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from 우울 2009/09/05 01:23

학교를 1년이나 더 다녀야 졸업을 할 수 있다.

가장 괴로운 것은 논문을 써야한다는 것.

무엇을 써야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은,

학교가 내 희망과 전혀 다른 곳이라는 점.

그리고 학교가 바라는 내 미래가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학교에 다니는 게 싫어졌다.

학교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무척 부담스럽다.

그들은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모르는 걸 가지고 논문을 쓴다는게 가능한가?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 전공자가 써야할 논문의 주제는 무엇이어야 할까?

 

인간의 욕망. 쇼핑. 외모지상주의. 가슴. 성형. 나 그런 것에 정말 관심이 있나?

 

디자이너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소비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밖에 생각이 되지 않아서

소비에 대한 비판적시각이라는 걸 가지고도 디자인 논문을 쓸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디자인은 솔루션이라고?

내가 볼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그저 소비를 위한 솔루션일 뿐인데.

조금도 창조적이거나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디지털 미디어 디자이너가 될 수 있지?

 

수학적, 과학적 원리에 대한 흥미는 있지만, 그런 쪽의 흥미로 디지털 미디어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디자이너이기보다는 엔지니어가 되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나는 엔지니어가 되려고 노력해본적이 한번도 없어서,

이제와서 엔지니어가 되려면 10년 이상 공부를 새로 해야하는데

그정도로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무엇보다 자연과 수학, 과학을 단순히 모방하는 시각화는 내게는 공허하게 느껴진다.

 

창조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는 것. 그게 뭔지 모르겠다.

거침없이 그런 것들을 내놓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지고

내 안의 근본적인 도덕주의나 자기반성의 벽을 끝도 없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미디어 아트라 불릴만한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아트라는 것은 그저 자기 만족적인 미학적 완성물이기만 해도 된다고 할때,

그래도 나는 하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이도 저도 아니다.

 

작품을 만들고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해야하는데

작품을 만드는 것과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맥락없이 작품을 만드는 것은 보다 쉽다.

어려우니까 변명인건가.

 

3년째 Research Assistant 로써 논문을 써주고 있는 교수가 있다.

내가 늘상하는 착각이 있는데,

다른 사람도 나같을 거라는 착각이다.

나는 교수가 나정도의 생각은 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교수인데, 설마 그정도도 생각못하는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써야할 논문이라는게 A4 네 장정도의 간단한 거라서 일주일이면 끝낼 수 있었다.

일년에 일주일쯤 일하고 한학기 장학금이 나온다면 남는 장사다.

그쯤 그냥 내가 해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교수는 내가 쓴 걸 조금도 쓸 수 없는 사람이었다.

최소한 이해는 했을거라고, 그정도로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딴게 무슨 상관인가.

9월 말일까지 새 논문을 써야하는데 도저히 쓸 수가 없다.

알아버리고 나니 도저히 쓸 수가 없다.

결국 쓰겠지만. 결국 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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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5 01:23 2009/09/05 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