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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고통에 함께하기

주변에 투쟁사업장이 늘어난다.

평택쌍용자동차가 옥쇄파업을 하고있고, 오산에서는 캐리어공장이 공장폐쇄를 하여 80여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을지키며 농성을 하고있다. 도청에서는 파카노동자들이 노숙농성중이고, 88cc, 대학노조등 비정규직 해고가 시작되었다.

구조조정, 정리해고, 비정규직 대량해고...

언제부턴가 이 사회는 함께 살기보다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들만 살수있게되었다. 그 경쟁의 기준은 철저히 자본의 맘대로여서 어느누가 그 경쟁에서 도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공포감... 절망감...

더구나 지금의 사회는 철저히 개인화되어서 그 공포와 절망감은 몇 배 심할수밖에 없다.

정리해고 투쟁이 한창인 쌍용자동차에서 2명이 스트레스로 인한 심근경색과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파업을 흔들려는 사측의 회사정상화집회(?)에 강제로 참여하면서 심한 갈등과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그 중심에 서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심적부담을 느끼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쌍용자동차 파업과 관련된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정리해고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의 글들이 보였다. 

그 사람의 논리를 보면 정리해고 당하는 몇몇이 공장을 점거해서 나머지 사람들까지 어려워진다는것과 경영상 그럴수 밖에 없다는 거다.

정말 무섭고 소름끼치는 말이다.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경쟁에서 도태되었으니 죽어라'라고 말하고있는거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

내가 살아남기위해 남을 죽일수있는 사회, 아니 죽여야하는 사회...

 

얼마전 괴산 친구네 놀러를 갔는데, 화제로 집을 잃은 친구를 위해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살곳을 장만해주었다고한다. 먹을것도 가져다주고, 생활용품도 나눠주고...

공동체문화가 살아있으면 보험이 필요없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함께 살기위해 나눠주고 내것을 내어주고, 서로돕고...

내가 어려우면 또 누군가가 도와준다.

이것이 사람사는 사회인데...

 

우리는 언제까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공동체, 더불어 사는 삶이 아닌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할것인가?

어디서부터 개인화되고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를  '함께 사는 사회'로 바꾸어 나갈것인가?

 

시대의 비극인 용산참사, '돈'으로 미래를 보장받으려는 일반 사람들의 마음이 없었다면,

'개발'이 그렇게 살인까지 할수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작용할수 있었을까?

 

경쟁, 나만 살려고하는 개인주의가 만연하지 않았다면,

정리해고가 그렇게 사회적으로 용인될수 있었을까? 

 

나를 위해 주변의 모든것을 도구로만 바라보지 않았다면, 더불어 살려고했다면,

비정규직이 이렇게 만연할수 있었을까? 그들을 그렇게 거리로 내몰수 있었을까?

 

그래서 우리모두는 주변의 그런 고통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자유로와서는 안된다.

'주변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는 절대적 진리를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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