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from 영화에 대해 2003/08/26 03:50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들에게 바칩니다'

마지막 문구를 읽으면서 '딸꾹 딸꾹'거려가면서, 그 후로도 한참을 꺽꺽 울었다.

참 오래전부터 봐야지 봐야지 벼르던 영화였는데,
꽤 오래 비디오로 출시가 안되었더랬다.
최근에 기회가 되어 보는 내내 내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워낙에 내가 영화를 볼때만 잘 울기는 하지만,
최근 본 영화가운데 가장 눈물나는 영화였던 것 같다.

그녀의 이전 작인 '미술관 옆 동물원'은 상당히 못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집으로'는 어느 정도 잘 만든 영화였다.
그녀는 시골 깡촌에 사시는 할머니와 서울 아이가 만나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담담하면서도 매우 긴장감있게 펼쳐낸다.
별 대단한 이야기도 없건만 영화가 지루하지 않다.
구구절절 설명은 모조리 빼버리고
자잘한 사건들(사건이라기 보다는 이미지에 가까운)만 얼기설기 엮어놓았는데
그게 참 탄탄하게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 간다.
할머니의 연기는 내가 본 그 어떤 배우의 연기보다 훌륭했다.
할머니는 연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나니 실컷 울기는 했는데, 감독이 말하려는게 뭔가 싶다.
생각해 보면 사실 별거 없다.
그런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나는 왜 그렇게 울었나 되물어본다.
첫째는 할머니가 사무치도록 고독해보여서 였다.
할머니는 정말 그렇게 고독했을까? 사실은 잘 모르겠다.
상우가 나타나지 않았어도 마을 분들과의 단조로운 관계들 속에서
잘 지내셨겠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상우가 폭풍처럼 왔다 감으로써 할머니 맘에 흔적이 남아
삶의 의미가 늘었을 지도 모른다 싶기도 하다.

둘째는 짜장면 때문이었다.
먹을 걸로 차별하는게 세상에서 젤 슬픈 거 아마 아는 사람은 다 알거다 싶다.
어렸을 때 엄마가 동생만 맛난 거 주면 진짜 맘속에서 서러움이 북받쳤다.
상우가 짜장면을 먹는데, 할머니가 안 드신다.
돈이 없으셔서이기도 했지만, 아마 있었어도 안 드셨을게다.
있으면 그 돈으로 딴 거 사주셨을 게다.
그게 참 눈물났다. 왜 눈물이 났을까?
할머니 자신보다 상우를 생각하는 마음에 감동해서였을까?
그러는 할머니가 안스러워서였을까?
가난하니 마음 짠 한 일이 있다. 그게 아름다운가?
그걸 모르겠다.

셋째는 할머니가 잊혀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장면에 상우가 쓴 엽서들은
할머니가 잊혀질 것임을 더더욱 확실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로써 훌륭하게 작동했다.
상우의 할머니에 대한 맘이 간절해서,
그 간절한 마음이 하찮은 편리에 의해 사라질 거라는 게,
할머니를 돌볼 이는 없을 거고
상우는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할머니를 막연하게 그리워 하며 눈물을 지을 거라는 게
눈물을 쏟게 했다.

시골마을은 그렇게 아름다운가?
외할머니들은 모두 그렇게 헌신적인가?

참 현실적인 영화같지만 참 동화같은 영화다.
참 예쁜 것만 보았구나 싶기도 하다.

이정향 감독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
잊혀진 외할머니를 그리워 하는 거 말고
어떤 손녀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어떤 외할머니가 되어야 하는데?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는데?
아마도 그녀는 이 영화에 그런 대답이 조금이라도 섞이지 않게 하려 애썼을 것이다.
나름대로 리얼리즘 영화인 것이다.
그대로 보여주기 리얼리즘 영화인 것이다.

굳이 명확한 메시지를 담지 않아도 작품에는 저자의 시선이 엿보이게 마련이다.
사라져가는 외할머니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그리움이라니...
석연치가 않다...
이 영화를 보고 이제 저런 헌신적 외할머니 상은 사라져야 해 라고 용기있게 외칠 자가 있을까나

마지막으로, 그녀는 키아로스타미 감독에게 한없이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왜 그에 대한 감사의 말 한 마디 없는 것일까 싶었다.
우연이었는지 모르나 그다지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싶다.
할머니가 돌아가는 길의 카메라 구도라던가 '집으로'라는 제목이라던가
메시지를 직접 던지기 보다 짧은 이미지들의 연속을 통해 보여준다던가
소재도 배우도 진짜 삶속에서 찾아낸다던가, 동네 아마추어 배우들을 쓴다던가
모든 것이 키아로스타미에게 진 빚이 아닌가?
리얼리즘에서 비판을 제외시켰기에 자신은 키아로스타미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도시 중산층 지식인이란 대체 믿기가 힘든 존재들이다.....
아무것도 모르고....무사태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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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26 03:50 2003/08/26 0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