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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인크레더블맨를 통해 그려진 국가와 시장

거의 1년만에 처음으로 블로그를 쓴다. 참으로 게으름이라는 병은 고치기가 힘들다.

각설하고,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만화영화를 딸 덕분에 보았다. 어디서 낫는지 모르지만 보아하니 아마도 지난 여름 미국에서 누가 준 것같다. The Incredible man이라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DVD를 봤다. 밤에 보기 시작한 것이라 딸은 다보지도 못하고 잠을 자러 들어가야 했다. 스토리가 너무 뻔해서 처음에는 이걸 왜 보고 있지 했는데, 왠지 계속 봐야할 것 같아져서는 혼자 이어폰 끼고 다 보았다.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현재로부터 약 16년전 초능력을 가진 많은 수퍼 히어로들이 국가에 소속되서 악당들과 싸운다. 이들은 어찌 보면 초능력을 가진 경찰관이자 소방관이다. 좀 별 난 공무원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 중에 인크레더블 맨이라는 초능력자가 있다. 결혼식을 가는 중에도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고양이도 구하고 도둑도 잡고 끊어진 교각에서 전차도 멈추고...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이들에게 소송 당하는 등.... 점점 시민들은 이들의 존재에 거부감을 느끼고 정부는 이들을 보통사람으로 위장하여 보통사람들처럼 취업을 하게한다. 인크레더블맨은 보험회사 상담원이 된다. 초능력을 숨기고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가끔 찾아오는 보험 지급을 요청하는 손님들에게 몰래 보험 회사의 방침을 어기고 보험금을 타갈 수 있는 조언을 해주는 것 정도만이 그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초능력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 가끔 몰래 초능력 친구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기도 하지만 발각되지 않을까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인크레더블맨은 다른 초능력자와 결혼하여 큰 딸과 아들이 있고 다들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초능력을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큰 짐이 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 말이다.

이렇게 고단하게 살아가던 인크레더블맨이 어느날은 결국 상사를 다치게 하고 해고를 당하게 된다. 인크레더블맨을 집요하게 쫓고 있던 조직이 인크레더블맨을 속여 가공할 힘을 가진 로봇을 훈련하는데 이용한다. 뒤늦게 이를 알지만 이미 로봇은 학습기능을 통해 왠만한 초능력자들조차 상대가 되지 못할 정도로 강해진다. 이를 배후 조종한 이는 신드롬맨이다. 초능력은 없지만 머리는 좋아서 무기를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번 이자는 어렸을 때 인크레더블맨을 동경하나 초능력도 없고 어리다는 이유로 인크레더블맨에게 끼어들지 말라는 말을 들었던 자다. 로봇이 완성되고 도심으로 이 로봇을 보내기 전에 붙잡힌 인크레더블맨 앞에서 신드롬맨은 말한다. 자신이 이 로봇을 조정할 수 있으니 로봇이 혼란을 일으키면 자신이 나타나 새로운 영웅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기술을 팔아서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게 하겠다고. 돌아서면서 혼잣말로 덧붙이기를 그리고 누구도 영웅이 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그 뒤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인크레더블맨, 부인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초능력을 이용해서 로봇과 신드롬맨을 이기고 시민들은 다시 초능력자들을 영웅으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다.

영화는 인크레더블맨 가족에게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왠지 껄꺼름한 기분이 남았다. 초능력자로 표현되는 국가의 능력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신드롬맨으로 대변되는 시장과 기술이 가져온 위기 덕분에 다시 인정 받는다는 것인데, 현실은 이와는 반대이지 않는가 싶다. 시장과 기술의 위기보다는 기회와 혜택이 훨씬 강조되고 이는 국가나 공동체의 능력에 대한 불신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나 자신도 시장이 맘에 들지 않다고 해서 국가에 대해서 신뢰하는가? 우리 사회의 경우 전체주의적 국가의 유산 속에서 국가는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건설되고 유지되는 공동 가치의 반영물이 아니라 권력자와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기능하기 일수였고, 좋게 생각해도 경제 성장과 같이 공동체 기능의 극히 일부분이 움직이도록 하는 기능에 제한적이었지 않은가 싶다. 이러한 사회적 감정이 존재하고 역사적 경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을 모으고 공동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그래도, 출발은 공통 분모를 만들어가기 위해 소통하는 일부터 일 것이다. 만화 덕분에 다시 블로그를 써야할 이유를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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