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밝힐 게 있다면 실질적인 ‘베이스볼 오타쿠’의 첫 칼럼을 장성호 선수가 아닌 히어로즈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 했었다. 시즌이 끝난 뒤  야구커뮤니티에 ‘히어로즈의 모 선수가 삼성재활센터에서 훈련 중이다’란 루머가 인터넷을 타고 있었고 이번 스토브 리그에서 주축 선수들이 거침없이 팔릴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이런 예상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이에 대한 글을 쓰려 했다.

 

하지만 루머만으로 글을 쓰기에는 히어로즈 팬들에게 상처를 줄 거 같아 포기했었다. 팀의 재정이 좋지 않아 KBO의 지원을 받아야 했고 매각 후에도 말도 안 되는 인사관리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히어로즈를 계속해서 사랑해준 팬들에게 대못을 박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달도 안돼서 이 주제에 대해 다시 글을 쓰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_1C|XBWNOu2mLa.jpg|width="400" height="600" alt=""|_##]

▲ 올 해 이택근 선수는 연예인 윤진서씨와의 열애로 모든 야구팬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연말에 좋지 않은 또 다시 야구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출처=서울 히어로즈 홈페이지) 

 

지난 18일 히어로즈와 LG트윈스가 이택근 선수와 박영봉, 강병우 그리고 현금 25억원의 트레이드를 합의했다.  이 소식은 바로 야구팬들을 패닉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히어로즈가 올 해 팀의 유일한 골든글러브 수상자이자 병역혜택도 받았고 미래가 더 기대되는 선수를 보냈다는 건 1차 충격이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주축선수의 연쇄적인 트레이드가 일어날 계기를 마련했다는 게 2차 충격이다. 특히 2차 충격은 ‘어떤 선수는 예전에 트레이드 되었던 곳으로 다시 간다.’라든지 ‘모 선수는 다른 팀의 핵심적인 구원투수와 트레이드 될 것이다’라는 또 다른 루머를 양산하고 있다.(『스포츠 춘추』박동희 기자의 블로그에서는 이에 대해 팬과 박동희 기자의 질문과 답변이 오고가기도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일 오후 10시 40분까지는 합의 이상의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견 야구인들의 모임인 일구회에서 이 트레이드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KBO 측에서도 이 트레이드의 유보를 결정했다. 작년 장원삼 사태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야구팬들과 야구인들이 이 트레이드의 후폭풍에 대해 염려하는 정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염려에는 두 가지 이유가 숨어 있다.

 

첫 번째 쌍방울레이더스의 좋지 않은 추억 때문이다. 외환위기와 무주동계유니버시아드의 유치를 위해 무리할 정도의 투자로 인해 모그룹이 어려움하자, 레이더스는 삐끗하기 시작한다. 1998년 김성근 감독의 용병술과 선수들의 투지로 그럭저럭 버텨가며 6위를 기록했지만 이듬해인 1999년 동네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2년 동안 박경완, 김기태, 김현욱 선수 등을 돈을 얻기 위해 보내면서 선수층이 얇아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2000년 SK와이번스로 재창단되면서 구단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게 되었지만 훼손된 선수층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2000년 대 중반에 가서야 강팀의 면모를 보일 수 있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채병룡 선수는 혹사로 강속구를 잃었고 2000년 신인왕이었던 이승호 선수는 2005년 부상 이후 2008년에야 1군 등판 기록을 남긴다.(물론 쌍방울레이더스와 히어로즈를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건 그렇다. 레이더스의 경우 전북지역 학원야구 인프라가 열악한 것도 급격한 몰락의 한 이유였다. 올해부터 전면드래프트가 시행되었고 히어로즈의 유망주가 풍부하다고 인정받고 있어 자금난이 해소되면 KIA타이거즈처럼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 몰라요.)

 

또한 자금난으로 인해 트레이트된 선수들이 예전의 포스를 보여주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대표적으로 조계현, 이강철, 홍현우 선수를 들 수 있다.(다 해태타이거즈 출신이네.) 조계현 선수의 경우 전년도 3.71의 평균자책점에 8승 9패에서 98년 삼성라이온즈로 이적한 이후 5.21의 평균자책점에 8승 11패를 기록한다. 99년은 더욱 처참했다. 1군 출장 12경기 중에 선발은 세 경기밖에 되지 않았고 11.51의 평균자책점에 3패만을 기록하게 돼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게 된다. 이강철 선수는 부상으로 99년을 개점휴업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2000년 1승 4패 7.3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이듬해 삼성라이온즈에서 1승 1패에 6.0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홍현우 선수는 LG 트윈스와 4년 간 18억 원의 초대형 계약을 맺었지만 타이거즈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계약한 4년 동안 타율이 2할을 넘긴 게 단 한번이고 4년 동안 친 홈런이 14개에 불과했을 정도. 부상이나 FA를 위한 무리한 출장이 주원인이겠지만 따가운 시선과 돈 값에 맞는 활약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일정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택근 선수도 이런 압박감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터넷을 하다보면 ‘OOO리즈 시절’이란 말을 흔히 접하게 된다. 사람들이 전성기가 지난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의 화려한 시절을 회상할 때 쓰이는 말이다.

 

이 말의 어원은 한 때 박지성 선수의 팀 동료이기도 했던 앨런 스미스와 관련되어 있다. 리즈 유나이티드 시절 잉글랜드 최고의 유망주 중 한 명이었던 스미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와서는 주전경쟁에서 밀리고 포지션을 바꾸면서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이에 팬들은 앨런 스미스가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최고의 유망주였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 ‘앨런 스미스 리즈 시절엔...’이란 표현을 쓰다 보니, ‘리즈 시절’이란 신조어가 생겼다는 이야기다.

 

앨런 스미스가 자신의 재능을 꽃피었던 리즈 유나이티드를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팀의 재정난 때문이었다. 리즈 유나이티드 경영진은 99/00시즌에 3위의 성적에 고무되어 있었다. 이에 무리하다 싶을 정도의 투자를 했지만 투자에 비례하는 수익을 얻지 못해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뒤숭숭한 분위기와 주축 선수들을 파는 과정 속에서도 앨런 스미스는 좌충우돌(?) 리즈 유나이티드를 움직여 나갔지만 03/04시즌 강등을 막아내지 못했다. 이후 리즈 유나이티드는 3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는 걸 생각해 본다면 앨런 스미스가 활약한 때는 리즈 유나이티드의 ‘리즈 시절’이었던 셈이다.

 

지금의 히어로즈를 연상시키는 사례이다. 만약 이택근 선수의 트레이드가 허용이 되고 또 다른 히어로즈의 주축선수가 이적하게 된다면 그리고 옮긴 팀에서 부진하다면 이 ‘리즈’라는 단어가 ‘히어로즈’로 대체될 것이다. OOO 히어로즈 시절이라고 말이다. 과연 이 말을 듣게 될 야구팬들의 심정은 어떨까? 이번 트레이드와 히어로즈의 팀 운영에 솔로몬의 선택같은 혜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조계현, 이강철, 홍현우 선수의 데이터 출처는 스탯티즈(http://www.statiz.co.kr) 입니다.

 

※ 이 글은 베쓰볼키드의 블로그(http://www.baseballkids.textcube.com)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배리 본즈가 은퇴를 한다고 한다. 그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리스는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경기를 뛴 지 2년이 지났다. 이제 배리 본즈가 더 이상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라고 밝혔다. 정식적이진 않지만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에 현역으로 복귀하는 건 불가능해 보이므로 사실상의 은퇴발표로 보는 게 맞을 거 같다.
[##_1C|XQ8citBaQo.jpg|width="400" height="85" alt=""|_##]

▲ 본즈의 신기록들을 기록한 앰블런 들입니다. 2001년 이후 쌓은 기록들인데 이 모든게 다 약빨이라는 게 모든 야구팬들의 심증입니다.(출처= 배리 본즈 공식홈페이지, 스포츠 한국 재인용)

 

만약 배리 본즈의 선수생활을 블로그 포스트로 만든다면 그 밑에 붙이는 태그는 어떤 단어가 들어갈까? ‘홈런’, ‘단풍나무 방망이’, 방망이를 짧게 잡으면서도 호쾌한 장타를 날리게 하는 ‘빠른 배트 스피드’. 하지만 이와 함께 ‘이기주의’, ‘거만함’도 항상 따라다닐 것이다.

 

문제는 그 거만함과 이기심이 자신이 속한 팀을 망처 놓았다는 거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바로 2002년 월드시리즈 6차전이다.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서 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6차전 7회 초까지 5:0의 리드를 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변이 없는 한 배리 본즈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챔피언 반지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스트 시즌 내내 애너하임 에인절스(현재는 LA 에인절스)를 도와주던 랠리 몽키의 기적이 ‘이변’을 가져다주었다. 에인절스가 7회 스캇 스피지오의 쓰리런 홈런에 이어 8회 말에 6:5로 역전 시킨 것.

 

특히 이 과정에서 본즈의 수비는 천사에게 조종당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8회 중요한 순간 처리하기 쉬운 타구에 실책을 범했던 것. 다음 날 7차전에서 비슷한 상황에 또 같은 실책을 범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랠리몽키의 기적’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되었다.

 

월드시리즈 우승 실패 후 배리본즈가 6,7차전 지명타자를 하라는 감독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게 도마 위에 올랐다. 중요한 경기이므로 수비를 강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아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언론과 팬들의 비판 속에 포스트 시즌 최다 홈런과 한 해 동안의 활약은 한 순간에 잊혀졌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 때 수비능력이 뛰어난 외야수가 정상적인 수비를 했다면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드는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이때만 짐이 된 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모든 게 본즈를 위한, 본즈에 의한, 본즈의 팀이었다. 구단주 및 단장마저 한 선수에게 맞춰져 있는데 그런 곳에서 뛰고 싶어 할 슈퍼스타가 어디 있겠는가? 스토브 리그 때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대어 급 선수의 영입을 이루지 못한 건 본즈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팀 내 불화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맷 윌리암스와의 불화, 제프 켄트와의 몸싸움은 MLB를 보는 많은 야구팬들에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팀 분위기가 좋지 않음을 만 천하에 공개한 꼴이 되고 말았다. 팀 성적도 그 시기 저조했음은 물론이다. 팀 홈런 수는 늘렸을지 몰라도 팀을 이끄는 리더의 모습은 아니었다.

 

신이 허락한 야구 실력을 가지고 있던 배리본즈가 일자리를 찾고 있는 신세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 저) 엄석대의 갑작스런 몰락을 생각나게 한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한 순간에 몰락해버린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이기주의와는 별개의 일이지만 부정으로 자신의 성적을 부풀린 것도 유사하다. 넓어진 ‘등빨’과 늘어난 홈런수의 원천이 금지약물인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법원에서 이를 부인하다가 위증죄로 고소당한 상태다. 엄석대에게 선생님의 체벌이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법원의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본즈에겐 미안하지만 다른 레전드들의 은퇴를 접하며 느꼈던 경외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각한 자만심과 결과를 위해 무시된 준법정신은 급우들이 엄석대를 피하려 했듯이 기피대상 1호로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그의 기록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야신을 만나길 바랄 뿐이다. 팬들도 선수들에게 인정받고 정이 가는 선수에게 끌리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게 공선이라는 소설을 읽어 보셨는지? 일본 계급주의 문학의 거장인 고바야시 다키지가 1929년 발표한 소설로서 작년부터 일본에서 재발견되며 50여 년만의 정권교체에 큰 영향을 미친 걸로 알려져 있다.

 

그 소설의 첫 문장은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이다. 노동 착취와 심각한 노동 환경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문장이 왠지 남의 이야기가 아닌 거 같다. 비정규직, 워킹 푸어(Working Poor), 88만원 세대라는 단어가 자주 보일 만큼 노동자에게 지옥인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자신의 입장을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분단 때문일까? 아니면 국익이 우리시대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일까? 하여튼 노동자가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면 ‘빨갱이 짓’이라고 매도당했다. 87년 6월 항쟁과 뒤이은 7,8월 노동자 대투쟁은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시도를 대낮에 고담시를 활보하는 배트맨처럼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 줬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노동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편견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수 존재한다.

 

프로야구 선수들도 이런 편견에 자유롭지 못한 거 같다. 지난 2일 선수협의회는 제10차 정기총회에서 노조설립안건을 표결에 붙여 205명 성원 중 188명의 찬성을 얻어(91.7%) 통과 시켰다. 노조 설립을 위한 1차 토대는 마련한 셈이다.
[##_1C|XCal79zAYu.jpg|width="500" height="750" alt=""|_##]

▲ 시즌 중 손민한 선수의 부진에 대해 선수노조를 이야기 하며 욕을 하던 팬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진은 어깨 부상 때문이었습니다.만약 계속 손민한 선수의 부진과 선수노조를 연관시키는 팬이 있다면 저는 그에게 "차라리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가 더 논리적으로 들린다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사진 출처 롯데자이언츠 홈페이지)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몇몇 팬들은 ‘시기 상조론’과 ‘고액 연봉자 노조 무용론’을 이야기하며 선수노조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팬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지만 선수협의회 측에서 ‘팬과의 대화’를 1주일 전에 급하게 준비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시기 상조론의 경우는 이미 용도 폐기되었다는 얘기로 끝내고 싶다. 어떤 목표를 두고 그걸 달성하면 뭔가를 해주겠다는 ‘조건부 복지’는 대한민국 땅에서는 허상임을 지난 60년 간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2001년 선수협의회를 허락하며 KBO 측에서 내건 조건이 ‘600만 관중 동원 시 선수노조 허용’ 아니었던가. 시기상조론으로 선수노조 설립을 반대한 이유는 명분이 없어 보인다.

 

대신 선수들의 고액 연봉으로 인해 선수노조 설립을 반대한다는 의견에는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다. 물론 프로야구 선수들 중에서 서민이 받을 수 없는 고액 연봉선수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1년 내내 짜여진 틀 안에서 훈련과 경기를 치러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생활하다 보니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도 쉽지 않다. 여기에 몸을 쓰는 직업이기 때문에 부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프로야구 선수가 고액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그만 빙하 밑에 큰 얼음 덩어리가 있는 것처럼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보다 1군 최저연봉보다 더 적은 1,800만원을 받는 선수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거기에 가장 짧은 정년기간을 가진 직업임을 고려해 본다면 당장의 고액 연봉으로 모든 걸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야구선수들의 열악한 노동환경(!)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올해 초 WBC에서 이용규 선수가 우츠미 선수의 공에 맞고 괴로워한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의 야구팬들이 놀란 건 얼마 되지 않아 ‘X-Ray로 본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라고 발표된 것이었다. 구장 내 의료시설에서 찍었다는 소식도 함께 접하면서 말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예비군 훈련에서 초기 응급처지의 중요성을 교육시킬 때 나오는 사례 중의 하나가 임수혁 선수의 경우라고 한다. 이후 9년이 지났지만 김태균 선수가 뇌진탕을 당했을 때 야구장 내 응급조치의 문제점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홈구장으로 쓰이는 7개 구장 중 4개의 구장이 인조잔디라는 건 또 어떤가. 대전, 대구, 광주는 계속해서 구장 현대화가 이야기 되고 있지만 이루어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선수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통로가 있을까? 선수 개개인이 인터뷰를 통해 볼멘소리(?)를 낼 수밖에 없을 뿐이다. 임의단체다 보니 발언권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결성 목적 중 하나가 ‘쾌적한 작업환경 보장’ 임을 생각해 본다면 ‘여러 가지 처우 개선이 필요한 선수들에게 선수노조는 필요하다’는 명분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선수 노조 설립을 반대하는 야구팬들은 94년 메이저리그의 파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거 같다. 하지만 선수노조가 그렇게 단체 행동권을 쉽게 쓰진 못할 것이다. 몸 안에 플레이에 필요한 감각들을 기억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파업으로 인한 경기불참은 장희빈이 마신 사약만큼이나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94년 메이저리그 선수파업 이후 침체기에 빠졌던 펠릭스 호세(前 롯데 자이언츠)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거기에 개인사업자에서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게 되면 세금이 올라간다. 분명 선수들에게 손해임이 틀림없다. 단체행동권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고 물질적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선수노조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에 대해 반대를 주장하시는 야구팬 분들은 한 번 더 심사숙고 해주길 바란다. 이젠 야구계도 말이 통할 수 있고 팬들이 수긍할 수 있는 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노조의 힘이 약해지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하는 정부의 주장에 흔들리지 않길 바라며 선수협의회의 선전을 기원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베이스볼 오타쿠'를 시작하며(미디어스)

2009/12/07 17:09

지난 4일 오후부터 미디어스에 접속한 네티즌이라면 생소한 이름의 칼럼을 적잖이 당황했을 것입니다. “베이스볼 오타쿠? 뭐야 이건. 그리고 신영배? 웬 듣보잡이야”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베이스볼 오타쿠’ 칼럼을 맡게 된 신영배라고 합니다. 나이는 20대 중반이고 휴학생입니다. 한 여자를 끔찍이 사랑하는 한 여자의 남자친구이구요. 지역의 언론 관련 시민단체에서 잠시 일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먼저 밝히고 싶은 건 22년간 야구팬이라는 겁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사리분별을 시작하는 시기’라고 말하는 2~3살. 제가 그 나이였을 때 야구는 TV프로그램의 주요 소재였습니다. 그리고 지역 연고 팀이었던 해태타이거즈는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시기였지요. TV를 켜면 야구중계, 부모님과 이웃들 간의 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해태 타이거즈 얘기. 이렇다보니 하얀 종이를 먹물에 담그면 검정색으로 되는 것처럼 당연하게 야구와 해태타이거즈를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다만 야구장에서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지역의 한을 풀던 어르신과는 다르게 선동열, 김성한 선수의 플레이를 보면서 해태타이거즈 자체가 좋아진 경우지요.

[##_1C|XIJWnEkMGw.jpg|width="385" height="480" alt=""|_##]

▲ 올 해 올스타전을 직관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슬람교의 하지처럼 야구장을 방문하는 건 제게 성스러운 의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신영배

 

제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해태타이거즈의 자리를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로 바꿨지만 저는 이상하게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91년 무등 경기장에서 선동열 선수의 29 완봉승 가운데 한 경기를 직관하고 나서 해태타이거즈가 제 종교가 되었지요. 아스날이 좋아 경기 때마다 메스꺼움을 느낀다는 닉 혼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이런 경험을 한 적은 있습니다. 올 해 한국시리즈 7차전 때 자꾸 헛구역질이 나오더군요. 다음 날 몸살 끼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매일 스포츠 뉴스와 ‘스포츠 중계석’, ‘스포츠 하이라이트’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결과를 확인했고 부모님을 졸라 나주에서 광주까지 1박을 하면서까지 무등 경기장을 향했습니다. 나주에서 전교 1등의 명예(?)를 버리고 광주로 올라가자고 부모님을 조른 것도 더 많은 경기를 야구장에서 보고 싶어서입니다.

 

제 인생에 ‘야구=해태타이거즈’ 라는 등식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95년인 거 같습니다. 격년제로 우승하던 해태타이거즈가 93년 이후 2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지요. 해태타이거즈가 없는 한국시리즈는 ‘앙꼬 없는 찐빵’이 될 줄 알았더니. '이게 웬걸!' 롯데 자이언츠와 OB 베어스가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가 벌어진 것입니다. 원년 이후 13년 만에 우승을 접하며 감격스러워 하는 박철순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해태 타이거즈만이 야구를 통해 파토스를 제공하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죠. 또한 그 해 벌어진 제 2회 한일슈퍼게임을 보며 야구에 견문(?)을 더 넓힐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그 다음해 박찬호 선수의 첫 승을 통해 메이저리그까지 접하게 되자 이거 헤어 나올 수가 없더군요.

 

이후 사춘기 시절 저를 키운 건 8할이 야구였습니다. 부진하긴 했지만 그래도 버릴 수가 없는 해태 타이거즈. 그리고 광주 팬들의 구원이었던 KIA 타이거즈, 무등산 폭격기에서 나고야의 수호신이 된 선동열, 외환위기로 인한 서민들의 설움뿐만 아니라 중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저에게 파이팅을 불어넣어 주던 박찬호 선수 그리고 국어시간에서만 존재하던 비장미를 직접 접하게 해준 김병현 선수까지. 이들이 있었기에 지옥 같고 우울하던 6년을 그나마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제 삶의 활력소에 대한 칼럼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인 거 같습니다. 선수 출신이 아니면서도 메이저리그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송재우, 이종률 해설위원을 보면서 '나도 노력하면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그 첫발을 야구 칼럼을 통해 내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악명 높았던 제 글 솜씨는 오래도록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자료를 찾기 위해 영어로만 되어있는 ESPN, FOX SPORTS, Baseball America 같은 사이트를 즐겨찾기 하는 천착을 아끼지 않았지만 글을 완성시킬 수 없었지요. 노조를 만들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에 지지를 하기 위해 2박 3일 고민하며 글을 썼지만 논리는 없고 유치찬란하더군요.(우연히 방을 청소하다 그 글을 발견했습니다. 6년 만에 읽어보니 손발이 오그라들더군요.)

 

고 1때의 꿈을 이제 8년여 만에 이루게 되었습니다. 야구 저널리즘의 발전으로 인해 박동희 기자의 미사여구, 김형준 기자의 기록 분석 그리고 배지헌 (기호태)님의 논리력 세례를 받고 칼럼리스트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제 첫 발걸음을 이끌게 해 준 이 세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물론 제가 이 세 분처럼 완벽한 글을 쓰진 못할 것입니다. 다만 1회 대학가요제에서 샌드페블즈가 대상을 받는 걸 보고 대학 밴드들이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다.' 라고 자신감을 얻었던 것처럼 제 글을 보며 야구팬들이 '평범한 어휘력에 평범한 글로도 칼럼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고 싶은 게 제 목표입니다.(야구 관련 커뮤니티에 저보다 훨씬 훌륭한 아마추어 칼럼리스트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기를 바라는 거죠.) 

 

수업 시간에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연계에서는 모든 에너지들이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소멸한다. 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기록을 통해 자신의 에너지를 계속해서 이어지게 한다." 저 역시 매주 월요일 야구와 관련한 제 의견을 까발리며 제 생각을 사라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많이 비어보일 것입니다. 많은 네티즌 분들과 야구팬들의 아낌없는 지탄을 바랍니다.

 

P.S 앞으로 매주 월요일 칼럼이 연재되겠지만 이번 주 수요일에 선수노조와 관련한 글을 작성하고자 합니다. 8년 전 2박 3일을 고민하면서 선수노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8년 전과 똑같은 주제를 써야 할 만큼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나아진 게 없다는 게 가슴이 아프네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장성호, 총을 뺏긴 스나이퍼? (미디어스 기고)

2009/12/02 10:27

그를 영입하기 위해 스카우터가 찾아간 건 아니었다. 당시 고교 최고 투수였던 충암고 박명환 선수(LG 트윈스)와 광주 진흥고 김상진 선수(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지지.)의 투구를 한 번에 볼 수 있기에 직접 운동장으로 간 거였다. 하지만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온 건 박명환, 김상진의 투구가 아닌 그의 스윙이었다.

 

그의 가능성에 매료된 해태타이거즈는 그를 2차 1번으로 지명하였다. 당시 팀의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1억 원의 계약금을 그의 손에 쥐어줬음은 물론이다.

 

이후 그가 타이거즈에서 타자로서 하지 못한 거라곤 해태타이거즈 첫 유니폼을 입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의 입단 동기가 세상의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걸 보기도 했고 150Km가 넘는 강속구로 10타자 연속삼진을 잡은 투수가 시속 135Km의 느린공을 던지는 두뇌파 투수로 변하는 걸 그라운드에서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 때도, 팀이 최하위로 추락할 때도 그는 그라운드에 있었다.

 

10월 24일 나지완 선수의 끝내기 홈런으로 눈물을 흘린 사람이라면 그가 누군지 맞추는 건 구구단 2단을 외우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NO.1 스나이퍼 장성호. 타이거즈의 심장이라는 이종범 선수도 겪어보지 못했던 ‘재정난으로 인한 침체기’에 장성호는 팀의 중심으로 활약하지 않았던가. 천국이든, 지옥이든 타이거즈와 함께 한 스타였기에 KIA 타이거즈 홈페이지의 노른자인 '호랑이 사랑방' 윗 배경에 그의 사진이 걸어져 있는 건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 만큼 당연한 일인 거 같다.

 

[##_1C|XO8bJXAzDF.jpg|width="520" height="146" alt=""|_##]

▲ 장성호는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기아 타이거즈 홈페이지 캡쳐)

 

타이거즈의 영혼인 그가 단지 FA 신청을 했다는 이유로 온갖 설움을 다 겪고 있다. 일부 팬의 비난은 애교로 봐 줄 수 있다고 치자. 그의 영입을 시도하는 팀이 없어 백기 투항하는 식으로 KIA 타이거즈와 재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장성호 선수가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KIA 타이거즈 타자 중 10번째로 많은 타석을 들어선 타자이며(312타석) 3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중 타율이 4위이다.(0.284) 부상과 포지션 경쟁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 속에서 나온 성적 치고는 괜찮은 거 아닌가. 거기에 득점권 타율은 0.343로 팀 내 2위에 해당한다. (타석 수 차이가 많아 직접적인 비교는 그렇지만 최희섭 선수의 0.336보다 높은 건 사실이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장성호’라는 이름값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과 장타력을 잃어버린 것뿐이다.(해석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장성호 선수를 중장거리 타자로 본다. 김태균, 이승엽, 최희섭 같은 형의 타자가 아니지 않는가. 장타에 대한 기대는 과도한 거 아닌지.)

 

또한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만성적인 손목부상은 2007년 최하위라는 팀 분위기 속에서 주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완치되지 않은 몸으로 무리하게 경기를 출장하며 생긴 직업병 아닌가. 거기에 올해 초 결장사유였던 팔꿈치 부상은 5월 17일 SK와이번스 전에서 수비하는 도중 펜스에 부딪히며 생긴 것이었다. 야구팬들 사이에 대표적인 슬로우 스타터로 통하는 그가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시점에 다치지 않았다면(분명 피할 수도 있었다. 직접 잡을 게 아니라 공을 펜스에 맞추기만 했어도...) '옛날의 장성호가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까?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헌신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이런 식의 대접을 받는다는 것에 타이거즈의 팬으로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건 당연한 거 아닐지. 풋내기 칼럼리스트도 추천 수가 궁금해 자꾸 접속해 보는 데 프로선수가 자신의 가치를 궁금해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헌법에 직업선택의 자유를 명시한 나라에서 FA를 신청한 게 그렇게 잘못인가. KIA 타이거즈의 태도는 도무지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가 없다.

 

11월 30일 장성호 선수가 호랑이 사랑방에 직접 글을 남겼다. 그는 ‘제가 타이거즈에서 뛸 때 절 응원하셨던 것에 1%만 제 입장을 생각해주세요’라고 이야기 했다. 지금 장성호 선수가 얼마나 고립되어 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프로야구의 역사와 기록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그만큼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연고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고 선수들의 몸값이 올라가면서 한 팀에서 꾸준하게 뛴 다는 게 어려워지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런 시대에 KIA 타이거즈는 80년대 방식으로 장성호 선수를 고립시키고 있다. 그의 나이 이제 서른 셋. 그라운드에서 이별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구단의 시대 역행적인 마인드로 인해 작별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선수이기도 하다. 양준혁 선수가 자신의 기록들을 갈아치울 수 있는 선수로 장성호를 지목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영원토록 남을 기록의 순간 타 팀의 유니폼을 입으며 인사하는 장성호 선수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날려 버려 날려 버려 안타 장성호. 날려 버려 날려 버려 안타 장성호. 날려 버려 날려 버려 날려 버려 날려 버려 스나이퍼 장성호♬ 이 응원가가 없는 무등 경기장을 생각해 본 적 없다.

 

기록 출처= 스탯티즈(http://www.statiz.co.kr/)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돔 구장 건설계획이 발표된 10월29일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혼란 속에서 박광태 시장과 광주시 관계자들은 돔구장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명의는 다르지만 내용은 같은 플래카드들이 여기저기 내걸려 있고 광주시 및 자치구 홈페이지에 돔 구장 설명 자료를 공지하고 있다. 거기에 김윤석 경제부시장이 공무원들을 상대로 특강을 했다고 한다. 여태껏 본 적 없는 열정적인 시정이다. 하지만 시민들과 야구팬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찝찝하기만 하다.
 

 사실 광주시가 야구장에 대해 조금만 공부를 하게 된다면 사람들이 왜 반대를 하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돔 구장을 짓게 되면 그라운드에 인조잔디가 깔릴 가능성이 크다. 2004년 무등 경기장 경기장에 인조잔디를 깐 이후부터 2008년 신형 인조잔디로(필드 터프) 교체할 때까지 4년 동안 승률이 외환위기 이후 타이거즈의 암흑기었던 1998년 부터 2000년까지의 승률보다 더 낮다. 또한 이 시기 많은 선수들이 부상당하며 경기력이 급감한 기억이 있는 야구팬들이 천연 잔디를 사용할 수 있는 일반 구장을 선호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
 

 돔 구장이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가 단지 야구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야구경기와 함께 개최될 콘서트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돔 구장은 비싼 관리비로 인해 1회 대관료가 억대를 부른다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 정도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가수가 광주에서 콘서트를 하러 내려오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을까? 거기에 염주체육관, 문화예술회관, 김대중 컨벤션센터 등 다른 대체시설들도 많은데 굳이 돔 구장에서 공연을 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광주에서 돔 구장과 함께 계획되고 있는 신도시 개발은 또 어떤가. 최근까지 수완지구의 미분양율이 지역사회의 이슈 중 하나였고 광주의 인구수가 점차 감소한다는 기사가 나오는 상황에서 과연 광주시민들이 별 필요 없는 신도시 개발을 지지할 이유가 있을까?
 

 사정이 이러함에도 박광태 시장과 광주시는 돔 구장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돔 구장이 아니면 새 야구장을 짓기 힘들다고 시민과 야구팬에게 ‘협박’(?)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광태 시장은 사태의 본질을 너무 모르는 것같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답답하기만 하다.

 

신영배 시민기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다른 선택은 필요했다. 하지만...

2009/10/04 10:01

 이 데일리 정철우 기자님의 기사를 보고 나서 그에 대한 제 생각을 이 글에 씁니다.

참고로 저는 기아타이거즈 팬입니다. 주관적인 시선이 담아있다 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3, 4위가 결정 되었을 때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전력을 비교했던 기사들을 야구팬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스캔들 당사자들이 '친한 오빠동생 사이' 라고 하듯이 두 팀의 투수진을 비교할 때 진부한 표현이 계속 되었지요.  "두산은 불펜이 롯데는 선발진이 우세다."            

 

 우리나라 포스트 시즌을 보면 선발투수가 빨리 강판당하는 경우가 많아 불펜이 강한 곳이 이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차전을 보니 제 생각과 다르게 돌아가더군요. 조정훈 선수가 8회까지 던지며 필승 계투조를 아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3차전 선발 투수가 너무 빨리 강판당하자 '그럼 그렇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두 경기를 통해 불펜을 하얗게 불태웠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지난 경기의 교훈 때문에 로이스터 감독은 배장호 선수를 3회에 계속해서 던지게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우리 팀 타격이 분위기만 타면 두 세점 이상은 따라갈 수 있는 팀" 이란 자신감도 있었을 거니까요.

 

 저도 아로요 코치나 로이스터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온 타이밍은 잘못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철우 기자님 처럼 용덕한 선수에게 볼넷을 던질 때 올라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죠. 그 정도는 포수가 올라와서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번 올라오면 자동 투수교체인데 그 이닝이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올라가긴 힘들었겠죠.

 

 대신 이종욱 선수에게 2루타를 맞고 동점을 허용할 때 올라왔으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햇빛 때문에 공을 놓친 걸로 봤고 용덕한 선수의 빠르기를 생각한다면 중계 과정에서 박기혁 선수가 공을 놓친 게 너무나도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험이 많지 않은 투수가 잘 던지다가 한 점 내주면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죠. 그 때 올라와서 안정을 시켰으면 어땠을까요.

 

 역사에 과정은 없고 가정은 무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정하지 말아야 할 법은 없죠. 이런 가정들이 야구를 좀 더 알 수 있게 해주지 않겠습니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을까?

2009/09/12 22:31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을까? 9월 들어 기아의 행보가 불안불안하다. 특히 삼성과의 1패를 제외한다면 모두 잡았어야 했던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에게 패했다는 것이다.

 

 오늘 경기가 아쉽게 놓친 것 보다 이용찬의 기를 살렸다는 점이 더 우려스럽다. 부진으로 인해 임태훈과 보직을 바꿨을 정도였는데 너무 무력하게 무너진 건 아닌지. 최소한 점수는 못 내더라도 따라 붙는 장면을 연출했으면 했는데... 이제 한국시리즈를 생각해서 상대가 예상되는 팀들의 중요한 곳을 건드려야 하건만, SK 와이번스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도 김성근 감독의 벌떼 야구를 깨지 못하더니 오늘 또 실패했다.  

 

 이틀 연속으로 최희섭 선수가 한 방 터뜨려 주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물론 김상현 선수가 부진한 게 우려스럽긴 하다. 하지만 KIA타이거즈 타선의 중심은 최희섭이다. 그가 부진했을 때 김상현 선수가 부진해지기 시작했고, 그가 다시 살아났을 때 김상현도 살아나서 미치기 시작했다. 최희섭 선수가 터뜨려 줄 때 김상현 선수가 여기서 홈런 한 방만 치면 그도 살아나고 나지완도 살아나고 여기에 지난 두산과의 경기에서 만루홈런으로 살아난 장성호 선수가 받쳐주고 이런 식으로 또 다시 연쇄적으로 타선이 살아난다. 적당한 시기에 김상현의 홈런은 신종플루에 걸린 KIA 타이거즈 타선에게 타미플루가 될 것이다.

 

 한화와의 2연전을 스윕하며 SK 와이번스와 두게임 차로 겨우 따돌렸더니 또 다시 한게임 차 살얼음판 승부가 계속되고 있다. 누가 SK 와이번스 발목을 잡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가을의 전설을 직행하기 힘든건가??

 

P.S 내일 올드유니폼 데이를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낚시였다는 게 지금 네티즌들의 결론인 거 같다. 기아팬들이 얼마나 원하면 이런 낚시글이 큰 반향을 일으킬까? 검정색 바지가 뜨거워서 힘들다면 최소한 상의라도 옛 유니폼을 입을 수 있지 않을까? SK 와이번스의 스포테인먼트의 최대 피해자는 기아 타이거즈가 아닌가 싶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어제 KIA 타이거즈 경기 단상

2009/08/31 10:34

 사실 어제 데이트 중이였는데요. 어머님께서 문자를 보내셨습니다. "1대0으로 지고 있다가 8회에 6대 1로 역전했다. 장성호가 만루홈런 쳤다" 컴퓨터로 봤는데 홈런 장면 뿐만 아니라 한명재 아나운서의 흥분하는 목소리에 전율이 느껴지더군요.

 

 어제 경기는 1승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아무리 과부하가 생겼다고 하지만 그래도 두산의 힘은 '불펜진' 이었는데 타이거즈가 그걸 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이 경기를 잡겠다' 란 김경문 감독의 의지를 계속된 투수교체를 통해 보였는데 끝내 경기를 놓치고 마는군요. 시즌 막판 포스트 시즌에 만날 팀을 만나 그들의 무기를 이겨냈다는 건 베어스에게는 트라우마를, 타이거즈에게는 자신감을 남길 거 같습니다.

 

 최승환 선수가 요구한 곳 보다는 약간 가운데로 몰렸지만 그래도 낮았다고 생각했는데 장성호 선수가 그걸 기막히게 쳤네요.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기아팬들이 조범현 감독을 조갈량이라고 부르는게 허풍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SK 와이번스전 나지완, 이재주. 두산 베어스전 장성호. 이렇게 대타홈런 그것도 결정적인 홈런이 나오니 소름이 돋네요.

 

 일단 이번 3연전 스윕으로 KIA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는 확정적이라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스릴러의 반전처럼 KIA 타이거즈가 팀 전체적으로 부진에 빠지지 않는 이상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가 2위 싸움으로 바쁘기 때문에 KIA 타이거즈를 신경 쓸 겨를이 없겠죠. 9월 초까지 분위기가 좋다면 그 이후에는 유망주들을 시험하는 시간으로 보내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양현종, 곽정철 선수 모두 작년 시즌 막판 시험대에 올리지 않았습니까? 참고로 저는 정성철 선수를 주목하고 있습니다.(프로필 사진도 모자를 삐딱하게 썼네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홉 수를 이겨낸 기아, 오늘도 이겨냈으면...

2009/08/27 11:43

 지난 25일 류현진 선수를 잡을 때 아 이 시리즈 쉽게 가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예상이 어김없이 맞아 떨어지네요. 물론 어제 한화 이글스의 선발투수가 프로 데뷔 이후 첫 선발 등판이였던 정종민 선수였지만 쉽게 승리를 점치지는 못하겠더군요.

 

 바로 양현종 선수의 10승 도전 경기였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아홉수의 저주를 믿는 건 아니지만 생애 첫 10승 도전이니 만큼 어깨에 힘이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7이닝 1실점의 짠물 투구와 타선의 지원으로 쉽게 10승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또 다른 아홉 수에 걸린 선수가 있었는데요. 바로 김상현 선수였습니다. 어제 경기 전까지 99타점을 기록하고 있었지요. 김상현 선수 또한 생애 최초 100타점 도전이였으나 너무나도 쉽게 이겨내더군요. 어제 2안타로 5타점을 내는 고효율의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오늘 광주에 비가 그치고 경기가 가능하다면 또 다른 선수의 도전을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바로 이대진 선수의 100승 도전이죠. 두 번의 도전은 실패했지만 오늘 고향 팬들이 보는 가운데서 100승을 달성하며 동료와 팬들에게 축하받는 장면을 꼭 보고 싶네요.(정말 97년만 해도 100승 뿐만 아니라 150승도 쉽게 할 줄 알았는데 76승에서 23승 채우는 데 8년 걸렸네요.)  

 

P.S 오늘 우천으로 인해 경기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KIA 타이거즈에게 나쁠 건 없어 보입니다. 내일부터 벌어지는 두산과의 3연전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죠. 이동일 전의 하루 휴식 정도는 나쁠 거 같진 않습니다. 어차피 윤석민, 구톰슨, 로페즈 이런 순으로 가는 걸로 계획을 세웠으니 구상에서 어긋나는 것도 없을 것이고 이대진 선수도 불펜 대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불펜 운영에 대한 경우의 수가 더 생기는 거겠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