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07

from 2008/07/07 14:52

[먹고 싶은 게 없어.]

소녀는 생각했다.

 

급식실에서는 물을 뿌려둔 시멘트 바닥 위로

 

고무장갑을 끼고 흰 가운에 흰 작업모를 걸친 사람들이

노란 고무장화를 신고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제법 반짝거리는 커다란 조리기구들.

 

색이 바랜 노란 행주.

 

정액같은 색깔의 뿌연 도마 위에서 묽게 붉은 고기핏물을 흡수한다.

도마 위에는 행주가 지나간 자리가 선명하다.

 

250ml 우유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갈치에서는 시체냄새가 난다.

쌀알은 느끼해. 침에 섞이면 들척지근한 맛이 난다.

김치는, 정.말. 끔찍하다. 지저분한 냄새가 난다.

모든 것들이 으깨져서 창백한 배추의 시체를 덮고 있는 몰골이 가관이다.

무 국의 무는 물컹물컹하다. 피곤에 쪄든 채로 안간힘을 쓰는 게 짜증난다.

 

소고기. 국 안에 든 소고기는 쫄아들 대로 쫄아든 상태다.

내 장딴지를 네모나게 잘라서 무가 든 국물에 넣고 30분쯤 삶으면 이런 모양이 나오려나.

 

종아리를 내려다 본다.

둥글고 매끈하게 생긴 저 다리도, 잘 끊어 잘라서 삶아놓으면 이렇게 잘게 찢기 쉬운 모양이 될거다.

칙칙한 갈색으로 변한 자신의 살덩이.

 

시체들을 먹고 자라는 거니까. 어차피.

 

어떤 시체들을 먹고 자라는 건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라고 싶지 않다.

 

물.

 

물은 종교적이다.

더러운 것들을 다 씻기고 어루만져주고 투명하게 된다.

몸 안에 들어가서도 그럴까?

종교적인 것은 가식적이다.

투명해 보이지만 그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하느님만 알 일이다.

 

[먹고 싶은 게 없어.]

 

급식판을 내려다 본다.

 

역겨운 것은 아니다.

 

원래 그렇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역겨울 것은 없다.

하지만,

식욕은 당기지 않는다.

 

식판에 담긴 걸 그대로 퇴식구에 갖다 놓으면 학주한테 걸려서 된통 혼난다.

 

식판을 들고 교실을 나서자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침과 음식물을 튀겨대던 아이들이

일순 조용해진다.

 

그리고 곧 똑같은 데시벨로 웅성거림이 시작된다.

 

식판을 들고 교문을 나선다.

 

거리는 조용하다.

바로 옆 건물에서 수천명의 여자아이들이 제각기 입을 오물거리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쓰레기통 옆에 식판을 내려놓으려고 할 때,

 

두 사람이 소녀에게 말을 건넨다.

 

"이봐 학생!"

"저기..."

 

한 사람은 수위아저씨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식판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

 

수위아저씨가 가까이 온다.

 

식판을 향해 내민 손이 움찔한다.

 

"이 학생, 이거 무슨 짓이야! 에비! 쉿쉿, 저리 가!"

 

 

식판을 도로 들고 들어왔다.

처리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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