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빌

from 영화에 대해 2004/01/13 11:35
라스 폰 트리예의 작품은 폭력적이다.
핸드헬드 카메라의 시선에서부터
진실과 순수의 여주인공에 대한 잔혹하고 구차한 폭행들까지.
부패하고 있는 날고기를 보고 있는 것처럼 구역질이 난다.

어둠속의 댄서를 보다가는 중간에 극장에서 뛰어나와 구토를 했다.
보는 동안에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더니
끝나고 나서 가슴속에 얹혀있던 응어리같은 것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한 이틀은 앓았던 것 같다.

그가 싫었다.
굳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마구 흔들어 대는 것'이 싫었다.
그가 보여주는 폭력들이 싫었다.
한없이 나약한 진실과 순수가 싫었다.
모든 인간들의 죄를 떠안고 죽어가는 예수의 은유가 싫었다.

인간은 너무 나약해서 진실을 지킬 힘이 없는가?
라스 폰 트리예의 영화가 폭력적인 이유는
나 자신을 극단까지 몰아가서 질문하게 하기 때문이다.
너에게는 진실을 지킬 힘이 있는가?

[미국 삼부작]의 첫 작품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그의 최근 작인 브레이킹 더 웨이브, 어둠속의 댄서와 비슷한 듯 하면서 많이 다르다.
우선은 핸드헬드 카메라가 대단히 절제된 고정 카메라로 대체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차갑게 응시한다.
무대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로 그 장소가 아닌 연극 무대로 대체되었다.
인간들이 서로를 가리기 위해 만든 벽 같은 것은 허상일 뿐이다.
가장 큰 변화는 결말 부분이다.
'또 이런 식이야, 아~ 짜증난다!' 싶을 때
여주인공이 갑자기 냉정한 시선으로 도그빌을 심판하기 시작한다.
그 심판은 통쾌한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절망이다.

얄팍한 해석인지 몰라도, 그러한 변화들은
그의 시선이 같은 인간의 시선에서 신의 시선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고 느껴졌댜.
[미국 삼부작]이라는 타이틀에서 어쩔 수 없이 미국의 9.11과 그에 잇따르는 반응들을
이 영화와 연관짓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이상은 인간이라는 싸구려 변명으로 자신들의 죄악을 지저분하게 감추지 않았으면 하는
소박하고도 진부하고 거창한 소망이 감독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과도한 모욕인 것일까?
결말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냉소적이거나 절망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영화가 열려있기 때문이다.

다음 영화에서 그는 어떤 또 다른 변화를 보여줄 것인가?
미치도록 괴롭히면서도 또다시 다가가게 하는 그의 영화가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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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3 11:35 2004/01/13 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