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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2003년 10월 15일

 

 

 
 

 

이필렬. 2002,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녹색평론사.

 

땅을 파면 쇠붙이가 나오기 마련이라던가. 종종 만나는 일이지만 이런 식의 인연이 그리 특별히 여겨진다기보단 이젠 자연스러울 뿐이다. 얼마 전 만난 사촌형과의 대화 중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 화제가 부안 위도 핵폐기장 건설유치 문제로 넘어가게 되었다. 투철한 예비역 병장 정신과 그의 인생 길가의 코스모스 같은 술병으로 무장한 형은 이렇게 말했다.

 

"새만금은말야, 사업 반대에 대해 원칙적으로 이해가 가는데, 핵폐기장은 도대체 이해가 안 돼. 너 지금 이렇게 당장 쓰고 있는 전기 만드는 데 쓰이는 핵발전 폐기물 당장 가져다가 묻어야 될 거 아냐. 과정이 비민주적이라고 해도 가는 곳마다 반대인데, 우선 만들어 놓고 이후의 폐기장에 대해선 민주적인 과정으로 장소를 확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언제나 그래 왔지만, 이런 부분에서 나는 나의 허약 체질을 드러내고 한계를 드러내 왔는지라 군대 생활동안 뉴스를 통해 그런 일이 있었다 "카더라" 뭐 이런 얘기를 들었을 뿐인, 그래서 그 따위가 변명이 될 수 밖에 없는 나의 현실을 "음, 좀 알아보고 생각을 정리해 봐야겠어"라는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이런 나에게 제목상으로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 책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석유의 매장량에 대한 보편적인 예측의 강한 부정으로 시작하며 그리 낯설지 않은 캠벨의 종모양 곡선 등으로 단순명쾌하게 석유시대의 종말을 고한다. 현재의 발전산업과 민영화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약간 모호한 접근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런 그의 접근방식 또한 여전히 유효했다

 

핵 발전 ... 그 누가 이것을 100% 안전하다고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우라늄 역시 석유와 마찬가지로 제한된 지역에, 제한된(그리 오래 가지 않을)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망각하기 쉬운 일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열거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저자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이 안겨주는 가장 큰 충격은 바로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분석과 대안인 것이다.

 

석유를 대신할 대체 에너지의 중요성은 끊임없이 강조되고 있고 최근에는 전혀 무공해라는 브라운 가스(수소를 이용한)와 수소를 통해 전기에너지를 전환하는 방식 등이 호들갑 속에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수소 역시 사태를 돌파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단호히 못박는다. 수소 역시 수증기라는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점에서 엄밀히 따지면 대안에너지로 보기 어렵다고도 한다.

 

석유시대가 만들어 낸 에너지 시스템의 핵심은 바로 "집중"이라는 것이다. 오일쇼크와 캘리포니아 정전 대란,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실례가 있듯이 석유와 천연가스, 핵으로 이루어진 에너지 시스템은 반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대규모로 집중되어 있다는 위험성을 가진다.
 

 

인간 세계의 정치에 있어서의 문제도 화석에너지 시스템과 더불어 권력의 집중 문제이며, 마찬가지로 발악을 하고 있지 않은가. 태양열, 풍력, 소수력 발전과 같은 순수한 대안/대체 에너지가 아닌 '재생가능'에너지와 함께 최대한 마을 단위의 '분산된 시스템' 또한 이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

 

참, 처음의 문제에 대한 답을 깜빡할 뻔했다. 현재의 핵폐기물은 임시 저장 장소에 수용이 충분히 가능하나 2010년까지 5-10기의 원전을 증설할 계획 때문에 정부는 위도 처리장 건설을 서두르는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비민주적으로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를 확보할 필요까진 없으며, 그보다, 원전 건설 계획을 취소하고 단계적으로 현재의 원전 역시 철거해 나가야 한다. 눈 앞의 전력 수요 증강만을 생각한다면 훨씬 더 큰 문제에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부딪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과 모델을 연구하고 이것을 통제가능한 분산된 범위에서 적용해 나가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난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란 인간은 환경에 대해 조금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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