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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노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주거권 발췌_기정

 이런,,자료올리는 법을 몰라서;; 이렇게 ctrl+v를 했어요. -_-///

지난 6일 회의 떄 볼거 였는데 늦어진 김에 자료실에 올립니다~~

비록 지금은 순서가 좀 엉망이지만

필요한 내용은 있으니 일단 간단히 읽고서

날짜 잡히는대로 봐요~^^ 

 

(ps.아도브라서..일일이 손으로 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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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보장과 개선에 대한 필요성

<시설 및 주거의 취약한 물리적인 환경에 따른 불건강성>

일조나 통풍이 불량하거나 다습한 경우 곰팡이가 생기고 기관지 천식 등의 호흡기 질환에서 피부질환, 관절 류마티스와 신경통 등의 근골계 질환가지 유발 악화시킨다.

 저온은 혈관의 수축을 초래하여 고혈압증도 발생시키기 쉽다. 또한 통풍의 불량은 식욕부진, 체력약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더욱이 우려스러운 점은 주거환경(주로 일조日照)이 정신 건강을 저해한다. 심한 경우 우울증, 위염 등을 초래한다.


위와 같은 문제는 서민층의 열악한 주거문제와 지하주거 뿐만이 아닌 노숙인 지원체계내의 시설 및 주거에 있어서 동일한 선상에서 다뤄질 수 있기에 이를 강조함.


 


노숙인들의 주된 주거 방식과 문제

쉼터의 경우 재정적 부담 등의 문제로 충분한 냉난방이 힘든 실정이며 부실공사 및 관리 부족으로 인한 시설의 노후로 비가 새는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p258 쉼터F )

고시원이나 쪽방역시 일조를 위한 창문이나 통풍을 위한 통풍팬(fan)마저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구조적으로 불량한 경우도 적지 않아 화재의 위험이 산재해 있다.

 


 ♤노숙인 거주공간에 대한 사회적 차별문제 (p262)


 


사회적 배제의 관점에서 본 노숙인과 거주문제에 있어서의 인권실태

 현재의 노숙이 보호체계 내에서 이용가능한 주거로 상담보호센터, 쉼터, 자활의집, 부랑인복지시설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노숙인들은 불안정한 고용상태를 우지하면서 비공식적인 주거자원으로서 쪽방과 고시원 등을 주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익히 알려져 잇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 상당수는 불안정 고용 상태를 되풀이 하고 있으며 이러한 고용 조건은 특성상 주거 상태 역시 불안정 상황이 순환, 지속되고 있기도 하다.

*(~p249도표자료)


 ▨살펴볼 거리 "노지렌" (p151) -노숙인 권익 옹호 및 주거권 요구.




  주거권

현재 우리나라는 살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거처를 제공해야 할 법적인 의무가 없다. 그리고 요러 가지 이유로 주거가 보장되지 않는 위기에 처한 개인이나 가족이 국가에 대해  긴급하게 거처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역시 없다. 또한 어떤 법률에서도 주거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주거권이 국민 개개인이 국가에 어떤 요구를 할 수 있는 청구권적인 권리라 여겨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룹 법률가와 학자들은 <대한민국헌법>에 주거권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규정은 없다 하더라도, <대한민국헌법>에 산재된 여러 조항과 그 이념에 비추어 볼 때, 주거권을 기봅적인 인권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헌법에 나타난 주거권

<대한민국헌법>은 제10조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제11조에서 사회권, 생존권, 이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제 35조에서 환경권, 주거권 등을 규정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 평등권, 인간다운 생활권 등 각종 기본권을 보장함과 동시에 저소득층이나 노숙인들과 같은 소외계층을 보호하고 있다.



  제10조-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 할 의무를 진다.



제11조-평등권

①-전략-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후략-



제14조-주거의 자유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 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제34조-사회권,생존권,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①모든 국민은 인가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③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⑥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


기타법률에 나타난 주거권

앞서 살펴 본 <대한민국헌법> 이외에도 <주택법>제1조에 의하면 ‘쾌적한 주거생활에 필요한 주택의 건설,공급,관리와 이를 위한 자금의 조달 및 운용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의 주거안정과 주거수준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동법 제5조에는 정부가 ‘국민의 쾨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저주거기준을 설정, 공고하거나 국민주택기금을 지원하는 등 혜택을 부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임대주택법> 제 1조에 의하며 ‘임대주택의 건설,공급 및 관리와 주택 임대사업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서 임대주택의 건설을 촉진하고 국민 주거생활의 안정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주택건설촉진법>

제1조에 따르면 ‘이 법은 주택이 없는 국민의 주거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 모든 국민의 줘수준의 향상을 기하기 위하여 주택의 건서르공급과 이를 위한 자금의 조달과 운용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

을 목적으로 한다. 동법 제2 조에서는 ‘국가는 국민의 주거생활의 안정과 향상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종합적으로 계획.실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대한민국헌법은 물론 관련 법률에서도 주거권이라는 용어는 사용하고 있지 않고, 주거권의 개념 또한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못한 상태이므로 주거권을 독자적으로 권리로 보기에는 법적 권리로서의 성숙도가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대한민국헌법>제 10조는 인격적생존에 불가결한 모든 것을 포함한 포괄적 권리인 바, 경제적.문화적 생활을 할 권리, 즉 주거의 확보 없이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구정하고 있는데, 적절한 주거의 확보 없이는 인간다운 생활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즉 주거권은 인간의 존엄 및 행복추구권과 인간다운 생활권의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또한 위에서 살펴본 <주택법>,<임대주택법>,<주택건설촉진법>등의 입법목적과 규정내용을 근거해 볼 때, 이미 주거권이 독자적인 권리로 인정받을 만큼 법적 권리로서의 성숙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헌법>제 37조에 의하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명문으로 열거되어 있지는 않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므로 경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절한 주거의 확보 역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리기 위하여 필수불가결한 것인 이상, 주거권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경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특히 노숙인과 같은 소외계층에게 적절한 주거의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 적극적인 보호구정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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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내가 '호모포비아' 였어.

 

 

너는 나의 좋은 친구

나는 너의 좋은 친구

거기까지가 아름다워

거기까지가 아름다워

 

 

너는 나의 좋은 친구

나는 너의 좋은 친구

니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전까진

 

 

사랑한단 말을 하면 널 죽여버릴거야

내게 입맞추려 하면 널 때려줄거야

 

 

난 너의 애인이 아니야

 

 

-이장혁,

 

 

 

"언제부터 동성애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을까. 이상한 세상이다. 아님 이 영화를 보고 구역질이 난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아주 이기적이고 위선적이고 촌스러운 이상한 놈일까. 우리는 지금 아주 나쁜 교 육을 받고 있다."  -가수 나얼이 홈페이지에 쓴 글 (출처: http://blog.naver.com/kiss_themax?Redirect=Log&logNo=45181120)

 

 

 

그다지 놀랄 것은 없습니다.

위의 것은 아주 보수적인 정치인들이나 나이 든 분들의 글이 아닌,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는 두 가수의 노래 가사와 홈페이지에 공개되었던 글입니다. 언론에 특별히 보도되지 않는 것 뿐, 지금도 세계에서는 적지 않은 성적소수자들이 호모포비아들로부터 상처받고 공격받거나, 심하게는 목숨까지 잃어가고 있기도 합니다.

 

"그때, 내가 차별했어"의 새로운 주제는'내 안의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  에요.  

저들은 오히려 이름이 알려진 경우라 반차별적인 이들에게 비판을 받는 것 뿐, 우리의 주변과 세상에는 익명의 수많은 다양한 호모포비아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것,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지요? 

 

위에 가져온 두 예는 아주 자의적인 예이고 비교적 알려진 이들의 경우이지만,

세상에는 보여진 두 경우들보다 훨씬 더 많은 '호모포비아' 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과거에도(혹은 현재에도!) 저들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을 지 몰라요. 

우리 속의 차별을 점검해보는 것,

그 '우리 안의 호모포비아'를 고백해보는 '그 때, 내가 차별했어' 입니다.

댓글을 달아주세요!

 

어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호모포비아 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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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난 2NE1의 I don't care가 좋다!_돌진

고등학생 시절 난 락음악 추종자였다.
처음에 데프레파드에서부터 시작한 나의 락음악은 건즈 앤 로지즈와 메탈리카를 거쳐 판테라, 슬레이어 등 소위 '하드락', '데쓰메탈' 등으로 뻗어나갔다.
물론 내 주변에만 해도 나보다 훨씬 더 매니악한 락음악의 고수들은 널려있었다. 난 그냥저냥 그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로 적당히 관심 갖고 음악을 들으며 그들과의 교류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교류는 '난 남들과 달라'와 같은 특별한 느낌을 갖게 했다.

확실히 그때 당시 난 락음악은 다른 음악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사실 '다르다'기보다는 락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은 '음악도 아니다'고 생각했다고 해야겠지.
가요를 듣는 친구들을 무시하며 "그것도 음악이냐"고 비웃었고, 팝은 물론이고 락 중에서도 본조비와 같은 '말랑말랑한' 락은 변절자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하드한 락일수록 락의 정신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고, 대중들의 입맛에 맞춰 자신의 소신을 포기한 다른 음악은 모두 세상과 타협한 비겁자라 생각했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락음악을 교류하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식(?) 아니, 신념과도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요 중에서는 신해철과 서태지 정도 듣는다고 하면 욕하지 않는...그런 거? ㅋㅋㅋ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땐 그랬다.

 

친구들끼리 모여 락가수와 락음악을 이야기하며 다른 친구들을 무시하면서 '우리만의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난 세상에 순종하는 너희들과는 달라'하며 우월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지금 생각하면, 완전 오글오글...켁


그런데 웃겼던 건, 그런 상황에서도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와 '3!4!', 신승훈과 이승환의 노래들은 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티도 못내고. 좋아한다고 하면 나 역시 변절자가 될 테니까.
그래서 룰라가 TV에 나왔을 땐 TV앞에 자리잡고 앉아 빠져들 것처럼 봤던 기억이 난다. 어차피 내가 찾아서 들은 건 아니니까, 머.

대학 다니면서는 그런 게 아무래도 줄어들었다. 아니, 기본적으로 락에 대한 나의 우월감은 거의 없어졌다고 해야겠지. 여전히 락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 중 하나이긴 했지만.
락음악을 추종하며 '나는 너희들과는 달라'라고 느끼기엔...그것 말고도 너무 다른 인간들이 많았다. 이미 우리는 단일하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인지 락음악을 교류하며 적당한 우월감을 공유할 대상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럴 거라면 홍대 앞에 갔겠지. 그러기엔 난, 음악에 대한 열정도 일탈에 대한 용기도 부족했다.

 

대신 민중가요가 내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었다. 민중가요 이외에는 모두 상업문화라고 생각했다(좀 비약해서 말하자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고 그게 고등학생 때처럼 우월감이나 특별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없었다. 다만 SES나 HOT를 좋아한다고 인정하기엔 뭔가 찝찝한...그런 느낌.

이제는 락음악도 뭐...그냥저냥. 민중가요도 뭐...그럭저럭. 음악에 대한 기호랄 게 없어져버린 것 같기도 하지만, 최근까지도 슈주나, 빅뱅, 소시, 원더걸스, 2NE1, 4 minutes 같은 아이돌그룹들에 대한 선입견은 꽤 강하게 갖고 있었다. 왠지 그런 가수들과 음악들을 좋아한다고 하면, 취향이 없어 보이고 싼티나 보인다고 해야할까?^^;; 왠지 "소시의 '소원을 말해봐' 너무 좋지 않아? 수영 짱!"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난 요즘 라틴음악이 좀 좋은 것 같아. 빅토르 하라나 소사같은."이라고 하면 나 자신이 좀더 있어보이는 것 같고 안심할 수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느낌이 너무 부당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4 Minutes이 어때서? Gee를 좋아하는 취향을 싸구려라고 말할 수 있을까? 2NE1을 좋아한다는 사람의 삶에 대해 내가 편견을 가질 수 있을까?
아이돌그룹에 대한 반감이 여성성이 상업화되고, 잘생긴 꽃미남들이 외모로 팔려나가는 것에 대한 반감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차피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문화는 그 경계를 그을 수 없는 상황에서 너무나도 자본주의적으로 상업화된 상황에 포위되어 매순간 살아가고 있는 걸. 어디에다가 경계를 그어야 할까? 

그 경계의 모호함을 핑계로 외모가 상품이 되고 모든 것이 상업화되는 것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정당한 것일까. 이 역시 다른 한편으론 고민되기도 한다.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 난 '싼티 나는' 가수들이 좋다(고 생각해야지). 노래를 좀 못한다고 해도(어차피 확인할 수도 없고) 그들의 퍼포먼스는 재밌고 대단하다. 그들은 '싼티'와 패션리더의 경계에 있는 듯 하지만, 그 구분 자체는 너무 이상하다. 섹시한 여성 연예인에 대한 '창녀'와 '섹시 심볼'이라는 이상한 이중성.
물론 그들은 상업적으로 소비되고 있고, 예술의 진정성이나 그런 걸 갖고 고민하기엔 머리 아프지만, 그들을 막연히 상업화/'싸구려'로 취급하는 건 나 스스로 그들에게 너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선적이라는 느낌? 내 마음이 그리로 간다면 그걸 부정할 이유가 없다. 물론 성찰을 포기하진 말아야 하겠지만.


어쨌든 요즘 난 2NE1의 I don't care가 좋다! 완전 꽂혔어!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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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아버지? 표현과 관계 맺기 - 유진

아빠/아버지? 표현과 관계 맺기

 

유진

 

 너는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냐?”

 아버지가 니 친구야? 반말을 쓰게? 부끄러운 줄 알아.”

 

 평소에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남성인 어버이아빠라고 부르며, 편하게 반말을 쓰던 나인데 저런 꾸중을 듣고 난 후로는 남들 앞에 있을 때는 꼬박꼬박 아버지라 부르며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매우 부자연스러웠지만, 아빠라고 부르며 반말로 하늘 같은 아버지를 대하는 것이 혼날 만할 일이고, 부끄러워야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왜 어색하게 갑자기 존댓말을 쓰고 아버지라 부르냐고 물으며, 편하게 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반말을 쓰고 있다. 서로가 일종의 합의 하에 호칭을 정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순간 나의 남성인 어버이를 부르기 전에 잠시 동안 망설여 진다. 아빠라고 했다가 나를 어린애로 보면 어쩌지, 반말을 썼다가 아빠를 막 대하는 애로 보이면 어쩌지.

아빠는 사전적으로도 어린아이 말로 분류되며, 대체로 10대 후반 즈음부터는 아빠라는 호칭 대신에 아버지라는 호칭을 쓰는 것을 사회적으로 요구한다. 하지만 그런 관습을 이유로 오히려 서로가 불편해지고, 동등한 관계 맺기를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저어해야 할 일이 아닐까. 현재 사회에서 아버지라는 표현은 단순히 어른의 말 이상으로 사회적 함의를 갖고 있다. 권위적이며 집안의 가장이자, 떠 받들어져야 하는 존재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이 들면 아버지로 호칭을 고치고 그를 통해 아버지의 노고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사회 풍조다. 한편,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시하지 않고 있다. 어머니는 자녀와 가깝고 편한 관계이며, 가족 내에서 지위도 남성보다 낮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예의나 예절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회적 표현의 정형화된 형태다. 그것은 관계 맺기에 있어서 일종의 예시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러한 예의나 예절을 무조건적으로 주장하고, 원칙적으로 지키기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도 하는 것 같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형태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은 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떤 관계냐에 따라 서로 사용하는 호칭이나 표현에는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아빠라 부를 때, 관계가 더 편해질 수 있고 그러면서 동시에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에 대해 서로 합의했다면 그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요즘에는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부모에게 경제적/심정적 의존을 떨치지 못한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그에 대해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나도 내가 정말로 어리기 때문에 아빠라는 호칭에 대해 서로 편하게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나는 지금 유아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는 걸까…). 게다가 예의나 예절이 가지고 있는 힘을 완전히 무시하기엔, 그것이 갖고 있는 힘도 너무 크다. 더 나이가 들고 나면 아버지냐 아빠냐를 두고 한참을 고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은 아빠를 아빠라 부르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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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유혹에 대한 기억, 그리고 고백 - 돌진

악플 유혹에 대한 기억, 그리고 고백

짧고 강렬하게 제압하고 싶은 어떤 욕망




친하게 지내던 후배 녀석과의 인터뷰 기사를 쓴 적 있다. 그는 ‘조선족’(? ‘중국동포’? 헷갈린다...)인데, ‘조선족’으로서 중국과 한국에서 당한 차별의 기억을 이야기해주었다. 차별의 기억을 새롭게 끄집어 내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다는 게 힘든 일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기억을 꺼내놓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그 사람들의 행동도 이해한다”며 평온하게 이야기했다. 오히려 듣는 내가 안타깝고 속상했다. ‘아니, 어쩜 이럴 수가…4가지 없는 ××들’하고 생각하며 혼자 삼켰다. 그런데 그 기사가 나가고 며칠 후 댓글이 달렸다. 그 댓글은 인터뷰한 내 후배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모든 ‘조선족’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사돈에 팔촌”까지 들먹이며 “돈에 눈이 멀어 한국에 온 사람들”로 매도했다. 가관이었다.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더 큰 상처를 받았을 후배를 생각하며 댓글을 달아 차분히 설득하려고 애썼다. 나까지 흥분하면 후배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불행히도(!) 내가 단 댓글 밑에 먼저 댓글을 쓴 사람이 다시 쓴 악플은 더 가관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댓글들을 후배가 봐버렸고, 후배는 분노를 넘어 공황 상태에 빠져버렸다.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자기 말만 내뱉으면 듣는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건가? 자기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차별하고 어떻게 상처를 주는지 안중에도 없는 건가?
이런 *&%$#@!!! 마치 내가 모욕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느낀 이런 인간적인 모멸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반사! 너도 한번 당해봐. 눈 앞에 있었으면 당장 멱살이라도 잡았을지도 모른다. 너 내 눈 앞에 없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 화가 나더라도 다시 한번 그 악플러를 설득하려고 애쓸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설명하는 건 그의 ‘쿨함’에 비해 너무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차별한 인간은 다른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이 저리도 쿨하게 내질러버리는데, 왜 차별 당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차별당하고 상처받았는지 설명해야 하는 건데? 그것도 상대방이 알아들을지 못 알아먹을지 확신도 들지 않는데. 아니, 못 알아들을 가능성이 크지. 지금 내가 너의 댓글은 나에게 차별적이었고 너의 차별로 인해 난 이렇게 상처받고 고통받았다고 주절주절 늘어놓는다고 해서 공감을 받아낼 수 있을까? 어림 없는 소리!

그렇다면 저 인간이 저렇게 행동했겠어! ‘차별’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해보이지도 않았다. 그때 내가 원했던 건, 구질구질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짧고 강렬하게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난 너의 악플로 전혀 상처받거나 주눅들지 않아. 쳇! 그따위 악플,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진부하고 상투적인 악플. 그래, 니 한계는 거기까지야. 차라리 귀엽게 봐줄게’ 정도로 생각하며 그냥 넘어가겠지만, 유독 마인드컨트롤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날도 ‘아휴, 이걸 그냥 콱!’하는 생각으로 어떻게 상대방을 쿨하게 제압할까 고심하며 자판 위에서 손가락을 달달 떨고 있었다.



뭐라고 댓글을 달지
?
“이런 병쉰 새키. 너 완전 병맛. 꺼져.”라고 할까? 아냐 아냐. ‘병신’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니까 차마 내가 쓸 수는 없지. 아님 “걸레같은 년. 더러워. 너 사실 초딩이지? 가서 메이플이나 해라”고 해버릴까? 근데 상대방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가 없잖아. 그리고 왠지 ‘걸레’는 ‘년’이라는 말에만 따라다니는 것 같아 그것도 찜찜하고…초등학생들을 싸잡아 무시한 것 같기도 하고……. 흐음...끙...그럼 “너 사실 오덕후지? 왠지 니가 말하는 게 꼭 오덕하게 말하더라”라고 해버릴까? 아...이것도 쫌...ㅠㅠ


결국 ‘짧고 강렬하게’ 상대를 제압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말들은 대부분 저런 류였다. 물론 나의 ‘쎈스’가 부족해서일 가능성이 훠얼씬 높지만.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저마저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차라리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했어야 하는 건가! 그런 건가!!! 짧고 강렬한 말로 상대를 제압하려면, 뭔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상징적인 의미의 말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은 결 국 사회적 소수자들을 비하하는 말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제압하고자 하는 상대방을 쉽고 간단하게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소수자’로 낙인찍으면서 ‘소수자’에게 붙어 있는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사회적 의미와 편견들을 고스란히 상대방에게 옮겨다 붙이는 것.

사소한 듯 보이는 사적인 관계에서도 그런 ‘힘’(사회적 효과)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그땐 심지어 부럽기까지 했다!(-_-;; 근데 차별하는 주체에 대해 짧고 강렬하게 제압할 수 있는 말은 없을까? ‘나찌’? ‘호모포비아’? 역시 그런 언어와 사회적 합의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결국 난 악플을 달지 못함으로써 ‘짧고 강렬하게’ 그를 제압하지 못했다. 그때 난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 할까? 아직까지도 물음표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난 후 고 최진실 씨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녀도 죽기 전에 악플에 시달렸다지? 다시 한번 상처받았을 후배가 생각났다. 그리고 채 아물지 못한 나의 상처도. 그러다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자신이 누군지 ‘당당히’ 밝히며 자신이 쓴 모든 댓글과 자신의 댓글에 달린 모든 다른 댓글들까지 지워달라고 요구하는 그 사람. 후배의 인터뷰 기사에 기가 막힌 악플을 단 바로 그 사람이었다! 첫 번째로는 그 당당함에 놀랐고, 그 다음으로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요구를 마음껏 하는 그 뻔뻔함에 놀랐다. 그 사람은 고 최진실 씨의 자살과 그에 따른 ‘악플 관련 수사’가 신경 쓰였는지, 자신이 단 댓글을 모두 지워달라고 했다. 자기가 단 댓글의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며. 그리고 자신의 댓글 내용이 언급된 다른 댓글들까지 모두 지워달라고 요구했다. 엥? 이건 뭐야. 그의 요청에 따라 그 자신의 댓글은 지워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쓴 댓글은 안된다고 했더니, 생떼를 쓴다. 이젠 아예 기사 자체를 지워달란다. 너의 무모함에 박수를, 젠장. 그럼 애시당초 왜 그런 댓글을 달았냐고, 당사자가 받았을 상처를 한번쯤은 생각해본 적 없냐고 물어봤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러니까 지워주세요. 기사까지 다 지우면 될 거 아니에욧!”이라는 그의 당당함에 다시 한번 헐-, 이런 진상.




* 인터넷 악플에 많이 쓰이는 차별적인 용어들(아 래 용어들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따이루 활동가가 정리해주었습니다. 아래 단어들은 [국어대사전]에 등록된 단어들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여기서는 일단 ‘따이루식’ 해석임을 미리 밝힙니다. 다른 가능한 해석은 댓글로 좀 달아주세요-)

□ 오글거린다 / 오그라든다 / 오글오글 - ‘헐...오글오글 오그라든다’

: 손과 발이 근질근질거리는 느낌처럼 글이 느끼하거나, 닭살스럽거나, 유치할때 쓰는 말.

*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체장애인의 모습을 비하하는 표현이라는 ‘소문’이 있음. 속이 느글느글하다라는 느낌하고 비슷하게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임.

□ 병쉰 / 병진 - ‘병쉰새키’

: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인 ‘병신’이라는 욕설의 발전(?)한 형태.


□ 병맛 / 병tothe맛 - ‘병맛만화ㅉㅉㅉㅉ’

: ‘병신같은 맛’을 줄여 쓰는 건데 ‘병쉰’ 이런 거와 비슷하지만 이 표현은 보통 만화/동영상/글/사진 뭐 이런 부분에서 주로 쓰임. 말도 안 되거나, 내용이 특이하거나, 재미가 없는 만화를 가리킨다는.


□ 거지같은 년 / 걸레 - ‘더러워, 걸레’

: 위에 거와 비슷하지만 여성들에게 주로 달리는 악플. 창녀같다, 더럽다 뭐 이런 의미로 쓰임.


□ 오덕오덕 / 오덕후 - ‘ㅋㅋㅋㅋㅋ오덕하게 생겼어’

: 원래는 일본만화/애니에 푹 빠져 계신 분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제는 ‘중독자’를 가리키는 말이 됨. 그러다가 요즘에는 ‘여드름 많고 뚱뚱하고 패션 감각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비꼬아서 쓰기도 함.

□ 초딩 - ‘초딩 시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이플이나 해라’

: ‘초등학생’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었는데, 요즘은 생각/개념 없이 말하거나 글 쓰는 사람들을 비꼬는 표현으로 많이 쓰임. 또한 요즘 패션트랜드를 못 따라가는 사람의 패션을 ‘초딩패션’이라고 놀리는 데도 쓰임.




* 참고로, 난 악플을 막는답시고 내놓은 대안이라는 ‘인터넷실명제’도 완전 반대한다. 입을 막는다고 차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입을 막을 게 아니라 차별을 없애도록 노력해야할 일이다.

** 이 글은 반차별공동행동 웹진 <차.차.차>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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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내가 '외모'로 차별했어!

 

처음 시도해 본 "그 때, 내가 차별했어" 에 대한 뜨거운(?!) 반응에 감사하며,

이번에도 그러한 열렬함을 기대해보며...

이쯤해서 두번 쨰 주제로 넘어가보려 합니다~

 

이번 주제는 "외모 차별" 입니다!

외모와 차별. 언뜻 보면 수긍이 '잘' 가고 자연스러운 조합이죠?

그런데

언젠가 내가 그 사람에게 했던 행동이 정말 차별로서의 행동인지, 혹은 그건 그저 나의 개인적인 취향인지, 미모와 안미모의 구분이 과연 있을 수 있는건지,  기준은 어떤건지.. 등등!

이렇게 따져보다보면 정말 애매모호한 게 또 이 주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고민이 되는 주제이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외모를 이유로 차별을 하게 되거나, 받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어쩌면 그런 많은 애매모호한 지점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해 같이 생각을 나눠봤으면 좋겠어요.

 

그 때, 내가 외모로 차별했어! 

라고 말 할 수 있는 '그 때', 여러분에겐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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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에 대한 담백한 사유를 바람. _ 산하

     

            

     흡연에 대한 담백한 사유를 바람 
 


 

     산하/ 인권운동 사랑방 반차별팀 자원활동가


 


 

 

● 들어가며

 

- 담배를 피우며 길을 걸어가는 데 누군가 내 등을 손바닥으로 힘껏 내쳤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할아버지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린년이 어디서 담배를 피고 지랄이야?”

 

-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중 쉬는 시간, 건물 입구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지나가던 경찰차가 내 앞에 멈춰서고 갑자기 경찰이 나를 불렀다. “아가씨 몇 년생이에요?” 나는 황당해하며 되물었다. “ 그걸 왜 물으시는 데요?”, 내가 당돌하게 나가자 멋쩍은 듯 대답했다. “아니 그냥 길에서 담배를 피고 있길래...”. “ 저 88년생 성인인데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서 나는 대차게 나갔다. 경찰이 말했다. “아니 성인이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자가 대낮에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좀 보기가 그렇잖아요 그렇지 않나?” 조수석에 앉아있는 동료에게 긍정을 요구하기 까지 한다. “전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데요. 그럼 담배를 어디서 펴야 되나요?”하고 말하자 “아니, 그냥 좀 보기가 안 좋아서...” 라고 말끝을 흐린 후에 가버렸다.

 

- 친구와 함께 담배를 피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혀를 끌끌 차면서 나에게 뭐라 하신다. “나중에 기형아 태어나려면 어쩌려고 담배를 펴 애 잘못되면 다 여자 탓인데, 애 낳는 몸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건데 그렇게들 담배를 피우나 쯧쯧”

 

 내가 이러한 글을 쓰게 된 까닭은 (여성)흡연자로써 보낸 지난 일 년 동안의 시간이(정확히 말하자면 흡연여성으로 인해 받은 수많은 차별과, 자기검열로 이어지는 사회적 규범·인식에 대한 스트레스가)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위에 열거한 사례들은 모두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이다. 더 폭력적이거나 더 은밀한 차별과 억압도 많았으나 그 모든 사례를 열거하기엔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저들의 논리에 따르면 나는 나이가 어린 여자이기 때문에, 그냥 보기가 안 좋으니까, 아이를 낳을 몸이기 때문에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

 

 그런데 나이가 어린 여자는 안 되고 나이가 많은 여자는 되는 이유가 뭘까? 흡연하는 여성의 모습이 길을 가다 차를 세울 만큼 눈엣가시가 되는 이유는?. 남자도 흡연하면 정자가 약해지고 수도 줄어든다는데! 여성 흡연에 대한 억압적 분위기 그리고 여성에게 금연을 요구하는 사회적 담론은 ‘흡연이 아기에게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는 방식 즉, 여성의 신체가 ‘아기를 낳는 모체’로써 인식된다는 점에서 성차별 적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여성 흡연 현상과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과정을 살피고 두 번째로 흡연이 여성에게 사회적 금기로 작용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본 후 세 번째로 나의 경험에기반하여 흡연과 젠더관계를 분석하고 더 나아가 내가 바라는 '여성 흡연· 흡연 여성'에 대한 사유를 피력하고자 한다.

 

 

● 여성 흡연 실태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흡연 인구는 13억 명으로 1년에 490만명이 담배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흡연 인구는 약 1200만 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흡연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금연 분위기가 일면서 한국인의 20세 이상 성인 흡연률은 남자의 경우 1980년 79.3%에서 2002년 60.5%로 20여 년 만에 18.8% 감소했으나, 20대 여성 흡연율은 1980년 1.4%에서 2002년 8.1%로 6배가량 크게 늘었다.

  

 이처럼 지난 수십 년간 여성 흡연율이 증가한 것은 전 세계적 양상인데, 여성 흡연 인구의 증가는 먼저 선진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 흡연자의 총수는 2억명 이상이며, 선진국 여성 평균 흡연율은 25% 전후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가 급속히 진행된 지난 20년 사이에 여성 흡연 인구가 급속히 증가 하였다.

 

 이렇듯 여성 흡연율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의 흡연을 금지하는 법이나 제도는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 흡연이 금기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 흡연 여성의 역사

 

 여자가 번듯이 담배를 피워서 말세라면, 말세는 벌써 옛날에 왔다. 명성황후도 애연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발견해 유럽과 전 세계로 퍼져나간 담배는 포르투갈이 일본에 전했고,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을 통해 조선에 전해졌다.  정조 임금도 즐겨 피운 담배는 양반뿐만 아니라 상민, 천민 그리고 여성과 아이도 즐겼다.- '조선 사람들은 담배를 몹시 많이 피우는데 심지어 네댓 살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들 까지도 피울 정도여서, 남녀를 막론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하멜 표류기>-

 

 1910년도 담배광고를 보면 임신여성이 궐련을 피우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의 습속>이라는 책자에는 담배를 피우는 도구를 성명하는 이가 남성 아닌 여성이며, 부덕을 정숙히 행할 상류층 부인이다. 이밖에 여러 자료에서도 결코 여성의 흡연이 사회적인 금기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언제부터, 왜, 누가, 여성을 흡연에서 배제하기 시작한 걸까?

 
 조선 사회가 보수적이 성격을 띠게 되는 시기는 남존여비와 같은 가부장적 사고가 짙은 사림계열의 성리학자들이 정계를 장악한 18세기 이후부터이다. 형제들이 돌아가며 지내거나 시집간 딸도 모시던 제사를 적장자만이 지내고 상속도 적장자 위주로 이루어 졌다. 남녀의 구분이 엄격해짐에 따라 여성의 공간은 '집'으로 규정되었으며, 담배에도 예절이 생겼다. - 종은 상전 앞에서, 나이 어린 사람은 윗사람 앞에서, 아내는 남편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또한 신분에 따라 담뱃대의 길이가 달라져 양반은 1m가 넘는 담뱃대를 물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근대 사회에서 왜 여성은 흡연에서 배제되었는가.(사)현대사 연구소> -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여성이 공개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정숙하지 못하다는 범절이 통용되었고, 상류층의 여성들은 '공공연히' 담배를 피우지 않음으로써 남 앞에서 태연히 담배를 피우는 기생이나 주막부녀들과의 신분적 구별을 두었다. 그러나 예외 적으로 가정의 연장자나 과부처럼 '사연이 있는 여인'들 에게는 담배가 허용 되었다. 여기서 기생에 대한 부정적 관념과 이들이 공개적으로 사용한 담배의 결합에서 오는 이미지는 지금까지 여성 흡연자를 제약하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또한 이러한 이미지가 이후 '양공주'로 이어지면서 직업적 속성이 기생과 다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담배를 허용하는 관행이 점차 관습법처럼 굳어졌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조선이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근대화 할 것을 촉구한 선교사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술과 담배를 축첩이나 노름과 같은 죄악으로 규정하면서, 패가망신의 원이이며 사회적으로 해로운 풍습이며 국가의 재정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화'하기 위해서는 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담배의 해로움을 밝혀낸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되었다.

 
 마지막으로 민족주의의 요구를 들 수 있다.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나라의 빚을 갚자는 때에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은 '단연'이었지만 담배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주세와 함께 일제 제정의 40%를 차지했다. 식민지 시절 개화를 주장하고 독립을 염원하던, 민족을 앞세운 선각자들은 '힘을 키워 나라를 되찾자'는 구호아래 여성들을 국민의 어머니로 규정한다. 여성들은 민족의 앞날을 책임질 아이를 근대적으로 키우는 '현모양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자유와 저항의 상징


 서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담배가 전래되고 발달하는 과정에서 담배는 오랫동안 가부장적 사회의 상징이 되었다. '영국의 종교서회는 여성에게 지속적인 입술운동을 하면 턱수염이 날 수 있다고 경고하기까지 했고, 흡연 여성들은 품위가 없는 최하층 여성이거나 창녀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여성 해방 운동의 물결이 일어났을 때 흡연은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되었고, 당시 유명한 페미니스트였던 조르주 상드(George Sand)와 로라 몬테즈(Lora Momtez)는 공공장소에서 보란 듯이 담배를 피웠다. 영국에서 여성 투표권이 허가된 1920년대 이후 담배 소비는 급속히 성장했고, 미국에서도 여성 투표권이 통과되고 난 후 담배 소비가 급격히 증가했다.

 

「담배는 숭고하다」를 쓴 리처드 클라인는 "한 사회에서 여성이 어느 정도 흡연권을 누리고 있는가는 보편적 평등의 지표이자 시민 사회 내에서 여성이 전임 회원인가 여부를 가늠 하는 시금석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1980~90년대 패미니스트 사이에서 '담배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그들은 양성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담배를 사유하고 소비했다. 그들에게는 여성이 담배 피울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다른 분야에서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그들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임을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담배를 선택했다. 정치적 흡연가가 된 것이다.

 

 여자가 숨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더 이상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주제적인 의사표시로 받아들여진다. '공공연하게 담배를 피우는 여성은 여자라면 마땅히 베일로 얼굴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녀가 빨아대는 모든 담배 연기는 그녀가 호흡하기로, 그것도 전적으로 그녀 자신의 호흡을 하기로 결정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리처드 클라인>

 

 

● 나오며 +사족

 

 나는 나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내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임을 드러내고자 흡연을 하는 것인가?

 
 내가 당당히(?) 흡연을 하는 것은 굳이 숨길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따라서 나의 흡연 행위가 저항 또는 자유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물론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서, 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강도의 차별을 경험했지만 내가 그 차별에 대한 반감이나 저항의 상징으로써 흡연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일상적인 행위가 누군가에겐 도전으로 받아들여진 다는 사실이 거북하고. 심한 욕설을 듣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당할 뻔 했던 일련의 경험들이 나를 위축시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하다. 담배를 꺼내 물을 때 혹여나 나를 해치거나 쓴 소릴 할 만한 사람이 있지 않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골목길에서 갑자기 아저씨들이 등장하기라도 하면 얼른 담배를 끄고 모른척하는 내 모습,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정말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시선이 어느덧 내 안으로 들어와 스스로를 검역하고 억압하려 하고 있다는 발견이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오히려 ‘자유와 상징’이라는 구호마저 벗어 던지는 그냥 단순하고 명쾌한 그런 사유를 원한다. 별 것 아닌 담배에 여자들은 왜 그렇게도 많은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 "왜 담배를 피우니?"하고 물으면, "그냥 , 담배가 좋아서."하고 대답할 수 있는,

어떤 사건도 의미도 담겨있지 않은,  담배가 여자에게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단지 '기호'에 불과한  그런 담백한 사유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참고 문헌>

- 이윤숙. <담배로부터의 해방과 여성의 해방>. 2003.

- 서명숙.「흡연여성 잔혹사」서울: 웅진닷컴 2004.

- 고한나, <일제시대 여성 흡연에 대한 담론 분석>, 서울대 인류학과 석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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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여성으로 살아가기 - 대옹

장애, 여성으로 살아가기

-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김상희씨 인터뷰

대옹

 

 

“제 소원이요? 초원이가 저보다 하루 일찍 죽는 것에요”

영화 “말아톤”에서 주인공 엄마의 대사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장애를,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볼까? 불구, 불구를 가진 사람, 불행, 불행한 사람, 혼자선 살 수 없는, 그리고 그런 사람?!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면 ‘장애를 올바르게 바라보고 있나’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 사회에서 비장애인은 이동에 어려움을 겪지도, 의사소통에 힘겨워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들’이 장애를 겪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만’을 위한 이동시설이 잘 갖추어지고, ‘그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이유가 과연 장애 그 자체 때문이라 할 수 있을지 여성장애문제를 고민하는 장애여성 공감의 김상희 활동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장애인의 문제가 대두된 것은 오래 되었는데 과거와 비교해 우리 사회가 오늘날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가요? 예전에는 장애를 멀리하고 꺼려하기만 했었던 것에 비해 요즘은 좀 더 가깝게 느끼고는 있지만 실제적으로 장애문제가 나의 문제로 고민이 되고 있는지는 저는 잘 모르겠거든요. 여기에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려서부터 뇌성마비가 있는데, 제가 어렸을 땐 (장애를) 아이처럼 생각하고, 거부감을 느끼고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로 인식을 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과거와 같은 생각도 남아 있긴 하지만 언론 매체에 많이 드러나고 후천적인 장애들도 많아서 서로 다른 세계로 인식하는 생각은 좀 없어진 것 같아요. (그런데도) 불쌍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시선들을 많이 접해오긴 했죠. 장애가 주는 이미지가 워낙 부정적이라 장애를 가진 것만으로도 불행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시선이 아직 많아요.

 

혹시 직접 겪는 차별이나 피해 같은 것들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뇌성마비 장애도 종류가 굉장히 다양한데 보시다시피 저는 언어장애가 있고 휠체어도 타기 때문에 생활에 보조가 많이 필요해요. 그래서 혼자 지하철을 타거나 어딘가를 갈 때 바닥에 물건을 떨어뜨리면 주워달라고 말을 하기가 어려워요. 힘들게 말을 해도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요. 다소 불편하기야 하겠지만 제 말이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귀 기울여 주지 않아요. 언어장애를 낯설게 생각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또, 사람들이 뇌성마비에 대한 편견이 많거든요, 제가 안면근육 마비 장애가 있는데, 사람들은 지적장애로 여기고 처음 만났는데도 (말을 걸때) 마음대로 반말을 하고 그럴 때가 많죠.

 

낯설게만 생각하고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말에 반성도 하게 되고 공감도 하게 되는데요. 어떻게 보면 이런 식의 생각들이 또 장애와 비장애를 나눠버리고 서로 다른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같은데요. 이런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이분법화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주체적이지 못하고 , 대상으로서만 규정되는 것을 경험 하시나요? 특히, 장애단체이면서 여성단체인 공감은 결혼, 출산, 육아와 같은 문제들이 주체성의 문제에서 더욱 고민스러울 것 같은데요.

 

주변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저와 같은 장애를 가진 여성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자꾸 저와 닮았다고 이야기를 해요. 제가 볼 때는 하나도 닮지 않았는데 많이들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건 그 사람의 생김새나 모습은 보지 않고 장애만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또 공감에서는 장애여성의 출산 육아 등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아요. 오히려 저희가 왜 ‘장애여성들만 고민을 해야 되는가’를 문제로 제기하고 싶어요. 그 문제는 지금의 결혼제도가 많은 문제점이 있다 생각하고, 그런 이의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장애여성이) 원하는 결혼이라든가 출산을 얘기하기는 참 어렵거든요.

저에겐 결혼이 굉장히 억압적인 제도로 다가오거든요. 결혼이 파트너하고만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파트너의 가족과도 연결되는 일이잖아요. 그 파트너가 가족이 없을 수도 있지만 역시 주변 사람들과 복잡한 연관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저한테는 억압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 같아요.

 

‘장애’라는 것으로 규정짓고서 확실하게 분리시키는 문제가 특히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여성으로서의 역할까지 강요받고 장애 여성에게는 더더욱 고민이 되는 문제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제는 좀 다른 이야길 해볼까하는 데요? 요즘 장애운동 단체들이 4월20일 장애인의 날까지 대정부투쟁을 선언하고 농성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감도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공감은 어떤 활동에 주로 주목하고 있나요?

 

저희도 4.20활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장애여성에 관련된 요구안은 많이 부족해서 아쉽습니다. 여성장애인이 요구하는 목소리를 하나하나 담아내지 못했어요. 일상적으로 하는 고민들인데도, 언어로 정리되지 못한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예를 들어 주거권 문제에서도 장애인의 주거권을 보장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장애여성에게는 단순히 주거권 보장 문제와는 또 다른 문제거든요. 독립생활 운동이 활성화 되면서 많은 중증장애 여성이 독립한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분들이 외부로부터 위협받는 경우가 많아요. 밤에 문을 두들겨 본다든가 문을 열어본다든가 하는 위협 말이에요. 또 장애여성문제가 꼭 당사자끼리만 고민을 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공유하고 싶은데 장애여성 문제는 장애여성들만 고민하고 있는 것이 좀 아쉽다는 느낌을 받죠.

 

언어로 장애 여성의 문제를 정리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문제를 장애 여성만 고민하지 않고 비장애인이나 장애남성도 더 많은 고민들이 공유되는 것이 이런 여성장애의 문제의 언어를 만들고 목소리를 내는데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장애문제해결에 대해 정부적인 차원 외에 바라는 점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장애인 콜택시 아세요? 노란색 봉고차. 저는 혼자 타고 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활동보조인이 콜택시를 불러주면 혼자타고 가는데 기사님들이 되게 활동보조를 해주시는 분이 같이 타지 않은 것에 대해 굉장히 불편해 하세요. 왜 같이 가지 않냐고 계속 꼬치꼬치 물어보는 분이 많은데 제가 꼭 누군가 옆에 있어야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고, 제가 언어장애가 있어서 목적지 설명을 잘 못할 수도 있다는 거에 대한 걱정도 하시더라고요. 장애에 대한 두렵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러한 것들을 바꾸어야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 말을 많이 했는데, 가령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인데 그때라고 사람들이 갑자기 관심을 갖고, 인식이 하루 만에 바뀌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건 장애에 대한 고민과 생각들을 갖고 있어야 인식이 바뀐다고 생각을 해요. 일상적으로 소통을 하고 같이 고민하는 노력이 서로에게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많은 장애인분들이 시설이나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있어서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소통을 더 쉽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희도 장애여성 운동을 하면서 다양한 장애여성을 만나보고 싶은데, 장애여성분들이 다 어디 숨어 계신지(웃음) 만나 뵙기가 굉장히 쉽지 않아요. 시설에 갇혀 계신 분들도 있을 거고 집에 갇혀 사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뭐 언론에서는 그런 장애인들의 모습을 많이 비추어주고 있잖아요. (동정적이거나 극복만을 강요하는)그런 모습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노력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단체 같은 경우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었으면 좋겠다.(웃음)

 

그럼 공감에 대해서 좀 더 소개 해주세요.

 

공감에서는 지금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여성 성폭력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베이커리도 하고 장애여성 독립생활 센터도 운영되고 있어요. 그런 활동을 통해서 장애여성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성폭력문제 중에 지적 장애가 있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많은데 그에 대한 아직 대안이 없어 어떤 대안을 만들지 고민하고 있어요. 또 독립생활 센터에서는 장애여성을 독립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올해엔 장애여성 주거권에 대해 주제를 잡고 활동할 계획입니다.

부모가 자식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자신 보다 먼저 죽기를 바라는?! 바랄 수밖에 없는 영화 “말아톤”의 장면은 우리사회의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장애인은 불행하고 우린 동정과 시혜만을 주거나, 혹은 초원이처럼 드라마틱한 극복만을 요구한다. 본인도 장애인이기에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안다던 김양원 목사가 인권위 비상임위원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런 김 목사의 임신한 장애여성의 낙태 강요와 같은 반인권적 모습에서 우리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더욱 겹쳐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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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기제; 지적차이 - 대옹

요즘 고민하는 제 고민거릴 그냥 써볼까 합니다 하하;

글쓰는게 처음이네요 먼저 소갤하면 반차별팀에서 석진담당하는 대용이라는 활동갑니다!

 

이 반/차별 프리즘을 쓰면서 뭘 써야할까 고민하다보니 요즘 내가 문득 들은 의문이 생각나더라구요. 지식의 차별?! 이라고해야되나,, 정보 독점에 관련한? 뭐 거창한건 아니고,,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사람과의 알고있는 분야나 배경 환경 다 다르잖아요. 당연히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도 다르고요.

그런데 이런 각자 알고있는 서로다른 정보들 혹은 그 양?질?이 권력관계에 개입되기 시작하면 차별의 순환고리를 만들어내는것 같거든요. 뭐 예를들면, 더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선배는 당연히 후배보다 더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것이되는 것이죠. 그래서 선배 혼자 존중받아야되고 우대받아야되는 그것이 선후배라는 권력관계와 맞물려서 일종의 당연하게 여겨지는 권력의 우선관계를 정당화 시켜주는 요소로 작용되는 것이지요. 이 요소로인해서 선배는 물론 후배도 당연하게 차별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지요. (혼자만의생각일수도있습니다만)

여기 결정적으로 고민이 드는부분은 정보의 선점이 과연 차별의 정당화를 하는데 정말로 정당한 요소가 될수 있을까 이거든요. 먼저 알고 있는 정보는 공유하면 그 정보는 다른 의미에서 재해석되고 새로운 지식 정보를 창출해내는 기능을 발휘한다면 물론 정보의 선점이 의미가 없어지고 좋겠지요? 그런데 어디 사람맘이 그러하던가요,, 누구나다 나만 알고싶어하고 내가 어렵게 알아낸 정보를 지식을 누구한테 함부로 공짜로 알려주기 싫어하고들 그러잖아요. 어떻게 보면 카피라이트냐 레프트냐의 논쟁과도 맞닿는것도 같은데,, 근데 또 그렇게 선점하는 것에 대한 대가만을 인정하면서 대가를 지불하고 권력을 독점시켜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정보, 지식의 가치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달까,, 이런 문제를 현실에서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지식의 선점,독점이 차별의 기제로 작용해버리는 이런 구조를 인정하기에는 제가 말하는 지식,정보가 무슨 학문적 연구를 통해 혹은 이러저런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과는 약간 다른 종류일 수도 있거든요. 그렇다고 지금처럼 일종의 자연상태에 맡겨버리는 식의 돈,권력으로 해결해서는 역시 안되보이구요 ,, (에잇 몰라)  하하 이게 무슨짓인지요,, ㅋㅋㅋ 그냥 생각없이 제고민만 써버렸군요 ,,

저에게 힌트를 조금만 주시면 ㅋㅋ,, 제고민에 실마리가 될지도 ,, 읔,,, 여기까지만 쓸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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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기사에서의 이장혁의 “정치”를 비판함

2009년 2월 24일에, 2호를 읽고 제(영롱 A.k.a '꿈의택배')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당.
제 블로그에선 나름 논란이(?) 됐던?^^  ㅎㅎ
반차별, 페미니즘, 호모포비아, 차이.. 등에 관해 같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올려요^.^
-
PAPER 기사에서의 이장혁의 “정치”를 비판함
(...)
전에 “표현 욕구를 억누르면 죄책감이 느껴진다”는 말을 하셨는데요.

(...) 지금은 그런 기준이 명확하게 섰지만, 혼자만의 얘기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얘기하면, 그 사람은 내가 노래하는 것도 모르고 있을텐데, 내가 상처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공지영 작가는 그런 거 상관없이 옛날 만났던 남자들 얘기를 소설로 만들어내지만.(웃음) 저는 그런 것에서 죄책감을 많이 느꼈어요.

 

 

(중략)

 

 

그럼 인터뷰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하시겠어요. (웃음) 하고 나면 꼭 말이 와전되잖아요.

그렇지는 않아요. 물론 그럴 때도 있기도 하지만, 하나하나 신경 쓰다보면..

 

 

피곤하죠?

네.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걸 감안하고 가야죠. 저는 솔직히 까놓고 호모포비아(homophobia : 동성애 혐오증)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그런 걸 빌미로 저를 공격하는 사람도 많았구요. 제 음악 잘 듣다가 뒤늦게 알고 CD를 부셔버렸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아무밴드>의 <호모포비아>라는 노래 듣고 싫어졌다는 사람 꽤 있더라구요.

좀 웃긴 것 같아요. 늘 말씀드리지만 음악을 음악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제 정치적인 성향이라든가, 그런 거 상관없이 음악은 음악이잖아요. 제가 한나라당 지지자는 아니지만 (웃음) 제가 한나라당 지지한다고 해서 제 음악적 가치가 변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기준으로 재단하려는 게 이해가 안 돼요. 저는 호모포비아지만 게이들 음악도 좋아해요. 이나 루퍼스 웨인라이트 같은. 아마도 동성애자 인권운동 쪽에 계신 분 같은데 ‘이장혁은 호모포비아니까 그 사람 음악 들으면 안된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봤어요.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건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거잖아요.

 

 

호모포비아도 어떻게 보면 다양성의 하나일 수 있잖아요.

그렇죠. 다양성인데 인정 안 하잖아요. 우리나라는 좀 심하죠. 정치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노무현 욕하면 ‘명빠’가 되고 이명박 욕하면 ‘노빠’가 되는 거, 웃기잖아요.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답답해요. 그걸 왜 제 음악에 적용시키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부분은 정말 고쳐져야 할 거 같아요.

 

 

그럼 <호모포비아>가 나왔을 당시에는 지금보다 공격을 더 많이 받았겠네요?

많이 받았는데, 제가 그럴 만한 부분을 던지기도 했으니까. ‘사랑한다고 말하면 널 죽여버릴거야’ 같은 가사도 있으니까(웃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받아들여요. 근데 정치에 민감한 분들은 수용 못 하시더라구요. 솔직히 전 그런게 되게 웃겨요. 물론 이제 별로 신경 안 써요. 제 할 일은 음악 제대로 만드는거고, 그럼 거리낄 것 없다고 생각하니까.

 

 

-PAPER 2월호, <뮤지션 이장혁 -이 험한 세상에서, 휩쓸리지 않기> (인터뷰어: 최승우) 중에서

 

 

 

 

 

 


이장혁이라는 뮤지션을 알게 된 지가 나는 얼마 되지가 않았다. ‘스무살’이라는 곡이 꽤 좋고 음악성이 높은 뮤지션이라고 많이 이름을 듣고서 ‘나도 한 번 들어볼까?’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이었다. 내가 저걸 읽은 것은 말이다. 몇 주 전, 지하철에 서서 그보다 더 얼마 전에 꽤 오랜만에 구입한 PAPER를 읽다가 정말 혼자서 화나 죽는 줄 알았다. 그걸 어떻게 풀어내지 못하고 그러고 있다가, 그날 저녁 교보문고에서 J에게 이 얘기를 열라 흥분해서 막막 다 쏟아냈더랬다.

 

난 저 기사에서, 그리고 이장혁에게서 ‘다양성’의 함정을 알게 되었다. 그건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그래, 맘에 안 들지만 그는 호모포비아일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 어디다 ‘다양성’을 갖다 붙이는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널 죽여버릴’거라는 협박에 가까운 증오를 보이면서, 그 증오와 폭력에 대해 어떻게 ‘다양성의 시혜’를 베풀수가 있는가! 나는 정말 다양성이 그의 입 위에서 쓰이는 용법을 지켜보며, 나는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오 마이, 오 마이, 오 마이 갓!

 

 

 

너는 나의 좋은 친구

나는 너의 좋은 친구

거기까지가 아름다워

거기까지가 아름다워

 

 

너는 나의 좋은 친구

나는 너의 좋은 친구

니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전까진

 

 

사랑한단 말을 하면 널 죽여버릴거야

내게 입맞추려 하면 널 때려줄거야

 

 

난 너의 애인이 아니야

 

 

-이장혁,

 

 

그렇게 본다면 앞선 질문에서 “혼자만의 얘기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얘기하면, 그 사람은 내가 노래하는 것도 모르고 있을텐데, 내가 상처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공지영 작가는 그런 거 상관없이 옛날 만났던 남자들 얘기를 소설로 만들어내지만.(웃음) 저는 그런 것에서 죄책감을 많이 느꼈어요.”라고 말 하는 그의 생각들은 일관적이지가 않다. 저렇게 깊은 호모포비아적인 성향을 보이면서 그것은 타인에게 상처 주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걸까? 저렇게 말 하는 사람이, 그가 증오하는 “호모”들은 그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그저 그 사람들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건데, 그것에 관하여 그에게는 모욕할 ‘다양성’이 주어져 있는가? 그에게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일까? 내가 묻는다면, 그는 그렇게 대답할까? 그리고 공지영 작가를 끌어온 것에도 동의할 수가 없다. 이는 부적절한 예시다. 그녀의 소설은 자신이 입은 상처 앞에 자유롭고자, 과거 ‘피해자’이던 자신의 자리에서, 거기서 자신이 겪은 부자유와 ‘피해’를 극복하고자했던 글쓰기 작업이며 그 소설들은 이장혁이 일방적으로 호모포비아적인 강한 메시지를 담은 노래와는 완전히 다르다.

 

만일 나는 이 인터뷰에서 이장혁이 말했던 그런 게 다양성이라면, 나는 차라리 다양성이라는 말을 옹호하지 않겠다. 그 다양성은 부정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운동에서 그 좋게 쓰이던 다양성이라는 말이 이렇게도 쓰일 수가 있는지. 하지만 그것이 정말 다양성일까? 타인을 죽이면서, 타인을 상처입히면서 만들어진 음악을 “그저 그건 음악일 뿐이에요. 나와 상관지으려고 하지 말아요.”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그건 완벽히 폭력이다. 나는 부디 앞으로 저런 맥락에서 ‘다양성’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굳이 내게 있어서 저 인터뷰 기사의 의미를 찾는다면, 그런 다양성의 무섭고 깊은 함정을 본 것을 나의 유일한 수확이라고 말하겠다.

 

그는 음악과 뮤지션의 정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고, “웃긴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의 방식대로 하자. 나는 지금 그의 음악이 아닌 “정치”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 개인을 비판하는 것이다. “음악과 별개로”. 내가 영영 그의 음악을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과거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내가 그의 음악은 들을 일이란 없을테니까.

 

하지만 다시 문제는 내게 남았다. 그가 그토록 주장하는 것처럼 과연 정치와 그의 작품은 전혀 별개인가? 이 면에서는 내게도 좀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할 것이다. 그건 그의 문제 제기처럼 어려운 문제이며, 어떤 면에서는 애매한 문제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의 아주 사적인 나의 철학에서는, 극도로 호모포비아적인 사람이 만든 음악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의 음악을 전혀 듣고 싶지가 않아졌다.(그럼, 이건 나의 “다양성?”) 예술은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 인용한 인터뷰 뒤에 이어지던 말들에서 관찰한 그는 굉장히 냉소적이고, 어두운 사람이었고 그게 어떤 식으로든 음악에 보여지고 있겠지. 그리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불합리적인’ 증오와 (이른바) 소수자에 대한 태도가 저렇게 독단적이며 폭력적인 사람이 만든 음악이, 이제 더 이상 내게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을까? 그리고 호모포비아 노래는 그가 가지고 있을 아주 다양한 모습들의 매우 단적인 예일 것이고, 내가 이 인터뷰글 외에 이장혁이라는 인물에 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그 약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긴 글로 지금 그를 비판하고 있는 까닭은, 그건 명빠냐 노빠냐, 한나라냐 진보신당이냐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매우 근본적인 문제로 내게는 느껴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좌냐 우냐의 문제보다, 그에게 지난 촛불시위가 “냄비근성”이라서 "웃긴다"고 했다거나 하는 그런 문제보다도 이건 더 밑바닥의 것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우리가 ‘인권’이라고 부르는 게 있는거니까. 그리고 나는 그것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성과 감수성과 깊이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예술에게는 아무런 혐의도 있을 수 없다고, 난 말 할 수가 없다. 예술은 그저 '순수'하고 실재와, 현실(real)과 떨어져서 존재하는 그 "환상의 무엇"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예술도 사람이 있어서 하는거다. 사람이 하는 거고, 사람을 향해있는 것 아닌가? 아닌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그래, 그렇다면 그건 당신의 "다양성"??!! 아무튼 그의 ‘호모포비아’ 노래를 그 관점에서는 난 완전히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장혁 본인이 그렇게 끌고가기도 했지만, “호모포비아도 어떻게 보면 다양성의 하나일 수 있잖아요.”라고 맞받아치는 페이퍼 기자라니, 두 번째 ‘오 마이!!’ 이번 호부터 이석원의 글이 연재된다고 하기에 샀던건데 PAPER가 원래 좋아하는 취향도 아니였거니와, 아무튼 앞으로 내가 이 잡지를 사서 보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 나는 내가 사랑하지만 잘 모르는 이들의 정치적/인권 감수성이 저렇게 낮지 않기를 부디 바랄 뿐이다.(오 제발, 이건 좀 비겁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죽을 때까지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되지 않게 하시길!) 예술이 타인의 마음을 건드리는 일이 아니었더라면, 그 마음들과 대면하는 일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열 내지는 않았을 거다. 적어도 아직 나에게 있어, 결코 그건 용납되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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