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칼라TV스텝과 차량,쌍용차 사측 구사대에 테러 당해

8월 5일 오전 11시경, 정문 앞에서 쌍용차 사태를 취재중이던 칼라TV 스텝과 차량이 쌍용차 사측직원으로 이뤄진 구사대에 의해 집단구타와 함께 차량 4면이 파손되는 테러를 당했다.

이미 전날에도 타이어 4개를 예리한 칼날로 보이는 것에 의해  완전파손을 당해 수리를 마쳤지만, 이 날은 거의 모든 유리창과 전조정,사이드 미러,타이어 등 운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테러를 다시 당했다.

당시 항의하던 칼라TV 스텝을 사측직업 구사대가 집단폭행 하던 중이었지만 경찰은 강건너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이었다고 현장스텝은 전했다.

현재 부상당한 스텝들은 평택 모처로 이동, 치료와 함께 안정을 취하고 있다.

다음은 오늘 구사대측의 테러에 의해 파손된 칼라TV 중계차량의 모습이다.

271W0001.jpg 271W0004.jpg 271W0008.jpg 271W0016.jpg 271W0018.jpg 271W0022.jpg 271W0024.jpg 271W0032.jpg 271W0046.jpg 271W0056.jpg

사진/기사 = MUK/ORIBAL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투쟁결의로 가득찬 쌍용자동차 평택현장

6월6일  화창한 날씨의 주말 늦은 오후, 서울광장에는 모처럼 경찰의 차벽 봉쇄가 풀린 광장 잔디 위에는 시민들이 한가로운 주말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기자 또한 보수단체의 서울광장 집회예고를 듣고 달려 갔지만 시국상황에 눈치보기인지 서울시청은 보수단체의 현충일 집회를 불허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모처럼 접한 한가로움에 취재거리를 찾던 기자의 휴대폰에는  쌍용차 평택현장의 소식이 전해져 한걸음 달려갔다.

오후 7시경, 현장에 도착한 쌍용차 평택 공장의 정문은 5m 가량의 콘테이너 벽이 서있었다. 곧 닥쳐올 경찰의 공권력 투입을 대비해 쌍용차 노조원들의 대응의 긴장감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막힌 정문 옆으로 펜스를 따라 이동해 보니 조그만한 울타리 문이 있었고, 거기에는 투쟁결의를 담은 붉은 머리띠의 노조원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기자증을 제시하고서야 들어설 수 있었던 쌍용차 현장 광장에는 족히 3000여명이 넘어 보이는 노조원과 연대단체들이 연좌투쟁을 하고 있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이들의 얼굴엔 강한 긴장감과 결의로 정적감이 감돌았고 기자의 알량한 인터뷰 따위로 말 한마디 건네기 조차 힘들었다.

법정관리 중인 쌍용자동차의 노사(勞使)는 회생방안을 찾지 못하고 '노조의 전면파업, 회사 측의 직장폐쇄'라는 최악의 대치 국면으로 치달았고, 노조는 이에 생산직 5000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려는 사측 계획에 정면으로 반발해 지난달 21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 와중에 5월 27일 쌍용자동차 조립4팀 엄인섭씨는 이번 사태로 인해 장기간 스트레스를 받아오다  집 주차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서울 아산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대량 뇌출혈로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4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독선적 정책이 불러온 경제위기와 상하이 먹튀 자본을 고스란히 방관한 쌍용차의 무능 경영진이  불러온 대량해고는 또 다시 노동자의 피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쌍용차는 이에 맞서서 저항하는 노동자에게 경찰의 공권력 투입을 예고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천대적 마인드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쌍용차의 평택공장 광장에는 이번엔 해고통지서를 받은 조합원 뿐 아니라 쌍용차 해직자 가족들, 공동투쟁본부소속 전국 활동가들과 학생들,진보신당과 민노당, 각 사회연대모임 등 1000 여명도 같이 공동투쟁전선을 형성하였다.

항상 방만하게 저질러온 정책 아래 불러온 경제위기를 늘 노동자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무능한 정부와 부도덕한 자본가,이에 맞서 저항하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이들과 함께하는 이 들, 그 뜨거운 몸부림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SG105002.JPG

▲ 쌍용차 평택공장의 정문, 5m 높이의 콘테이너로 쌓은 벽은 앞으로 다가올 경찰의 공권력에 대한 긴장감의 강도를 반증했다. 

SG105005.JPG

▲ 평택공장 70미터 굴뚝 가장 높은 곳에는 노조원 김을래,김봉민,서맹섭씨가 지난 5월 25일부터 25일째 고공농성늘 벌이고 있다.

SG105027.JPG

▲ 쌍용차 조합원 뿐 아니라 진보신당,민노당,학생,사회단체가 함께 연대를 결의했다.

SG105023.JPG

▲ 이 날은 지난 울산 북구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도 연대를 밝히며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SG105033.JPG

▲ 이 날 함께한 백기완 선생도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주저앉을 정도로 혼신을 다해 쌍용차 노조원들의 총파업 결의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SG105048.JPG

▲ 노조원들의 가족 또한 이 들과 함께 하며 가족을 위해 싸우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노조원들을 응원키 위해 함께하였다.

한 아기는 투쟁중인 아빠의 검은 피부를 연신 부비며 떨어질 줄 몰라 주위의 시선을 적셨다.

SG105051.JPG

▲ 투쟁결의에 가득 찬 노조원들의 무릎 밑엔 노란 봉투가 하나씩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봉투에는 각 자의 이름이 적힌 해고 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SG105059.JPG

▲ 조합원들의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조함원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 위로의 메세지를 전했다. 

SG105119.JPG

▲ 조합원들은 각자의 해고통지서를 관에 넣어 화형식을 치뤘다. 그리고 불길은 '함께 살자"라는 쌍용차 노조원들의 의지로 표현되었다. 

SG105139.JPG

▲ 문화재 내내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만이 아닌 노조원과 가족들, 연대 단체들과 함께 하는 대동놀이로 뜨거운 투쟁결의를 나누며 마무리했다.

 취재/사진 = ORIBAL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월 30일 시청광장에는 경찰에게는 시민도, 기자도, 국회의원도 안중에 없었다

5월 29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거행됐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국민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노무현'이란 울림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인간 '노무현'이던, 정치인 '노무현'이던 상관없이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나라의 위정자들에게 국민들은 큰 분노와 함께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지난달 29일 저녁부터 30일 오전 5시 30분경까지 시민들은 다시 찾은 서울광장에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아울러 현 정부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고, 소통이 부재된 이 나라를 국민들이 힘을 모아 국민의 목소리를 정부에 일깨워주고자 자유발언과 함께 논의가 이뤄졌다.

마치 작년 여름을 관통했던 '촛불'이 다시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작년에도 그랬듯 경찰은 동틀 무렵이 되자 평화로운 거리와 시청광장 그리고 대한문에 마련된 분향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경찰들은 30일 새벽 5시쯤 헬멧을 쓰고, 방패를 들어 시민들을 거리에서 몰아낼 준비를 했다. 그리고 5시 30분이 되자 방패 앞에 있던 20여명의 시민들을 순식간에 길가로 몰아내고 그 넓은 대로를 가득 메운 채 시청광장을 향해 진격했다.

시청광장 입구에 다다르자 시청광장에 있던 시민들은 화들짝 놀라며 밀물이 빠지 듯 광장 밖으로 빠져나갔고, 무대 위에서 자고 있던 일부 시민들은 어쩔줄 몰라 허둥지둥거렸으며,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경찰이 시청광장을 진압하는데 걸린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되는 듯 했고, 일부 경찰은 시청광장으로 들어오지 않고 대한문 앞 분향소로 이동해 분향소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시민들이 빠져나간 그 넓은 광장은 순식간에 경찰버스로 둘어싸여졌으며 남아 있던 몇 명의 시민은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광장에서 나가라고 하느냐?"며 따져 물었지만 경찰들은 이내 항의하던 시민을 연행했고, 그 연행을 막기 위해 나선 시민을 폭행에 의식을 잃게 만들었다.

현장을 취재하던 민중의소리 기자를 밀쳐 쓰러트려 놓고서는 집단 폭행을 가하기도 했고, 무대에서 부상자를 취재하던 OBS 카메라 기자를 밀쳐내고, 끝까지 취재를 하던 YTN 기자를 "내려가라"고 소리치고 윽박질렀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기자들이 항의했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실제로 취재하던 나를 팔꿈치로 치고 가길래 "왜 기자를 때리느냐?"고 바로 항의하자 "내가 언제 그랬냐?"며 정색을 하기도 했다.

한 시민은 경찰의 폭생과정에서 안경을 잃어버려 기자들과 시민들에게 안경을 찾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고, 경찰의 폭력에 정신을 잃었던 60대로 보이는 시민은 구급차가 도착할 때 쯤 의식이 돌아왔다.

시민들과 끝까지 남아있었던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현장 책임자가 누구냐?"며 현장에 있던 경찰간부들에게 따져 물었지만 그들은 "나는 모른다"로 일관하며 자리를 피하기 급급했다.

결국 나중에 찾아낸 남대문경찰서장은 이 의원이 "당신이 현장 책임자냐?"는 질문에 끝내 답을 하지 않았고, 이 의원은 "당신이 지시한 거냐? 아니면 서울시경에서 지시한 거냐?"며 따져 물었지만 그 질문에도 역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의원이 "상황 보고하라"고 지시하자 "카메라가 많아서... 카메라 치우면 얘기하겠다"고 답변했다. 언론에 꿀리는 것이 있지 않았고, 만약 경찰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는 소신이라도 있었으면 그렇게 대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남대문경찰서장은 부하직원들이 몸으로 이 의원과 보좌진 그리고 기자들을 막아주는 사이 줄행랑을 쳐 경찰들 속으로 사라졌다.

이 의원은 "거기 서"라며 명령했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기 바빴다. 게다가 한 경찰(나를 팔꿈치로 때린)은 "국회의원이면 다야"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기도 했다.

5월 30일 새벽 고인을 추모하는 분향소는 쑥대밭이 됐고, 그 건너편에 있는 서울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만든 시청광장에는 시민도, 기자도, 국회의원도 없었다.

오로지 경찰들만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시청광장으로 가는 인도 벽에 가지런히 놓인 촛불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한 시민이 서울광장 한 쪽에는 용산 희생자를 위한 분향소에 예를 표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진보신당에서 마련한 공간에 시민들이 촛불을 밝혀두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당은 달라도 예를 표하는 마음은 똑같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1년만에 다시 든 '촛불'. 시민들은 평화롭게 촛불을 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어떤 시민이 도로 한복판에 놓아둔 촛불 너머로 전경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새벽 5시경 전경들은 헬맷을 쓰고, 장비를 갖추며 곧 있을 진압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전경들 앞에 놓은 노란 풍선들.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마음이었지만 경찰들은 무참히 풍선을 터트리고는 진압을 하기 시작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차도에 있던 시민 20여명과 기자들을 방패로 밀어내는 전경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무전을 주고 받으며 서울광장의 시민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경력을 이동시키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들이 서울광장 입구에 진입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은 순식간에 서울광장 주변을 에워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시민들을 몰아내고 서울광장을 점거한 경찰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서울광장에는 소수의 시민들과 기자들만이 남아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이 시청광장에서 나가라는 말에 항의하던 한 시민을 연행하고 있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항의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이 또 다른 시민 한 명을 연행하려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주변의 시민들이 합세하여 강제연행을 막고자 경찰에게 달려들고 있다. 경찰 오른쪽에 보이는 중년 신사는 결국 경찰들에게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이 시민을 연행하려 하자 주위에 있던 여성들이 달려들어 경찰을 제지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이 한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강제진압 현장을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를 손을 들어 막으려는 경찰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의 강제해산을 막으려다 부상을 당한 60대로 보이는 시민. 이 시민은 의식을 잃었다가 구급차가 도착할 때 쯤 의식을 찾아 병원에 이송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부상당한 시민을 무대 위에서 촬영하던 OBS 카메라 기자를 경찰들이 밀쳐 무대 아래로 떨어트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부상당한 시민을 취재하던 YTN 촬영기자를 경찰이 "내려가라"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YTN 촬영기자는 "찍고 내려가겠다"며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촬영을 한 후에 무대 단상에서 내려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시민들과 취재기자들을 채증하는 경찰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보좌진이 경찰에게 "현장책임자가 누구냐?"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 간부는 이정희 의원 보좌진의 물음에 "난 아니다", "잘 모르겠다"를 일관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정희 의원이 "현장 진압에 대해 보고하라"고 남대문경찰서장에게 명령했지만 서장은 "카메라를 치우면 얘기하겠다"고 대답하고는 계속되는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결국 남대문경찰서장은 이 의원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 의원과 보좌진 그리고 기자들이 자리를 피하는 남대문경찰서장을 에워싸고 질문을 하는 중간에도 경찰은 이 의원과 주변 사람들을 채증했다. 이 의원은 "카메라 치우세요"라며 명령했지만 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채증은 계속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남대문경찰서장은 부하 경찰들의 엄호를 받으며 자리를 피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 의원과 취재진들로부터 도망친 남대문경찰서장은 경찰들 사이로 몸을 숨겼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남대문경찰서장이 도망치자 어이없어 하며 화가 난 이정희 의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갑자기 여경들이 나타났다. 당시 서울광장에 있던 여성은 이 의원 혼자였다. 여차하면 여성인 이정희 의원도 광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여경들이 동원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정희 의원이 현장에서 기자들에게 간단하게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 의원은 "(추모제가) 어제까지는 합법이고 오늘부터는 불법이냐?"며 강제진압을 한 경찰에게 분노를 터트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이 분향소를 강제로 철거한 이른 아침에도 시민들은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분향소 주변이 매우 어지럽혀 있는 것으로 철거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천막은 철거됐지만 남아 있는 집기로 분향소는 다시 차려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른 아침에도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천막 사진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사진/기사 = 락커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람,생명,평화의 길을 따라 서울에 입성한 오체투지 순례단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 나선 오체투지 순례단은 지난해 9월4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해 계룡산을 지나 묘향산으로 가는 참회와 성찰의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눈물과 땀방울로 길을 이어 103일째인 5월 16일 서울에 도착했다.

고행의 선두에 선 문규현신부, 수경스님, 전종훈신부 3인은 독선과 오만과 독단이 앞서는 소통 부재의 시대, 기다렸다는 듯이 군부독재의 시절로 역주행하는 이 땅의 천인공노할 현실을 묵도하면서 고행의 길을 걸어왔다.

그 고행은 안으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잘못인 동시에, 밖으로는 백성의 뜻을 제대로 아우르지 못하는 소통불능 현정권의 죄가를 순례단은 처절한 참회와 성찰의 자세로,  위기의 한반도를 생명과 평화의 땅으로 일구고자 간절한 기도의 자세로 오체투지라는 극한의 고행을 오랜시간 해왔다.

그 고행의 날 103일 째, 현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 격인 서울까지 '사람,생명,평화의 길'을 터온 이 들을 위해 1000여명의 시민들이 순례단을 맞이하러 갔다.

쏟아지는 봄비와 바람, 추위 속에서 이 들의 고행의 뒤를 함께 밟아 보았다. 

SG103636.JPG

5월 16일 오전 9시, 오체투지 103일째인 순례단은 과천역을 기점으로 고행의 길을 시작했다.

SG103639.JPG

문규현신부, 수경스님, 전종훈신부는 이 날도 합장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SG103649.JPG

남녀노소의 많은 사람들이 온몸이 흠뻑 젖는 추위 속에서도 경건한 자세를 지키며 순례단의 뒤를 따랐다.

SG103661.JPG

아스팔트의 기름 찌든내, 타이어 분진에 이어 도로에 차오른 봄비가 순례자들의 얼굴까지 차 올랐다.

SG103666.JPG

현 정권의 언론악법 규탄과 YTN 지키기에 나선 시민들도 고행에 동참했다.

SG103677.JPG

칼라TV 이명선 리포터도 개인자격으로 오체투지 순례단의 뒤를 이었다.

SG103679.JPG

프랑스인인 수브라씨도 오체투지 시작시 부터 현재까지 함께 고행의 길을 순례단과 함께 해왔다.

SG103682.JPG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아빠의 손을 잡고 순례단의 뒤를 놓치지 않던 어린이의 모습.

SG103697.JPG

오체투지 중 잠시 휴식을 갖던 이명선 리포터의 빨간장화에는 한가득 빗물이 고여 있었다.

 SG103716.JPG

과천에서 서울로 오는 남태령 고개길, 오르막 길에서 흘러 내리는 빗물조차 끊임없는 고행을 막을수 없었다.

 SG103715.JPG

서울 진입 경계선을 통과하던 순간, 순례단 참가자 일부는 서로를 안고 고행속 환희를 맛보았다.

SG103717.JPG

'경인운하'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현 정부의 환경파괴를 간절한 기도로 막고자 하는 이도 있었다.

SG103732.JPG

과천에서 따라 붙던 경찰도 서울로 진입하자 확연히 강경해진 기존의 경찰 이미지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SG103746.JPG

순례단의 후미를 소위 '꼬리자르기'로 막아선 경찰은 시민들을 서서히 압박해왔지만, 참가자들은 침묵의 묵상으로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순례단은 오후 5시경 경찰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남태령 역에서 이 날의 일정을 마치고 해산했다.

SG103761.JPG

다음 날인 5월 17일 오전 9시, 사당역에서 순례자들의 오체투지는 변함없이 시작됐다.

SG103766.JPG

문정현 신부도 말없이 순례단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SG103792.JPG

전날의 우려와는 달리 경찰의 교통통제 속에 이수교차로 방향으로 순례단의 일정은 무리없이 진행됐다.

SG103797.JPG

이수역 부근 가구거리에서는 매장의 직원들이 직접 생수를 들고 나와 순례단의 목을 축여 주기도 했다.

SG103823.JPG

200여명까지 불어난 순례단은 동작대교위의 강풍에도 오체투지로 한강을 건넜다.  순례단은 오후 4시 반 경 동작대교 북단에서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며 이 날 일정을 모두 마쳤다. 

 

5월 18일에서 21일까지 서울시내에서 이루어지는 순례단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 5월 18일(월)
■ 순례구간 | 서빙고동이촌지하도(이촌역)-용산참사현장-용산2가국민연금공단 맞은편(남영역)
■ “용산참사 현장 순례”
· 16:00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분향과 기도
■ “광주민중항쟁기념 및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
· 19:00 용산참사 현장(신용산역 2번 출구) 

◎ 5월 19일(화) - 휴식 

◎ 5월 20일(수)
■ 순례구간 | 용산2가 국민연금공단 맞은편- 명동성당
■ “명동성당 시국미사” 
· 17:00 명동성당 성모동산
· 시국성명서 발표 
* 미사 참례자는 오전, 오후 오체투지순례에 함께하여 주십시오. 

◎ 5월 21일(목)
■ 순례구간 | 명동-시청-청계광장-조계사
■ 시청(서울광장)에서 조계사까지 - “서울시민과 함께 하는 오체투지 순례” 

1. 행사 개요
□ 취지 : 사람.생명.평화의 길을 찾아 작년부터 오체투지 기도순례를 진행 중인 순례단을 따뜻이 맞이하며, 서울시민들이 직접 오체투지에 동참함으로써 몸과 마음으로 생명평화를 느끼는 체험 마당
□ 일시 : 2009년 5월 21일(목) 오후 1시 ~ 4시 
□ 코스 : 시청 앞(서울광장) - 청계광장 - 종각 - 조계사(1.8km)
□ 주최 : 불교시민사회단체연석회의
□ 주관 : 불교환경연대, 정토회
□ 후원 : 대한불교조계종 환경위원회 

2. 순례일정 
13:30 집결(시청 앞 광장)
13:40 출발준비, 출발의식 
14:00 오체투지 순례시작(각 종단 성직자, 시민사회, 정토회 등)
14:25 청계광장 도착
15:20 종각 
16:10 후미 대열 조계사 도착
16:20 순례 마무리 의식

취재/기사 = ORIBAL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119주년 노동절 경찰의 무자비한 연행에 시민들 투석전으로 맞서

119주년 노동절은 기존의 노동자들이 중심이 됐던 것과는 달리 노동자, 시민, 학생, 사회단체들이 모두 모여 진행된 뜻깊은 자리였다.

여의도 만남의 광장에서 열린 '119주년 노동절 범국민대회'에는 약 40000여명(주최측 추산0의 참가자들이 모인 가운데 이명박 정부의 성토장이 되었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근의 경제공황은 자본주의와 시장주의의 파국이지만 그 책임은 노동자에게만 전가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경제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며 "사회연대의 깃발을 높이 세워 공동의 대중운동을 펼쳐나가자"고 제안했다.

범국민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신길역까지 행진하여 전철을 이용하여 도심까지 진출했다. 을지로4가역에서 하차한 참가자들은 공공노조 깃발을 선두로 종로3가로 진출하려 하였으나 경찰의 연행작전에 밀려 종로5가까지 밀렸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이 연행됐는데 경찰은 체포한 참가자들을 아스팔트에 엎드리게 하고 무릎으로 얼굴을 누르고 팔과 다리를 제압하는 등 기존과는 다른 강경 진압방식을 택했다. 체포된 참가자가 아프다며 "무릎 좀 치워달라"고 얘기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후로 종로5가, 종로3가, 청계천 방면에서 시위를 벌이던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경찰들은 무차별적인 연행작전을 펼쳤다. 청계천 아래에서 깃발을 들고 올라오던 참가자를 곧장 체포하기도 하고, 체포한 청년을 끌고가며 자신의 손자라고 말하는 할머니를 밀치기도 했다. 다행히도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경찰들을 제지하면서 청년이 풀려나기도 했다.

경찰들은 체포를 하고 나서는 양쪽에서 팔을 잡는 방식이 아닌 목덜미를 누르고 팔과 다리를 들어 허공에서 제압한 후에 연행하는 방식을 구사했다. 이런 장면들을 취재하던 기자들을 향해 팔을 들어 촬영을 방해하거나 심지어 밀치는 일도 잦았다.

경찰, 목덜미를 누르고 팔과 다리를 제압하는 방식으로 연행

이에 장소를 명동으로 옮긴 참가자들은 잠깐 도로를 점거했으나 경찰의 즉각적인 진압작전으로 명동 상가 쪽으로 밀렸다. 이 과정에서도 경찰들은 조금이라도 늦게 인도로 올라간 참가자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했고, 심지어는 취재를 하고 있던 커널뉴스의 기자 팔을 꺽는 등 기자들까지도 폭행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취재를 하던 기자들이 강력히 항의하자 그제서야 슬그머니 물러서기도 했다.

도로 입구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참가자들은 "명박퇴진 독재타도" 구호를 외치며 도로 나서기를 시도했지만 경찰들이 이중 삼중으로 막는 바람에 도로 진출은 결국 실패하고 대다수의 참가자들은 자리를 떴다.

이후에 자리에 남아 있던 참가자들은 끝까지 경찰과 대치를 했으며 경찰은 3번의 경고방송을 하고는 남아 있던 참가자들을 연행하기 위해 상가 밀집지역으로 서서히 밀고 들어왔다. 이 때부터 복면을 한 시민들이 플라스틱 물병, 쓰레기통, 해충 제거용 연막통을 던지며 경찰의 접근을 막았다.

경찰은 격렬한 저항에 부딪치자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이내 상가 골목 두 군데에서 참가자들을 조여왔고 참가자들은 이에 유리병과 보도블럭 등을 던지며 좀 전보다 더 격렬하게 저항했다. 경찰은 방패로 막기에만 급급하다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틈을 타 연행작전을 펼쳐 참가자 일부를 연행해 가기도 했다.

경찰을 피해 상가 입구에 서있던 시민들은 참가자들의 저항에 박수를 보내거나 함성을 지르며 동조의 뜻을 표함과 아울러 무자비하게 연행작전을 펼친 경찰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또한 이런 갈등이 생긴 것은 이명박 정부의 소통 부재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내에서 펼쳐진 투석전은 자정경 끝났고, 참가자들은 자진해산했다. 하지만 5월 2일은 '촛불'이 일어난 지 1년이 되는 날로 부처신 오신 날로 휴일이기 때문에 많은 촛불시민들이 거리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현재 집회를 원천봉쇄할 예정이어서 또 한번의 충돌이 예상된다.

4.29 재보선으로 정부와 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보여준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모르쇠로 일관하는 소통 부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19주년 노동절 무대 뒤로 대형 풍선에 매달린 대형 구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문정현 신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소장, 진보신당 심상정 전 의원이 모습이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입을 꾹 다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영정을 들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임성규 민주노총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립오페라 합창단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동계의 대부 단병호 전 의원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신당 심상정 전의원, 노회찬 대표,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대표가 나란히 앉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참가자들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이명박 정부 반대의 힘을 모아 함성과 함께 손푯말을 들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참가자가 'MB정권 퇴진!'이라는 손푯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19주년 노동절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진보신당의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동자들이 '부자천국 서민지옥'이란 손푯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만장과 함께 무대에 선 용산참사 유가족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산참사 유가족 대표가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터넷에서 유명한 '잡리스(jobless)'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학생들이 손푯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학생들이 손푯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 하나의 비정규직 노동자인 강사노조원들이 알림판을 인도에 깔아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각 부문 대표들이 10대 요구안을 낭독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범국민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공공노조 깃발을 선두로 신길역까지의 행진이 이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행렬의 선두에 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산참사 유가족과 문정현 신부의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하철을 이용하여 이동하고 있는 참가자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종로4가에서 종로3가 방면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는 범국민대회 참가자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들이 행진 참가자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노동자가 연행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행진 참가자가 경찰에 의해 아스팔트에 엎드려진 채 제압을 당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목덜미를 눌린 채 제압당한 행진 참가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젊은 청년이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연행되고 있는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시민이 경찰의 무자비하게 인도로 밀어붙인 것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시민이 '촛불이 상상하면 현실이 됩니다'라고 쓰여진 부채를 경찰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색소액을 뿌리기 위해 장비를 맨 경찰의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종로5가까지 밀린 행진 참가자들이 다시 한번 종로3가를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이 또 한번 행진 대열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이 행진 참가자들을 채증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종로3가역 앞에서 한 시민이 경찰의 폭언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참가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참가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에 의해 목과 팔, 다리가 제압한 채 한 행진 참가자를 연행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목을 제압 당한 채 연행되는 행진 참가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명동역 앞에서 도로로 나온 참가자들을 막기 위해 뛰어가는 경찰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참가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참가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참가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이 연행한 참가자들을 호송차에 태우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이 연행한 참가자들을 호송차에 태우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에 의해 연행되고 있는 행진 참가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이 끝까지 남아서 구호를 외치고 있던 사람들을 명동 상가지역까지 밀어붙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이 조명을 비추며 채증을 하고 있는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이 참가자들이 던진 플라스틱 병과 해충 제거용 연막통을 막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충 제거용 연막통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국 경찰의 계속되는 밀어붙이기에 보도블럭 조각들도 경찰을 향해 날아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들이 방패로 날아오는 보도블럭을 막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들이 방패로 날아오는 보도블럭을 막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잠시 소강된 틈을 타 대오를 정비하고 있는 경찰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들 앞에 흩어져 있는 보도블럭. 경찰은 참가자들이 던진 보도블럭을 다시 참가자들을 향해 던지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을 향해 뭔가를 던진 한 참가자가 현장에서 연행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시민이 경찰이 자신을 폭행하기 위해 경찰봉을 들었다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이 시민은 "경찰을 향해 그럴 의도였으면 쳐봐, 쳐봐"하며 경찰의 강압적인 진압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했다.

취재, 기사 = 락커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질주'팀, 혜화경찰서로 질주하다

4월30일 오후 4시, 종로 혜화 경찰서에는 비정규직 철폐와 구조조정 및 경제위기 고통분가 분쇄를 위한 전국 자전거 대회를 마친 '질주' 참가자 30여명이 항의 방문하였다.

앞서 11시경 전국 자전거 대회를 마치고 상경한 이 들은 대학로에서 해단식을 가지려고 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행사가 무산된 가운데경찰에 항의하다 수 명의 대회 참가자들이 강제 연행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이들은 종로4가에 위치한 혜화 경찰서를 항의 방문하여 약식집회를 가졌다.

한 참가자는 '정식 집회를 신고하였고 평화적으로 해단식을 치루는 과정에서 폭압적으로 현장을 침탈하고 항의하는 참가자를 강제 연행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며 도를 넘은 행위이다' 라며 분을 삭히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30분 정도 항의 집회와 자유발언을 가지고 경찰의 비도덕적, 비상식적 행위를 규탄하고 자진해산했다.


SG103106.JPG 

SG103108.JPG 

취재/기사 = ORIBAL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동절 하루 앞둔 4.30 투쟁결의대회

5월 1일 노동절을 하루 앞둔 4월 30일 건대 후문 앞에서는 '4.30 투쟁결의대회'가 열렸다. 원래는 건국대 안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학교측과 일부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학교 밖에서 열리게 됐다.

이 자리에 약 2000여 명의 노동자, 학생, 누리꾼 및 각 단체들이 참가해 노동절을 맞이하는 자리와 함께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자리를 가졌다.

노동자들은 대량으로 비정규직을 생산하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정책으로 일관하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으며, 철거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했으며, 학생들은 한 없이 치솟는 등록금과 효과적인 취업대책조차 세우지 못하는 정부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4월 30일 용산참사 100일부터 시작된 민중들의 요구를 6월 항쟁 시점까지 지속해 이명박 정부와의 전면전을 치룰 것을 다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30 투쟁결의대회 무대

사용자 삽입 이미지

4.30 투쟁결의대회에 참가자들의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학생들의 노래공연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학생들의 노래공연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몸알림판을 한 참가자들의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몸알림판을 한 참가자들의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래로 참가자들에게 힘을 실어준 노래 공연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산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함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현수막

사용자 삽입 이미지

행사 중간 방영된 동영상에 비친 용산참사 고인들의 영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참가자 들이 용산참사의 희생자인 故 이상림 씨의 며느리 정연신 씨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故 이상림 씨의 며느리 정연신 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30 투쟁결의대회에 참가한 사람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민중을 억압하는 정부와 이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표현한 공연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연 중간에 흘러나온 '인터내셔널'가에 맞춰 한 참가자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팔뚝질을 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세계 노동자의 노래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노래패의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세계 노동자의 노래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노래패 단원의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억압 속에서 민중 승리를 보여주고 있는 공연의 한 장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억압 속에서 민중 승리를 보여주고 있는 공연의 한 장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투쟁결의문을 낭독하는 각 단위 대표자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신당 서울시당의 신언직 위원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참가자가 투쟁결의문을 낭독하는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투쟁결의문 낭독 후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칼라뉴스] 막장교육,막장학교 이젠 됐거든!

일제고사(死), 요즘 초중고교생에게 '일제히 고통스럽게 죽이는(死) 시험'이란 뜻으로 불리는 정부가 시행하는 전국교과수준진단평가에 붙은 별명이다. 올해엔 3월31일에 초등,중학생이, 10월12월에는 초중고교생들이 일제고사를 볼 예정이다. 이로 인해 초중고에도 대학과 같은 서열화 학벌화가 생겨나고 소위 '명문초등학교'와 '꼴통중학교'가 생겨난다.


학교들은 '명문'이란 간판을 자신의 학교 이름 앞에 붙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학생들을 쥐어 짤 것이며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두발복장규제와 체벌과 같은 인권침해가 다시 벌어질 것이다. 또한 강제적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강화되고, 장애학생, 예체능부 학생들은 일제고사 성적이 낮게 나올 것을 예상하고 시험을 못 보게 하는 등 학생차별이 더욱 심화 될 것이다.


결국, 학생들의 개성을 무시하고 점수로 학생들을 경쟁시키며 대학도 들어가기 전 과도한 경쟁 속에 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할 사교육비 증가에 이젠 어린 학생들까지 거리로 나섰다.


3월 28일 오후 1시 명동성당 앞,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한 손에는 풍선과 한손에는 피켓을 들었다. 얼굴에는 저마다 직접 칠을 한 알록달록한 고양이가면을 쓴 체 따뜻한 봄햇살과 아직 가시지 않은 날카로운 겨울 바람사이로 모여 들었다.


이들은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모임 SAY-NO 과 청소년 모임 연대로 일제고사 폐지와 해직교사복직을 주장하며 구호와 피켓을 들고 명동 일대에서 선전전을 펼쳤다. 주말 명동을 찾은 시민들에게 일일이 홍보지를 손에 쥐어주며 시민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부탁했고 많은 시민들이 이 들에게 공감을 표시했다. 이 들은 곧 청계천 일대로 피켓과 구호를 외치며 예정대로 보신각에서 열리는 집회 장소로 이동하였다.


보신각에서 청소년 문화제 형식으로 열린 집회에 참가한 이 모양(고1) 등 3명은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상당한 거부감과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 전반에 관한 자괴감을 보였다.

실업계 고1인 현 정부의 학교성적 우선순위로 뽑는 취업시장의 개선과 비인간적인 교육현실을 강하게 성토했다. 그리고 실업계 고등학교까지 자격증 취득을 위해 교육비를 쏟아 부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다. 일예로 갓 입학한지 얼마 안 된 이 달 한 달에도 300만원이 넘는 돈을 학교에 쏟아 부어야 했다 한다. 등록금 외에 조리 필기시험을 보기 위해 조리과학 수업비 매달 6만6천원 외에 조리비, 자재비 등이 들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갈 지 망막하며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은 연거푸 이어갔다. 또한 '속해서 이어지는 아침 5시에 일어나 밤 10시가 되서야 마치는 살인적인 수업에 교복을 그대로 입고 잔다'라고 현실을 토로했다. 
 

일제고사 반대와 해직교사 복직을 위한 이날 청소년 문화제는 오후 6시까지  다양한 율동과 노래로 이어졌으며 끝까지 평화롭고 명랑한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청소년 문화제는 3월31일 오후5시 세종문화회관앞에서 다시 가질 예정이다.








▲ 청계천 일대에서 현 정부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피켓시위를 벌이는 중고교 학생들.


▲ 보신각 앞, 서울시에서 설치한 조형물과 집회 참가자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 일제고사 반대에 맞선 8명의 해직교사들의 캐리커쳐를 그린 포스터가 전시되었다.

▲ 현정부의 교육정책에,일제고사에 희생된 학생들의 넋을 기리는 향이 초봄 바람에 퍼졌다.

▲ 쌀쌀한 날씨에도 미동없이 평화롭게 문화제를 이어 나가는 집회 참가자들.

▲ 일제고사폐지,학생인권 신장과 해직교사 복직의 염원을 담아 봄빛 하늘에 풍선을 높이 날렸다. 

취재/기사 = ORIBAL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다시는 볼 수 없는 용산 4지구 모습



사람들이 거의 떠난 용산 4구역 너머로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너무나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남일당 건물 앞의 전봇대 모습. 얽혀 있는 전선줄을 보며 이 곳에서 주민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모습이 상상된다


남일당 다음 블럭에 있는 시장. 이제는 거의 모두가 떠나고 3곳 정도만 영업을 하고 있다. 시골의 5일장보다 더욱 흉물스럽게 변했다.


아직도 남아서 장사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 아주머니는 "마음이 아프시겠어요?"라는 질문에 "에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장사도 안 되다보니 일찍 문을 닫으려고 하고 있다.


야채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 뒤로 또 한 하주머니께서 장사를 하고 계셨다. 하지만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장 중간의 모습. 폭풍을 맞은 것처럼 흉물스럽게 변해 있었다. 이곳도 분명 서민들이 값을 조금이라도 깎자며 흥정을 하고, 대포 한 잔에 하루의 피로를 씼었던 곳이었을 것이다.


폐허가 된 시장 한곳에 자리잡은 나리네 반찬. 과연 나리네 반찬은 어느 곳에서 맛있는 먹거리를 만들 것인지...


한 켠에서는 건물 철거를 마치고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철거가 진행 중인 와중에도 그냥 쉴 수가 없어 영업을 하고 있는 선술집. '재개발 관계없이 계속 영업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더 애처롭게 느껴진다.


건물 및 공사현장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 쫒겨난 사람도, 철거를 하는 사람도 또 공사를 하는 사람도 모두 서민이다. 결국 그 서민들은 돈 몇 푼에 가진자들의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다.


전시회를 했던 건물 유리창에 붙어 있는 문구. 예정보다 빨리 끝남을 알리고 있다.


영업을 하고 있는 미용실과 주단집. 광주주단 주인은 "이사갈 곳은 정하셨어요?"라는 질문에 "아직 못 정했어요. 그 돈으로 갈 곳은 없어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주인 아주머니의 모습이 안쓰러워 사진을 찍고자 했으나 극구 사양했다.


광주주단 입구에 놓은 주인 아주머니의 신발. 삶의 냄새가 가득 묻어 있었다


폐허가 된 시장에서 바라본 고층 아파트. 이제 곧 시장자리였던 곳에도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10시 44분에 멈춰버린 시계. 한 낮인데도 그 옆에는 실내등이 켜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누구도 멈춰버린 시간에 대해서 기억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남일당 건물 뒤편 모습. 그 뒤로 보이는 대기업 빌딩이 마치 낮은 건물들을 집어삼킬 듯 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용산참사 위령제 열려

지난 3월 21일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앞에서는 '용산참사 2달, 희생자/열사 원혼 위령제'가 열렸다.

1,2부로 나누어서 진행된 위령제 사이에는 추모제도 함께 열렸다.
경찰은 추모제를 불법집회로 간주하고 추모제가 진행되는 동안 2번에 걸쳐 집회해산 방송을 했다. 하지만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국민대책위)는 집회신고를 했고, 누군가가 발송한지 모르는 관할경찰서장의 직인도 없은 옥외집회 금지통고서는 효력이 없다며 추모제를 강행했다.

다행히 경찰과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과 충돌은 없었지만 자칫 추모제가 시민들이 연행될 수 있는 자리로 변할 뻔 했다.

추모제가 끝난 후에는 다시 위령제 2부가 진행됐으며 경찰은 더 이상의 집회해산 방송을 하지 않았다.



유족들의 오열 속에 위령제가 진행되고 있다



접신된 무속인을 둘러싸고 유족들이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유족들의 오열은 위령제 내내 계속됐다



망자들에게 대접할 제사상의 모습



희생으로 쓰일 죽은 돼지를 앞에 두고 무속인이 굿을 진행하고 있다



무속인이 원혼을 달래는 주술을 외우고 있다



위령게 1부가 끝나고 추모제 시작에 앞서 진행된 풍물패의 길놀이 모습



약 1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추모제가 진행되고 있다



추모제에 참석한 한 시민이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



한 시민이 남일당 건물 앞에 세워 둔 경찰차 창문에 푯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