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알바일기

2009/10/08 00:18

 오늘 3시 40분에 출근했다.

 

DMB의 필요성을 느낀다. 플레이오프도 보고 싶어서 안달인데 한국시리즈는 어떠할지.  라디오로 중계들으면서 위안하고 있다.

 

위생에 신경쓰고 있다. 닦고 또 닦고 쓸고 또 쓸고. 성실함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에 계속 신경쓰고 있다.

 

K형에게 전화가 왔다. 편의점 알바한다고 하니 놀라며 왜 하냐고 한다. 총알이 없는 데 사람 없다고 총알 만드는 사람을 전선에 내보낼 수 없지 않은가.

 

시재검수가 15,000원 이상 차이가 났다. 처음이니까 일정정도만 책임지라는 점장님이 고맙게 느껴진다. 도대체 뭐가 잘못이였는지. 내일은 딱 맞기를 바랄 뿐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다른 선택은 필요했다. 하지만...

2009/10/04 10:01

 이 데일리 정철우 기자님의 기사를 보고 나서 그에 대한 제 생각을 이 글에 씁니다.

참고로 저는 기아타이거즈 팬입니다. 주관적인 시선이 담아있다 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3, 4위가 결정 되었을 때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전력을 비교했던 기사들을 야구팬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스캔들 당사자들이 '친한 오빠동생 사이' 라고 하듯이 두 팀의 투수진을 비교할 때 진부한 표현이 계속 되었지요.  "두산은 불펜이 롯데는 선발진이 우세다."            

 

 우리나라 포스트 시즌을 보면 선발투수가 빨리 강판당하는 경우가 많아 불펜이 강한 곳이 이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차전을 보니 제 생각과 다르게 돌아가더군요. 조정훈 선수가 8회까지 던지며 필승 계투조를 아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3차전 선발 투수가 너무 빨리 강판당하자 '그럼 그렇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두 경기를 통해 불펜을 하얗게 불태웠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지난 경기의 교훈 때문에 로이스터 감독은 배장호 선수를 3회에 계속해서 던지게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우리 팀 타격이 분위기만 타면 두 세점 이상은 따라갈 수 있는 팀" 이란 자신감도 있었을 거니까요.

 

 저도 아로요 코치나 로이스터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온 타이밍은 잘못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철우 기자님 처럼 용덕한 선수에게 볼넷을 던질 때 올라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죠. 그 정도는 포수가 올라와서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번 올라오면 자동 투수교체인데 그 이닝이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올라가긴 힘들었겠죠.

 

 대신 이종욱 선수에게 2루타를 맞고 동점을 허용할 때 올라왔으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햇빛 때문에 공을 놓친 걸로 봤고 용덕한 선수의 빠르기를 생각한다면 중계 과정에서 박기혁 선수가 공을 놓친 게 너무나도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험이 많지 않은 투수가 잘 던지다가 한 점 내주면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죠. 그 때 올라와서 안정을 시켰으면 어땠을까요.

 

 역사에 과정은 없고 가정은 무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정하지 말아야 할 법은 없죠. 이런 가정들이 야구를 좀 더 알 수 있게 해주지 않겠습니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년 4월 1일 나는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진보신당에 입당한 이유는 설명할 수 있지만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이유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물어보면 "이 분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고 내가 지지하는 분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 이라고 할 뿐이다.(근데 세상 일이 한 가지 이유로 되는 건 아니다.) 원내진출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과 함께.

 

 

 민주노동당에 대해 알게 된 건 안티조선을 했다거나 정치캠프에 참가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냥 노사모였던 스승과 친구들 덕분에 '전라디언'이란 말을 듣는 내 주위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로 그 쪽을 지지했던 게 '레드 컴플렉스' 에 조금은 자유로웠던 거 같다. 그리고 97년 딱딱하게 TV 연설을 하고 있던 한 후보를 향한 아버지의 극찬과 "경험이 많았어도" 라는 탄식을 기억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아버지는 다른 후보를 뽑았다. 아니 한 번도 진보정당을 찍어본 적이 없다. 활동가들의 글을 보면 한 번씩 나타나는 '자신의' 후보를 찍지 않는 조합원 중의 한 분이시다.) 덕분에 2002년 '이회창이랑 노무현은 알겠는데 그 옆에서 같이 토론한 사람은 누구야?' 라는 친구의 질문에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유들이 민주노동당을 더 친근하게 느끼게 하고 입당까지 하게 만든 거 같다.

 

 

 민주노동당이 분당했을 때 수도 없이 나온 두 단어를 기억하는지? 바로 '자주파'와 '평등파' 말이다. 이런 구분이 좋다거나 정확한 건 아니지만 이분법적으로 선택하라 한다면 나는 '평등파' 계열이였다. 지인따라 노선이 결정되는 우리나라 운동권의 한계에 빠졌다라고 한다면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철저한 에고이스트인 내가 체감하기 힘든 통일담론 보다는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곳이 더 좋았다. 그리고 성장 가능성도 그 쪽이 더 크다고 생각되었다. 그랬기에 나는 정당한 방법으로 평등파 계열이 당권을 가져야 민주노동당이 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수로 노회찬 의원이 되길 소망했다. '불판'으로 시작한 촌철살인 멘트들로 민주노동당의 존재를 알게 했고 선거 당일 9선 김종필 총재를 물리치고 마지막 한 석을 얻어내며 17대 국회의 개혁성을 상징이 된 사람. 당선 이후에도 민주노동당의 대표선수로 자리매김한 의원. 나는 그를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도 자신의 생각을 설득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봤다. 그 친근함이 민주노동당을 바꿀 수 있을 걸로 봤다.(지금 생각해도 너무 순진했다. 아니 그 때도 순진하다 생각해 이런 얘기 아무에게도 안했다.)

 

 

 그 해 5월 1일 노동절에 나는 황광우란 분을 만났다. 1주일 전 방영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것과 달리 거친 이미지였다. 그의 이미지와 그가 내뿜는 카리스마로 인해 나는 주눅들었다.(덕택에 나는 아직도 황광우 선생님이 어렵다. 선생님이 싫어서 이야기를 안하는 게 아니다. 못하는 거다.) 하지만 자주 뵈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대부분 술을 마시며 ㅋㅋ) 무지한 내 머리 속을 채우는 데 큰 도움을 주셨다. 그리고 그 분이 내가 꼬맹이였을 때 노회찬의원 그리고 주대환 이란 분과 함께 인민노련이란 곳에서 함께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곧 '주대환' 이란 분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동아리 방에 있어 읽은 적이 있던 '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을 수 있는가' 의 저자.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다큐멘터리 속에 나왔었지"  하지만 그가 인상깊게 다가오진 않았다. 노회찬 의원처럼 언론을 자주 타는 것도 아니고 황광우 선생님처럼 자주 볼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인 거 같다. 내가 그를 처음으로 대면한 건 10월 말에 있었던 '이재유 선생 60주기 추모식' 인 걸로 기억한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원내진출 이후 1기 지도부의 실패로 인한 우울함은 감출 수 없었다. 그 슬픔이 그가 전해 준 보드카로 전이되어 나는 원샷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2005년 '인천 트로이카' 라고 들었던 세 분에 대한 기억이다. 4년 후 노회찬 대표는 진보신당의 대표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2005년 당시 징계를 받고 있었던 황광우 선생님은 내가 입대한 이후 징계가 풀렸고 '철학콘서트'가 대박이 나 그의 직함까지 바꿀 수 있게 되었지만... 하여튼 지금 그의 땀이 남아있는 남원 연수원을 계속해서 지키며 지리산초록배움터 대표를 맡고 있고 전남대 철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주대환 선생님은 나눠진 두 정당을 모두 버리고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하셨고 사민주의에 대해 천착하고 계시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변절자' 란 이야기까지 듣고 있다.

 

 

 거기에 진보신당 최초의 국회의원이 된 조승수 의원도 인민노련이였고 골 때리는 말과 행동을 많이 하는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도 인민노련 출신이다.(그 쪽에서도 왼쪽이라던 글을 읽은 거 같은데) 총선 때마다 대동고에 프랑카드 걸게 만드는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도 인민노련 출신인 걸로 알고 있다. 거기에 계속해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변절 하신 분 그리고 생활인이 되신 분들까지. 그 분들의 기쁨과 좌절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드라마나 소설이 나오길 소망했으나 시대가 자꾸 우회전하기에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C급 경제학자라고 쓰고 동네 착한 형이라고 읽는'(내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우석훈 박사가 인민노련에 대한 책을 쓴단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그와 같이 작업을 하게 된 hendrix님 의 블로그에 가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나라에서 우석훈 박사는 제법 발언권이 큰 좌파 학자 중 한 명이다. 그가 움직인다면 80년대의 젊음과 2000년대의 젊음을 교류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 같다.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을 통해 25살의 베쓰볼 키드가 25살 황광우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알바를 그만 두었다.

2009/10/02 00:09

 이번 알바도 무참히 실패했다.

인정한다. 일 못한 거 그리고 참지 못한 거.

 

 하지만 같이 일하던 분에게 한 번 묻고 싶다.

일 시작한 지 7일도 안되서 그렇게 사람을 노려봤어야 했는지.

일하는 요령을 사수가 아닌 간부에게 듣는 심정이 어떠했는지.

들려버린 뒷담화에 내가 얼마나 위축되었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숨어지내야 한다.

내 죄가 있기에 아니 내 죄로 인해 벌어진 것이므로 숨어지내야 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우연히 들은 대화의 한 토막.

“그럼 그 사람도 같은 기독교인이야?”

“응, 그런데 그 친구랑 나는 달라. 나는 진보적이라 타 종교에 대해 관대한데 그 친구는 보수적이더라고.”

[##_1L|XN4PnIxg3D.jpg|width="231" height="168" alt=""|_##] 

 

 

 

 

 

 

 

 

▲“내 방식밖에 없다고 이야기 하면 살림살이 나아지십니까?”(사진 =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조훈현 기사가 그 전 경기를 복기하듯 자칭 진보진영에 복무한다는 분들은 이 내용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진보-보수의 기준이야 학자들이 정하는 게 교과서로 채택되겠지만 생활 속에서 통용되는 진보-보수의 기준은 ‘상대방에 대한 관용’ 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보 ‘꼴통’ 이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대한민국 진보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총에서(개인적인 생각은 그렇다.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다는 건 알지만...) 특정 정당을 향해 ‘배타적 지지’를 한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그 정당에 대한 배너만 찾을 수 있는 걸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홈페이지를 들어가게 되면 메인사진에 그 정당의 깃발이 휘날리는 걸 보게 된다.


 ‘배타적 지지’를 결정한 당시 진보정당의 필요성에 비해 현시창(현실은 시궁창)인지라 그 당의 힘을 키워 줄 필요성이 있었다는 건 100번 이해하는 바이다. 하지만 한 때 제 3당이기도 했고 지금도 선거 때 기호 5번을 얻으며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이지 않는가. 재선에 성공한 의원이 두 명이나 있고 그 두 명 다 개그 소재로 활용될 만큼 인지도를 쌓고 있는 2009년에도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필요한 건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눈에는 독립한 40대 자식을 세수 시키며 코 풀어주려 하는 할머니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지난 10년간의 사회적 분위기 덕택에(지난 1년 반 동안 되돌아가는 것 같긴 하지만) 그 동안 ‘금기시 되었던 사상의 자유’가 허락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하는 많은 단체들이 생겼고 그 곳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총 조합원인 걸로 알고 있다. 민주노총도 이에 발 맞춰 그 조합원들과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온당하다고 생각하건만. 현실은 자기네들 방식 아니면 정치 세력화 할 수 없다 라며 조합원들을 고립시키고 있다. 어찌 보면 사상의 자유를 막는 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국가보안법이 아닌지.


 지난 11일 민주노총 47차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진보정당 세력 단결과 통합 촉구를 위한 선언문’이 채택 되었다. 임성규 위원장은 그 전날 “우리 요구를 외면한다면 민주노총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기 위한 제3지대를 추진할 것” 이란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과연 누구 좋으라고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노동자들을 위해” 라는 대사는 읊지 마라. 위선적으로 보인다. 가식적인 멘트 할 생각이면 차라리 생물 선생의 “생태계에서 종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라는 가르침을 기억해 내기 바란다. 그게 진보진영과 민주노총이 국민에게 인정받는 '진보' 가 되는 지름길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을까?

2009/09/12 22:31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을까? 9월 들어 기아의 행보가 불안불안하다. 특히 삼성과의 1패를 제외한다면 모두 잡았어야 했던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에게 패했다는 것이다.

 

 오늘 경기가 아쉽게 놓친 것 보다 이용찬의 기를 살렸다는 점이 더 우려스럽다. 부진으로 인해 임태훈과 보직을 바꿨을 정도였는데 너무 무력하게 무너진 건 아닌지. 최소한 점수는 못 내더라도 따라 붙는 장면을 연출했으면 했는데... 이제 한국시리즈를 생각해서 상대가 예상되는 팀들의 중요한 곳을 건드려야 하건만, SK 와이번스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도 김성근 감독의 벌떼 야구를 깨지 못하더니 오늘 또 실패했다.  

 

 이틀 연속으로 최희섭 선수가 한 방 터뜨려 주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물론 김상현 선수가 부진한 게 우려스럽긴 하다. 하지만 KIA타이거즈 타선의 중심은 최희섭이다. 그가 부진했을 때 김상현 선수가 부진해지기 시작했고, 그가 다시 살아났을 때 김상현도 살아나서 미치기 시작했다. 최희섭 선수가 터뜨려 줄 때 김상현 선수가 여기서 홈런 한 방만 치면 그도 살아나고 나지완도 살아나고 여기에 지난 두산과의 경기에서 만루홈런으로 살아난 장성호 선수가 받쳐주고 이런 식으로 또 다시 연쇄적으로 타선이 살아난다. 적당한 시기에 김상현의 홈런은 신종플루에 걸린 KIA 타이거즈 타선에게 타미플루가 될 것이다.

 

 한화와의 2연전을 스윕하며 SK 와이번스와 두게임 차로 겨우 따돌렸더니 또 다시 한게임 차 살얼음판 승부가 계속되고 있다. 누가 SK 와이번스 발목을 잡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가을의 전설을 직행하기 힘든건가??

 

P.S 내일 올드유니폼 데이를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낚시였다는 게 지금 네티즌들의 결론인 거 같다. 기아팬들이 얼마나 원하면 이런 낚시글이 큰 반향을 일으킬까? 검정색 바지가 뜨거워서 힘들다면 최소한 상의라도 옛 유니폼을 입을 수 있지 않을까? SK 와이번스의 스포테인먼트의 최대 피해자는 기아 타이거즈가 아닌가 싶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듣지 못한, 보지 못한 칼럼 유감

2009/09/10 16:31

 살다보면 세상 모든 일을 한가지 잣대로만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박재범과 진보좌파랑 무슨 연관이 있다고 그러는건지?

미안하지만 '스타비평' 썼다고 대중문화 비평가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거든.

제발 대중문화랑 정치를 학부과정으로 이수하려 하지 말고 그냥 전공 하나 선택해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알바 뛰고 있는 소감

2009/09/04 16:53

 손은 오그라들고 다리는 덜덜 떨리고 귀는 안들리고 눈은 침침해지고

잠은 오고 추천으로 들어간 곳이라 긴장감은 이빠이.

이러고 산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어제 KIA 타이거즈 경기 단상

2009/08/31 10:34

 사실 어제 데이트 중이였는데요. 어머님께서 문자를 보내셨습니다. "1대0으로 지고 있다가 8회에 6대 1로 역전했다. 장성호가 만루홈런 쳤다" 컴퓨터로 봤는데 홈런 장면 뿐만 아니라 한명재 아나운서의 흥분하는 목소리에 전율이 느껴지더군요.

 

 어제 경기는 1승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아무리 과부하가 생겼다고 하지만 그래도 두산의 힘은 '불펜진' 이었는데 타이거즈가 그걸 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이 경기를 잡겠다' 란 김경문 감독의 의지를 계속된 투수교체를 통해 보였는데 끝내 경기를 놓치고 마는군요. 시즌 막판 포스트 시즌에 만날 팀을 만나 그들의 무기를 이겨냈다는 건 베어스에게는 트라우마를, 타이거즈에게는 자신감을 남길 거 같습니다.

 

 최승환 선수가 요구한 곳 보다는 약간 가운데로 몰렸지만 그래도 낮았다고 생각했는데 장성호 선수가 그걸 기막히게 쳤네요.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기아팬들이 조범현 감독을 조갈량이라고 부르는게 허풍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SK 와이번스전 나지완, 이재주. 두산 베어스전 장성호. 이렇게 대타홈런 그것도 결정적인 홈런이 나오니 소름이 돋네요.

 

 일단 이번 3연전 스윕으로 KIA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는 확정적이라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스릴러의 반전처럼 KIA 타이거즈가 팀 전체적으로 부진에 빠지지 않는 이상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가 2위 싸움으로 바쁘기 때문에 KIA 타이거즈를 신경 쓸 겨를이 없겠죠. 9월 초까지 분위기가 좋다면 그 이후에는 유망주들을 시험하는 시간으로 보내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양현종, 곽정철 선수 모두 작년 시즌 막판 시험대에 올리지 않았습니까? 참고로 저는 정성철 선수를 주목하고 있습니다.(프로필 사진도 모자를 삐딱하게 썼네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년 겨울 만약 나는?

2009/08/31 00:44
  

 2007년 겨울은 잊을 수가 없다. 군대에서 조금은 억울하게 불미스런 일을 겪고 오히려 군 생활이 더 편해진 때인 걸로 기억한다.(그 때 친했던 간부들의 배려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뜨거운 커피와 담배를 함께 피며 친한 선, 후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것도 행복했었고 전역에 대한 기대감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몸서리 처질 정도로 설레었다. 덕택에 11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우리에게 느껴지는 추위를 좋아하게 되었다.(딱 그 정도만)


 내게는 행복했던 그 시기 밖에서는 정치의 계절이었던 거 같다. 대한민국의 모든 눈이 대통령 선거로 쏠리던 때였으니 말이다. 나 역시도 대선을 관심 있게 바라보던 눈 중 하나였다. 군 입대 전에도 당적을 가지고 있었고 내 생애 첫 투표권을 가진 대선 이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휴가 운 없던 내가 7월부터 12월 말까지 세 번의 휴가에 시험으로 인한 두 번의 외출을 하다 보니 사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던 것도 한 몫 한 듯하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가끔 2007년 대선 공간에 있었던 일들을 적은 글들을 보고는 한다. 그 글을 읽으면서 ‘좋은 판 놓쳤다’란 아쉬움이 생긴다. 얼마나 재미있는 싸움이었을까? 그러면서 따라오는 생각. “만약 이 정치의 계절 내가 민간인이었다면?”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이건 가정해 봐도 괜찮을 듯하다. 육군병장이 블로거가 됐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지 않겠는가?


 우선 당적을 가졌던 민주노동당 경선에 민간인이었다면? 자서전 쓰듯 정직하게 밝히자면 민주노동당의 스타들을 보고 입당한 경우라 경선 당시 최고스타인 노회찬 후보를 지지했을 것이고 (물론 내 주위 사람들도 노회찬 대표를 지지했으니) 노후보가 안되더라도 심상정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었다면 박수쳤을 것이다. 또한 그 둘 중 한 명이 후보가 되었다면 본선에서 그를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아고라나 내 블로그에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태왕사신기 1부가 재방송 되던 토요일 오후 갑자기 뉴스속보가 뜨더니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 권영길 후보가 당선된 순간 나는 이해할 수 없어 담배를 피러 나갔다. 초짜 오브 초짜인 내가 봐도 권영길 후보는 악수였기 때문이었다. 쪽박이 눈에 선했다. 그것도 정파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니 얼마나 어이없었겠는가. ‘이번에는 정파를 떠난 선거가 될 것이다’라고 예측한 한겨레 21은 삽질 한 것이었다.

 

 그리고 본선 때는 어떻게 했을까? 일단 민주노동당을 탈당했을 것이고(경선을 끝낸 다음 주에 휴가였다. 그 때 탈당하고 싶었는데 선배들이 무섭기도 하고 짠하기도 해서 그 생각 그만뒀다.) 문국현 후보와 금민 후보를 놓고 고민했을 것 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금민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시험보고 난 뒤 피시방에서 금민 후보와 권영길 후보 정책설명집을 비교하면서 읽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부재자 선거 때 금민 후보를 찍느냐 마느냐 라고 고민 많이 했다.) 그의 선거 슬로건이었던 ‘새로운 진보, 담대한 제안’ 이  맘에 끌렸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군대 있었던 게 다행인 듯싶기도 하다. 내 성격상 액션을 취했을 것이고 그 계기로 사회당에 입당했을 수도 있으나 그 곳에서 적응을 잘 했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라는 대로 당을 나눴기 때문에 내가 몸담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으니. 현실은 지금 이 상황이고 그냥 심심하다 생각한 거니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당원 분들은 불쾌하게 봐주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M_펼쳐두기..|접어두기..|
_M#]


P.S 그렇다면 내 주위 사람들은 누구를 선택했을까? 부모님이야 다른 생각 안하시고 정동영 후보 찍었다. 내 여자 친구는 충장로에서 오로지 BBK 이야기만 한 정동영 후보의 연설을 듣고 문국현 후보를 선택했다고 한다. 내 대학친구는 허경영 후보를 선택했다. 19일 당직사관을 선 간부는 인수인계 도중 다른 간부의 질문에 문국현 후보가 참신하게 느껴져 그를 선택했다고 이야기 했다. 병사들은 말은 안하지만 대체로 그 곳도 이명박 후보가 대세였다. 내가 ‘권영길 후보를 찍겠지’ 라는 희망을 가졌던 후임은 ‘비판적 지지’를 이유로 정동영 후보를 뽑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후임은 다 도찐개찐이라 그냥 이름이 특이한 금민 후보를 찍었다고 한다. 이유야 뭐가 되었든 한국의 진보를 위해 자신의 귀중한 한 표를 선택한 그 후임에게 아직도 감사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