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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1.

네이트 아이디를 도용당했나보다.

아는 분이 전화를 해서 "지금 메신저 사용안하시죠? 도용당한 듯 해요"

얼른 접속해보니 아는 분께 돈 꿔달라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한다.

아마도 옥션 때문인 듯.

명의도용 피해자모임에 가입하고 거금 2만원이나 내고 소송에 참여했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재판을 너무 오래 끈 거 아닌가?

관심이 활화산 같을 때에는 조용히 있다가 긴 시간이 지난 후 있는 사람들 편을 드는 이 국가.

tv를 안 본 지 오래 되어서 박성광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자꾸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어제는 '국민연금 자격취득 신고촉구문'이라는 걸 받았다.

5월 25일까지 신고하지 않으면 기준소득월액을 140만원, 보험료 126,000원 으로 책정하겠다 한다.

기가 막혀서.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연초에 미디어교육 지원사업에 신청하느라 법인으로 보는 단체 어쩌고하는 걸 만들었는데

그거 만들었다고 그런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전화해서

 "우리는 법인으로보는 단체라는 곳이라 수입이 없는 곳이다"

라고 했더니 그럼 비영리라는 걸 증명하라고 했다.

다시 "법인으로 보는 단체라는 곳은 비영리인 곳만 가능하다. 영리단체는 개인사업자를 내면 된다"

했더니 "그런가요? 아무튼 비영리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정관 같은 걸 팩스로 보내라" 한다.

'법인으로 보는 단체'는 국세청에서 부여해준 지위인데 

그게 수입이 없는 단체라는 걸 국민연금관리공단은 모른다는 얘기다. 

이건 뭐...자기네끼리도 서로 모르면서 일괄 적용하겠다니 황당할 따름.

 

남편의 해외출장 때문에  이번 주에는 일산 엄마 집에 갔다.

사실 주말에 집에서 좀 쉬고 싶었으나 아이들이 가자고 조르기도 했고

사무실에 어떤 분이 두릅, 취나물, 버섯을 보내오셨는데 사무실 냉장고가 시원찮아

주말을 지내면 다 상해버릴 것같아서 싸들고 엄마집에 갔다.

엄마가 좋은 것들이 벌써 다 상해버렸다고 아까워하시며 앞으로 이런 짓 하지 말라신다.

받은 즉시 데쳤으면 될 걸 가져오느라 다 상해버렸다고 속상해하셨다.

 

어떤 이들에게는 선물이 부담이 되기도 한다.

사무실은 일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가사노동에 익숙치않은 이들에게는 부담이다.

나 또한 가사노동에 익숙치 않다.

두릅이나 취나물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면 어찌어찌 할 수도 있겠지만

그 택배는 금요일 오후에 도착했고 내가 퇴근할 무렵의 사무실에는 나밖에 없었다.

엄마는 나보고 게으르다 말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무능한 거다.

엄마는 뚝딱 할 수 있겠지만 나한테는 하루 일이고....그 일 말고도 할 일은 널려있다.

엄마 집에 가면 쉴 수 있다. 이 말은 엄마가 내 일을 대신 해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푹 자 본 적이 백 년 전만 같다. 그리고 내가 쉬는 만큼 엄마가 바쁘다.

엄마. 미안.

 

갈수록 새 집의 단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에 집 앞에서 모르는 아저씨가 우리 집을 열심히 보시길래 "누구세요?" 하고 물었더니

25년 전에 2층에서 살던 분이라 한다. 이 집은 그만큼 오래되었다.

퇴근하고 문을 열면 악취와 열기가 집안 가득 고여있다가 후다닥 달려든다.

하수구 냄새 때문에 싱크대는 물을 받아두고 욕실 하수구는 물통으로 막아두는데도 그렇다.

물을 틀면 갈색이다. 1~2분 정도는 흘려보내야지 맑은 색이 나온다.

창문에는 방충망이 하나도 없어서 모기 걱정에 문을 열지 못한다.

내가 방충망 공사를 부탁할까 했더니 남편이 직접 하겠다 한다.

과연 이 여름 안에 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맑은샘공부방 하니샘 말씀, "그런 건 전세를 구할 때 주인집한테 요구를 했어야 한다"

 

우리는 정말 무능했다. '집 구할 때 체크포인트'를 프린트해서 들고 다니며 보았으나

그 항목 어디에도 그런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상식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물이 잘 나오나 틀어보긴 했으나 이 집은 대가족이 살던 집이라 항상 물을 썼을 것이다.

녹물은 낮시간동안 집을 비웠다가 저녁에 들어왔을 때, 그렇게 오랜 시간 안 썼을 때 확인가능하다.

방충망도, 집 뒤의 폐가도, 내가 프린트해간 문서에는 안나와있었다.

3층 건물의 3층 집이라 무척 더울 것이라는 얘기는 이사 전날 들었다.

이전에 살던 사람들이 "여긴 에어콘 없으면 하루도 못 살아요"라고 알려주었다.

동생한테 얻은 에어콘을 다는 데 설치비만 20만원이 넘었다.

벌써부터 에어콘을 쓸 수는 없어서 집에 돌아오면 일단 아이들을 씻긴다.

애들이 '장금이의 꿈'을 보는 동안 얼른 밥을 차린다. 안 그러면 앵두가 투정을 부린다.

 

우린 정말 너무 무능하다. 

매번 이사 때마다 집안 정리는 언니와 엄마들이 해주었다.

엄마나 언니는 힘껏 도와주고도 무능한 나 때문에 남편에게 사과를 한다.

지금도 엄마는 매일 전화할 때마다 무슨 반찬에 밥을 먹냐고 묻는다.

일요일, 집으로 돌아올 때엔 주엽역까지 따라오셔서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셨다.

넷이서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에는 이력이 붙었다고 말하는데도  엄마는 한숨이다.

나의 무능이 엄마를 울린다.

 

3. 우리 하돌

어린이집에서 아이들 상담을 했는데 하돌 담임선생님한테 들은 얘기. 

주말 보낸 이야기를 하는데 하돌한테 사탕이 두 개 있어서 앵두한테 줬는데

앵두가 삐진 상태라서 그걸 안 먹겠다고 하니까 하돌은 사탕 두 개를 씹어서 먹어버렸다 한다.

하돌은 두 개가 있으면 나눠 먹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건 알지만 사실은 주기 싫었던 거다.

그래서 앵두가 안 먹겠다고 하는 순간, 저 애의 마음이 바뀌지 않을 동안 얼른 먹어버린 거다.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서 하돌에게 물었다 한다.

"하돌아, 너는 뭐가 제일 힘드니?"

하돌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한다. "양보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선생님이 "하돌아, 양보 안해도 돼. 하기 싫으면 안해도 돼"라고 말하니까 얼굴이 환해지더란다.

 

그 말을 전하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하돌은 정리정돈에 철저하고 항상 아이들에게 양보를 하는 아이이다.

그런 하돌을 보면 어린애가 너무 힘들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편안하게  지내라고 말해주는 게 필요한 것 같다..."

 

하루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 때면 두 아이가 양쪽 팔을 하나씩 베고 한 아이는 배 위에서 잔다.

배 위로 올라오는 애는 항상 앵두인데 배 위에 있는 게 불편하니까(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바닥으로 굴러내려오는데 항상 하돌 쪽 팔로 굴러 내려온다.그러면 하돌은 엄마 옆을 뺏기게 된다.

그게 가능했던 건 하돌이 양보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매일 밤 "앵두가 잠들면 안아줄께" 말하지만 모두들 그렇게 잠이 들어버린다.

상담을 하고 온 날은 내가 선언을 했다.

"자,  이제부터는 순서를 정해서 돌아가면서 잘 거다. 이제 앵두도 클만큼 컸으니까 차례를 지켜야해"

앵두는 흥! 하더니 우리가 모른 척 하자 엎드려서 울고 불고 하다가 아빠를 부르며 난리다.

앵두가 난리를 치다가 하돌을 발로 찼다.

하돌이 말했다. "가족이라고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깜짝 놀랬다.

사실 하돌은 그동안 나한테, 앵두한테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던 것같다.

 

공평하기가 쉽지가 않다.

새로 아이를 낳고 나면 그 아이한테 눈이 맞춰져서 위에 아이들은 거인처럼 보인다.

그 아이도 어린 아이인데....그렇게 되어 버린다.

나루가 나한테 "첫째니 둘째니, 여자니 남자니 그런 거 없이 키웠으면 좋겠다"고 한 말을

잊지 않으려 하는데 자꾸자꾸 놀랜다.

하늘은 큰애라 항상 내가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하돌은 순해서 자연스럽게 양보를 하고

가장 어린 앵두는 엄마의 이런 편파적인 시선에 힘입어서 독불장군이 된다.

이제라도 공정해지려 노력해야겠다.

 

4.자리 정리

캡쳐에 들어간다. 이번 작업은 너무나 기대된다.

 

5. 재활용

금요일 저녁,  집 앞에서 재활용품 모으는 아주머니가 집에 뭐 없냐고 하셔서

재활용품들을 가지고 나왔는데 그사이 하늘과 앵두에게 천원씩, 하돌에게는 570원을 주셨다.

하돌에게도 천원을 주고 싶은데 돈이 그거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어른들은 아이들이 귀여우면 자기 마음을 기쁘게 해줘서 고맙다고 돈을 주신다 한다.

재활용품들이 고물상에서 얼마에 팔리는지 들은 얘기가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괜찮다고(의례적인 게 아니라 진심을 담아서) 괜찮다고 말을 하다 결국 받았다.

마음은 마음이니까. 그 순간의 거절은 정말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 퇴근할 때 사무실에 있는 재활용품들을 들고 갔다.

아주머니를 만나서 그걸 드렸더니 너무나 기뻐하시면서 또 천원씩을 주셨다. ㅡ.ㅡ

이 은혜를 어떻게 해야 할지....고민.

결국 더 열심히 재활용품들을 모아서 가져가기로 결심.

 

6. 다시 재활용

이번 달엔 세 편의 글을 썼다. 그 중 하나는 블로그에 썼던 글을 재활용했다.

첫번째 글:

삶이 내게 준 선물

재활용이 미안하긴 했지만 '나를 변화시킨 어떤 순간'이라는 게 주제였기 때문에

그 사건 만큼 내게 큰 계기를 준 걸 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원래 청탁한 곳에서는 글이 안 올라오고 다른 데 올라갔는데 오타가 두 군데나 있다.

원문을 확인해보니 내 글의 오타는 아니고 그 쪽에서 올리면서 생긴 오타인 것같다.

 

두번째 글: 

내가 꿈꾸는 마을

http://www.icoopweb.or.kr/bbs/view.php?id=3333&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

 

처음에 달걀 한 알의 추억 을 썼는데 아무래도 걸려서 이렇게 고쳤다.

그 쪽에서 고쳐달라고 한 건 아니고 내가 "좀 걸리죠?" 했더니

정확히 '한살림'이라고 이름을 쓰든지 아니면 고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생협 간에 괜히 사이를 나쁘게 할 일은 아닌 것같아서 내가 스스로 알아서 고쳤다. ^^;

 

세번째 글: 아이가 보는 세상

 

몇 주 전에 초롱이를 찾으러갔다 왔더니 남편이 전화왔었다고 전해주었다.

펑크난 원고 때문에 급하게 부탁받았다. 신문이 나온 후 남편에게 괜찮았어? 하니 영 떨떠름하다.

나도 좀 그랬던 게 '생활단상'이 아니라 '영성생활' 꼭지에 실렸기 때문이다.

성공회 발간물 중에 '생활과 묵상'이라는 책자가 있는데

거기에 글 쓰시는 분과의 대화 중에 내가 했던 말,

"난 생활은 하는데 묵상이 안 돼"

묵상이 안되는 나의 글이 '영성생활'에 실려도 되는 것일까?

잠깐 고민하였다.

 

성공회신문은 어렵다.

 

내가 다니던 곳은 성결교회였다. 내가 뭘 물으면 전도사님이 그러셨다. 

"하나님의 일을 인간의 눈으로 판단하지 말아라"

성공회에 와서 가장 좋았던 건 나의 궁금증을 죄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성공회소개 라는 글에도 나오지만 '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신비를 믿는다'는 사실이

나는 좋았다.

아버지는 교회를 싫어하셨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시기부터 교회를 다녔고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발길을 끊었다.

서른이 되어서 성공회를 만났을 때 그 분위기와 교리와 모든 것들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러나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한 신부님이 나름의 필화사건을 겪으시는 걸 보면서

'역시나 교회는....' 하는 생각을 다시 꺼내려 하다가 다시금 고쳐먹었다.

'다양성 속의 일치'라는, 쉽지 않은 이상향이 구현되는 과정이라고.

그 다양성 중의 하나로 나도 있고 신부님도 계시는 거고...

우리는 끊임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일치를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는 것이라고.

 

그래도 여전히...성공회신문은 어려운 지면이다. 

 

아이가 보는 세상(성공회신문)

 

3학년 하늘이의 공개수업에 갔다. 갔는데......

하늘이의 짝꿍 남자애가 다문화가정의 아이였다. 하늘이는 집에 돌아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실황중계하듯이 전하는 아이인데 왜 이야기를 안했을까 궁금했다. 공개수업이 끝나고 함께 집으로 오는 길에 하늘이에게 물었다.

“네 짝꿍은 이름이 뭐야?”

“응. 00이야. 이름 되게 특이하지? 우리 반에는 요나, 마루, 이렇게 이름 특이한 애들 되게 많아~!”

하늘은 모르는 듯했다. 내 딸이 그런 아이라는 게 참 좋았다.

 

서른 살에 처음으로 성공회 미사를 드렸다. 그 때 들었던 고린도전서의 말씀은 가슴이 뭉클할 정도의 감동을 주었다.

‘여러분은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그 지체입니다(고린도전서 12:27).’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 교회를 떠나있었던 10년 동안 나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라는 원망을 자주 했었다. 세상은 짐작과는 다른 일로 가득 차 있었고 친구들은 자기 자리를 찾아 잘도 떠나갔다. 세상이 나 혼자만을 남겨두고 성큼 나아가는 것 같은 생각에 빠져 막막함과 외로움에 지쳐있을 때, 그 때 내 영화의 주인공들인 지적 장애인들을 만났다.

 

나는 처음에 그분들이 왜 장애인으로 분류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타인과의 사이에서 소통장애를 느끼는 나는 장애인이 아닌데, 지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장애인으로 분류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나라서 그분들과의 만남은 내게 축복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그들은 생전 처음 보는 나를 반갑고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 분들은 녹슨 면도칼이 몇 번이나 지나간 내 삶의 동맥을, 치유되지도 끊어내지도 못하는 남루한 내 삶을 어루만져주었다. 그 분들이 내민 따뜻한 손길 안에서 나는 평안을 얻었다. 그리고 주님을 다시 만났다.

 

 

서른 살부터 마흔 살까지 주님이 함께 하신 10년 동안 나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왔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심통을 부리거나 누군가에 대한 원망에 빠져있을 때, 남편은 내게 말한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천사만 보내신다’고. 그 말 덕분에 조금 변한 나는 내게 일어나는 일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내가 알아야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 중이다.

 

며칠 전, 하늘이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하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2주일 마다 제비뽑기를 해서 짝을 바꾸는데 그동안 00랑 잘 지냈던 애는 하늘이밖에 없었어요. 다른 여자애들은 00이가 싫대요. 그냥 싫대요.”

하늘이는 여전히 모른다. 하늘이에게 00는 다른 애들에 비해 검은 피부와 크고 짙은 쌍꺼풀을 가진, 그렇게 생긴 또래 남자애일 뿐이다. 언젠가는 하늘이도 자신이 00에게 가지는 느낌과, 다른 아이들이 00에게 가지는 느낌의 차이를 알 것이다. 차이와 차별의 경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드문 축복이다.

 

장애인 관련 영화를 만들거나 소개하면서 항상 말해왔던 나의 유토피아는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이다. 엄마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뭔지를,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하늘이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 하늘이에게 천사를 보내셨다. 나는 그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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