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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다!!졸업식

11년만의 졸업식. 남이 우겨서 억지로 졸업식 간 것처럼 말하지만 진심은 즐거웠다. 가족들이 와줘서 고마웠고 친구들도 너무 많이 와줘서 감동했다. 사진은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는 재성이가 찍어줬다. 플랭카드는 오랜 친구 라커(Rocker)가 걸어줬다. 모두 모두 고마워~~

 

자 그럼 이제 본격적인 사진 감상 들어갑니다.

 

 



>> 친구가 걸어준 플랭카드..ㅋㅋㅋ...졸업식 날까지 웃음이 떠나질 않았던~~자연과학대학에서도 수학과 건물 바로 앞이다. ㅋㅋㅋ

 

 

>> 수학과 후배 의용이. 한 때 학회활동을 할 때 정말 친하게 지내던 친구다.

 

 

>> 학생운동을 함께했었던 친구들. 왼쪽부터 라커, 위씨, 나, 재명...

 

 

>> 라커와 단둘이...ㅋㅋ...선하게 생겼다. 

 

 

>> 사진기사 재성. 고마워...

 

 

>> 학사모가 왠지 어색하다.

 


 

>> 눈가의 잔주름...나이는 못 속여...그래도 저 빨간 넥타이는 내심 흡족하다.

 

 

>> 졸업선물로 누나가 사준 양복. 학생회장 선거 때 이후로 처음 입어본다. 결혼식, 장례식 등등 모든 경조사에 다 써먹으려고 검정색으로 샀다. 간만에 입어보니 기분은 괜찮다. 그래도 귀찮다.ㅋㅋ

 

>> 설정 사진같다. 기자와 인터뷰할 때 느낌.

 

 

>> 잘 나왔다...지겹지만 그래도 살짝 아쉽기도 한....수학과 교정...보통 녹두마당이라 많이 부른다.

 

>> 아빠랑 둘이...아빠는 표현 안했지만 내내 흡족한 기분이었으리라. 아빠는 항상 염색을 하고 싶어 하지만 난 저 백발이 훨씬 멋있다.

 

 

>> 친구 여옥. 흰 양말이 에러다. ㅋㅋ

 

 

 

>> 여옥과 오리...ㅋㅋ..난 여자들이 좋다구...

 

 

>> 내사랑 날맹...어디봐??

 

 

 

>> 학교 후배 동익. 엄청 쪘다.

 

 

>>학교 후배 승표...역시 만학도다.

 

>> 마지막 촬영지...버들골.

 

 

>> 넷이서...

 

 

>> 날씨도 너무 좋았다...그래서 그런 지 다들 밝고 자연스럽다.

 

 

>> 코믹 커플...조은의 뒤를 이은 재성..

 

 

>> 한 번 장난기가 발동하면 멈추기가 쉽지 않다.

 

 

>>이렇다니까..기어이 망가져서 끝을 본다.

 

 

>> 한 명 더 늘었다. 누구게? 사진찍기 무지 어색해하는...

 

 

>> 친구들이 띄엄띄엄 오는 통에 사진찍기 놀이가 끝나질 않는다. 일찍 일찍 댕겨라...현지야~~

 

 

>> 피곤하지만 그래도 다들 즐거워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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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해 본 애니어그램

오리님의 [애니어그램 / 9번] 에 관련된 글.

근데 얼마나 현실적인 지는 잘 모르겠군...모험심은 많은데 호기심은 낮고...

아무튼 최근 몇 년 사이 너무나 많은 정서와 성격 변화를 경험한 탓에 좀 아리까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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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당신?

                                        

 

1.

소설을 읽다가 '앗, 이거 내 얘기다.' 싶은 소설을 만나면 몰입하든지 도망치든지.

 

2.

지나치게 짧고 건조한 문장들. 인과관계 없이 계속 나열한 사건들.

너무나 많은 상처가 일상이 되어버린 탓에 슬픔은 언제나 속으로만 배어들고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외로워도 외롭다고 말하지 않고,

더 좋아질 거라고 말하지도 않고, 더 좋아질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고,

그리워도 그립다 말하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을 열 듯 열지 않고, 마음을 닫을 듯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답답해/답답해/답답해/답답해/미칠 것처럼 답답해

그런데 공감이 가는 걸 어떡해?

 

3.

희망이 없다 말하는 거 같지는 않다.

위로받을 수 없다 말하는 거 같지는 않다.

누구랑도 소통할 수 없고,

이해하는 것도 이해받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거 같지는 않다.

죽을 때까지 사람은 혼자라고 말하는 거 같지는 않다.

 

그런데,

 

희망이 없다 말하는 거 같다.

위로받을 수 없다 말하는 거 같다.

누구랑도 소통할 수 없고,

이해하는 것도 이해받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거 같다.

죽을 때까지 사람은 혼자라고 말하는 거 같다.

 

그래도 유일한 희망은

같이 밥먹고 떠들고 안아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말하는 거 같다.

 

그렇다면 희망 쪽으로 무게를 실어주자.

왜냐면,

나 역시

아직도

희망을 믿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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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1. 나도 소설을 왜 읽는 지 많이 궁금했다


입학 당시 가입했던 문학 동아리는 이미 균열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었다. 세미나에서 다루는 소설과 평상시 즐겨 읽는 소설의 간극은, 딱 그 만큼 현실에서 욕구 차이를 드러냈다. 여전히 몇몇은 운동에 관심을 보였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았다. 끝끝내 지키려는 사람은 갈수록 소수였고 그나마도 소설을 매개로한 건 아니었다. 소설이 진실을 알리고, 역사를 가르치고, 현실을 비판하고, 그래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밀알 한 톨 만큼이라도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은 신앙 같은 것이었다. 그래야만 한다는.

그래서 그랬나. 그 때는 왜 그렇게 후일담 소설들이 많이 나왔는지 이해도 못하니까, 비관이 난무해도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뭔가 잃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난 잃어버린 게 별로 없는 기분이었다. 한참 정신없이 살 때는 그런 생각이 들 틈도 없었다. 소설이 좋았고, 그래서 문학동아리를 찾았고, 그런데 재미가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처럼 이해도 못하는 어려운 고전 억지로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사회과학책을 읽는 게 나았다. 그게 내게 필요한 답을 빨리 줬다. 그래서 한 몇 년 간 소설을 읽지 않았다.


‘80년대는 무엇이었나?’

분석하고, 위로하고, 극복하기 위해, 또 더러는 욕하고 비난하며 끝장내기 위해 들인 노력을 다 모아본다면 특정 시기를 ‘XX시대’로 규정하는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말 많던 시대가 지나가고 나니 당연히 다치기도 많이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그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또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위로하기도 한다.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에서, 운동권 캐릭터가 뜨는 시절은 운동권이 몰락한 시대다. 그나마 희화화되는 데도 다 까닭이 있다. 희화화조차 안 되는 존재는 완전 마이너리티다.

그런데 이제와 새삼스레 접어두었던 이야기들에 공감하기 시작하는 이유? 아마도 내가 비슷한 기분에 휩쌓였기 때문에. 위로와 자학, 인정과 비판이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에. 첫 시간부터 ‘왜 소설을 읽는 지 내가 혼란에 빠졌다’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전혀 뜬금없다는 느낌 없이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 아무튼 나는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주로 소설만 읽는다. 그리고 나는 자문한다.

'90년대는 무엇이었나?'

사회과학책은 거짓말 같아서 접어버린 지 오래인데 이것도 분명 일시적인 ‘막대구부리기’가 분명하다. 의도적인 회피, 의도적인 냉소. 역사서에 쓰여 있는 이야기에는 ‘개인’이 없다. 사회과학서적에는 ‘우연’이 없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는다. 살아숨쉬는 인간들의 고뇌를, 우연으로 가득찬 인생의 혼란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기 위해. 그러다 어쩌다 희망의 한 조각이라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해서.


소설은 대놓고 거짓말인데 그래서 더 진실처럼 느껴진다.


2.  역사 속의 개인, 개인 속의 역사


역사란 지나고 나서 보면 항상 딜레마에 처해 있다. 시험처럼 합격, 불합격 혹은 몇 점 이렇게 분명하게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 그 결과에 대해서 평가를 해야 한다. 더불어 과정까지 도마 위에 오른다. 최선을 다했어도 정말 최선을 다한 건지, 참 잘했다고 생각하고 싶어도 정말 잘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모두에게 최선인 역사가 없으니 최선인 선택도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역사는 항상 재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그리고 그 해석을 따라 개인도 출렁출렁 댄다. 하물며 지난 시대가 총체적으로 의심받는 시대라면.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역사를 반영한다. 그 역사는 개인을 통해 구체화되고 생동감을 얻는 역사다. 역사서에 오른, 개인이 생략된 역사가 아니다. 90년대 이후 거대담론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거쳐 역사 속의 개인, 개인 속의 역사를 들춰내려는 소설들은 그래서 일단 재밌다. 구체적 현실을 대하는 개인의 결단과 행동은 언제나 긴장으로 가득차 있다. 그 긴장을 통해 소설은 더 강고한 리얼리티를 얻는다.1)

소설 속에서 개인과 역사는 대립항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서로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교훈을 얻어내기 위해 경직된 글읽기를 할 필요도 없고, 역사가 거세된 소설을 읽으며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냐’고 야유할 필요도 없다. 위인전을 읽을 때처럼 묵직한 느낌이나, <논스톱>같은 씨트콤을 보며 느껴야 하는 씁쓸함을 모두 극복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소설이라면, 적어도 소설의 존재 이유 한 가지는 분명히 찾은 셈이다. 현대 소설이 변화하는 양상 가운데 긍정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찾은 셈이다.2)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하게 되면 판단의 문제가 남게 된다는 것이다. 첫째가 역사 해석 일반의 문제. 어떤 역사가 옳고 그런 것이었는지를 판단할 기준이 애매모호해 질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이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구체적 판단의 근거가 사라질 수도 있다. 모든 역사는 동등한 무게를 갖는 다거나, 또는 똑같이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역사는 모두 후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거나 의도적으로 선택 또는 탈락된 것이라는 태도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당연히 제기되는 두 번째 문제는 역사해석을 둘러싼 주체의 문제. 개인의 선택이 어떤 경우든 역사적으로 불가피했다거나, 그래서 그 나름대로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역사해석을 둘러싼 회의적 태도로 인해 역사를 해석하는 주체가 허무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역사해석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해석을 해체시키는 것이다. 탈근대 역사학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판받고 있다. 집단적 주체를 제거한 역사학이 국가, 민족, 계급 같은 거대 담론에 가려져 있던 정치적 소수자들을 살려내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데 멈추지 않고, 결국 역사적 가치판단과 집단적 저항의 가능성 자체를 해체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이 바뀐다.

'나는 90년대가 무엇이기를 바라는가?'


3. 역사에 대한 지적 회의주의, 그 가능성


이 같은 맥락에서 주목해 볼 만한 첫 번째 작품은 김연수의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이다.

문학의 위기에 대한 질문에 “체력이 약해졌다고 에베레스트산의 고도(高度)를 낮출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3)라고 답했던 소설가 김연수. 그는 1993년 소설 데뷔작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에서부터 시종일관 역사해석의 문제, 역사적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 그리고 현대인의 정체성 문제를 제기해왔다. 성장 소설 성격이 강한 <스무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이나 로드무비처럼 길 위에서 펼쳐지는 <7번 국도>4) 역시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으로 볼 때 김연수 소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문제의식 속에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번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소설집 제목부터 그런 작가의 문제의식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대놓고 자신의 존재가 유령이라 말하는 작가, 대놓고 자기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말하는 작가.


“전쟁에는 진실이 있지만, 전쟁 이야기에는 조금의 진실도 없으니까. ..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뿌넝숴’·不能說>


대체로 소설집에 담긴 작품에는 일관된 문제의식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강력하게 한목소리를 내는 소설집도 오랜 만이다. 그는 시종일관 묻는 것이다. 과연 역사적 진실은 존재하는가? 역사가 주체마다 다르게 인식되는 것이라면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어디인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심지어 <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에서는 이미 상식으로 정립된 이야기를 재구성해서5) 비틀고,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에서는 확고한 역사적 사실에까지 회의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자신은 정체성이 불분명한 유령작가라는 명제에 충실한 셈이다. 기존에 정립된 모든 정체성을 해체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그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분명 작위적이고 그릇된 것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뒤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 모두 그렇듯이 말이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이야기됨으로써 사건들과 낱낱의 내용, 하찮은 사실들이 사건 당시에는 갖이 않았던 움숙하고도 중요한 양상을 어쩔 수 없이 띠게 되기 때문이다.”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


그런데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면 소설집 제목 자체가 가장 강력한 역설이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정체성을 찾아나가려는 의지가 가장 강력한 작가다. 일관된 역사적 회의주의 그 밑바닥에는 역사적 진실과 대안적 글쓰기 그리고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설명하고자 하는 강렬한 지적 욕구가 깔려 있다. 그 끝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 찾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다,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역사에 대한 지적 회의주의. 김연수에게 역사적 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은 91년으로부터 시작된다. 소련의 해체와 맞물리면서 진보적 운동도 조금씩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 지식인들처럼 그는 거대한 시대적 난관에 봉착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과거를 위무하는데서 위안을 얻거나, 현실을 합리화 시키는 데 급급했던 반면 그는 묻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현실에 순응하는 것 말고 어쩔 도리가 없다6)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끊임없이 재해석한다. 이것이 역사에 대한 지적 회의주의가 갖는 강력한 힘이다. 역사 속에서 개인의 존재를 찾아내는 힘 역시 여기서 나온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는 뜻인가? ... 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몰길을 한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뜻인가? ...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앞서 말한 바 있듯이, 이와 같은 글쓰기는 개인과 역사를 분리해서 사고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사고함으로써 더욱 생생한 극적 리얼리티를 얻는다. 김연수의 소설이 자칫 해체적으로 흐르기 쉬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실제 내용구성에서도 종래의 역사해석에 대한 해체가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그 리얼리티나 진정성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철저한 회의주의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개인의 실존적 문제와 맞물리면서 빚어내는 긴장과 떨림. 우연성과 필연성에 관한 의심은 개인의 역사에서도 언제나 중요한 물음이다.

김연수 소설에는 새로운 역사적 진실찾기의 가능성 또한 잠재되어 있다.


“어떤 점에서 귀하의 미합중국과 제 미합중국이 절대로 하나일 수 없는 상상의 소산에 불과하듯, 은자의 나라에서 찾은 제 진실한 사랑 역시 사라져버린 그 하루 같은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입니까? ... 이 세계는 상상하는 대로 구성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거짓된 마음의 역사>


이와 같이 ‘타자의 눈으로 역사 바라보기’는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문제의식이다. 소설이 구한말 초강대국 미국/인의 눈으로 조선사회를 바라보고, 중공군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듯 새로운 시선은 전혀 새로운  역사 해석을 낳는다.7)

4. 재구성인가 해체인가?


김연수의 비관적 지성을 접하다 보면 소설을 읽다 가슴이 턱턱 막히곤 한다. 이렇게까지 철저한 성찰은 사람을 힘겹게 만든다. 자신을 비판하고, 자신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일이 가장 힘겨운 일이듯. 그 한계까지 밀어부쳐 보려는 김연수의 지적 비관주의. 이는 역시 그에게나 독자에게나 양날의 칼이 될 수 밖에 없다.

김연수 소설은 재구성인가 해체인가? 김연수 소설을 읽다보면 저절로 드는 의구심이다. 이렇게까지 해체하면 과연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극단적 회의주의를 조장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결국엔 새로운 힘을 얻는 게 아니라 완전연소해 버리는 건 아닐까? 김연수의 문제의식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사람조차도 힘겨울 때가 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나에게 소설읽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이미 의문이 시작된 사람에게 보수(保收)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전통적 글쓰기를 고수하는듯 하면서도 ‘사실주의’적 기법과 전혀 다른 김연수 소설이 어떤 결론에 이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실험이 매우 유효하며, 의미 있는 작업인 것은 분명하다. 21세기에도 소설이 계속 존재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면 김연수 같은 작가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지금 여기 두 발로 발딛고 서려고 유령같은 기억, 불안, 망설임, 의심과 싸운다. 내 삶은 유령의 삶이 아니다.

 

 

1) 역사소설 중에 국가 이데올로기를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영웅소설조차 상황이 바뀌었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을 때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실존적 고뇌와 긴장이었다. 역사적 선택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혼자일 수 밖에 없다는 냉혹한 진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조두진의 <도모유키>는 일본군 입장에서 임진왜란을 다루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 이런 변화들이 역사학에도 반영되어 요즘은 미시적인 세계를 통해 역사를 새롭게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탈근대 역사학도 나름대로 자기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3) 2006년 7월 23일자 경향신문 [한국을 이끌 60인] 인터뷰 기사 中에서

 

 

4) 자전거 전국여행을 꿈꾸는 나에게도 로망처럼 남아 있다. 시종일관 한 편에 바다를 끼고, 그 반대편에 절벽과 산을 끼고 달리는 상상을 한다. 그 코스는 자전거 여행 경험자의 말에 의하면 매우 위험하다고 한다.

 

5) 이와 같은 탈근대적 글쓰기에 대해서 김영하의 장편소설 [아랑은, 왜]도 참고할 만한다.

 

6) 최근 출간된 김영하의 <빛의 제국>을 읽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거대한 시대의 변화 앞에서 상처받은 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정녕 이것 뿐인가?

 

7) 예컨대 그가 보기에 친일문학 작품의 문학사적 성취를 찾기란 어렵다. 당시 일본의 관점에서만 쓰여졌으므로 지금 이곳에서 읽으면 “웃기는 것”이다. ‘한국문학=남한문학’ 이란 등식도 통일 후 우스워 보일 만한 게 수두룩하다. 동아시아문학 또는 세계문학의 지평에서 다시 읽으면 ‘웃기는 것’투성이이리라. 경계를 넘지 못한 문학은 시공에 갇히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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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와 트라우마

 

1. 

잊을 만하면 다시 쓰는 수감일기다.

요즘 사람들이 하도 ‘재밌다, 재밌다.’ 해서 드라마 <하얀거탑>을 다운 받아 보고 있다. 봤더니 재밌다. 2회까지 봤는데 하루 두 편씩 다운 받아 볼 작정이다. 재밌는 걸 보면 나는 가만있지 않고 ‘왜 재밌나?’ 분석한다. 병이다.

드라마에서 보면 캐릭터마다 정치하는 방식이 그대로 들어난다. 젊고 패기 넘치는 김명민은 무엇이든 거침이 없다. 그러나 점점 권력관계의 속성을 이해하면서 행동도 노련해진다. 외과 과장으로 퇴직을 앞둔 이정길은 매사 조심스럽게 행동하지만 뒤로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인물이다. 끊임없이 권력자들에게 줄을 대서 김명민을 몰아내려 한다. 역시 가장 노회한 인물은 김창완이다. 부원장이라는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도 절대 드러내놓고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입장을 다 들어주는 척, 자신은 인간적이고 털털한 척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의 결점을 잡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놓은 다음 결정타를 날린다. 여기에 비중이 다른 캐릭터들이 여럿 가세해서 세상사 돌아가는 복잡 미묘한 이치를 실감나게 그려낸다.

‘재밌다’는 건 결국 공감대가 크다는 이야기니까 ‘왜 공감대가 클까’ 하는 문제로 고민이 이어진다. 왜 크긴. 아주 단순하다. 세상이 온통 크고 작은 정치판이다. 인간 세상에서 순진하다는 말은 멍청하다는 말과 동의어다. 착하다는 말도 다분히 모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 만큼 영리하지 못하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2.

‘사람이 그저 도구에 불과한 취급을 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지만 어느 조직이건 그 자체적으로는 자기완결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 느낌까지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할 때가 있다.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한 항상 도구적으로 존재하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도구적 관계가 일상을 압도할 때 생긴다. 정치는 그래서 야박하다. 일상이 온통 정치적인 관계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보자.

정치적이라는 건 기본 권력관계를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내 이야기가 힘을 얻을까? 입지를 강화하려면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할까? 윗선에 찍히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관계를 견뎌야 하는 걸까? 어디까지 저항해야 할까, 저항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구치소 생활 초반에는 항상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그래서 참 피곤했다. 사람들을 대하는 게 괴로웠다. 더러 착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환경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동화시킨다. 외로움도 즐길 수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외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마음을 주지 않다 뿐이지 일상적으로 너무나 많은 갈등이 존재한다. 병역거부자들이 보내는 편지를 읽어보면 대개가 그런 이야기다. 사람들 이야기. 그 가운데 적응하고 견뎌내는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쌓여가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냉소.


3. 

가장 무서운 것은 냉소다.

얼마 전 책읽기를 함께했던 권인숙 씨가 해준 이야기다. 심리학 관련 강의를 맡고 있는데 마지막 시간에 트라우마(내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는 가장 커다란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써내는 것으로 마지막을 마무리했다. 그나마 학생들이 속내를 털어놓게 된 것도 한 학기 수업의 결과라고 했다. 결론이 어떻게 되었을까? 남학생들은 80% 이상이 군대 관련 경험을 이야기 했다고 한다. 여학생들은 군대와 같은 압도적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소 분산되는 경향은 있었지만 30% 정도가 성폭력 내지는 유사 성폭력1)의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두 가지로 놀랍다. 하나, 여성들에게 성폭력의 위협이란 일상적인 공포구나. 둘, 남성들에게 군대는 엄청난 상처로 남아 있는데 대다수 남성은 자신의 심리 상태를 반대로 표현하고 있구나. 가령 영광으로.

안타깝게 나 역시 감옥 관련 경험을 빼놓고는 상처를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군대 다녀온 사람들과 쉽게 말은 못하지만 비슷한 종류의 상처를 안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남는 건 냉소. 그걸 극복할 방법이 별로 없는 현실이다.


4. 

근래 들어 우울증, 정서불안, 욕구불만, 심리적 내상 등 여러 가지 정신적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한 사람 이야기가 아닌 거 같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분명히 심각한 정서적 결핍이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문제들은 결국 인간관계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남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 점점 피곤하게만 느껴지고 인간관계에 대해 냉소적이 되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를 이해할 수 없을거라 생각하고 반대로 나 역시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방어심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서서히 누적된 결과물이다. 이걸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고통스런 자기 성찰 과정이 필요하다. 우월감, 열등감, 피해의식, 분노, 공포, 자기모멸감 등등. 이런 감정들에 솔직해지고 아파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면 회복이 힘들다.


요즘 들어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힘든 이야기를 주고받는 와중에 서로 상처받거나 예민해지기도 한다. 가끔은 쉽게 답이 나오지 않고 자기감정이 앞서다보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래도 역시 방법은 지난한 대화와 소통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된 전문적인 연구나 상담 과정이 생긴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80% 이상이 가지고 있는 내상을 사람들이 마음속에 꼭꼭 감춰두고 있으니 이것도 참 대단한 일이다. 국가라는 괴물이 답을 주지 않는다면 자신들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책읽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개인적인 치유가 아니라 운동으로서 공론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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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5] 유럽인의 생활 1

[여행기록3] 유럽인의 생활 1

 

3-1 집

 

>> 첫 발을 내디딘 곳. 독일 마인츠. 낯선 동네 풍경은 어디나 그림같다.

 

프랑크 푸르트 공항에 내려서 처음 도착한 곳은 마인츠. 독일 북서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라인강을 끼고 있다. 평화운동가들이 처음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준 곳이기도 하다. 처음 마인츠에 들어서서 느꼈던 생각은 마을이 참 이쁘다는 것과 마을 구조가 사람살이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아파트와 빌딩, 그리고 왕복 8차선을 가득 매운 자동차로 가득한 한국의 도시 구조와는 사뭇 다른 느낌.

아파트를 좀처럼 찾기 힘들고 높은 건물도 별로 없다. 물론 큰 도시로 갈수록 높은 건물이 많이 보이지만 그래도 서울이나 뉴욕 도쿄와 같은 풍경은 아니다. 파리에서는 옛모습을 보존하고 난개발을 막으려고 건축물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대개 파리와 사정이 비슷했다. (김혜수 나오는 광고, '유러피안 라이프 신도 브레뉴 아파트'라는 멘트는 완전 뻥이다. 유러피안 라이프에 아프트는 없다.) 아파트 대신 옛스런 건물들이 즐비하다. 대개는 최근에 새로 지은 것들이라는데 여전히 이전 건축 양식을 사용한다는 뜻. 초코파이 한 상자 사면 들어있던 그 종이 모형 건축물. 정말 벽면이 굴곡없이 반듯하고 지붕 꼭대기가 성처럼 생긴 이쁜 집들이 즐비하다. (유럽인들이 한국 전통 가옥을 봐도 비슷한 느낌을 받겠지. 낯선 것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 초코파이 상자에 들어있을 듯한 건물들.

 

유럽이라고 이유없이 좋은 게 아니라, 고층 건물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게 부러운거다. 새 것과 옛 것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여유로운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돈보다 사람을 생각할 줄 안다는 게 부러운거다.(그래도 그들이 누구 덕분에 그렇게 여유롭게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집을 미친듯이 지어도 내 집이 없고 집과 땅이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한 현실, 어디를 봐도 무미건조하게 생긴 건물로 가득해 하늘도 잘 보이지 않는 이런 현실이 지겨운거다.

 

>> 이쁜 집. 꽃이 많다. 개성있게 이것 저것 꾸며 놓은 집들이 많다.

 

3-2 마을 구조

 

중학교 사회 시간. 교회를 중심으로 동심원 구조를 이루고 있는 중세 봉건사회의 이미지. 그 이미지가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마을 중심에는 어김없이 성당(교회)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에 따라서는 민중의 저항을 상징하던 공회당이 있다. 물론 왕권을 상징하던 갖가지 조형물도 여기 저기 눈에 띤다. 그리고 여지없이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이 있다. 한국처럼 급격한 마구잡이 신축물 건축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을 곳곳에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그러고 보면 남대문이나 동대문은 참 엽기다. 문만 달랑 있으니...이 역시 역사의 일부이니 우열을 평가할 문제는 전혀 아니다.) 시내 중심부엔 각종 상점과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는데 차가 아예 지나다니지 못 하는 곳이 많다. 바닥은 벽돌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고 차도는 아예 깔려 있지도 않다. 도로가 먼저 놓이고 상점이 들어서면 시가지가 형성되는 한국과 마을의 형성 과정 및 구조가 많이 다르다. 심지어 시내 중심부에서는 자전거도 못 타는 마을이 있다. 그걸 모르고 자전거로 이동하다 항의를 들은 적이 몇 번 있다. 사람들은 대개 걸어다닌다. 마을 자체가 작고 비슷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왠만한 볼 일은 자전거로 다 해결된다.

 

>> 어디에서나 성당(교회)를 쉽게 볼 수 있다. 종교적 영향력이 막대한 사회임을 짐작케한다. 성모 마리아를 연출하고 있는 사람. 퍼포먼스로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3-3 상점

 

상점은 어디나 저녁 6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24시간 편의점 즐비한 한국, 일본하고 완전 딴판이다. 해지면 아무 것도 못 산다. 레스토랑만 빼고 죄다 문을 닫는다.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레스토랑이나 술집으로 모여든다. 밤9시 넘도록 지지 않는 태양. 햇볕을 즐기려고 나온 사람들로 레스토랑은 시끌벅적하다. 사람들은 대개 건물 밖에서 식사와 술을 즐긴다. 쫓기듯 밥을 해치우고 2차로 달려가는 한국과 달리 느긋하게 한 곳에서 수다를 떤다. 거리는 금새 식사와 술을 즐기며 떠드는 사람들로 가득찬다. 거리 여기저기 공연을 하고 돈을 받아가는 악사들이 보인다. 레스토랑 가격은 싸지 않다. 아무리 싼 음식도 기본 10유로를 넘긴다. 그런데 한국의 술집과 커피숍 역할을 함께하고 있으니 저녁 시간을 고스란히 즐기기엔 무리가 없어 보인다.(그래도 우리에겐 엄청난 부담이다. 남에게 얻어먹을 때 말고는 거의 간 적이 없다.) 특이한 것은 건물 외부에 차양이 없다는 것. 수시로 내리는 비를 피할 때가 없다. 사람들은 짓궃은 날씨에 대비해 우비를 들고 다니거나 방수가 되는 잠바를 입고 있기도.

 

>> 사람을 기다리는 레스토랑. 식사시간이 되면 사람들로 가득하다.

 

또 하나 다른 모습은 유명 브랜드를 파는 상점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 유럽 물가가 비싸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만 맞는 말이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생필품은 오히려 유럽이 더 싸게 느껴진다.(맥주나 포도주값 정말 싸다. 진창 마셨다.) 서울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게다가 옷, 신발, 악세사리 등등은 유럽이 훨씬 싸다. 나이키, 아디다스 따위의 유명 브랜드 매장 자체가 거의 없다. 백화점도 몇 번 못봤다. 사람들은 대체로 대형마트에서 파는 옷들을 사 입는다. 대형마트에서 왠만한 생필품을 다 판다. 싸게 대량으로 생산되는. 모두 옷차림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그냥 자기 편한대로 입는다.(기본 기럭지가 길어서 그런 지 그래도 멋져 보이는 언니들. 흐미..) 유명 브랜드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한국, 일본, 중국 관광객들이다. -.-;;

 

딱 일할 만큼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 열심히 일하고 매일 친구들과 모여 저녁에 가벼운 술 한 잔과 수다 한토막. 아~~그립다.

 

 



>> 암스테르담. 운하의 도시 답게 어디에나 물이 흐른다.

 

>> 집마다 개성이 넘쳐 흐른다. 이쁘네~~

 

>> 마인츠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평화활동가들. 레스토랑에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 라인강변에 위치한 이쁜 건물

 

>> 라인강변을 달리다 고성(古城)에서 잠시 휴식. 어디에서나 역사적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 동네마다 반드시 자전거 가게가 있다. 파리에서 찾은 규모 있는 자전거 가게. 뚜르 드 프랑스 코스가 새겨져 있다. 대개는 주말에 문을 닫는다.

 

>> 파리 상가 밀집 지역. 아치형 복도 양편으로 상점이 늘어서 있다. 파사쥬(Passage)라 부른다.

 

 

>> 파사쥬 입구에 설립년도가 적혀 있다.

 

>> 레스토랑에서 한가로운 한 때를 즐기는 사람들. 건물을 보면 모두 벽면이 평면이다. 차양이 거의 없다. 햇빛에 민감한 한국인들과 달리 아무런 여과 없이 햇빛을 즐긴다. 그래서 그런 지  한국인보다  피부에 검버섯이나 기미, 주근깨가많다.

 

>> 시내 중심부. 바닥에 벽돌이 깔려 있다. 중심부로는 차가 지나다니지 않는다. 마차는 관광용.

 

 

>> 퍼포먼스로 돈을 모으고 있다. 광장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 진짜 동상같다.

 

>> 마인츠 시내. 수다쟁이 게르노트를 따라 동네 구경하고 있다.

 

>> 광장 한복판에서 각종 맥주를 모아놓고..추태를...

 

>> 비내리는 거리에서. 네덜란드에서 나동혁 기잡니다~~

 

>> 독일 어느 마을에서.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길 사이 사이로 추억이 깃든다.

 

>> 곳곳에 꾸미지 않은 멋스러움이..낯선 풍경은 더 큰 감동으로

 

>> 파리 어느 상점. 7월 27일부터 9월 11일까지 문을 닫는다는 소리다. 홍세화씨 책에서나 읽던 이야기가 현실로. 제대로 논다.

>> 네덜란드 델프스 하븐에서 본 자전거 가게. 특이해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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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4] 자전거로 이동하기

[여행기록2] 자전거로 이동하기

 

휴..여행기록 정리하기 장난 아니다. 수천 장 가운데 쓸만한 사진 고르고 크기 조절하는 것만도 정말 일이군.

  

2-1 자전거 해체, 조립하기

  

 >> 자전거를 해체하고 나서 상자에 담아 화물로 날렸다. 그리고 공항에 내려서 다시 재조립.

  

자전거 여행은 해체, 조립 과정으로 시작되었다. 출발 전날 미리 모여 해체했는데 처음 하는 작업이라 역시나 실수투성이. 자전거 가게에서 미리 얻어 둔 상자에 담으려면 길이, 높이, 폭을 조금씩 줄여야 했다. 완제품을 포장했던 상자가 아닌가봐. 아무튼 조금 작다. 살짝 아쉽다. 길이를 줄이려고 앞바퀴를 풀었다. 나사식이 아니라면 좀 더 편하겠지. 높이를 줄이려고 안장과 손잡이를 풀었다. 폭을 줄이려고 페달을 풀었다. 여기서 왕창 실수. 페달은 일반 나사와 조이고 푸는 방향이 다르다. 양쪽 다 무조건 뒤로 당기면 풀리게 되어 있다. 그걸 모르고 페달을 푼답시고 엄청나게 조여놓았다. (T.T;;) 그리고 일반 스패너로 상당히 풀기 어렵다. 결국 만원 주고 페달용 스패너 샀다. 덕분에 여행 내내 유용하게 썼다. 풀어둔 부분들이 손상되지 않게 노끈으로 단단히 묶어주었다. 상자에 담은 다음 빈 곳에 이것 저것 잡것들을 우겨넣었다. 나사나 스프링같이 자잘한 부속품은 봉지에 모아 담았다. 안 그러면 잊어버릴 수도 있다. 화물 운송 중에 상자에 흠이 가기도 하니까. 누구였더라. 뭐 하나 없어졌는데... 중요한 부속품이었나?? 아무튼 내려서 못 찾으면 낭패다.

상자에 담은 뒤에 청테이프로 떡칠을 했다. 안전제일!! 그렇게 하니까 거의 한나절이 걸렸다. 생각보다 시간 많이 걸린다. 다음날 아침 미니밴을 불러서 공항까지 이동했다. 5만 원 줬던가?

  

 >> 위풍당당(?) 후즐근하다.  뒤로 여행자 안내소가 보인다. 

  

2-2 공항에 내리자마자  

 

준비 부족을 여실히 실감했다. 공항에 내려서 재조립을 할 때는 한결 수월했다. 그런데 문제는 짐을 싸고 푸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흐흐...매일 짐을 쌀 때마다 1시간 넘게 걸려서 일정이 항상 지체되었다. 사람이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준비부족도 컸다. 다시 한 번 페니어를 강력히 추천한다. 짐받이는 무조건 튼튼한 걸로 사야 한다. 폼나는 거 다 소용없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저렇게 좌우로 길게 짐이 놓여서 균형 잡기도 어려운데다 한 번 넘어지면 짐받이 사정없이 돌아간다. 뒷바퀴에 무리도 많이 간다.(정말 뒷바퀴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펑크가 자주 났다. 나중엔 모두 자전거 고장에 지쳤다.) 중간에 여차 해서 짐을 꺼내야 할 때도 너무 불편하다. 한 번 풀었다 싸는 게 장난 아니다. 그나마 혼자 하지도 못한다.

  

 >> 유럽 어디에서나 자전거 사용자를 배려한  흔적이. 기차마다 자전거 전용칸이 있다. 그래도 자전거 여섯 대가 이동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저 짐이 문제야.

 

 자전거로 공항을 드나들기는 쉽지 않다. 일단 기차로 공항을 빠져나갔다. 유럽은 어디를 가도 자전거 사용자를 끔찍이 배려한다. 기차는 자전거를 들고 탈 경우 요금 옵션이 따로 있을 정도다. 짐칸이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여섯 대를 싣기에는 조금 비좁다. 기차 타고 내릴 때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짐이 뒤로 쏠려서 위험하다. 역시 짐이 문제다. 다음엔 꼭 유럽여행 경험을 살려 짐으로 고민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 그래도 일단 달리기 시작하니 이런 저런 고생 다 잊게 된다.



 

2-3. 자전거를 배려하는 문화

 

유럽에 갔더니 자전거 정말 많았다. 오죽하면 암스테르담에서는 자전거에 치여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 베트남 오토바이보다는 덜 하지만 그래도 대도시로 가면 자전거 문화도 조금 거칠다. 조금 느려진다 싶으면 여지없이 울리는 경적과 무섭게 앞질러 가는 자전거들. 휴~~ 자전거 무섭다는 생각 처음 해봤다. 자전거로 인한 교통체증. 상상이나 해보셨는지. 그래도 시내에서 자전거로 도로를 질주하려면 목숨의 위협을 느껴야만 하는 한국에 비하면... 자전거로 이동하고, 일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즐기는 게 극히 일상적이었다. 그래서 어디에서나 자전거를 배려한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자전거 도로와 자전거 도로 전용 표지판.

 

>> 자전거 전용 도로 바닥에 새겨진 표식. 머리를 보니 혹시 E.T.

 

자전거 도로 상태는 네덜란드, 벨기에 > 독일 > 프랑스 순으로 점수를 주고 싶다. 네덜란드, 벨기에는 자전거 도로만 이용해서 어디든 갈 수 있을 정도로 도로가 끊김 없이 완벽하게 깔렸고 표지판 역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자전거 표지판만 보며 가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전거 표지판 지시에 따라 자전거 도로를 달려 이틀 만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봐. (이명박이 운하 뚫어서 그 옆에 자전거 도로 놓아 준다면 혹할 지경이다.) 심지어 벨기에에서는 고속도로 옆에 나란히 자전거 도로가 나 있어 속도감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겐 정말 최상의 코스. 날씨 받쳐주면 계속 평지라서 하루 120~150km 주행도 거뜬하다. 북유럽의 여름은 해가 매우 길다. 밤 9시가 되어야 해가 지기 시작한다. 그러니 체력만 좋다면 자전거 타기는 정말 최고다. (비만 안 왔더라면 T.T;;) 강을 따라 나있는 자전거 도로는 행복감 200%. 도로도 잘 되어 있고 경치도 좋아서 기분 최고다. 

독일이나 프랑스는 네덜란드나 벨기에 만큼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한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종종 도로가 끊기거나 표지판이 불충분한 지역이 더러 있다. 물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가면 그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역시 속도가 조금 느려지는 것은 고려해야 한다.

역시 대도시로 갈수록 자전거 타기가 조금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그런데 암스테르담, 헤이그, 브뤼헤, 쾰른 등 유명하다는 도시 가보면 크기가 너무 작아 서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구(區)하나 정도 규모. 그러니 불편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나마도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고 대부분 도로가 왕복 2차선을 넘지 않을 만큼 차가 많지 않다. 그래도 역시 파리에는 차가 많다. 자전거 타기도 조금 위험하다. 도시 규모가 커질수록, 규모의 삶을 지향할수록 자전거는 일상과 멀어진다.

 

>> 지도를 보며 이동경로를 점검하는 일행. 출발점과 목적지를 지나는 주요 도시를 거점 삼아 달리면 쉽게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2.4 그래도 준비가 필요하다면

 

여행안내 책자는 론리 플래닛을 썼는데 정보가 상당히 정확한 편이다. 꼭 국내에서 미리 사서 비행기 안에서 읽어보기를. 지도는 현지에서 구매하면 된다. 좋은 지도 많다. 될수록 상세하고 큰 지도를 사면 좋다. 미셸린도 괜찮았고 독일에서는 Falk라는 책도 좋았다.

대부분은 지도를 따라 가다 보면 주요 도로와 나란히 자전거 도로가 나 있기 때문에 큰 불편 없이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출발점과 목적지를 일직선으로 연결한 다음 직선 가까이 있는 주요 도시들을 중간 거점 삼아 달리면 쉽게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그러나 국경을 넘을 때는 도로 파악이 쉽지 않아 좀 더 세심하게 주의해야 한다. 유럽에는 국경 개념이 거의 없어서 심지어 자전거로 달리다가 이미 다른 나라에 와 있어도 모를 정도다. 그렇지만 도로 체계가 살짝 바뀐다. 지도대로 쉽게 길을 찾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도로 표지판이나 도로 사정이 달라져서 애를 먹는다. 일행은 결국 한 번도 온전히 자전거로 국경을 넘은 일이 없다. 여러 번 기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벨기에에서 프랑스 넘어갈 때는 굳게 마음먹고 국경을 넘었지만 국경 근처에서 도로 찾아 헤매다가 엄청나게 시간을 낭비했다. 벨기에만큼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 고통스러웠고 도로 표지판이나 교통체계도 바뀌어서 고생이 심했다. 그 와중에 또 쏟아지는 비. 그리고 여지없이 뒤를 따르는 자전거 튜브 펑크. 정말 끔찍한 밤이었다.

기차를 탈 때는 자전거 짐칸이 따로 있으니 확인하길. 타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친절하게 기다려준다. 사람들이 이런 일에 익숙해서 그런지 여유가 있다. 짐칸이 그리 넓지는 않아 짐이 가득한 자전거 대여섯 대가 동시에 타면 공간이 비좁다. 타고 내릴 때도 쉽지 않다. 그래도 뭐 닥치면 어떻게든 다 된다.

동네마다 자전거 가게가 꼭 있으니 걱정마시라. 하지만 철저한 주 5일 장사. 저녁이면 절대 문 안 열어. 주말에 사고 나면 힘겹다. 돈보다 여유로운 삶을 원하는 그들의 철학이, 참 것두 있는 사람들 팔자지 싶다가도 한편으로 부럽다.

마지막 강조. 비 내리는 상황에 꼭 대비하자. 시도때도없이 내리는 비 정말 괴롭다. 비 오는 날 마냥 쉴 수는 없다. 일기 변화가 무지 심해서 장마나 태풍 따위는 없지만 수시로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린다. 우비 어설픈 거 가져갔다가 추워서 디지는 줄 알았다. 짐도 다 젖는다. 텐트 안에서 썩어가는 젖은 옷들. 오우...안습이다. 그리고 유럽 북부는 8월이면 낙엽 진다. 밤에 춥다. 꼭 든든히 챙겨 입기를. 한국 가을 날씨라고 생각하면 된다. 추워서 밤마다 등이 곱아...

 

>> 오우...설정 아님. 멋져..

 

>> 독일 어느 시골길을 달리는데 기구가 보이네.

 

> 으아 이거 뭐... 이게 밤 9시쯤일텐데..이 때까지 자전거 타고 있다는 건..T.T;;

 

>> 어쭈 한 손으로...제법이셔~~ 튼튼한 철티비를 자랑했던 오리. 바퀴 두께 덕분에 잔고장이 가장 적었다.

 

>> 잠시 휴식. 유럽에서 페니어를 구입한 아침. 그런데 이 언발란스한 느낌은 뭐지? 뭘해도 컨츄리한 자전거. 죄다 싸구려인데 빤쓰만 금테 두른 꼴이다. 페니어가 바퀴보다 더 커. 덕분에 정말 고생 많았다. 자전거나 그 주인이나. ㅋㅋ..아침 눈 흘기겠군. 동네마다 안내 표지판이 잘 나와 있다.

 

>> 바퀴가 가장 얇았던 RCT 2.5. 이게 두 대나 있었는데 고질적인 펑크로 고생꽤나 했다. 프레임에 덕지덕지 붙은 청테잎, 핸들에 묶은 노끈, 거기에 썬캡에 비닐 봉투까지. 뭘해도 컨츄리해.

 

>> 펑크 때우는 영은. 카메라 들이대자마자 저 표정봐라. 좋덴다. 아테네도 두 대였다. 역시 고생 꽤나했다.

 

>> 휴식. 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야. 아름다워.

 

>> 독일 라인강. 강을 최대한 자연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인지 다리가 거의 없었다. 강을 건너려고 배 기다리면서 한 컷.

 

>> 라인강변을 달리다 잠시 휴식. 일행 중 절반인 셋이 삼십대.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중일까? 유난히 지쳐 보이는 아침.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건가??

 

 

>> 매번 다짐했다. 일정이 빡빡하니 조금만 쉬고 미친듯이 달리자고. 날맹이랑 나는 미친듯이 자고 있다. 늘 이랬다.

 

>> 가람. 캠핑장을 떠나기 직전에 한 컷. 출발은 언제나 예상보다 한 시간 이상씩 늦었다. 짐이 만만치 않다.

 

>> 비 정말 지겹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고. 아~~정말 컨츄리하고 처절하다.

 

>> 자전거 전용 비옷. 빨간색이 인상적이다. 달릴 때는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흡사 다크 템플러?? 여럿이 저 옷을 펄럭이며 달리는 모습은 흡사 비오는 날 마파도에서 도둑 잡으러 가는 듯한 섬득함을 느끼게 한다.

 

>> 반면 지하철에서 삼천원주고 산 내 비옷. 비옷은 역시 노란색이 최고다. 근데 괜히 서글퍼지는 이유는 뭐지. 비만 오면 저 노출된 허벅지가 추위에 떨어서...대패로 밀면 뚝뚝 떨어질 거 같은 닭살. 논둑 안 무너졌나 살피러 가는 길이다.

 

>> 네덜란드에서 벨기에 국경 넘을 때. 결국 뒷바퀴살이 떨어지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일요일이라 자전거 가게도 다 문닫고. 결국 혼자서 기차로 국경을 넘었다. 밤늦게 도착한 일행도 결국엔 시간이 늦어져 기차를 타고 왔다.

 

>> 기차역. 야유회 떠나는 동네 이장, 부녀회장, 막내딸, 옆집 총각, 오리도 한마리. 그런데 누가 없지??

 

>> 그래도 끝없이 뻗은 길따라 가는 길 마냥 즐거워.  

 

>> 너참 대단하구나. 너도 잠깐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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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3] 떠나자

[여행 기록 1] 떠나자


1-0. 결심하기까지


모처럼 시간이 나서 넉 달도 더 지난 여행기록을 쓰고 있다. 듣기 편한 음악을 틀어 놓는다. 꼭 ‘바람’이 들어가는 노래로. 여행은 바람 같은 거니까. 어디에서 불어 와서 어디로 흩어지는지 알 수 없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늘 두렵고 불안하지만 알 수 없는 설렘으로 가득한.

어느새 넉 달도 더 지난 여행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은 한 권 가득 채운 일기 덕분. 매일같이 일기를 썼다. 다시는 이런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 가슴으로 느꼈던 모든 것, 머리로 고민했던 모든 것을 다 남기고 싶은 마음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썼던 일기가 노트 한 권을 꽉 채웠다. 이 분량은 평소 일기의 2년치 분량 정도 된다. 운만 좋으면 50일을 2년같이 살 수 있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  자전거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하늘, 바람, 별, 달...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고생이 심했다. 특히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 때문에. 그래도 저 하늘을 보며 자전거를 타고갈 때는 정말 기분 최고야. 완전 Paradise!!



처음에 안 가려고 했다. 돈이 없으니까. 당연히,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친구들이 계속 꼬드겼다. 여자 친구랑 헤어져서 기분도 습습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나이 서른에 한 번도 여행을 못해봤다. 이러다 좋은 시절 다 가겠다 싶었다. ‘젊을 때 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늙어서 호강하자.’라는 말이 참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질렀다. 전부 빚으로. 그러길 참 잘했다.

 

>>  함께한 친구들. 고마워~~

  

 

1.1 장거리 자전거 여행에서 고민할 것들

 

 

>> 여행 내내 함께한 자전거. 이 작은 몸체로 어디든 간다. 대단하다. 신비롭다.

장기간 자전거 여행인 만큼 친구들과 몇 차례 준비 모임을 했다. 여행을 해본 친구들이 제대로 도움을 주었다. 친구들 덕을 자주 봤다. 그래도 역시나 닥치면 생기는 수많은 문제.

여행 일정과 준비과정은 함께 여행했던 친구 오리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http://blog.jinbo.net/duck52/?pnum=5#more_anchor95 -> 블로그 <오리의 아일랜드>가운데 2006_여름_유럽&베트남 참고)

>> 뒷바퀴살이 뽑히는 희한한 일도 발생. 계속되는 자전거 고장은 일행을 지치게 한다.

내가 꼭 강조하고 싶은 건 자전거와 관련된 사항들이다.

자전거는 튼튼한 게 좋겠다. 바퀴 굵은 걸로. 6명이 모두 10만 원대 생활형 자전거를 가져갔다. 아무리 자전거 도로가 좋아도 무거운 짐을 달고 오래 달리다 보면 자전거가 힘에 부친다. 시도 때도 없는 튜브 펑크는 거의 매일. 심지어 원인도 알 수 없이 바깥쪽 타이어가 펑크 나고 림이 터지는가 하면 뒷바퀴 바퀴살이 빠지는 희한한 사태까지. 그나마 바퀴가 가장 굵은 오리 자전거가 잔 사고가 가장 적었다. 자전거 고장은 하중이 많이 가는 뒷바퀴에 집중적으로 몰린다. 어지간하면 바퀴 굵은 자전거 가져가는 게 좋다. 값비싼 MTB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왕이면 바퀴가 굵은 걸로. 사이클용 자전거나 바퀴 얇은 하리브리드 자전거는 웬만하면 안 들고 가는 게 좋다.

다음으로, 페니어를 달고 가는 게 좋을 듯. 자전거가 생활화되지 않은 관계로 국내에선 페니어를 사치품으로 여기는데 유럽 가면 전부 페니어 달고 다닌다. 여행 다닐 때 페니어 없이 많은 짐을 쌓고

다니면 균형 잡는 데 힘들고 안장이나 짐받이가 자주 돌아간다. 페니어를 다는 게 바퀴에도 부담을 덜 주지 않을까? 페니어 없으면 매일 짐 풀고 싸는 일도 의외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6명이 함께 행동했던 이유로 짐싸는 데 걸리는 시간만 1시간을 가뿐히 넘어 항상 일정이 지연되는 이유가 됐다. 만약 장기간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페니어를 달라고 말하고 싶다. 유럽 가서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막상 여행가면 페니어 다는 데 들어간 돈 아깝다는 생각 안 든다.

자전거 해체와 재조립 과정은 반드시 몇 번 연습해보고 갈 것. 안 그러면 닥쳐서 낭패 본다. 해체와 재조립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자전거 구조도 익숙해진다. 우리도 여행 떠나기 전 날 밤 자전거를  해체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그런데 때가 좀 늦은 감이 있다. 닥쳐서 배우는 것도 좋지만 값비싼 대가를 치루게 된다. (T.T)

자전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하고 기본적인 수리과정도 연습해보면 좋을 듯. 유럽에 자전거 가게가 정말 많다. 동네마다 다 있다. 그런데 일요일이 되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 일요일에 고장 나면 완전 낭패. 기본적인 수리 방법, 부위별 역할과 구조는 꼭 익혀 두고 필수 장비는 꼭 챙겨야 한다.

 

 

 

>> 그래도 여행은 즐겁다. 풍경, 먹거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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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 마지막 수업

 

졸업을 코 앞에 두고 드디어 마지막 겨울 계절 수업이 시작되었다. 2학점 교양수업 '사고와 표현'. 대충 제목 보면 알겠지만 국어작문 따위의 완전 기초교양 수업이다. 그래도 집 가까운 고대에서 수업 들으니 마냥 좋아. 게다가 자전거 타고 학교에 갔다. 어제 새벽 3시까지 술먹고 잠들었는데 수업 40분 전에 일어나도 지각안하고 여유있게 학교가니 이 또한 좋지 않을쏘냐. 전혀 의도하지도 않게 타학교 겨울계절 들으면서 내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이 왔나 싶었다. (헐레벌떡 가느라 장갑도 안끼고 자전거 탔더니 손시려 디지는 줄 알았다) 캬캬캬... 인제 괜찮은 여자만 찾으면 되는데...

 

젠장할. 수강생이 너무 많아서 분반했다고. 그런데 이공대생만 다 짜개서 분반을 했다. 버글버글한 사내 녀석들. 웁쓰.

 

수업 듣고 교재사러 갔더니 학교 안에 괜찮은 롤밥집도 있고 따끈한 커피도 팔고 게다가 알바하는 언니도 왕 이뿌고. 마지막 수업. 낼부터 열심히 듣고 맛난 것도 사먹고 그래야지. 연말인가? 괜히 생전 안쓰던 카드가 쓰고 싶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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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포지션을 묻다

 

 

강사1.

 

 

이 사람은 고민이 많다. 씨니컬하고 심각하다. 자기가 강의하는 수업이 '소설의 이해'인데 첫수업에 대뜸 하는 말이 '자기는 왜 소설을 읽는 지 헷갈리기 시작했다'고. 그러면서 무슨 강의를 해야할 지 고민 중이라 아직 강의계획서를 짜지 못했다고.

그렇다 이 사람은 82학번이다. 자기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소설이었기 때문에 그 때는 누구나 소설을 읽었다. 진실에 목마른 자라면 소설을 읽었다. 소설은 가장 강력한 의식화, 조직화의 도구였고 소설은 '현실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 읽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들어 많이 바뀌기 시작했단다. 이제 소설은 매스미디어의 힘에 밀려 그 영향력을 읽은 지 오래고 그나마 사람들이 찾는 소설도 정통문학과는 거리거 멀다. 사람들은 재미를 찾는다. 무거운 이야기는 기피대상이 된 지 오래. 80년대에 대한 반발이 너무 커서인지 필요한 순간에 조차 현실을 빗겨가고 있으니. 이 사람은 그래서 혼란스럽다. 과연 소설을 계속 붙들고 애정을 쏟아야 하는 것인지.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대개가 05,06학번. 대개의 학생들은 여전히 강사의 문제의식에 뚱~하다. 나는 굉장히 열심히 듣는 편이고 대화도 잘 되는 편이다. 비슷한 고민을 많이 했었으니까. 소설에 대한 고민은, 어차피, 현실에 대한 고민이다.

 

그러다 학원 일정 때문에 메일을 보냈다. 미안한데 수능 끝나고 논술학원이 가장 바쁜때라 수업을 빠질 수 밖에 없는데 재직증명서를 낼테니 출석을 인정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강사는 엉뚱한 곳에서 기분이 상했다. 아무리 비정규직이지만 그래도 선생인데 자기를 강사라 부른 사람은 니가 처음이다, '미안하다'는 표현은 손아랫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성적은 자기 고유의 재량인데 '봐주면 좋고 아님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말이 너무 건방지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바로 답장을 보냈다.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교수에게도 '님'자를 안쓴다. 호칭은 그저 습관일 뿐 한 번도 감정을 담아본 적 없다. 죄송하다. 선생님 수업 좋아하고 문제의식도 비슷해서 항상 관심이 높았다. 그 좋은 감정을 망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다시 답장. 학생 첫인상부터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매우 독특한 학생같아 보였다. 그래서 호감이 갔다(절대 나쁜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사회생활 하기 힘들텐데 잘 이겨내기 바란다. (성격을 바꾸란 뜻이 아니다.)

 

그는 나더러 세상에 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자기도 꽤나 독특한(?!) 사람 취급을 많이 받는 모양이다.

 

 

 

 

방문자2

 

 

병역거부자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참 기분이...묘하다. 저 강팍한 시간강사의 표정. 그리고 바른생활 미소청년. 나는 그 사이 어디쯤 있을까?

안습. 이런 영화를 울지 않고 보기는 너무도 힘겨운 일. 우행시 볼 때만큼 대성통곡하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난 후 계속 남는 감정의 찌꺼기는 더 강력하다. 속으로 흐느낀다. 옆에 동생이 앉아 있으니 더 그렇다. 일상적으로 나는 냉소하는 시간강사와 닮아 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나는 바른생활 미소청년이 되어 있다. 수많은 이들을 생각했다. 병역거부자들, 재판정에 앉아 있는 어머니, 면회 함께간 시간강사의 아들, '이제 내가 너를 꺼내줄께'란 말을 책임지기 위해 전쟁을 땅 속에 묻어버리는 시간강사.

 

영화를 보고 다시 한 줌만큼의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갇고 강지환의 밝은 미소를 닮아보려 노력한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한다. '평화에게 기회를'.

적어도 마음 속의 감옥은 없애야지. 이제 내가 평화를 꺼내줄께.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자행되는 일상적인 폭력. 하나씩 땅에 묻자.

 

 

 

 


 

 

3.

내 삶의 포지션을 물어봐.

 

어제는 함께 활동하는 친구 하나가 부모님에게 끌려갔다. 서른이 되면 이런 꼴을 안봐도 될 줄 알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그저 지금은 침묵하는 것이 친구를 편하게 해주는 일. 이 역시 또 긴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저 친구가 잘 이겨내기만을 바랄 뿐.

20대 초반은 항상 폭풍처럼 몰아치다가, 20대 후반 내내 겨울잠자는 개구리처럼 움츠러들다가... 이제는 뭔가 이거다 싶은 마음에 활기찬 하루가 지나면 다시 골치 아픈 하루가 시작되고.

이제 졸업과 취업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나면 뭔가 달라지겠지. 달라지겠지. 몇 가지 또다른 도전을 시작해 봐야겠다.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생각하잖아. 내 삶의 포지션을 뭘까? 지금 내게 확실한 것 딱 하나. '평화에게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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