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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앤 더 시티의 찝찝한 솔직함

2003년 10월 10일

 

나는 TV와 별로 친하지 않았었는데, 그것이 유용하게 설치되어 있는 생활을 맞이하게 되면서 종종 그 네모난 상자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물론 가장 짜증나는 것이 재미를 쥐어 짜내는 쇼 프로그램과 그럴 듯 해 보이고 그나마 쓸만해 보이는 교양프로그램일 것이다. 그 가운데 놓치지 않고 보게 된 것이 거의 전 세계의 테레비를 움켜쥔 미국산 드라마라니 이것 참.

 

<프렌즈>의 인기를 되받아 이어가고 있는 <섹스 앤 더 시티>와 제작자의 파워란 이토록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그것이다. 이 HBO의 두 개의 거대한 남근 프로젝트 중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중간쯤부터 본연의 지루함을 드러내어 방송시간을 망각하기에 이르렀으나, 종종 쏠쏠한 재미를 선사하는 무시무시한 연출로 시청자를 묶어놓는 뉴욕의 스타일리쉬한 네 명의 노처녀 이야기 <섹스 앤 더 시티>는 왜, 심지어 스파이크 리 마저 제작 조건 운운하며 필름을 포기하고 케이블 TV로 선회하였는지를 실감나게 한다.

 

예컨대 오늘 방영분의 두 에피소드는 72세 노인인 억만장자를 낚은 사만다가 "old dick"을 감수하고 잠자리까지 가지만 결국 그의 축 처진 엉덩이를 보고는 도망 나오고 / 바텐더와 사랑에 빠진 변호사 미란다가 현대판 카스트인 경제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헤어진다는 두 스토리를 축으로 꾸며진다.

 

이런 것들을 통해 뉴욕이라는 메트로폴리스에서 결혼이라는 '여성의 무덤'에 이르는 조건들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특히 섹스에 있어서도 멋들어지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네 명의 노처녀들의 일과 사랑과 섹스를 깔끔담백하게 그려 내는 척 하지만, 결국 그녀들의 미래가 '남자'에게 귀착되어 있고, 뉴욕 중상류층 사회라는 물질적 조건을 망각하게 하여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보다는 오도된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복잡멍청하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매번의 에피소드가 정작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도 이 TV 시리즈물은 솔직하지 않은가. 찝찝하게 솔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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