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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달에서 왔을까?

채경★님의 [너 어느 별에서 왔니?] 에 관련된 글.

달에서 온 사람
달에서 온 사람
주기를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달과 함께 하는 당신.

당신은 감정 표현력과 육감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풍부한 상상력과 끝이 없는 기억력이 있습니다.

극도의 섬세함을 갖춘 당신은 누구와 어디에 있던지 평정을 잃지 않습니다.

훌륭한 치유자인 당신은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너 어느 별에서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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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두번째 방문기

몇군데 가보지 못한 외국중 유일하게 두번째 방문하게 된 태국.

처음 갔을때와는  다른 것들이 보인다.

 

여행사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여행들이 다 비슷하겠지만 보기좋은 풍경과 신기한 구경거리들, 문화유적만 보이던 첫 여행과 달리 6년만에 다시 방문한 그곳에서 그 땅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태국의 왕국 수비대이다. 흰 제복을 입은 사람은 직업군이고 짙은 색 군복은 의무군인이다. 태국은 남자들의 일부만 병역의무를 지게 되는데 선발기준이 우습게도 제비뽑기이다. 제비뽑기를 통해 군대갈 사람과 병역 면제를 정한다고 한다. 그렇게 병역의무를 지게되어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국민들이다.

 


태국의 수상가옥이다. 그들에게는 삶이지만 관광객들에게는 그저 신기한 볼거리일 뿐이다.

 

 


수산시장의 노점상 할머니. 관광객들이 탄 배만 보이면 어김없이 힘차게 노를 저어 다가온다. 평균수명 56세, 일부 다처제 허용,여성의 노동은 필수인 태국이다.

 


코끼리 쇼장에서 관광객들에게 바나나를 파는 어린이들. 일곱살 남짓의 어린이들도 생계를 위해 바구니를 들고 다닌다. 은근히 동정심을 자극하는 상술이다. 어린이들이 바나나를 팔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엄청 늘었다고 한다.

 

 


태국의 여성장애인 수용시설 '마타할리'를 방문했다. 정부의 지원금은 한푼도 없다. 그곳에서 간단한 제품을 만들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수용자들이다. 그나마 이렇게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여성들은 극히 적다. 대부분 빽빽한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들이다. 카톨릭의 지원으로 그들을 돌보는 직원들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알카자쇼 공연장의 입구이다. 쇼의 출연진과 사진을 찍는데 1달러이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알카자쇼의 출연진은 모두 성전환자이거나 성전환 희망자이다. 태국은 여성으로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남성들이 무척 많은 나라이다.

 

 


시내 주점에서는 흔히 킥복싱을 관전할 수 있는 링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퇴역 선수들이며, 경기 역시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쇼에 가깝다. 가끔 관광객을 대상으로 실전 대련을 벌이기도 하는데, 가끔 태권도 유단자인 한국관광객들에게 KO되는 선수들도 있다고 한다. 고달픈 직업이다.

 

 


파타야 시내에서 전갈,메뚜기 튀김과  식용 바퀴벌레를 파는 자칭 '원빈'아저씨..원빈아저씨는 관광객들에게 유명세를 타면서 현지에서는 꽤 성공한 직업인이다. 메뚜기는 생각보다 맛있다. 전갈을 먹을 때는 꼬리를 꼭 떼어내야 한다.

 

 


태국인들은 식사의 대부분을 외식으로 해결한다. 아침 출근시간이면 비닐봉투에 냉커피를 넣어 들고 다니는 사람들과 꼬지를 들고 다니며 식사를 해결하는 태국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식사 준비는 여성들의 몫이 아니다. 그들은 생계비를 벌어야 하므로.. 태국의 여성 대부분은 늙어죽을때 까지 경제활동을 한다.

 

 


태국에서 원숭이는 개처럼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이다.  관광객들은 가끔 원숭이들의 삶의 터전을 침범해 마치 자신들이 그곳의 주인인냥 착각하기도 한다. 원숭이의 공격을 받기 싫으면 그들을 방문할땐 손님으로서의 예를 갖추어야 한다.

 

 


태국의 현지인 가이드 '이브' . 가이드는 태국에서 가장 유망한 직업 중 한가지로 손꼽힌다. 대학을 졸업하고 50:1이 넘는 시험을 통과해야만 가능한 직업이다. 그들의 수입은 태국에서는 상류층으로 살기에 충분한 수입이라고 한다.

 

 


비행기 안에서 일출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태국에서 꼭 가지고 와야 할 것이 있다면 여유와 미소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들의 여유와 미소 이면에 있는 치열함을 많이 배우고 온 것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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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끝나고, 나는 배운다.

 지난 2006년 9월 1일 동국대학교 자본은 경주캠퍼스 청소 용역 노동자 28명을 전격적으로 해고했다. 50여명의 청소용역 노동자 중 해고된 28명은 모두 경북지역 일반노조의 조합원이었다. 명목상으로는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부했다는 이유였지만 어렵게 건설한 민주노조를 말살하려는 명백한 탄압행위였다. 동국대학교 자본은 청소용역회사인 (주)영원씨엔에스를 앞세워 단체협약을 완전 무시한 부당해고를 자행했으며, 이후에도 교묘한 술책을 동원하여 노조를 말살하려는 작태를 서슴지 않았다. 이에 해고된 28명의 노동자들은 곧바로 교문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무려 61일간에 걸친 장기 농성이 진행되었고 치열한 투쟁 끝에 마침내 힘겨운 승리를 얻어내었다. 10월 31일 오후 5시 해고된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속해있는 경북일반노조(위원장 최해술)과 동국대 청소를 맡고 있는 용역업체 영원씨앤에스는 ▲11월 1일부로 해고자 전원(28명) 원직복직 ▲해고기간 임금 지급 ▲고소고발 철회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진행 등 11개 항목에 합의했다. 이로써 해고 노동자 28명은 11월 1일 부로 천막농성장을 철거하고 모두 일터로 돌아갔다.


 동국대학교 자본은 두 달이 넘는 농성기간 동안 60이 넘는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을 차가운 아스팔트에 방치했다. 전기를 쓰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으며, 학생회를 동원하여 천막철거를 종용하는가 하면 몰래 현수막과 대자보를 훼손하는 치졸한 수법도 서슴지 않았다. 대화와 협상을 요구하는 조합원들에게 청소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사용자임에도 불구하고 용역회사와의 계약관계만을 앞세워 뒷짐 지는 것으로 일관했다. 장기농성으로 여론이 불리해지자 자본력을 동원해 지역 언론에 노조가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처럼 거짓 광고를 했다. 동국대학교 자본에게 노동조합은 없어져야할 걸림돌이었고, 고령의 힘없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28명은 귀찮고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동국대학교 자본은 학생회마저 노조 탄압의 도구로 삼아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의 방패막이로 삼았다. 학생들의 수업권 확보와 학교의 이미지 실추를 명분으로 학생들에게 노동조합의 농성을 방해하도록 배후 조종했다. 


 나는 이 부끄러운 대학을 졸업한 졸업생이다. 게다가 비록 지금은 후배들이 학교 측의 구사대가 되어 말아먹고 있지만 한때는 투쟁의 중심에 있던 학생회를 건설하고 운영했던 학생회장 출신이다. 한동안 먹고 사는 것에 바빠서 투쟁의 전선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가 이 투쟁에 처음으로 결합하게 된 것은 후배 학생회 일꾼들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노동자의 벗으로 사회적 약자의 진정한 피신처의 역할을 수행해 왔던 대학이 노동운동 탄압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꼴사나웠기도 했지만 그 선두에 한때 내가 몸담았던 학생회가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수치였다. 노학연대를 외치며, 미래 노동자임을 자처하고 노동운동에 헌신해 왔던 선배로서 후배들의 한심한 작태를 그냥 지켜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천막을 찾아가서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우선 그나마 학교에 남아있는 후배들을 조직하고 온라인을 통해 졸업생들의 의견을 모아 성명서를 제작해서 학교에 부착했다. 성명서는 학교 측에 의해 무참히 찢겼고 우리는 항의 방문과 항의 전화 운동을 전개하면서 학교 측을 압박했다. 실로 오랜만에 유인물을 만들고 학내에서 선전전을 전개했다. 이렇게 학교를 오가며 연대 투쟁을 하는 내내 혼란의 90년대를 관통하며 학생운동을 했던 나는 지금의 학생회가 학교 측의 꼭두각시가 되어 노조 탄압의 선봉대가 되어 버린 지금의 현실이 이해할 수 없었고, 남한 사회의 미래가 너무나 암울하게 느껴졌다. 투쟁이 장기화될수록 너무 미약해진 아니 거의 없어져 버린 학생운동의 기풍과 투혼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싸움에서 그동안 몰랐던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끝나버린 서른 언저리의 잔치판을 아쉬워하며 무기력해하는 동안에도 생존권 사수를 위한 힘없는 노동자 28명의 처절한 싸움은 계속되었고, 그들에게 싸움은 곧 삶은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내가 연대해야 할 곳은 이젠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는 후배 재학생들의 학생운동이 아니라 더 이상 한 발짝도 물러설 곳이 없는 저 노동자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진정한 연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이젠 좀 찾은 듯하다. 투쟁에 연대하는 동안 나는 퇴색해버린 학생운동을, 무기력해진 학생회를, 상식을 잃어버린 모교를 걱정했지만 이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28명의 노동자들의 삶을 내 것처럼 느끼진 못했던 것이었다. 


 지난 10월 25일 발레오만도, IHL, 일진베어링 등 금속노조 경주지부와 아폴로산업노조 등 금속 12개 사업장 2천5백명이 오후 1시부터 4시간 파업을 벌였고, 1천여명의 노동자가 동국대 앞에 집결해 청소노동자 해고 철회를 요구했었다. 경주지역 뿐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연대 총파업이라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28명을 위해 정규직 금속 노동자들이 기계를 멈추고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집회에 참석 해 준 것이다. 나는 그 집회에서 ‘진정한 연대의 힘’을 다시 한번 보았다. 경주지역에서 그나마 정규직 노동자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최저생계비를 겨우 맞추고 있는 힘없고 늙은 여성 노동자 28명을 위해 어렵고 힘든 결단을 내리고 함께 연대해 준 덕분에 이 싸움의 승리를 위한 발판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집회에서 그동안 학교의 탄압으로 죽은 듯이 지내던 일부 후배들도 ‘학생연대’라는 이름으로 지지 현수막을 내걸고 함께 참여하였다. 소수이기 때문에 더욱 강한 탄압을 견뎌내야 하는 후배들이었기에 자랑스러웠다.

 해고 노동자 중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싸웠던 최인순 조합원은 이번에 복직하면서 “노동자의 노자도 몰랐는데 이번 싸움으로 많이 배웠다.”고 했다. 이번 싸움에 한쪽 발만 걸치고 있던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한때 노동운동에 복무하고자 했던 나는, 지금 그나마 변혁적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나는, 노동자의 노자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연대 투쟁의 연자나 알고 설쳐대고 있는지 많이 반성했다. 저들의 삶이 내 것으로 느껴질 때 진정한 연대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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