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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되돌아보게한 평택생협 방문...

5월30일 토요일, 양쪽으로 나무가 예쁜 2차선 외각길을 한 시간 가량 달려 점심때 즈음이나 되어서 평택생협에 도착했습니다.

앞으로는 평택호가 보이는 야산자락에 자리잡아 한없이 평화로와 보이는 이곳,

황토벽돌과 나무로 지어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요즘 탈학교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이런저런 놀이공간으로 사용하는가 봅니다.

 

우리가 도착하자 남은들과 언니, 동생들이 반갑게 맞이하였고, 모처럼 손님들이 온다며 가마솥에 닭을 삶고 있었습니다.

마당 한가운데는 닭백숙에 넣을 엄나무를 구하러갔다가 잡아온 새끼오리 네마리가 조그만 상자에 담겨져서 삐약거리고 있었고...


차에서 내린 우리는 사무실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이곳에 살고싶다는 말은 연거푸 토해냈고,

뒤늦게 올라오신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맛있는 닭백숙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원래 생각은 점심을 먹으면서 조금씩 대화를 나누려고 했지만,

나무그늘에 둘러앉아서 함께 먹는 밥맛이 얼마나 좋던지 다들 별다른 대화없이 먹는데 열중했고(^^;),

이것을 눈치챈 선생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자십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마을구경을 하며 동네 어귀에 있는 ‘아침에 집’으로 갔습니다.

이곳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집이라기보다는 학교인데, 탈학교운동을 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함께 살면서 삶을 배우는 곳입니다.
아담한 흙집주변에 텃밭을 가꾸고, 뜰에는 온갖가지 나물과 관상용 화초를 심어놓아 우리 삶은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실 분위기를 봐서는 그저 편하게 있다가 돌아갔으면 했는데,

그래도 탐방을 왔기에 우리는 이것저것 준비한 질문들을 물어봤고 이에 소금꽃 선생님께서 열심히 답변해 주십니다.

 

소금꽃 선생님은 공동체는 ‘운동’이 아니라 ‘삶’이라고 하십니다.

수 만년 된 인류의 역사가 공동체의 역사였는데, 근래들어 공동체의 뿌리가 파괴되기 시작했다며,

고작 200년 정도의 잘못된 파괴, 수탈, 야만의 자본주의역사에 맞서 호혜평등의 관계, 자연, 인간과의 교감을 갖는 것이 필요하고, 그래서 야만의 역사를 넘어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역사를 다시 가는 길이 바로 공동체적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참 어렵기만 해보이는 ‘비자본주의적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이냐?’라는 물음에

자급자족하고 자존적 가치를 갖는 것, 그래서 농사를 지어 스스로 먹거리를 생산하고, 스스로 노동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시장을 통해 구하지 않는 것, 그리고 환대의 문화를 살려 손님을 맞아 있는 것을 나눠주고, 내 것을 내어주는 생활방식을 다시 만들어야 한답니다.

 

요즘 생협하면 대명사처럼 떠오르는 유기농 먹거리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하십니다.
“유기농하면 건강한 먹거리를 먼저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땅을 자연적으로 살리는 농사법입니다. 요즘은 유기농도 상품화되고 있어요~ 하긴 자본주의에서는 뭐든 다 상품화 되어버리니... 일단 그냥 농사를 지어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농사란 것은 자급자족하는 것,땅을 살리는 것 이예요.”

 

탈학교운동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다가 갑자기 옆의 친구에게 묻습니다.
“학교에서 뭐 배웠어요?”
“... ...”
순간, 아무말도 못하는 일행들에게 우리가 살아오면서 교육과정을 통해 경쟁등의 자본주의적 습관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다면서 그것을 깨달은 이 순간, 단 일분일초라도 그런 잘못된 교육을 더 받을 이유가 있겠냐고 하십니다.

탈학교와 비자본주의적인 삶을 말씀하시며 이해하기 쉽게 예를 하나 들어주시는데, 내 삶이 그렇지 않았나 싶어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수렁이나 똥통에 빠지면 일단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오고 나서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아요~ 일단 나와야 그다음이 있는건데...”
자본주의적 삶을 계속 유지할 이유가 뭐냐면서, 그리고 학교에서 자본주의에 적응하는 그런 교육을 받을 이유가 무엇이 있겠냐면서,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학교를 그만두려면 그 이후에 뭘 할지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결국 그만두지 못한다며 소수로 남는 두려움을 버리면 그때부터 무한한 자유가 보인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시작한 질문은 잠시 툇마루에 걸터앉아 쉬는 시간에도 계속되었고, 다들 그 분위기에 빠져 저녁식사까지 신세를 지고가기로 했습니다.


저녁은 쌈밥이었는데, 텃밭과 앞뜰에서 가득 채소꺼리를 뜯었습니다.
질경이, 씀바귀, 상추, 참나물, 부추, 토종마늘, 토종상추... 그 외에 이름도 모를 수많은 나물들...
‘아, 나는 그간 무얼 배웠었던가? 내가 먹는 나물이름조차 모르는데...’
향기 가득한 야채에 쌈을 싸서 밥을 두그릇씩이나 비우는 동안 무의미하게 보낸 10여년의 학창시절이 아쉽기도 하고, 성찰없이 자본주의의 흐름속에 바쁘게 굴러가는 내 삶이 참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설것이를 하러 부엌에 가보니 씽크대가 원형으로 되어있습니다.

혼자서 주방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마주보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요리를 할 수 있게끔 배려를 한 것입니다. 아마도 집안 곳곳을 더 꼼꼼하게 들여다본다면 이런 수많은 배려들이 조금씩 드러날텐데...

 

 

맛있는 저녁을 먹고, 건강하게 사는 방법까지 덤으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일행은 수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들 너무 좋았다면서, 누구는 자녀의 탈학교상담을 위해 다시 방문한다고 하고, 또 누구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이곳에 지내면서 삶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기위해 조만간 다시 들리겠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침에 집’ 거실에 붙어있는 글 하나를 소개하고 마칠까 합니다.
 
밤에 눈이 왔습니다. 마당을 쓸려는데 비가 없습니다. 옆집 헛간 앞으로 등걸만 남은 몽당비 하나가 반쯤은 눈에 묻혀 비죽이 나와 있는 게 보입니다. 빌린다고 말도 않고 가져다가 마당을 쓸었습니다. 탁탁 털어서 헛간 옆으로 아무렇게나 내놓는데 옆집 영산할배는 굵고 튼실한 비를 들고 웃고 계십니다.

“내비둬, 그거 빗자루라구 쓸어지기나 하능감”

 

빌리고도 빌린다 말하지 않고 주고도 가져라 생색부리지 않고 그저 몽당빗자루만한 사람하나 되어보고 싶었습니다.  

 

                                                                                                 소금꽃님의 -몽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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