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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PMP, 드라마와 영화

1.

 

활동을 한다고 보기 어려운 시간.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을 학원에서 보내는 요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PMP를 샀다.

 

돈을 벌고 있으면 마음이 편할 때가 있다. 하지만 역시 돈벌이는 새로운 영감을 주지 않는다.

 

가끔씩 블로그에 뭘 쓰려고 해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 하나 마나한 소리들.

 

그러다 얼마 전 친구를 만났는데 요즘은 왜 글을 안 쓰냐고 하더라. 내가 쓴 서평이랑 잡글이

 

재밌다고 계속 글을 쓰라는 친구의 말에 간만에 글을 쓴다.

 

 

2.

 

PMP를 끼고 사니까 동생이 안 놀아준다고 투덜댄다. 나더러 오따꾸란다. 그러면서 내심

 

지겨워지면  PMP 자기한테 넘기란다.

 

습관적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다운받고, 보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쉽게 감동받고, 쉽게 울고, 쉽게 잊는다.

 

아쉬운 마음에 캡쳐 기능을 자주 사용한다. 스냅샷을 남겨서 글을 쓸 때 써먹으려고 계획했다.

 

 

3.

 

처음 스냅샷을 남긴 드라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 전에 <다모>도 봤는데 스냅샷을 안남겼다. 사진을 남기기 위해 다시 다운받아 보자니 귀찮다.

 

기억에 남는 대사가 많은데 아쉽지만....한 번 지겨워지면 대책없다.

 

그래서 첫 번째 스냅샷은 '미사'가 되었다.

('다모'나 '미사'는 모두 예전 수감 중일 때 떴던 드라마라 못봤던 것들)

 

 

임수정을 좋아한다. 예전부터 조숙해보였고 나이드니 성장이 멈춰버린 듯한 이미지가 좋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가수 '비'가 가짜로 수술을 해주는 척 하려고 임수정 등에

 

싸인펜으로 수술 부위를 그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보았던 앙상하고 깡마른 등.

 

그 등이 너무 좋았고, 애처로웠다. 그 등은 이내 저 눈빛을 연상시킨다. 동그랗고 크고

 

그러면서도 조금 피곤해보이는 4차원 세계의 눈빛.

 

그래서 미사는 참 보기 힘들었다. 신파인줄 알아도, 온갖 삼류 드라마 소재거리를 다 가져와도

 

슬픈 건 슬픈거다. 인상깊은 드라마는 늘 인상깊은 눈빛으로부터 나온다.

 

다친 짐승의 눈을 하고 있는 소지섭. 건드리면 부서질 듯 해맑고 복잡한 임수정의 눈.

 

프리즌 브레이크를 볼 때 한 동안 석호필의 눈빛을 닮아가더니 '미사'를 볼 때는 한 동안

 

소지섭의 눈빛을 닮아가는 듯. 소지섭 몸 너무 좋더라. 부담스럽게스리....

 

마지막에 임수정이 죽지 말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무지 슬펐다.

 

그런데 요즘 드라마는 너무 과하게 럭셔리한 냄새가 난다.

 

스토리는 달동네고 주인공은 찢어지게 가난한데 뉴욕, 파리, 도쿄...하다 못해 압구정동 냄새가 

 

나는 건 무슨 넌센스인고...요즘 드라마 죄 그렇다. <커피 프린스>에 윤은혜는 또 뭐냐.

 

엄마가 인형 눈알 붙이기를 하는데 2층집에 셋이 산다. 아무리 전세라도 이게 무슨 개씨부리는

 

설정이냐? 서른 될까말까한 잡것들이 혼자 살면서 죄 2층 집에 정원을 갖고 있지 않나....

 

이선균네 집은 청와대 뒷동네 엄청난 부자 동네다. 이게 이쁜 그림도 좋지만 좀 너무 한다 싶다.

 

이런 드라마 많이 보고 자란 애들의 환타지가 겁난다.

 

4.

 

그 다음 본 드라마는 <고맙습니다>

 

 

<화산고>하나로 영원히 골수마초 개썩소 이미지를 간직할 것 같았던 장혁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세월의 무게가 더해지면 이렇게 멋있게 변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공효진은 늘 호감이 가는 배우다. <네 멋대로 해라> 때 워낙 좋은 인상이 남기도 했지만

 

늘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배우다. <가족의 탄생>에서도 그랬고...

 

차가운 듯 정이 많고 보면 볼수록 이쁘게 생겼다. 웃는 모습이....

 

 

고맙습니다는 말 참 식상하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런 식상한 말들이 가슴 깊이 와 닿을 때가 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라는 고리타분한 말씀이 정말 간절히 와 닿을 때가 있다.

 

드라마를 볼 때 만큼은 참 주인공들처럼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군. 생각했다.

 

장혁 혀가 좀 짧은 게....

 

과하게 로맨스와 삼각관계로 흐르지 않았던, 마무리가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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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이고 날카로운 여름

산업혁명 시대 런던이 이럴까 생각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접한 런던은 일 년 내내 구름이 끼어있는 우중충한 이미지다. 여기에 산업혁명의 어두운 기운이 겹쳐진다. 생각만 해도 뇌에 스모그가 끼는 기분이다. 21세기 디스토피아. 산업혁명 시대 런던을 오늘 서울에서 만나는 느낌.

연일 예고 없이 내리는 비와 한 번도 밝은 얼굴을 내밀지 않는 하늘과 밤마다 계속되는 열대야로 나는 여름 내내 악몽 속에서 헤맸다. 꿈을 꾸듯 몽롱한 일상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헤맸다. 늘 꿈을 꿨다. 일어나면 지워지는 꿈. 

종일 공사장에서 들리는 굉음으로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쇠파이프를 자르는 전기톱 소리. 아침 6시부터 공사가 시작되면 그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고 조건반사적으로 입에서 욕부터 튀어나온다. 집 밖으로 연결된 구명이란 구멍은 죄 막아놔도 그 소리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엄마의 날카로운 비명소리, 고함소리, 울부짖음. 그렇게 새벽에도 몇 번 씩 깨기를 반복하면서 주기성을 잃고 때때로 자고 때때로 깼다.

금속 조각처럼 날카롭고 예민해진 감각은 조금만 건드려도 엄청난 크기로 폭발할 것 같았다. 누군가를 만나는게 미안하고, 두렵고, 불안했다. 내 모든 감정이 쏟아져 버릴 거 같아서.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마음으로 상대를 할퀼 거 같아서.

내 집은 고대 후문 쪽에 위치한다.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와 인접해 있어 방과 후 자주 놀던 곳이었다. 그때 여기는 공터가 많았다. 지금은 하숙생들을 받으려고 빌라가 줄지어 서 있다. 아파트도 꽤 많이 들어 서 있다. 집값은 오르고 동네는 사시사철 공사 중이다. 지겹다. 지겹다. 나는 여름 내내 이 말만 내뱉었다. 시끄러운 굉음을 법적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집을 짓는 것은 합법이다. 소음은 견뎌야 한다.

그래서 그랬나? 아마도 그래서 그랬다. 여름이어서. 파란 하늘이 안 보여서. 밤마다 너무 더워서.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서. 공사장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짜증이 나서. 엄마의 고통과 변덕을 이겨낼 길이 없어서.

밤에 누나 동생이랑 술을 먹는데 조금 신이 났다. 그래서 시끄러웠는지 주인집에서 올라왔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정색을 하면서 왜 이렇게 시끄럽냐고 화를 낸다. 공사 중인 건물은 주인집 소유다. 그냥 나오는 대로 질러버렸다. ‘공사장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는 안 들리세요?’

주인집은 2층, 우리 집은 3층이다. 아래층에 울린다고 옥상에 올라가 마늘을 빻는 아빠를 보면 화가 난다. 어차피 또 계약기간이 끝나면 올라간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이사 가야 할 집. 역시나. 며칠 있다 방을 빼달라고 말하는 집주인. 또 다시 이사철.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그저 멍하다.

 

여름 내내 내 일상에 평화는 없었다. 반성은 하지 않는다.

다만 무엇이 이 악순환을 끝내줄지 생각한다. 현명해져야 한다.

현명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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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모메식당

우연히 지인과 함께 종로 스폰지 하우스에서 <까모메 식당>이란 영화를 봤다. 일본 독립영화 페스티벌이 진행 중인데 진정한 의미의 '독립'영화는 아니고 그냥 일본영화 페스티벌이다. 오다기로 죠 스페셜도 있던데 관심 있는 사람들은 눈여겨 보면 좋을 듯.

 

 

 

1. 까모메(갈매기) 식당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여성(굳이 여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영화가 여성영화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사치에는 핀란드 헬싱키 길모퉁이에 식당을 연다. 식당은 썰렁하다. 한 달 째 윤이 나게 접시만 닦고 있다. 어느 날 일본 문화에 흠뻑젖은 핀란드 청년 톤미가 찾아 온다. 첫손님에게 공짜 커피를 제공하는 사치에. 매일 같이 공짜 커피만 마시는 톤미는 사치에에게 '독수리 오형제' 주제가 가사를 물어본다. 서점에서 우연히 일본인 여성 미도리를 발견한 사치에는 독수리 오형제 가사를 알려준 게 인연이 되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미도리는 사치에 집에 함께 머물면서 식당일까지 거들게 된다. (손님은 여전히 톤미 혼자) 여기에 정체불명의 여성 마사코까지 식당일에 가세하게 되는데... 줄거리는 이쯤. 더 얘기하면 완전 스포일러 될 거 같아.

 

2. 키워드1 - 식탁

시작부터 감잡았지만 이 영화는 여성영화다. 혼자 사는 여성들,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꾸역 꾸역 까모메 식당으로 모여든다. 여기에 핀란드 여성까지 가세하며 국적을 초월한 여성들의 소통과 상처치유가 시작된다. 그 방식은 식탁을 둘러싼 대화와 위로. 함께 만들고 먹고 수다를 떠는 식탁공동체는 외로운 인생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여전히 언제 떠날지 알 수 없는 사람들.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다. 진지하게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말하지도 않는다. '각자 갈 길이 있다'고, '언제 떠날 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사치에는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나는데 익숙해 보인다. 식탁공동체를 지향하는 소설이 몇 편이 생각났는데 정확한 제목을 모르겠다.

 

3. 키워드2 - 여유

일본 음식에 익숙치 않은 핀란드에서 까모메 식당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런데도 식당 주인 사치에는 전혀 조급해 하지 않는다.(물려받은 돈이 많나보다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얘기는 하나도 안나온다. 흑흑 부러버T.T;;) 전쟁을 경험한 적 없는 복지천국 북유럽 국가들. 한국인들이 지내기에는 따분할 정도로 사람들은 조용하고 여유가 흘러 넘친다. 사치에는 그런 곳을 찾아서 산다. 어떤 연유로 일본을 떠나온 여성들은 모두 조급한 삶,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는 번잡한 삶으로부터 탈출하려고 무작정 핀란드를 찾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저런 핑계로 식당을 떠나지 않고 모여든다.

핀란드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여유가 있냐고 묻는 마사코에게 톤미가 답한다. '숲'

 

3. 키워드 3 - 여성

영화에는 상처받은 남자들도 나온다. 그러나 역시 영화의 중심은 여성이다. 남편이 말없이 떠나버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알콜중독 핀란드 여성을 치유하는 과정은 여성의 소통과 치유 능력을 잘 보여준다. 오랜 간병 생활 끝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은 중년 여성 마사코. 그녀는 핀란드 여성의 말을 전혀 알아 듣지 못하지만 느낌으로 다 알아듣는다. 열심히 들어주며 호응해주고 마음을 감싸준다.

 

 

간만에 가슴 따뜻한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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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6] 유럽인의 생활 2

[여행기록4] 유럽인의 생활 2

 

교통편

 

사람들은 여행에서 특별한 걸 기대한다. 화려한 축제나 이벤트 같은 것들.

유명한 관광명소나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

다 좋다. 그리고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런 곳을 외면할 수는 없다.

이왕 온 거 볼 건 다 봐야한다. 파리에 가서 에펠탑 안 가볼 수 없고(그냥 크기만 하다)

벨기에가서 수제 초콜릿 안 먹어볼 수 없다.

그렇지만 역시 사람들의 일상을 보면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람들의 일상에는 삶의 철학이 있다.

무엇 하나 고민없이 이루어진 삶의 양식은 없다.

그래서 마냥 신기하고 재밌다.

 

>>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가장 많은 것을 느낀다. 독일에서 본 위로 매달린 전철(??)

 

한국의 일상과 너무나도 달라 생각할 게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교통수단을 대하는 태도다. 어릴  때 할리우드 영화를 너무 많이

보고 커서 그런지 나는 도시하면 뉴욕처럼 번화하고

엄청 키 큰 빌딩이 즐비하며 최소 왕복 8차선을 가득 매운 자동차에서

패스트 푸드로 끼니를 때우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 서울은 아직 모자라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유럽에는 차가 그리 많지 않다.

얼마 전 수리논술 시간에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도표를

보고 알게 되었는데 한국은 도로 길이에 비해 면적이 굉장히 넓다.

그래서 길이만 두고 보면 도로가 부족한 듯 보이는데 실제로는

엄청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평균 자동차 이용시간이

왠만한 선진국을 앞찔러 심지어 동네 앞 슈퍼도 차를 몰고 간다는

미국을 앞찔렀다.

물론 단순 비교는 여러가지 오해를 낳는다.

일단 한국인들은 기본 직장이나 학교가 너무 멀다.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지나치게 비대하다. 암스테르담은 내가 살고 있는 성북구보다

더 작아보였고 파리는 구 서너개 정도 합쳐 놓은 크기다.

반면 서울은 끝에서 끝까지 차로도 2시간이 걸리는 매머드 도시다.

게다가 살인적인 교통 체증. 후~~ 파리에서 자전거로 이동한다니

그쪽 사람들이 너무 위험하다고 걱정했으나...서울에 단련된 우리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그렇다.

세상이 우리를 강하고 독하게 만든다. 나날이.

유럽에서는 자전거에만 의존해도 충분한 도시구조가 갖춰져 있다.

동네에서 장보고 동네에서 약속 잡고. 그런데 또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야 도시 구조도 바뀔 거 같다. 아무튼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조금씩 바꼈으면 좋겠다.

 

 

 

일단 도시를 벗어나면 왠만한 곳은 전부 차도가 왕복 2차선 정도고

자전거 도로가 나란히 나 있다. 그리고 다양한 교통수단을 접할 수 있었다.

선로를 따라 달리는 버스 트램도 봤고 독일에서는 공중에 매달려 가는

전철도 봤다. (위 사진) 자전거 칸이 따로 마련된 기차. 다리를 최대한 적게

만들기 위해 라인강을 수시로 넘나드는 배들.

벨기에에서는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가 90도 회전해서 공간을 열어주는 모습도 봤다.

 

 

 

>> 배가 지나가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다리가 90도 회전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멈춰 서 있는 자동차 앞으로 다리가 끊어진 듯 보인다.

 

 

서유럽 지역은 국경 개념이 별로 없어서 국경을 넘나드는 기차가 많았는데

자전거 여행  때문에 기차를 많이 타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나중에 여행가면

기차로만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기차편만 해도 다양한 상품이 있어

조금 헷갈리긴 하겠지만.  

 

>>기차마다 자전거 전용칸이 마련되어 있다.

가끔은 없는 기차도 있어서 미리 알아봐야 한다. 요금 체계도 제각각.

자전거에 별도의 비용이 부가되기도 한다. 그래도 자전거가 많아지니 장소가 무척 비좁다.

 

 

서울시장 자리는 대선으로 가는 지름길처럼 인식되는 요즘, 교통/주거/교육

셋 중 하나만  잡아도 대박난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서울은 사람이 살기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도시같다. 삶의 방식이란 여러 가지 환경에 대처하며

형성되는 것이니 우열을 가리는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지만 여러 가지

즐거운 상상은 좀 해보면 좋을 듯하다.  무엇보다 서울에도 자전거 도로가

늘어서 안전하게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참 좋겠다.

 

 



오늘도 계속되는 사진 감상. 아무 이유 없어~~

 

>> 자전거 종류 오지게 많다. 짐받이도 다양해서 애들 앞뒤로 둘 태우고 다니는 자전거도

여럿 봤다. 거의 마차 수준의 짐 칸을 연결한 자전거도 있다. 

 

 

>> 동네마다 성당, 교회가 정말 많다. 급격한 삶의 단절이 없었던 만큼, 유서 깊은 건물도

참 많이 남아 있다.

 

>>네덜란드의 상징 풍차. 주요 도시만 돌아서 그런지 별로 못봤다. 구름이 꼭 합성 사진같다. Art!!~

 

 

>> 운하의 도시 암스테르담. 곳곳에 자전거가 보인다.

 

 

>> 상점이었던가? 항구도시 델프스 하븐.

 

 

벨기에. 안트베르펜인가?? 브뤼헤?? 1년이 다 지나가니 기억이 가물가물

 

 

>> 분위기 만점 가로등. 배경으로 깔린 파란 하늘 참 이쁘다.

 

 

>> 파리에서 봤던 한식당. 중식/일식집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한식집은 드물다.

 

 

>> 루브르 박물관 입구에 있는 삼각 피라미드. 소설 다빈치 코드가 떠올랐다.

 

 

>> 신호등에 사람과 함께 자전거도 건너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 기차 안에서 식사 해결. 얼굴이 생생한 것을 보니 분명 여행 초반이다.

 

 

>> 독일 마인츠. 마을 한복판. 차도가 없고 보도블럭이 깔려 있다.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동심원 구조의 마을을 연상시킨다.

 

 

>> 라인강을 따라 달리다 아름다운 곳에서 잠시 휴식

 

 

>> 아침해가 떴습니다. 정신이 없다. 어리버리~~

 

 

>> 캠핑장에서 여유롭게 아침을 먹는 사람들. 독일 어느 캠핑장이었는데 텐트가 별로 없고

대부분 캠핑카를 사용한다. 캠핑장 분위기도 나라 마다 달랐는데 독일은 정말 조용했다.

 

 

>> 기어이 이 사진을 공개해야만 했을까? 고소공포증이 심한 오리. 표정이 ~~ 미안하다 오리야!!

 

 

>>하루 일과를 마치고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길. 가방 몰아주기에서 졌다.

 

 

>> 잠시 휴식중. 처음 보는 신기한 동물.

 

 

>> 쓰레기통을 뜀틀 삼아...뭐든 놀이기구가 된다.

 

 

>> 짜잔~~10점 만점

 

 

>> 또 논다. 따라하다가...

 

 

>>결국 이꼴났다. 잔인한 폭력의 현장... 저 가학의 웃음이 정녕 내 것이란 말인가...

오늘 공개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왜 이리 자꾸.... 겁난다.

 

 

>> 오늘 블로그질은 여기까지. 이제 자야할 시간...

 

 

>> 니들도 자란 말이야~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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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모임 후기

책읽기 모임 후기 (Written by nadong)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행사 장소나 행사 방식을 생각했을 때 가장 적절한 규모로 모임이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3시간 가까이 진행된 행사였는데 쉬는 시간도 필요없을 만큼 참가자 모두 진지했고 재미도 있었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던 자리였습니다.

 

우선 문승숙, 박노자 씨가 30분씩 돌아가면서 군사주의를 주제로 각자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

문승숙 씨는 주로 군사주의와 여성성을 주제로 이야기했습니다. 군대가 남성성의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 남성성이라는 것은  여성성의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에 결국 군대가 여성성의 형성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것이다는 주장.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KBS '신고합니다'란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습니다. 군대가 상징화시키는 여성의 이미지란 딱 두 종류, 즉 어머니와 창녀로 나뉜다는 것이죠. 성적으로 완전히 무성화된 어미니는 국가=가족=지켜야 할 대상이란 등식을 성립시킵니다. 어머니를 대할 때 군인은 의젓하고 늠름한 모습입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또 다른 여성의 역할을 상징하는 애인이 등장할 때는 극단적으로 성적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강조(실루엣 뒤에 숨어 등장하는 여자친구, 몸매를 강조하는 도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군대가 고정적인 여성성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박노자 씨는 주로 군대가 남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영향력이 모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 특히 계급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역사학자답게  엄청나게 풍부한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설명해서 사람들이 무척 즐거워했습니다.(박노자 씨 유머 감각이 탁월하다는 사실 처음 알았네요) 한국의 군대는 매우 특수한 위치에 놓여 있는데 일반적으로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군사적 역할이 일부 계층(주로 하층계급)에게 몰리는 모병제 같은 구조로 가는데 반해 한국은 형식상으로나마 국민개병제, 즉 군대에 관한 한 모두가 평등하다는 관념이 여전히 강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군사주의 척도를 단일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단적으로 미국은 군사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지만 군사주의가 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국민 전체의 의식이란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서구 자본주의에 비해 말할 수 없이 군사주의가 일상화된 나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60~70년대 군사독재의 산물로 오히려 군대가 자본의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힘의 역학 관계가 정상적인 자본주의 구조로 돌아왔지만 자본가 계급은 절대로 징병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서는 모두 우울. 어쨌거나 한국 군대도 이제 자본주의적 계급관계가 그대로 군대 질서에 투영되고 있으며 군대가 형성시키는 남성성이란 것도 계급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두 분이 서로 질문을 하나씩 주고 받았는데 비슷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는 탓인지 질의 응답 같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쉬는 시간 없이 곧바로 청중과의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다 적고 싶지만 여기서부터 필기를 포기했습니다. 사회자라 적절히 흐름을 잡아줄 필요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아무튼 시종일관 생각이 많았는데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개인적으로 고민했던 몇가지 주제를 요약해볼께요.

 

 

 

1.  한국식 자본주의가 시장질서를 강화하면서 미국식 자본주의처럼 기업정신, 창조성, 도전정신을 강조하면서 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 문화도 위계적인 구조에서 점차 팀제와 같은 수평적인 구조로 바뀌어 갈텐데 자본주의의 발전이 징병제에 어떤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없는가?
 
이에 대해 사람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 한국 자본의 구조상 미국, 중국, 일본, 유럽의 자본과 비교했을 때 유일한 강점은 잘 숙련되고 순종적이며 노동중독이 심한  전문인력들이다. 한국 자본은 절대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군 내부 복지 문제를 중심으로 외형상 변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 애
쓰겠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바뀌지 않을 것.

 

 

2. 한미관계가 변화할 여지는 없는지?? 이 과정에서 한국 군대 역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할 수 없는지??

 

국방개혁안 비전 2030을 봤을 때 노무현은 모병제로 가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 초기에 동북아 균형자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국 굴복하고 급격히 한미동맹으로 우선회했다. 한국 자본주의 구조상 죽었다 깨어나도 한국의 보수파가 대미종속적인 관계를 끝내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도 잠재적인 적은 중국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할 경우 엄청난 수의 한국 군인은 총알받이로 매우 유용할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국이 현재와 같은 징병제를 유지하는 것이 크게 나쁠 것이 없다.

 

 

 

3. '그나마 군입대는 계급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부여된 임무'라는 평등의 신화가 반군사주의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여성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체복무제 입법운동에 대해 이런 저런 한계가 지적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어쨌든 국방의 의무는 모두가 동등하게 져야 한다는 이 원칙 때문에 대체복무제도가 오히려 여성징병제 논의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쉽게 말해 군제도도 다양해졌으니 어떤 식으로든 여성도 의무를 수행하라는 논리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모병제를 주장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참가자 중 한 명은 그래서 모병제냐, 대체복무제가 존재하는 징병제냐가 아니라 절대적인 군인수를 줄여나가는 '감군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눈길을 끌었다.
지금 노무현이 주장하는 사회복무제(혼혈인, 장애인 등등도 군복무 가능)는  오히려 군의무를 통해 시민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관점을 강화시키고 있다. 대체복무제도 주장을 역이용해 군사주의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런 왜곡된 평등주의가 끊임없이 여성운동에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여성운동 진영에서는 군대 관련 담론에서는 적극적인 주장을 펴지 못하고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

 

 

 

4. 그렇다면 평화운동이 무엇을 해야할까?

 

냉정한 현실인식 때문일까. 사회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것 참, 한국사회의 현실이 만만치 않군. 그래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역학을 고려해볼 때 어떤 대안을 내기가 쉽지 않고 다들 조심스럽다.
분명한 것은 정치인들에게 맡겨서는 발전주의-군사주의의 양대 축으로 설정된 한국사회의 진로를 조금도 바꿀 수 없을 것이란 점이다. 노무현이 그 한계를 절실히 보여줬다. 결국 피플 파워만이 조금이라도 한국사회의 진로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또 하나는 일상적인 군사주의를 해체해나가는 운동이 전부 평화운동이란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강력한 군사주의를 원하고, 그것이 일상 속에 뿌리내려 가족, 직장, 학교 등 모든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관계 역시 군대식 위계질서에 기초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거부하는 모든 운동이 다 평화운동이다. 일상적인 위계질서를 거부하고 순응을 요구하는 관성에 저항하는 것이 다 평화운동이다. 청소년 인권찾기, 국기경례 거부, 대안 생리대, 자전거 타기, 채식... 이런 게 모두 평화운동이다. 이 운동이 확산되어 '순응형 인간'에서 창조적이고 평화적인 소통형 인간으로 거듭나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게 가장 강력한 평화운동이다. 아, 참 할 게 많구나!!


이상 책읽기 모임 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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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 교육 2년차

1.

 

재작년 9월 말에 가석방으로 출소하고 난 직후에 집으로 민방위 교육 통지서가 날라왔다.

이런 XX같은 경우가~~  가석방 기간이라고 혼자 쫄면서 아무 것도 못하고 지내야 되는 처지에 민방위 통지서는 날라 오는거다.

엄마, 아빠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에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언능 갔다 오라하는데..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동사무소에 연락을 했다.

 

나: "전 병역거부 해서 감옥 갔다 왔느데 지금 가석방 기간이라고 다른 건 다 안된다고 하는데 민방위 훈련은 받아야 하나요?'

 

동사무소 직원: "국가가 원래 권리는 잘 보장 안해도 의무는 꼬박꼬박 부여 합니다."

 

나:(속으로) 뭐야 이 새끼. 국가 공무원 맞어?? 너무 솔직하잖아. 은근 냉소적이삼....(실제 말로) 아니 그럼 가석방 안돼서 감옥 있음 그래도 민방위 통지서가 날라 오나요?? 감옥에 있는 사람 보고 훈련 오라는 거네요.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요??

 

동사무소 직원: 아무튼 지금 나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나오세요.

 

나: 뭐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다 있데. 전 안 갑니다. 뭐 잡아 갈라면 잡아가고 맘대로 하세요.

 

동사무소 직원:  뭐 꼭 나오셔야 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알아보겠습니다.

 

 

2.

 

그리고 나는 출소해서 대학에 복학했다. 뭐 꾸역 꾸역 민방위 통지서가 날라왔다. 병역거부자는 예비군까지 그냥 처리가 된다는 건 알았지만 민방위는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 동원 시스템이 이렇게까지 짜증스런운지 아직도 다 몰랐다니!! 암튼 난 또 국가를 느끼고, 생각은 복잡해지고 아무튼 다 때려치고 학생이었기 때문에 못간다고 했다. 가기도 싫었다. 그런데 연말에 통장이 한 번 부르더라.

 

통장: '민방위 훈련 왜 안가세요??'

나: '아, 저 학생인데요...지금 복학해서 학교 다니고 있습니다.'

통장: '학생일 때는 훈련에 참석 안해도 됩니다. 학생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서류 하나 떼서 좀 주시죠?'

나: '아 네...조만간 떼서 드리죠.'

 

그리고 역시 안 드/렸/다/. 근데 별 탈은 없었다. 뭐 어쩔 것이여...?? 나는 참말 학생이었는디...

 

 

3. 

 

민방위 2년차 교육 통지서가 날라왔다.  엄마, 아빠는 하루가 멀다하고 물어본다. 민방위 교육 언제 가냐고? 알아봤더니 훈련 안가면 과태료 나오더라. 대략 10만원쯤. 흐미... 걍 10만원 주고 말기엔 조금 비싸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 다녀왔다. (흐미...이게 본론인디....)

 

일단 시작을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하더라. 사람들은 쭈뼛쭈뼛 하면서도 결국 다 일어서고 결국 다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데...나는 끝까지 가만 있었다. 요즘 한참 국기에 대한 경례 문제가 뉴스가 되기도 했지만 서도 .... 애초에 국가를 사랑하는 맘이 없고...국가주의는 세뇌된 거라고 맨날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막상 사람들이 이빠이 모인 자리에서 그걸 안하려니... 신념이고 나발이고 다른 사람들 눈치가 살짝 보였는데...암튼 끝까지 혼자 앉아 있었는데...끝내 뭐라는 사람은 없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끝인 줄 알았더니 애국가 부르고, 그것도 모라자 민방위대의 임무를 낭독하는데 살짝 웃음이 나올라 하다가 괜히 긴장하는 내 모습에 조금 웃기기도 했다.

 

교육이 시작되었다. 4시간 교육 일정인데 처음 가니까 공무원이 나와서 한 20분 이상 설명하다가 영상물 두 개를 틀어준다. 나는 아주 어릴 적에 봤던 대한뉴스 뭐 이런 거 생각했는데... 그건 좀 오바였고 그래도 한국은 미디어 산업은 무지 발달해서 그런 지 영상물 나름대로 편집도 잘 했고 음악도 거의 영화음악 수준으로 '둥둥 두두둥''거렸다. 그리고 변화된 동북아 정세 이런 것도 참 많이 나왔다. 보는 내내 어이없게도 '어 저거 정세분석은 운동권이랑 비슷하네' 뭐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하면서...주위를 두리번 거리는데 정말 자는 사람 많았고 근데 나는 왜 잠이 안올까 생각해보니...그새 또 고걸 분석하고 있는 내 모습에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근데 시시 때때로 들리는 교육 담당 공무원의 그 말 '여러분도 군대 갔다 와서 알겠지만...'이 나올 때마다 이거 뭐 기분이 뭐라해야 할지 참 묘한 상황이었다.

아무튼 영상물은 완전 뒤죽박죽이었다. 평화도 좋고 화해도 좋은데 전쟁의 위협은 가시지 않았고 국토방위는 중요한데 전쟁은 절대 안되고....뭐 이래저래 심란한 내용이 많이 나오더라. 그 와중에도 내내 생각이 복잡했다. 이 사람들은 다들 소극적이다. 대부분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애를 쓸만큼 무미건조하고 무의미하고 지겨운 시간이다. 그런데 아무튼 다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적어도 그런 척 하고) 선서를 한다.

 

이런 식으로 4시간이 흘러갔다. 마냥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나름 복잡한 하루였다. 국가의 존재가, 내 옆으로 성큼 다가와 말을 건다. 너 한국인이잖아. 국가안보를 위해 너는 최소한의 의무를 다해야 해. 좋건 싫건 국가는 최소한의 버팀목이야. 이 마저 없으면 넌 어떻게 살래??

 

훈련장을 나오는데 잠시 다른 세상을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 몇 시간에 왜 그렇게 지겹고 짜증스러운지. 나는 잠시 내가 평균적인 세상을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게 마냥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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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문승숙 씨와 함께하는 책읽기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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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난장에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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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일상

 

 

1.

새로 산 MP3는 라디오 기능이 더해졌다.

기능에 맞춰, 라디오 안 들으면 새로 산 기계가 아까우니까,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이젠 라디오 중독이 되어 사무실에 미니까지 깔아놓고 듣는다.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 아름답지만 지나가면 사라지는 어쩔 수 없는 것의 상징으로 여기던

라디오를 들으며, 라디오의 엄청난 인기를 실감하는 현실은 더 재밌다. 기분 괜찮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조작까지 할 정도로 인기 있는 라디오.

인터넷 강국,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100%를 향해 달려가는 한국 사회의 또 다른 21세기 풍경.

사람들은 여전히 대화를 원하고, 그보다는 수다를 원하나 보다.

처음 대학 입학해서 대학생이라면 영화 보고 한마디 정도는 떠들 줄 알아야 교양인이라고

생각했던 당시에, 인기 절정의 씨네21을 1년간 정기구독 했었다. 그때 씨네21에는

'디지털화 시대에 과연 극장은 살아남을 것인가' 따위의 염려 섞인 글이 자주 등장했었다.

홈씨어터고 나발이고 극장은 잘만 번창해서 이제는 천만 관객 시대다.

감성마저 디지털화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인가?

 

다 알 거 같은데, 그래서 세상은 다 예상대로 흘러갈 거 같은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 세상, 참 모를일이다. 사람 속처럼.

 

 

2.

2004년 김선일 씨 추모 집회 참가 건으로 2007년에 소환장이 날아왔다.

불법 도로 점거 혐의라는데 내 기억엔 집회 참가한 적은 여러 번 있지만 몸싸움을 하거나

행진 코스 밖으로 나갔던 기억은 없다. 기억에 확신이 있었다. 거부하고 싶었다.

그냥 안나가버리면 그만이지. 수배 날리고 잡아가겠다고 협박하면 그러라고 그러고 나중에

국가 상대로 소송을 해버리겠다고 생각도 했다. 그런데 부모님이 너무 불안해 하신다. 죄를

지은 적이 없어도 국가가 '너 죄 지었지?'라고 협박하면 주눅들고 겁먹는 게 한국 사람들이다.

 

3번을 무시한 끝에 결국 출석했다.

대답은 최대한 무성의하게.

 

"그날 집회에 참가했었나요?"

"2년 전 그날에 뭐했는지 당신은 기억해요?"

(기억한다고 대답하는 형사)

푸훗, 잠시 썩소를 날리며 비웃었더니 형사가 급흥분.

"전 분명 불리한 증언은 안 해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얘기하기 싫음 안하셔도 되요."

"아, 저 지금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는 거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푸훗, 또 비웃음.

"가입하신 단체나 소속이 있습니까?"

"글쎄요..대답하기가 귀찮네요."

...........

이런 식으로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다. 형사는 상대를 무조건 범죄인 취급한다.

일단 기를 꺾어놓고 보자는 식이다. 질문은 온통 유도 심문 뿐이고, 삐딱한 답을 하면

그대로 받아 워드를 친다. 담당검사에게 '이 사람 상태 안좋다'고 보여주려는 뻔한

수작이다. 내가 묻는다.

"그런데 뭐 내가 거기 있었다는 증거 좀 보여주시죠."

"아 그러잖아도 지금 사진 보여드리려 했습니다."

 

 경찰이 내세우는 유일한 증거는 사진 판독.

사진을 보는 순간. 거의 박장대소를 할 뻔했다. 비슷하게는 생겼는데 그 사진은 내가 아니었다.

사실 웃을 일이 아니다. 분노로 치를 떨어야 하는데 안절부절하는 형사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모두 모여든다.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 비교해보며 이리 저리 분석하느라

난리가 났다. 그러면서 맞다 틀리다 비슷하다 지들끼리 신났다.

 

결국 사진을 국과수로 보내야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취조는 중단되었다.

그리고 형사는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느라 조낸 비/굴/해/진/다.

"본인 사진을 본인이 제일 잘 알지. 본인이 아니라는데 확실하겠지."

"아 저희는 그냥 확인만 할 뿐이지 본인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지면 괴롭힐 이유가 없습니다."

"어쩐지 첫인상이 좀 다르시더라. 얼굴을 보니 이렇게 선동할 사람이 아닌데 사진 속 인물은

굉장히 인상이 사납고 강해 보여. 나도 좀 이상하다 했지."

"아까 대답하신 거 중에서 '글쎄요. 대답하기가 귀찮네요.' 이 부분은 '없습니다'.로 바꿉시다."

 

자기가 알아서 지금까지 주고 받은 이야기들을 죄다 수정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짜증과 분노와 통쾌함이 뒤섞여서 표정 관리가 안된다. 계속 비웃음만...

나오면서 생각했다.

 

나를 증거하는 이 얼굴이란, 타인에게는 유일한 '나'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닐까? 묘한 느낌이었다. 쌍둥이 중 한 명을 사랑했는데

어느 날 나머지 한 명을 연인으로 착각했다. 그런데 상대가 그 사실을 숨긴다.

그럼 난 영원히 바뀐 사람을 사랑할 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상상이지만, 오늘 그런

느낌이었다. 진상과 허상, 현실과 Picture의 경계가 모호한.

 

 

3.

집 안을 나올 때마다 초등학교 앞을 지난다.

할아버지가 된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턱걸이 시범을 보이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봄바람에 실려 그 풍경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어느 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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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quot;예비군 제도, 작별을 이야기할 때&quot;

[프레시안]"예비군 제도, 작별을 이야기할 때"

 

  국방부는 지난 11일 현행 예비군 제도 개혁의 밑그림을 드러냈다. 현재 3800여 개인 예비군 중대의 수를 2020년까지 2200여 개로 줄이는 대신, 훈련의 질을 높이고 관리인력을 정예화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개혁 2020'에 따른 예비전력 정예화 방안의 일환이다.

 

  이런 밑그림을 발표하면서 국방부 관계자는 "예비군 규모를 줄이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의 예비군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방안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인구 감소로 인한 병력 감소, 예비군 조직의 비대화에 따른 사회적 낭비 등이 이런 계획의 배경이다. 결국 군사적, 경제적 효율을 높이는 게 이번 개혁 조치의 목적인 셈이다. 그리고 최근 정부가 내놓은 '비전2030-인적자원 활용전략'에 담긴 병역 제도 역시 비슷한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조치에 대해 안타까운 시선을 던지는 이들이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국방개혁'은 다른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대가 차지하는 사회적 위상을 그대로 둔 채, 단지 군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진정한 국방개혁'은 군대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인 남성의 상당수에게 군 복무 경험을 안겨 주는 징병제로 인해 사회 곳곳에 스며든 군사문화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병영사회의 특징을 상당히 강하게 띠고 있다고 지적한다. 강제적인 군 복무 경험, 그리고 전역 이후에도 군대에서의 경험을 계속 상기하게 만드는 문화가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군대 경험을 계속 되새김질하게하는 장치 중 하나가 '예비군 제도'다. 실제로 많은 성인 남성들이 "예비군복을 입는 순간, 군 복무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또 훈련 조교들이 예비군들에게 '선배님'이라며 존대하는 예비군 훈련장의 문화 역시 병영에서 경험한 서열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예비군 제도의 진정한 개혁은 '예비군 폐지'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회적 자원 투입에 비해 전력(戰力) 향상에 기여하는 바가 적다"는 이유로 '예비군 폐지'를 요구해 온 기존 주장과 다른 맥락에 있는 것이다.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는 나동혁 씨도 병영사회의 문제점에 공감하면서 예비군 폐지를 주장해 온 이들 중 한 사람이다. 11일 국방부가 내놓은 예비군 제도 개편안을 접한 나 씨가 예비군 제도와 병영사회에 대한 평소 생각을 담은 글을 기고했다. 다음은 나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군복무기간 단축에서 예비군 제도 개혁까지

 

  참여정부가 국방관련 개혁안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지난해 나온 '국방개혁 2020'에 이어 지난 5일, '비전2030-인적자원 활용전략'을 발표됐다. 내용을 살펴보면 △2014년까지 현역병 복무기간 6개월 단축 △첨단전력 분야 등 숙련병 확보가 필요한 분야에 '유급지원병제' 도입 △전의경과 경비교도, 산업기능요원, 공익행정요원제도 폐지,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복무하는 '사회복무제' 도입 등이 주요 골자다.

 

  저출산·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2010년부터 노동력 부족이 현실화될 것이므로 다가올 인력부족 현상에 대처하려면 보유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참여정부가 전부터 강조해 오던 국방개혁의 큰 방향과 맥을 같이하는 내용이다.

 

  이런 취지에서 참여정부는 지난 11일 예비군 제도 개혁안을 추가로 제시했다. "'국방개혁 2020'에 의한 예비전력 정예화 계획에 따라 현재 300만 명인 예비군을 2020년까지 150여만 명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읍·면·동 단위로 편성되어 있는 예비군 중대를 인근 시·군·구 단위로 통폐합하고, 대신 상근복무 예비역 간부 2600명 정도를 선발해 질적 향상을 꾀한다는 내용이다.

 

  국방개혁안에 담긴 참여정부의 정신은 무엇인가

 

  한 동안 '노무현 리플달기'가 온라인 공간에서 유행했었다. 글의 내용과 상관없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따위의 리플을 다는 것이다. 참여정부를 향한 냉소적 시선은 끝이 없다. 물론 여기에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태도를 취하는 탓도 있다.

 

  얼핏 보면 참여정부가 내놓은 국방 개혁안들은 부족하나마 과거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느낌을 준다. 이를 테면 '군복무 기간 단축'은 군사주의가 다소 완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하는 것이다.

 

  또 사회복무제도는 신체등급이 낮은 대상자뿐만 아니라 본인이 희망할 경우 여성이나 혼혈인, 귀화자, 고아도 복무할 수 있도록 규정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동시에 인력 활용의 다양성을 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기에 예비군 제도 개혁안은 참여정부가 구질서 타파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모든 구태의연한 것과 이별을." 항상 그렇듯 참여정부의 개혁안은 이런 명분을 달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참여정부가 국방개혁안을 마련한 취지를 살펴보자. 결국 '효율', 그리고 '국력'이다. 정책을 둘러싼 세련된 포장을 한 꺼풀 벗기고 나면 구태의연한 국가주의, 권위주의적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결국 '경제성장 동력'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 국민의 예외 없는 병역의무 이행'이라는 군사 정권의 구호만 반복될 뿐이다.

 

  참여정부가 지향점으로 내건 '인권', '평화', '탈권위'의 정신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우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사회복무제 적용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됐다. 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모든 사람이 군복무를 동등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기묘한 명제로 귀착됐다.

 

  이런 점에서도 참여정부는 시민의 참여로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국가의 권위와 국가주의적 일체감에 기대는 방식으로 회귀했다. 결국 화려한 수사를 제외하고 나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던 셈이다.

 

  예비군 제도는 어떻게 탄생했나

 

  참여정부는 종종 우리 사회가 '냉전시대 사고방식'과 단절하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도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참여정부가 정말 '냉전시대 사고방식'을 극복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최근 모습을 드러낸 예비군 제도 개혁안에서도 이런 면모는 잘 드러난다. 이런 논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진행하려면 예비군 제도의 역사를 잠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접근하는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1.21 청와대 습격미수사건'이다. 곧 이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 발생했다.

 

  정국은 경색됐고, 박정희 정권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본격적인 병영국가 건설 작업에 나선 것이다. 같은해 2월 7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전선 개통식에서 250만 재향군인의 무장을 선언했다. 이어 같은해 3월 예비군 편성을 마무리했고, 4월 1일 향토예비군 창설식을 개최했다. 그리고 같은해 5월 29일, 향토예비군설치법을 개정·공포했다. (참고자료 : "의외로 '빡센' 예비군 훈련" <인권오름>)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향토예비군은 현재 300만 명이 넘는 엄청난 수에 이르게 됐다.

 

  극단적인 반공 분위기 속에서 창설된 예비군은 군사정권의 의도에 충실했다. 군대를 마치고 사회에 나온 이들을계속 훈육하는 반공교육의 장으로 기능한 것이다. 그리고 국가와 조직의 목적에 충실하게 따르는 집단성, 일상적인 폭력에 둔감한 태도를 교육하는 효과도 낳았다. 이런 사고방식을 군복무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체화시켜 온 사람들에게는 수시로 지난날을 상기시키는 복습 효과도 만만치 않다.

 

  많은 이들은 이런 훈육 효과를 애써 무시하거나 아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일년에 그저 2~3일쯤 고생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회사에 안 가니 좋다"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어쩐지 훈련장에 가면 불편해진다"거나, 혹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군대식으로 돌아가고 사람들을 볼 때도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며 답답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예비군 훈련에서는 해마다 적들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정신교육이 진행된다. 법적으로도 예비군은 군형법의 적용을 받는 군인 신분이다. 언제든 국가가 원하면 군인이 되어야만 하고 총을 들어야만 한다는 현실을 계속 깨닫게 한다.

 

  이런 것이 바로 병영국가의 작동원리다. 총은 들고 있지 않지만 군인 정신이 학교, 직장, 가정 등 삶의 곳곳에 스며들어 인간관계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 다양성에 대한 인정보다는 획일적 가치에 대한 복종과 충성을 중요시하고, 민주적 절차와 과정보다는 일의 효율과 결과의 총량만 중요시하는 분위기는 이런 사회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까칠한 사람'이나 '반조직적 인간' 취급을 받게 된다. 알아서 기는 문화가 대부분의 조직 분위기를 압도한다.

 

  요즘 드라마 '하얀거탑'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비슷하다. 너무나 한국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권력과 재화의 수단으로 여기는 병원의 현실. 그 드라마에 얼차려 같이 낯익은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외과 의사들이 옥상에 불려가 단체기합을 받고 몽둥이로 두드려 맞는 장면을 외국인들이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한국에서는 의사도 맞고, 개그맨도 맞고, 학생도 맞고, 아내와 아이들도 많이 맞는다. 군대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지만 병영국가 한국에서 살아 온 사람들은 누구보다 강력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돼 있다.

 

  집단적 상처의 재생산

 

  <전쟁과 인간,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라는 책이 있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비교문화정신의학을 전공한 저자는 전후 일본인의 집단적인 망각 상태를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집요하고 파고 들어간다.

 

  인터뷰 대상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징집돼 만주 지역에서 군 생활을 했던 일본인들이다. 난징대학살과 태평양전쟁은 물론 731부대(흔히 '마루타 부대'라고 불린다)의 존재까지, 군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들이 개인들의 증언 속에서 생생히 되살아난다. 난징대학살의 끔찍했던 밤, 일반인을 대상으로 삼는 생체실험, 초년병의 총검술 연습 대상이 되어 살해당한 무고한 농민….

 

  이 책은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살육에 무뎌져가는 과정, 그리고 전쟁 이후 가해의 역사를 망각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그 집단적인 망각과정이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의 부재로 나타나고, 결국 또 다시 일본사회가 오른쪽으로 기울어가는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죄의식이야말로 우리들(일본사회)의 귀중한 문화이며, 진정으로 상처를 입는 데 익숙해진 사람만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번에는 한국 사회 이야기를 해보자. <대한민국은 군대다>의 저자 권인숙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자리가 있었다. 권 선생님이 심리학 관련 강의를 맡았는데, 마지막 시간에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는 가장 커다란 트라우마(심리적 내상)가 무엇인지 써내는 것으로 한 학기 강의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렇게나마 학생들이 속내를 털어놓게 된 것도 한 학기 수업의 결과라고 했다. 학기가 시작할 무렵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속내를 털어놓는 것을 어색해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이었을까? 남학생들은 80% 이상이 군대 관련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여학생들은 군대와 같은 압도적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소 분산되는 경향은 있었지만 30% 정도가 성폭력 내지는 유사 성폭력의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표현하지 못하고 잠재적으로 안고 있는 고통까지 생각하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외국의 경우, 이런 상처는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에게서 나타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그 상처에서 비롯된 분노는 대개 상처를 낳은 근본적인 원인으로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접 관계가 없는 타인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로 발전하는 게 보통이다. 굳이 외국의 사례, 이론적인 근거 등을 들지 않아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전쟁의 경험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병영국가가 탄생했다. 그래서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서도 비슷한 상처와 욕구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예비군 제도는 이런 상처를 반복해서 상기시키며 왜곡된 심리를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장치일 따름이다.

 

  군대의 존재는 대다수 성인 남성들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아 있지만, 역설적으로 세대를 넘어 국가주의적 욕망으로 질주하게 만드는 힘의 근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이 왜곡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국가주의와 군사주의의 앙상블

 

  전쟁이 없어도 늘 전쟁 같은 일상을 사는 것. 이것이 군사주의다. 예비군 제도는 한국사회 일상을 말해주는 한 단면이다. "여기는 아직 전쟁터"라는 생각, "지금은 그저 휴전"일 뿐이라는 인식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일상은 언제나 전쟁을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

 

  군사주의는 국가주의와 맞닿아 있다. 한국사회는 과거의 역사에서 '힘을 얻어야 평화도 가능하다'는 교훈만을 되새김질 해냈다.

 

  침략과 수탈로 굴곡된 일제강점기, 전쟁과 가난으로 점철된 현대사.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 했던 피나는 노력이 뒤따랐다. 그러나 주변 강대국에 비해 국력은 여전히 약하기만 하다. 그래서 강한 힘을 끝없이 갈망한다. 거기에 비례해서 열등감은 쌓여간다. 이런 과정이 국가적인 의제 앞에 무섭도록 단결하는 힘을 낳았다. 그 힘이 전쟁과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런 힘의 의미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이 군사적, 경제적 약자에서 강자로 올라서면 지난 역사 속의 상처가 주는 교훈이 완성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근대국가의 역사는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구 근대국가의 역사는 다양한 형태의 상비군 제도가 정착된 역사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을 거쳐 나폴레옹 때에 이르러 징병제가 도입됐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근대 국민 국가 형성 과정에서는 '시민의 동등한 병역의무'가 시민권을 확보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팽창한 군사주의는 국가주의와 결부되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이라는 끔찍한 결말로 이어졌다.

 

  뒤늦게 이들 국가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는 한국은 서구 국가들의 지난 오류까지 고스란히 반복하며 따라간다. 그리고 서구 근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은 이제서야 조금씩 한국사회에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

 

  국가주의적 욕망은 대개 인간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 총동원 전시체제는 비인간적 국가모델의 극단이다. 오늘날 예비군 제도는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완성된 총동원 전시체제에서 영감을 얻은 바가 크다. 그 이야기는 한국사회가 일상적인 전쟁 준비에 짓눌리고 있는 사회란 뜻이다. 물질적인 측면은 물론 정신적인 측면까지 말이다.

 

  예비군 제도를 다시 생각하자

 

  참여정부가 내세운 국방개혁의 취지가 '효율'과 '국력'에 중심을 두고 있는 한 시민들은 '참여의 주체'가 아니라 '동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예외 없는 병역의무 이행'과 '예비군 제도 개혁'은 군사정권이 낳은 문제의 핵심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개혁이 될 수 없다.

 

  예비군 제도 개혁은 궁극적으로는 예비군 제도를 없애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물론 국방정책의 속성상 주변 정세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군사력을 축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반대로 이쪽의 국방력 강화가 상대방에게 군사력 증강의 명분을 준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힘으로 주변정세를 돌파하는 게 아니라 다자적 안보체제에 기반한 평화적 관계를 구축해나갈 생각이라면 자신부터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것이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이어진 근대 국민 국가의 비극이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물론 예비군 제도를 폐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기득권 세력, 그리고 예비군 제도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의 반발이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별 생각없이 예비군 훈련을 받는 동안, 잊고 지낸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어려운 길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것은 군사주의, 국가주의가 팽배한 사회구조를 뜯어고치는 작업과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다. 전쟁과 집단적 광기가 판치는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예비군 제도의 목적은 군사주의, 국가주의적 가치를 훈육하는 데 있다. 예비군 훈련을 다녀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 있다. 개인의 참다운 삶을 위해 국가 안보가 필요한 것이지, 안보를 위해 참된 삶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군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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