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i님의 [타인에게 말걸기.] 에 관련된 글.
어려운 이야기지만,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글이 있어 말하기로 했다.
우선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
이해를 돕기 위한 예제.
7살때 수술을 네번 받고 병원에 1년여간 입원해서 생활한 결과
내 몸에는 깊은 상처가 생겨서,
나는 그 상처와 지금껏 내 몸을 공유해 왔다.
상처는 내 몸을 아주 간단하게 지배해버릴 수 있어서,
나는 상처가 그러지 못하도록 시시각각 노력하는데 습관이 들었다.
상처가 원래부터 나였던 건 아니지만, 상처가 생긴 후부터는 상처도 '나'다.
나는 상처를 미워하고, 돌봐주고, 덧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한편으로 상처받지 않은 내 소중한 부분들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노력하며 살아간다.
요가도 하고, 병원에 가서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의사친구에게 조언을 듣기도 하고...상처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애쓴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나쁜 책이 있었다면,
그것은 '세가지 소원'이라는 책이다.
나는 상처를 없애는 소원에 대해 백만번도 더 생각했었다.
그 몽상은 시간만 잡아먹는 가장 나쁜 몽상이다.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서,
상처는 그 존재를 쉽게 단념하지 않는다.
어쩌면, 상처야말로 내가 가장 소중히 돌봐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말걸기에 대한 이야기.
나에게 있어 타인에게 말을 걸고, 또 그의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공감일 때도 있지만, '인정과 존중'인 경우가 많다.
공감은 쉽지 않다.
같은 경험도 누구에게나 다른 것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상처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특히,
그의 공감보다 더, 인정과 존중을 원한다.
큰 상처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인 약자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조차 힘든 경우가 많다.
상처에 짓밟히고 나면,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 미약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정말 힘든 경험이었을꺼야. 그것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니, 넌 정말 대단해. "
"나는 그런 너를 너무 사랑해."
어쩌면,
"와, 너 그 상처가 있어서 더 멋진 것 같아. 넌 그 상처들을 그렇게 돌봐왔구나.."까지..
그렇게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구나 상처받고 살아. 상처란 상대적인 것이고, 나도 그정도는 상처입었어.
너 스스로 그 상처를 이겨내야 되는 거야."라고
차갑게 생각하게 되거나
"저런 불쌍해라..."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하게 된달까...
역시 어려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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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 소원, 정말 나쁜책인것 같아요=_=;;
인생의 반은 세가지 소원을 생각하느라고 쏟은듯;
마지막 문장을 어렵다.로 쓰고 나면, 어지러워져요;
나의 블로그에도 그런 글이 있다는...
"누구나 상처받고 살아. 상처란 상대적인 것이고, 나도 그 정도는 상처입었어. 너 스스로 그 상처를 이겨내야 되는 거야."
이 말. 나는 많이많이 들었고,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하는 쪽도 듣는 쪽도 기분이 더럽지만 자꾸 이 말이 주변을 맴돌게 되는 이유는 뭘까.-_-
넝쿨 / 맞아여, 맞아. 못읽게 해야돼.
스밀 / 아옹.
당고 / 당고 망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