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인터넷을...

from 우울 2005/04/24 21:51
bear.jpg
집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상당히 느리고 불안정하지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기쁘다.
이러 저러하여 베를린에 왔다.
벌써 온지 한 달이 넘었다.
참으로 긴 한 달이었다.
운좋게 2년유효비자를 받았다.
보통 어학원 등록기간 정도의 비자를 주는 경우도 많다는데
어찌되었건 운이 좋았다.
집계약도 하고 어학원도 끊어서 다니고 은행계좌도 개설하고
기타 등등 하는 사이에 이곳에 봄이 왔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진짜 진짜 추웠는데.
눈도 왔는데.

내 방 창문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갑자기 무성해졌다.
이곳 나무들은 상당히 크다.
내 방 창문으로 보이는 나무들은 대략 이곳 10층 건물 높이 만큼 크다.
이곳 건물들은 한 층의 높이가 우리나라 건물들보다 높으니까
어쨌든 나무들이 진짜 큰 거다.

내 방은 건물 7층(우리나라 8층)에 있는데도 나무들이 크니까
방안에서 창문을 통해 나무들이 보인다.
여기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창가의 라디에터에 앉아서(뜨끈하니 좋다)
햇볕을 받는 나무들을 보거나
노을이 지는 것을 보거나
지나가는 개들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이곳의 개들은 대개 나만큼은 크다.
그리고 무척 순하다.
하지만 아직 한번도 제대로 같이 놀아본 적이 없다.
다들 주인이 있어서 혼자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녀석은 아직 한번도 못봤다.
뭐랄까 사람들이 많은 곳은 언제나 이렇게 조금씩은 답답한걸까?

베를린에는 한국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사실 한국말만 하고 살려면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독일 사람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정도로
외국사람들이 많다.
특히 음악공부하러 온 한국학생들이 어찌나 많은지 좀...끔찍할 정도.

때로는 믿기어려울 정도로 외롭다.
아무와도 아무말도 할 수 없으니까.
나는 이제 너무 까다로워져서
아무하고나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딱히 속한 곳이라고는 어학원 뿐인데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아직 못찾았다.
함께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이야기도 하고
뒹굴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아직 없는 건
뭐 당연한 거지만
그래도 외롭기는 하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생각도 못했던 벽이었다.
한국에 있으면 1년 동안 365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지난 한달 동안 겨우 3권의 책을 읽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사요나라 갱들이여'는 두 번 읽었다.
역시 한국에서 가져온 보르헤스의 책 중에서 한권을 한 번 읽었다.
그리고 이곳 벼룩시장에서 1유로주고 '어린 왕자'를 사서는
더듬더듬 기억을 되살려가며 가까스로 읽었다.
독일어를 빨리 잘 하고 싶어서
한국어로 된 책은 안읽으려 했는데
그랬다간 당장 읽을 수 있는 책이 거의 없다.
서점에 가서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뒤적이는 데도 사전을 몇 번씩 찾아야 하니
답답한 일이다.

어린왕자를 읽는데,
항상 엉엉 울곤하던 부분에서 눈물이 목까지밖에 올라오지 않았다.
쩝.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서 아침먹고 씻고
9시까지 어학원에 갔다가
12시 조금 넘어 어학원이 끝나면 대략 한시쯤 집에 돌아오거나
다른 일들을 보고 2,3시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는다.
TV를 틀어놓고 뒹굴뒹굴 혹은 처리해야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한다.
하우스마이스터를 찾아가서 서류를 낸다거나 등등
저녁을 먹고 잔다.

같은 건물에 살고 같은 어학원에 다니는 한국친구들이 가끔 찾아와서
정보를 주기도 하고 약간 귀찮게 굴기도 하고
같이 파티에 가기도 하고
파티를 연적도 있다.

근데 난 너무 게을러서 그냥 혼자 집에 있는게 더 좋다.
야옹...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4/24 21:51 2005/04/24 2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