 동안 망설여 진다. 아빠라고 했다가 나를 어린애로 보면 어쩌지, 반말을 썼다가 아빠를 막 대하는 애로 보이면 어쩌지.

아빠는 사전적으로도 어린아이 말로 분류되며, 대체로 10대 후반 즈음부터는 아빠라는 호칭 대신에 아버지라는 호칭을 쓰는 것을 사회적으로 요구한다. 하지만 그런 관습을 이유로 오히려 서로가 불편해지고, 동등한 관계 맺기를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저어해야 할 일이 아닐까. 현재 사회에서 아버지라는 표현은 단순히 어른의 말 이상으로 사회적 함의를 갖고 있다. 권위적이며 집안의 가장이자, 떠 받들어져야 하는 존재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이 들면 아버지로 호칭을 고치고 그를 통해 아버지의 노고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사회 풍조다. 한편,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시하지 않고 있다. 어머니는 자녀와 가깝고 편한 관계이며, 가족 내에서 지위도 남성보다 낮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예의나 예절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회적 표현의 정형화된 형태다. 그것은 관계 맺기에 있어서 일종의 예시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러한 예의나 예절을 무조건적으로 주장하고, 원칙적으로 지키기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도 하는 것 같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형태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은 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떤 관계냐에 따라 서로 사용하는 호칭이나 표현에는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아빠라 부를 때, 관계가 더 편해질 수 있고 그러면서 동시에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에 대해 서로 합의했다면 그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요즘에는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부모에게 경제적/심정적 의존을 떨치지 못한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그에 대해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나도 내가 정말로 어리기 때문에 아빠라는 호칭에 대해 서로 편하게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나는 지금 유아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는 걸까…). 게다가 예의나 예절이 가지고 있는 힘을 완전히 무시하기엔, 그것이 갖고 있는 힘도 너무 크다. 더 나이가 들고 나면 아버지냐 아빠냐를 두고 한참을 고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은 아빠를 아빠라 부르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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