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에 대해 슬프다는 글을 쓰셨다.
나는 왜 슬픈지 잘 모르겠다.
나는 비난을 한 게 아니라 비판을 했고, 내 비판이 여전히 옳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받지 말아요. 하고 말해주고 싶다.
상처받을 일이 아니다.
사실은, 좀 더 다정하게 말해주고 싶지만...
나흘을 꼬박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무리하게 짧은 일정 내에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해서 머리를 싸매고 일했다.
그리고는 그 댓가로 작업을 거절당했고,
당연히 시안이 통과되지 못한 비정규직 프리랜서는 상응하는 임금을 요구조차 못한다.
마음에 드는 작업이 생명을 얻어 사회로 나가지 못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상처받아도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다.
생각이 많이 있었는데,
덧글을 달아주신 분 가운데 '디자인은 취향의 문제여서'라는 글을 쓰신 분이 있어 또 발끈한다.
디자인은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디자인은 생각의 방식, 혹은 철학의 문제다.
취향이라는 건 보라와 노랑이 더 마음에 드나 빨강과 파랑이 더 마음에 드나의 문제다.
그러나 디자인을 선택한다는 것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가의 문제다.
3.8 여성대회 포스터는 아래의 것으로 정해졌다고 민주노총 자료실에서 보았다.
(포스터에 대한 결정은 민주노총이 아니라 공동기획단에서 내려진 것이다)
나는 이 포스터를 만든 사람을 모르고, 그 사람에 대해 모욕할 생각으로 이 글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 대한 애정을 따듯하게 표현하는 것만큼
폐부를 찌르는 비판도 사람을 키우는 데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비판의 글은 분노에 의해 비이성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왔고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글을 썼다.
나는 저 포스터가 나쁜 포스터라고 생각한다.
저 포스터는 관료주의적인 결정의 또다른 전형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난 번 나의 글이 더더욱 옳았다고 믿게 되었다.
포스터 등을 의뢰하면서 구체적으로 관료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결과는 대부분의 경우 관료적으로 나온다.
이유는,
첫째로, 심지어 새로운 것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에도
실은 그들의 머릿속이 열려있지 않아 진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디자인 하나쯤은 우습게 여긴다.
원래 디자인이라는 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취향'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디자이너는 일시적으로 자신들의 말을 꾸며주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일 뿐이고,
그들이 디자인에 관해 더 큰 권한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정은, 그 운동의 '전문가'들인 당신들이 하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는, 디자이너를 스스로가 그런 관료적 결정을 이미 몸에 터득하고 있으며, '효율성', 즉 바쁜 시간에 쫓겨 어떻게든 결과를 내야하는 상황에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면서 대충 관료적 요구를 만족시킬 디자인을 해내기 때문이다.
저 포스터의 현란한 기교들은 그저 기교에 불과하다.
내가 저 디자이너와 관계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작업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내 작업에 내가 확신을 갖게 해준 사람들은 내게 무조건 잘했다고 말해준 사람들이 아니다.
내가 잘못했을 때 그건 아니라고 말해준 사람들이다.
운동사회는 왜 비판을 못받아들이나.
비판을 하면 슬퍼한다.
무슨 피해자라도 된 것 같다.
비판 앞에 당당하고 쿨해지면 좋겠다.
한국사람들은 비판을 못받아들인다.
학교에서 작업을 하면 우리는 수업시간 내내 서로를 비판해야 한다.
요식적으로 서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수준이 아니다.
교수는 미친듯이 밤을 새며 해낸 작업에 대해 쉽게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 학생들은 비판을 받으면 운다.
교수가 왜 자기만 싫어하는지 모르겠단다.
그런 한국 학생들도 자꾸 비판을 받다보면 그 교수에 대해 결국 감사하게 된다.
나는 비판을 받고 우는 외국학생은 본 적이 없다.
울더라도, 자신의 부족에 대해 괴로워하는 눈물이다.
그들은 비판을 받으면 스스로를 평가하고 더 좋은 결과에 대해 고민한다.
포스터 디자인.
포스터 한 장이 뭐 그리 대단할까.
나는 그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환경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생명을 훼손하여 단 며칠을 붙여두기 위해
그런 낭비를 해서는 안된다.
포스터는 단 한장에 그야말로, 하고자 하는 말을 함축적으로 담아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아무리 나쁜 포스터도 그 안에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저 포스터를 통해 나는 그들에게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마치,
복잡한 폭력의 구조에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도덕책을 들이대는 무능한 교사같다.
저 포스터는 충격받을 것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거리에 붙은 저 포스터를 보고 누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충격을 받아줄까?
또 비슷한 뭔가를 하나보군 이라고, 나라면 생각할 것 같다.
함축적인 의미. 저 포스터에 어떤 함축적인 의미가 들어있을까?
노골적인 계몽주의 외에 나는 어떤 깊고 함축적인 의미가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저 포스터가 이명박에게 위협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극히 일부인 관료들, 당신들만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전국여성대회가 '전국' 여성대회가 되려면, 당신들의 요구가 아무리 옳다고 해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진실이 담긴 디자인 작업이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누가 결정할 것인가?
나는 그것을 당신들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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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포스터에 대한 비판에 동의하며, 잘 배우고 갑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저도 (인쇄디자인은 아니고) 웹디쪽 하는데 운동권 일은 별로 안하고 싶어요. 솔직하질 않아요. 욕먹기는 싫어하고. 도덕과 운동도 혼동하고.
저는 포스터는 해본적이 없고 주로 걸게그림을 해왔는데 언제 부터인가 저한테 시안을 보자고 하더구요.
저는 제 자존심 때문인지 시안 같은것 제출해 본적이 없는데 시안을 보자고 하니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난 그런것 제출해본적 없다" 싫으면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라고 하니 그제서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해달라고 해서 작업한적은 있습니다.
예술가의 영혼을 자신들의 잣대로 재려고 한다면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현재 예술단체 노조들이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일년에 한번 오디션이라는 것을 통해서 재입사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생을 그 계통의 예술로 살아온 사람한테 불과 5분의 시간을 주면서 기량을 보여 달라고 하면 이건 아니지 않냐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경쟁논리로 이 사회를 굴리려고 하는 사람들과 싸우자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경쟁논리를 들이대고 있는 것입니다.
고쳐야지요.
예술을 대중이 판단하는 것입니다.
제조업처럼 관리자가 불량을 걸러내는 그런 구조로 인식한다면 슬퍼지겠지요.
게토님!
마음 가라 앉히시고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신것 같습니다.
뭐 위의 포스터 제작한 사람도 마치 시험치듯이 제작 했을것 입니다.
"당신이 제작하려고 하는 포스터도 언제든지 내 마음에 안들면 아웃이야"라는 무언의 압력을 받았겠지요.
이래저래 슬픈 현실입니다.
게토님의 비판에 공감합니다!!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_+ 으음... 저는 감각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정확히 내용을 전달하고 싶고, 관습적인걸 좋아한다면 그냥 흰 대자보에 매직으로 쓰면 될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ㅡ_ㅡ; 어쨌든... 힘내셔요!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