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칼라TV

경찰 헬기의 집회압살 공대지 작전?

038.JPG

076.JPG

153.JPG

7월25일 6 30분경 쌍용차 사태를 위한 민노총 결의대회에 참가자들 머리 위로 경찰은 헬기를 동원해 색소,최류액으로 보이는 비닐봉투를 투하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비닐봉투에 든 액체라지만 가속도가 붙은 액체비닐봉투가 머리에 부딫힐 경우, 뇌진탕 및 뇌손상으로 심각한 부상및 사망에 이를수 있음에도 불과하고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집회참가자의 무리를 향해 조준하여 무차별 투하했다.

다행히 참가자들의 재빠른 베이스 러닝 능력?과 경찰의 제구력 난조 탓에 이에 따른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개월의 시간 이 남긴 것...

SKY_7541.jpg

지난 11일, 서울역에서 열린 용산참사 범국민 추모제 후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가 도로행진 중 여경에 의해 제압당하고 있다.

 

사진 = 신경영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용산참사 삼보일배 진보신당 노회찬대표 인터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해고는 살인이다

지난 6월 10일 범국민대회가 열리는 서울광장에 쌍용자동차 노조원들과 가족들이 함께 했다.

대량 해고 상태에 놓은 그들이 외치는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는 그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하루 빨리 공장 안에 있는 그분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인간답게 사는 그날이 오기를 희망해 본다.  

IMG_0318.JPG IMG_0319.JPG IMG_0325.JP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빠, 힘내세요~!

SG105048.JPG

6월 6일, 쌍용자동차 노동자 대량해고 사태에 대규모 총파업으로 맞선 노동자 아빠를 응원키 위해 아기가 아빠의 품에 꼭 안겼다. 

사진 = ORIBAL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투쟁결의로 가득찬 쌍용자동차 평택현장

6월6일  화창한 날씨의 주말 늦은 오후, 서울광장에는 모처럼 경찰의 차벽 봉쇄가 풀린 광장 잔디 위에는 시민들이 한가로운 주말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기자 또한 보수단체의 서울광장 집회예고를 듣고 달려 갔지만 시국상황에 눈치보기인지 서울시청은 보수단체의 현충일 집회를 불허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모처럼 접한 한가로움에 취재거리를 찾던 기자의 휴대폰에는  쌍용차 평택현장의 소식이 전해져 한걸음 달려갔다.

오후 7시경, 현장에 도착한 쌍용차 평택 공장의 정문은 5m 가량의 콘테이너 벽이 서있었다. 곧 닥쳐올 경찰의 공권력 투입을 대비해 쌍용차 노조원들의 대응의 긴장감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막힌 정문 옆으로 펜스를 따라 이동해 보니 조그만한 울타리 문이 있었고, 거기에는 투쟁결의를 담은 붉은 머리띠의 노조원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기자증을 제시하고서야 들어설 수 있었던 쌍용차 현장 광장에는 족히 3000여명이 넘어 보이는 노조원과 연대단체들이 연좌투쟁을 하고 있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이들의 얼굴엔 강한 긴장감과 결의로 정적감이 감돌았고 기자의 알량한 인터뷰 따위로 말 한마디 건네기 조차 힘들었다.

법정관리 중인 쌍용자동차의 노사(勞使)는 회생방안을 찾지 못하고 '노조의 전면파업, 회사 측의 직장폐쇄'라는 최악의 대치 국면으로 치달았고, 노조는 이에 생산직 5000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려는 사측 계획에 정면으로 반발해 지난달 21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 와중에 5월 27일 쌍용자동차 조립4팀 엄인섭씨는 이번 사태로 인해 장기간 스트레스를 받아오다  집 주차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서울 아산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대량 뇌출혈로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4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독선적 정책이 불러온 경제위기와 상하이 먹튀 자본을 고스란히 방관한 쌍용차의 무능 경영진이  불러온 대량해고는 또 다시 노동자의 피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쌍용차는 이에 맞서서 저항하는 노동자에게 경찰의 공권력 투입을 예고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천대적 마인드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쌍용차의 평택공장 광장에는 이번엔 해고통지서를 받은 조합원 뿐 아니라 쌍용차 해직자 가족들, 공동투쟁본부소속 전국 활동가들과 학생들,진보신당과 민노당, 각 사회연대모임 등 1000 여명도 같이 공동투쟁전선을 형성하였다.

항상 방만하게 저질러온 정책 아래 불러온 경제위기를 늘 노동자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무능한 정부와 부도덕한 자본가,이에 맞서 저항하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이들과 함께하는 이 들, 그 뜨거운 몸부림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SG105002.JPG

▲ 쌍용차 평택공장의 정문, 5m 높이의 콘테이너로 쌓은 벽은 앞으로 다가올 경찰의 공권력에 대한 긴장감의 강도를 반증했다. 

SG105005.JPG

▲ 평택공장 70미터 굴뚝 가장 높은 곳에는 노조원 김을래,김봉민,서맹섭씨가 지난 5월 25일부터 25일째 고공농성늘 벌이고 있다.

SG105027.JPG

▲ 쌍용차 조합원 뿐 아니라 진보신당,민노당,학생,사회단체가 함께 연대를 결의했다.

SG105023.JPG

▲ 이 날은 지난 울산 북구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도 연대를 밝히며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SG105033.JPG

▲ 이 날 함께한 백기완 선생도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주저앉을 정도로 혼신을 다해 쌍용차 노조원들의 총파업 결의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SG105048.JPG

▲ 노조원들의 가족 또한 이 들과 함께 하며 가족을 위해 싸우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노조원들을 응원키 위해 함께하였다.

한 아기는 투쟁중인 아빠의 검은 피부를 연신 부비며 떨어질 줄 몰라 주위의 시선을 적셨다.

SG105051.JPG

▲ 투쟁결의에 가득 찬 노조원들의 무릎 밑엔 노란 봉투가 하나씩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봉투에는 각 자의 이름이 적힌 해고 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SG105059.JPG

▲ 조합원들의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조함원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 위로의 메세지를 전했다. 

SG105119.JPG

▲ 조합원들은 각자의 해고통지서를 관에 넣어 화형식을 치뤘다. 그리고 불길은 '함께 살자"라는 쌍용차 노조원들의 의지로 표현되었다. 

SG105139.JPG

▲ 문화재 내내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만이 아닌 노조원과 가족들, 연대 단체들과 함께 하는 대동놀이로 뜨거운 투쟁결의를 나누며 마무리했다.

 취재/사진 = ORIBAL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떠나가는 노간지.

SG104362.JPG

국민장을 끝내고 수원 연화장으로 떠나가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운구행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월 30일 시청광장에는 경찰에게는 시민도, 기자도, 국회의원도 안중에 없었다

5월 29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거행됐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국민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노무현'이란 울림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인간 '노무현'이던, 정치인 '노무현'이던 상관없이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나라의 위정자들에게 국민들은 큰 분노와 함께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지난달 29일 저녁부터 30일 오전 5시 30분경까지 시민들은 다시 찾은 서울광장에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아울러 현 정부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고, 소통이 부재된 이 나라를 국민들이 힘을 모아 국민의 목소리를 정부에 일깨워주고자 자유발언과 함께 논의가 이뤄졌다.

마치 작년 여름을 관통했던 '촛불'이 다시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작년에도 그랬듯 경찰은 동틀 무렵이 되자 평화로운 거리와 시청광장 그리고 대한문에 마련된 분향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경찰들은 30일 새벽 5시쯤 헬멧을 쓰고, 방패를 들어 시민들을 거리에서 몰아낼 준비를 했다. 그리고 5시 30분이 되자 방패 앞에 있던 20여명의 시민들을 순식간에 길가로 몰아내고 그 넓은 대로를 가득 메운 채 시청광장을 향해 진격했다.

시청광장 입구에 다다르자 시청광장에 있던 시민들은 화들짝 놀라며 밀물이 빠지 듯 광장 밖으로 빠져나갔고, 무대 위에서 자고 있던 일부 시민들은 어쩔줄 몰라 허둥지둥거렸으며,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경찰이 시청광장을 진압하는데 걸린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되는 듯 했고, 일부 경찰은 시청광장으로 들어오지 않고 대한문 앞 분향소로 이동해 분향소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시민들이 빠져나간 그 넓은 광장은 순식간에 경찰버스로 둘어싸여졌으며 남아 있던 몇 명의 시민은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광장에서 나가라고 하느냐?"며 따져 물었지만 경찰들은 이내 항의하던 시민을 연행했고, 그 연행을 막기 위해 나선 시민을 폭행에 의식을 잃게 만들었다.

현장을 취재하던 민중의소리 기자를 밀쳐 쓰러트려 놓고서는 집단 폭행을 가하기도 했고, 무대에서 부상자를 취재하던 OBS 카메라 기자를 밀쳐내고, 끝까지 취재를 하던 YTN 기자를 "내려가라"고 소리치고 윽박질렀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기자들이 항의했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실제로 취재하던 나를 팔꿈치로 치고 가길래 "왜 기자를 때리느냐?"고 바로 항의하자 "내가 언제 그랬냐?"며 정색을 하기도 했다.

한 시민은 경찰의 폭생과정에서 안경을 잃어버려 기자들과 시민들에게 안경을 찾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고, 경찰의 폭력에 정신을 잃었던 60대로 보이는 시민은 구급차가 도착할 때 쯤 의식이 돌아왔다.

시민들과 끝까지 남아있었던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현장 책임자가 누구냐?"며 현장에 있던 경찰간부들에게 따져 물었지만 그들은 "나는 모른다"로 일관하며 자리를 피하기 급급했다.

결국 나중에 찾아낸 남대문경찰서장은 이 의원이 "당신이 현장 책임자냐?"는 질문에 끝내 답을 하지 않았고, 이 의원은 "당신이 지시한 거냐? 아니면 서울시경에서 지시한 거냐?"며 따져 물었지만 그 질문에도 역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의원이 "상황 보고하라"고 지시하자 "카메라가 많아서... 카메라 치우면 얘기하겠다"고 답변했다. 언론에 꿀리는 것이 있지 않았고, 만약 경찰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는 소신이라도 있었으면 그렇게 대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남대문경찰서장은 부하직원들이 몸으로 이 의원과 보좌진 그리고 기자들을 막아주는 사이 줄행랑을 쳐 경찰들 속으로 사라졌다.

이 의원은 "거기 서"라며 명령했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기 바빴다. 게다가 한 경찰(나를 팔꿈치로 때린)은 "국회의원이면 다야"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기도 했다.

5월 30일 새벽 고인을 추모하는 분향소는 쑥대밭이 됐고, 그 건너편에 있는 서울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만든 시청광장에는 시민도, 기자도, 국회의원도 없었다.

오로지 경찰들만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시청광장으로 가는 인도 벽에 가지런히 놓인 촛불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한 시민이 서울광장 한 쪽에는 용산 희생자를 위한 분향소에 예를 표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진보신당에서 마련한 공간에 시민들이 촛불을 밝혀두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당은 달라도 예를 표하는 마음은 똑같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1년만에 다시 든 '촛불'. 시민들은 평화롭게 촛불을 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어떤 시민이 도로 한복판에 놓아둔 촛불 너머로 전경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새벽 5시경 전경들은 헬맷을 쓰고, 장비를 갖추며 곧 있을 진압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전경들 앞에 놓은 노란 풍선들.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마음이었지만 경찰들은 무참히 풍선을 터트리고는 진압을 하기 시작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차도에 있던 시민 20여명과 기자들을 방패로 밀어내는 전경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무전을 주고 받으며 서울광장의 시민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경력을 이동시키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들이 서울광장 입구에 진입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은 순식간에 서울광장 주변을 에워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시민들을 몰아내고 서울광장을 점거한 경찰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서울광장에는 소수의 시민들과 기자들만이 남아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이 시청광장에서 나가라는 말에 항의하던 한 시민을 연행하고 있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항의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이 또 다른 시민 한 명을 연행하려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주변의 시민들이 합세하여 강제연행을 막고자 경찰에게 달려들고 있다. 경찰 오른쪽에 보이는 중년 신사는 결국 경찰들에게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이 시민을 연행하려 하자 주위에 있던 여성들이 달려들어 경찰을 제지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이 한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강제진압 현장을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를 손을 들어 막으려는 경찰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의 강제해산을 막으려다 부상을 당한 60대로 보이는 시민. 이 시민은 의식을 잃었다가 구급차가 도착할 때 쯤 의식을 찾아 병원에 이송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부상당한 시민을 무대 위에서 촬영하던 OBS 카메라 기자를 경찰들이 밀쳐 무대 아래로 떨어트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부상당한 시민을 취재하던 YTN 촬영기자를 경찰이 "내려가라"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YTN 촬영기자는 "찍고 내려가겠다"며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촬영을 한 후에 무대 단상에서 내려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시민들과 취재기자들을 채증하는 경찰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보좌진이 경찰에게 "현장책임자가 누구냐?"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 간부는 이정희 의원 보좌진의 물음에 "난 아니다", "잘 모르겠다"를 일관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정희 의원이 "현장 진압에 대해 보고하라"고 남대문경찰서장에게 명령했지만 서장은 "카메라를 치우면 얘기하겠다"고 대답하고는 계속되는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결국 남대문경찰서장은 이 의원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 의원과 보좌진 그리고 기자들이 자리를 피하는 남대문경찰서장을 에워싸고 질문을 하는 중간에도 경찰은 이 의원과 주변 사람들을 채증했다. 이 의원은 "카메라 치우세요"라며 명령했지만 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채증은 계속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남대문경찰서장은 부하 경찰들의 엄호를 받으며 자리를 피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 의원과 취재진들로부터 도망친 남대문경찰서장은 경찰들 사이로 몸을 숨겼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남대문경찰서장이 도망치자 어이없어 하며 화가 난 이정희 의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갑자기 여경들이 나타났다. 당시 서울광장에 있던 여성은 이 의원 혼자였다. 여차하면 여성인 이정희 의원도 광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여경들이 동원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정희 의원이 현장에서 기자들에게 간단하게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 의원은 "(추모제가) 어제까지는 합법이고 오늘부터는 불법이냐?"며 강제진압을 한 경찰에게 분노를 터트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경찰이 분향소를 강제로 철거한 이른 아침에도 시민들은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분향소 주변이 매우 어지럽혀 있는 것으로 철거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천막은 철거됐지만 남아 있는 집기로 분향소는 다시 차려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른 아침에도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천막 사진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사진/기사 = 락커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조계사에 도착한 오체투지 순례단

SG103946.JPG

오후 1시30분 시청광장에서 출발한 오체투지 순례단이 청계광장과 종로를 거쳐 오후 4시30분경 조계사에 도착하였다.

사진 = ORIBAL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열사들이여, 일어나~!

SG103922.JPG

광주민주화운동과 용산참사로 희생된 열사들에게 김광석의 '일어나'를 연주하며 열창하는 김강산(7세)군 - '광주민중항쟁기념 및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 中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