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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업회 직원 보궐선거 지원 진실게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직원이 지난해 10.26 보궐선거에 출마한 여당 실세 후보의 선거운동을 보름 동안이나 도왔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도덕성 논란이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11일 동안이나 무단으로 결근했는데도 기념사업회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12월이 돼서야 당사자의 사표를 수리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특히 일부에서는 선거운동 지원을 기념사업회 임원들이 지시했다는 주장도 제기해 파문이 일고 있다.

※ 사진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웹사이트로부터 캡쳐한 것이며, 기사 내용 중 특정사실과 관련없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사진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웹사이트로부터 캡쳐한 것이며, 기사 내용 중 특정사실과 관련없습니다.

최상천 전 기념사업회 사료관장 겸 연구소장은 지난 24일 함세웅 기념사업회 이사장과 문 아무개 상임이사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그는 “함 이사장과 문 상임이사는 지난해 10.26 보궐선거에서 L 열린우리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박 아무개 당시 기념관건립팀장을 15일(10.12~10.26) 동안 비공식적으로 파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기념사업회측은 “개인이 무단으로 한 것이며 지시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박 팀장은 “할 얘기가 없다”며 취재요청을 거부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1일 부서장회의에서 문 이사는 “L 후보가 선거운동기간 동안 박 팀장을 보내달라고 요구한다. 예산 문제로 신세도 졌으니 보내주려고 한다. 그런데 선거운동기간의 근태 처리가 쉽지 않다. 출장으로 처리하기도 그렇고 휴가로 처리하는 것도 곤란하다.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나?”라고 물었다. 이날 퇴근 무렵 박 팀장은 진단서를 제출하면서 송무호 당시 기념사업본부장에게 병가를 요청했다. 송 본부장은 “박 팀장에게 문 이사가 시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며 “문 이사 결정사항으로 판단하고 병가 처리 문서에 결재했다”고 증언했다. 함 이사장과 문 이사가 선거운동 지원을 ‘지시’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송 본부장은 그날 저녁 “박 팀장 병가처리 문제가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하고 최상천 당시 사료관장과 상의했다”고 말했으며 최 관장은 “그 다음날 주례 팀장회의 직전 당시 이 아무개 당시 총무팀장이 함 이사장에게 ‘박 팀장 문제 처리했습니다’라고 보고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최 관장은 “팀장회의 직후 이사장에게 병가 조치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했다”며 “이후 함 이사장은 총무팀장을 불러 병가조치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박 팀장은 10월 12일부터 26일까지 보름 동안 L 선거운동본부에서 선거운동을 했으며 27일에 출근했다. 기념사업회는 이 기간 동안 기념사업회에서는 박 팀장에게 선거운동 중지를 명하거나 출근을 요구하는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11월 10일 경에야 송 본부장은 총 15일 중에 11근무일에 대해 ‘2일 휴가 9일 결근’으로 처리했다. 최 관장은 “문 이사는 문제가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박 팀장에게 사표를 요구했다”며 “박 팀장에게 직접 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박 팀장은 사표를 제출한 상태에서 매일 출근하면서 이사장의 처분을 기다렸다”며 “내가 기념사업회를 비판하는 성명을 12월 5일 발표하자 문 이사는 박 팀장에게 재차 사표를 요구했고 12월 8일 경 사표를 수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기념사업회 공식입장은 전혀 다르다. 양금식 기념사업회 홍보팀장은 먼저 10월 11일 부분과 관련해서는 “박 팀장이 L 후보와 친분이 두터워 도의상 선거운동을 도와줘야겠다고 먼저 윗선에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느 조직이나 사전논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느냐. 이에 대해 토론하는 것과 공식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송 전 관장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병가신청서를 제출하고 선거운동을 하러 갔지만 총무팀에서 인정이 안됐고 결근처리한다고 본인에게 통보했고 실제 그렇게 처리했고 무단결근에 대해서는 급여에서 불이익을 줬다”며 “기념사업회 차원에서 파견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양 팀장은 “기념사업회 직원은 공무원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자격으로 업무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정당가입과 선거운동을 할 자유가 있다”며 “결재도 받지 않고 무단결근한 부분에 대해 자기가 책임을 진 것이고 그래서 사표를 썼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념사업회에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려면 개인 차원으로 가도록 한 것”이라며 “내일모레면 나이가 50인 사람을 누가 말리겠느냐”고 주장했다. “기념사업회가 도의적 책임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양 팀장은 “사업회에서 가서 도와주라고 했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사업회가 어떤 도의적 책임을 지겠느냐”고 답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월 26일 오후 19시 4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4호 6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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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민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의 비민주적 운영을 둘러싼 잡음이 계속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 최상천 전 사료관장 겸 연구소장이 사업회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면서 외부에 드러나기 시작한 사업회의 문제는 송무호 전 기념사업본부 본부장 등 3명이 중징계를 당하고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가 긴급회의를 여는 등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양계탁기자
기념사업회 건물 1층에 위치한 민주화운동 상징 조각상.

갈등의 이면에는 사업회의 정체성을 둘러싼 이견과 내부 비민주성에 대한 일부의 반발이 자리잡고 있다. ‘기념’이냐 ‘계승’이냐를 둘러싼 새롭지 않은 논쟁이 지금도 계속되는 것은 사업회가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대다수 직원들은 ‘기념’에 일부 직원들은 ‘계승’에 무게중심을 둔다. 쉽지 않은 갈등요소다. 하지만 더 큰 논란은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을 대화와 토론으로 풀 수 있는 내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주장에서 보듯 민주성 부분으로 모아진다. 그러나 기념사업회측은 “일부의 음해성 문제제기일 뿐”이라며 “언급할 필요도 못 느낀다”고 반박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사업회 직원 김 아무개씨는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운동의 분명한 성과인 만큼 사업회의 문제는 단순한 내부 문제로 돌릴 수 없다”며 “시민사회 모든 구성원의 관심 사안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부 민주성 확보를 위해서는 우선 상층임원 중심의 의사결정과정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씨는 “상임이사가 예산수립과 집행 모두를 장악하고 있어서 제도적으로 상층 임원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구조로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아래로부터의 기획과 시민사회와의 접촉, 건의와 토론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사업회는 문국주 상임이사가 예산 집행을 담당하는 사무처장을 겸직하고 있고, 예산수립을 담당하는 기획실은 상임이사 직속이다.

내부에서는 기념사업회가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외부 민주진영의 단체들과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도 나온다. 송무호 전 기념사업회 본부장은 “기념사업회 법에 민주화운동을 계승발전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는 만큼 민주화운동의 실질적 내용을 갖춰기 위한 지금의 운동에 당연히 기여해야한다”고 말했다. 양경희 사료수집팀장도 “기념은 항상 현재적 의미에서 재해석해야하는 만큼 현재의 운동과 무관할 수 없다”며 “기념사업회는 기념과 계승의 경계선에 있는 만큼 어느 한쪽과의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업회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양금식 팀장은 “관계문제를 두고 논의가 많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민주화운동단체와 사업회의 역할분담을 통해 상생하고 발전하는 모델을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국진ㆍ정영일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월 26일 오후 19시 2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4호 1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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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연구원 노조탄압 논란

식품연구원 원장이 노조 지부장을 그만두지 않으면 재임용을 하지 않겠다는 협박과 회유를 일삼았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예상된다.

김명호 과학기술노조 식품연구원 지부장.
강국진기자
김명호 과학기술노조 식품연구원 지부장.

과학기술노조(이하 과기노조) 식품연구원지부는 지난 16일 ‘강수기 원장은 조합말살 공작을 즉각 중단하라’며 강력한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반면 식품연구원측은 노조측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농산물, 임산물, 축산물, 수산물의 처리·저장·가공기술을 개발/보급해 식품산업의 기술기반을 향상시켜 농림수산물의 부가가치 제고를 통한 농어민의 소득 증대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1987년 설립된 과학기술부 산하 산업기술연구회 소관 기관인 식품연구원. 이곳이 최근 노조탄압논란으로 시끄럽다.

논란의 발단은 2004년 노조가 강수기 식품연구원장 연임을 반대하고 지난해에는 연구원 지방이전과 관련해 노조와 강 원장측이 대립하면서부터였다.

특히 김명호 과학기술노조 식품연구원 지부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지난해 7월 25일 검찰에 긴급체포 되면서 노사갈등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결국 김 지부장은 지난해 12월 23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노조는 “현직 지부장 무력화를 통한 조합와해 음모”로 규정하고 “개인의 한풀이를 위한 왜곡된 독선과 아집을 표출한 작태”라고 강 원장을 비판한다.

“처음에는 사법처리 결과를 지켜보자며 파면의지를 굽히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검찰 조사가 길어지자 지난해 11월 16일에는 ‘사직서를 제출하면 처리하지 않고 가지고 있겠다. 대신 지부장을 그만두면 검찰에 선처를 호소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 이후에도 지부장 그만두지 않으면 국가청렴위원회에 고발하겠다는 협박도 했습니다. 무혐의로 종결처리 되자 이번에는 식품연구원 차원에서 특별감사를 하겠다고 나왔습니다. 그래도 안되니까 지부장을 사퇴하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회유와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식품연구원에서 만난 김명호 지부장은 “노조를 빼고는 정부 출연 연구 기관 기관장을 감시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아무도 없다”며 “바로 그것 때문에 원장이 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원장이 진정으로 식품연구원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노조를 경영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단체협약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지부장은 “지난 3일 면담을 할 때 강 원장은 ‘이번 사건은 사법적 처리가 마무리된 것일 뿐, 복무에 관한 사항은 별도로 조사해 지부장이 징계를 받아야 하지만 1월 14일까지 지부장을 그만두고 원직에 복귀하고 사과문을 제출하면 그대로 묻어두겠다’고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강 원장은 지난 11일 아침 김 지부장을 불렀다. 면담을 녹음한 자료에 따르면 그는 “내부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검찰 조사를 받은 자체만으로도 파면에 해당하는 중징계 감이다”고 김 지부장에게 밝혔다. 단체협약에 따르면 해고는 인사위원회(사측 7명, 조합 대표 3명) 만장일치 의결사항이다. 그럼에도 강 원장은 “단체협약만 믿고 해고가 안될 줄 알지만 인사위원회는 원장 자문기구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원장측이 통상 3년으로 돼 있는 재임용을 2개월 계약으로만 재계약하겠다며 지부장을 사퇴시키려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 지부장에 따르면 12일 김동수 선임본부장은 “지부장을 그만두고 원직에 복귀하면 추가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도록 본인이 보증을 하겠다. 아니면 더 이상 중재역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16일에는 조한육 과기노조 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한 각 지부장들이 강 원장을 항의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강 원장은 “지부장을 그만두라고 한 적도 없고 파면시키겠다고 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김 지부장은 “이날 오후에 다시 김 선임본부장이 나에게 와서 ‘계약기간을 원래대로 3년으로 할 테니 당분간 이 문제를 확대시키지 말고 냉각기를 갖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동수 식품연구원 선임본부장은 지난 19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전혀 사실과 다르며 말도 안된다”며 노조측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자꾸 반론에 반론을 거듭하며 노조와 원장측이 논쟁을 벌이면 직원들 보기에 좋지 않으니까 노사화합 차원에서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검찰 내사사건의 진정인과 그 배후세력을 밝혀 중징계하라”는 노조 주장에 대해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으로 본다”며 “조사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5년째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강 원장은 2004년 연임됐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월 23일 오전 11시 4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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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단계 거치면 참여연대와 소통

3.69단계를 거치면 전국에 있는 257개 시민단체가 참여연대의 의사를 전달받을 수 있다. 3.92단계를 거치면 전국에 있는 257개 시민단체가 경실련의 의사를 전달받을 수 있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은 평균 4.44단계, 녹색연합은 4.14단계, YMCA는 3.88단계, 여성연합은 평균 5.13단계만에 257개 단체에 연결됐다.

최근 3개월간 실제 연대활동을 했다고 밝힌 공조연결망을 기준으로 최단경로거리를 분석했다. 참여연대를 예로 들면 1단계는 참여연대와 관계를 맺었던 단체들이다. 이 단체들은 다시 다른 단체와 2단계 관계를 맺고 있다. 각 연결망의 ‘허브’단체가 모두 몇 단계만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개념이 ‘거리 중심도’이다. 그 중 최단단계 만에 얼마나 많은 단체에 연결되는가를 ‘최단경로거리’라고 부른다.

최단경로거리를 계산하는 두 가지 방식
① 누군가가 나를 선택한 관계만을 "관계"로 보는 것.
② 상대가 나를 선택했든 아니면 내가 상대를 선택했든 상관 없이 어느 방향이라도 관계가 있으면 무조건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


①의 방식으로 분석한 것. 경실련은 1단계에서는 가장 높지만, 2단계 이후 증가폭이 미미. 녹색연합의 경우 1단계에서 가장 낮지만 2단계 이후 급격히 증가.
시민의신문 

①의 방식으로 분석한 것. 경실련은 1단계에서는 가장 높지만, 2단계 이후 증가폭이 미미. 녹색연합의 경우 1단계에서 가장 낮지만 2단계 이후 급격히 증가.


②의 방식으로 분석한 것이다.
시민의신문 
②의 방식으로 분석한 것이다.

※ 둘 중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많이 달라진다.
최단경로거리를 계산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상대가 자신을 선택했든 자신이 상대를 선택했든 상관없이 어느 방향이라도 관계가 있으면 무조건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가 자신을 선택한 관계만을 ‘관계’로 보는 것”이다. 둘 중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많이 달라진다.

먼저 첫째 방식을 기준으로 할 경우 참여연대는 평균 3.69단계만에 257개 시민단체에 연결됐다. 가장 먼 경우 10단계가 걸렸다. 1단계에 참여연대와 연결된 단체는 16개였으며 2단계 51개, 3단계 68개 단체와 연결됐다. 경실련은 평균 3.92단계만에 257개 단체에 연결됐다. 가장 먼 경우 11단계가 소요됐다. 1단계는 18개, 2단계는 26개, 3단계는 60개 단체와 연결됐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은 평균 4.44단계만에 257개 시민단체에 연결됐으며 가장 먼 경우 11단계가 소요됐다. 녹색연합은 4.14단계만에 257개 단체에 연결됐으며 YMCA는 3.88단계만에 257개 단체에, 여성연합은 평균 5.13단계만에 257개 단체에 연결됐다.

두 번째 방식을 기준으로 할 경우 참여연대는 1단계는 13개 단체, 2단계는 26개 단체, 3단계는 3개 단체가 연결됐다. 평균 1.72단계만에 42개 시민단체에 연결된 셈이다. 경실련은 1단계에 17개, 2단계에 5개, 3단계에 1개 단체와 연결돼 평균 1.36단계만에 24개 단체에 연결됐다. 녹색연합은 1단계에 6개, 2단계에 31개, 3단계에 9개 단체와 연결됐으며 평균 2.02단계만에 46개 단체에 연결됐다. 시민행동은 1단계에 5개, 2단계에 4개, 3단계에 1개가 연결돼 평균 1.45단계만에 10개 단체에 연결됐다. 여성연합은 1단계 6개, 2단계 4개, 3단계 1개로 평균 1.42단계만에 11개 단체와 연결됐다.

1단계에서 가장 높은 단체는 경실련이었다. 하지만 경실련은 2단계 이후 증가폭이 미미했다. 반면 녹색연합은 1단계에선 낮지만 2단계 이후 급증하는 양상으로 나타나 경실련과 대조를 보였다. 참여연대도 녹색연합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월 16일 오전 9시 30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2호 8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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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와 경실련은 무엇이 다른가

한국 시민단체는 ‘허브’구실을 하는 극소수 단체와 지역이나 분야에서 ‘주변부’에서만 활동하는 단체들로 분절돼 있다. ‘허브’ 단체조차도 보다 개방적인 '참여연대 유형'과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경실련 유형’으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참여연대와 녹색연합이 전자, 경실련과 여성연합이 후자의 특성을 보인다. 양자는 경쟁력 측면에서 장단점이 있다. 전자는 폭넓은 연결망을 통해 인지도를 높일 수 있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후자는 밀도높은 연결망을 유지하면서 자기혁신과 대안제시를 계속할 수 있다. 폐쇄적 연결망은 ‘분파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이 두 단체는 한국 시민단체를 상징하는 단체로 회자되는 단체들이다. <시민의신문>과 장덕진 서울대 교수, 은수미 박사(노동연구원 연구위원)가 ‘시민단체연결망’을 분석한 결과 참여연대와 경실련은 상당한 차이를 나타냈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가 게임이론에 입각해 제시한 참여연대와 경실련의 차이. 마을(시민사회) 한복판에 참여연대와 경실련 주유소(허브단체)가 있다고 가정할 때 마을 오른편(보수성향)보다 왼편(진보성향)에서 대중교통 이용자(시민단체에 무관심)들이 마이카족(시민단체 활동 참여)으로 바뀌면서 시민단체지형도가 참여연대에 유리하게 형성됐다. 경실련 주유소는 마을 오른편에
시민의신문 

장덕진 서울대 교수가 게임이론에 입각해 제시한 참여연대와 경실련의 차이. 마을(시민사회) 한복판에 참여연대와 경실련 주유소(허브단체)가 있다고 가정할 때 마을 오른편(보수성향)보다 왼편(진보성향)에서 대중교통 이용자(시민단체에 무관심)들이 마이카족(시민단체 활동 참여)으로 바뀌면서 시민단체지형도가 참여연대에 유리하게 형성됐다. 경실련 주유소는 마을 오른편에 사는 1/3만을 상대로 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마을 왼쪽 끝에 있는 고객들은 참여연대 주유소가 너무 멀어지는 문제가 있다. 새로운 주유소가 생긴다면 마을 왼쪽 끝과 참여연대 주유소의 중간에 생겨야 한다. 경실련 주유소는 마을 오른편에 사는 사람들을 마이카족으로 변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지금보다 조금 더 오른쪽으로 이전하는 것도 고려해 봄직 하다.

분석 결과 참여연대는 진보와 중도로부터 모두 선택받고 있지만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은 경실련을 외면한다. 상대적으로 조직연령이 젊은 단체들은 경실련을 별로 선택하지 않았다. 한국 시민단체는 이념적으로는 진보, 시대적으로는 87~97년 설립, 지역적으로는 서울이 중심에 있다. 경실련을 선택한 단체들은 이 세가지 면에서 모두 벗어나 있다. 따라서 1단계에서 경실련을 선택한 단체들이 17개로, 참여연대를 선택한 13개 단체보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2단계에서는 경실련의 파급효과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이다.

참여연대만 선택한 단체들은 경실련만 선택한 단체들에 비해 비공식·공식·공조·평가 연결망 모두에서 지위(Status)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국 시민단체 사이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단체들이 참여연대를 선택한 것이다. 참여연대와 경실련으로부터 1단계 떨어져 잇는 단체들의 성향을 비교해 보면 참여연대만을 선택하는 단체들의 이념적 성향이 더 진보적이었다. 구체적으로 참여연대만을 선택하는 단체들은 진보에서 중도에 걸쳐 있는 반면 경실련만 선택하거나 두 단체를 모두 선택하는 단체들은 중도 단체들이다.

신생조직일수록 참여연대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 경실련만 선택한 단체들은 절반이 1987년 이전에 설립된 단체들이었으며 특히 87년에서 97년 사이에 설립된 단체들은 경실련을 선택하지 않았다. 참여연대만 선택한 단체의 80%가 서울에 있는 단체들이며 경실련만 선택한 단체들은 호남>서울=강원에 걸쳐 퍼져 있었다. 회원 수가 가장 많고 연간 예산이 훨씬 많으며 조직연령이 가장 오랜 단체들은 참여연대와 경실련을 모두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분석은 경로거리 1단계에서 참여연대만 선택한 단체와 경실련만 선택한 단체, 둘 다 선택한 단체, 2단계에서 참여연대만 선택한 단체만 선택한 단체와 경실련으로만 연결된 단체를 구분한 다음 그 단체들의 특징을 속성변수를 중심으로 확인했다. 1단계에서 참여연대만 선택한 단체는 13개였으며 2단계에서 참여연대로만 연결되는 단체는 26개였다. 1단계에서 경실련만 선택한 단체는 17개였으며 2단계에서 경실련으로만 연결되는 단체는 5개였다. 참여연대와 경실련을 모두 선택한 단체는 1단계에서 3개, 2단계에서는 4개였다.

장 교수는 이번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경실련의 향후 전략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조금 더 진보적으로 이동하거나 오히려 보수 입장을 강화함으로써 ‘합리적 보수’ 단체의 핵으로 떠오르는 두가지 방안이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장 교수는 이어 “이념·지역·시대적으로 다양한 허브가 필요하다는 결론의 연장선에서 보면 후자가 더 적절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시민-노동운동 연대 시급"
시민단체연결망분석 참여한 은수미 박사

은수미 박사.
시민의신문 
은수미 박사.

참여연대와 경실련의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은수미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나의 조직이 생성발전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이나 활동양식 등이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게 되는 일종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 효과가 아닌가 싶다”고 지적한다.

경실련은 좌파적, 급진적 성격에 대응하는 새로운 운동을 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1989년 설립됐다. 새로운 운동이라는 것은 당시로서는 보수적인 성격이었다. 참여연대는 1994년 출범하면서 “진보적인 시민운동”을 표방했다. 참여연대가 생기면서 참여연대와 경실련이라는 형태로 상호 상이한 관계를 형성했다. 은 박사는 “1997년 당시에는 참여연대를 매개로 하지 않으면 경실련과 노동조직간 연계가 전혀 없었다”며 참여연대가 이후 점차 진보에서 중도 쪽으로 활동이 이동했다고 분석한다.

은 박사에 따르면 IMF 경제위기 이후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2000년 이후에 중도좌파 성향의 시민단체가 우세해졌다. “상대적으로 보수적 성격을 가진 경실련은 축소되고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노동조직과 근거리 관계를 유지하던 참여연대는 점차 시민조직 쪽으로 옮아가고 경실련은 그대로 있었다. 사회양극화를 반영하면서 형성되는 시민조직의 자원을 참여연대가 흡수했지만 경실련은 그렇지 못했다.”

은 박사는 장 교수가 제시한 경실련의 활동전략에 대해 동의하면서 “참여연대도 일정하게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지적한다. “시민운동에서 진보성향과 참여연대의 연관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비정규직, 차상위계층과 빈민층, 여성,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려면 참여연대가 노동운동과 적극적으로 연계를 맺거나 혹은 ‘그렇지 않고 있는 자원을 내적으로 활성화시키는 방식’을 더 강화해야 한다.”

은 박사는 “현재로서는 비정규직, 사회적양극화를 매개로 노동운동과 적극적인 연계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울산건설플랜트 투쟁이나 순천 현대하이스코 투쟁에서 보듯 지역단위에선 시민운동 조직이 노동진영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며 자신의 주장을 다시 강조한다. 그는 이어 “최근 몰락하는 중산층, 재벌문제, 사회건강성과 합리성 쪽으로 비중을 뒀던 참여연대로서는 상당한 정책선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월 16일 오전 9시 2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2호 8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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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분실은 없다

경찰청이 ‘남영동 보안분실을 국민에게’ 추진위원회의 주장을 받아들인 이후 인권기념관 건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미 경찰청 보안3과는 홍제동 분실로 이전했고 굳게 닫혀 있던 육중한 철문은 열렸다.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입주했으며 곧 인권기념관 건립을 준비할 태스크포스팀도 활동을 시작한다. 지난 3일과 4일 연달아 남영동 보안분실을 방문해 남영동 보안분실을 둘러봤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비밀계단과 비밀 엘리베이터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했으며 아울러 보안3과 이전 과정에서 박종철군이 고문으로 숨졌다는 509호 조사실 일부가 훼손됐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편집자주
남영동 보안분실 5층 한쪽에 겉으로 봐서는 조사실처럼 보이는 문을 열면 갑자기 엘리베이터와 비밀계단이 나타난다. 비밀계단은 1층과 5층을 곧바로 연결한다. 2층 사무실에서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조사실로 갈 수 있다. 방과 방, 방과 복도는 모두 문으로 격리돼 있다. 1층 뒷문을 통해 피의자를 데리고 들어와 비밀계단을 통해 5층 조사실로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 아무도 모르게. 맞은편에도 조사실인줄 알고 문을 열면 1층에서 옥상까지 연결되는 비밀계단이 있다.

남영동 보안분실 내부. 방과 방, 방과 복도는 모두 문으로 격리돼 있다.
이정민기자 
남영동 보안분실 내부. 방과 방, 방과 복도는 모두 문으로 격리돼 있다.

“무슨 비밀계단이 이렇게 많어?”

남영동 보안분실 5층 한쪽에 겉으로 봐서는 조사실처럼 보이는 문을 열면 갑자기 엘리베이터와 비밀계단이 나타난다. 1층 뒷문을 통해 피의자를 데리고 들어와 비밀계단을 통해 5층 조사실로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
이정민기자 

남영동 보안분실 5층 한쪽에 겉으로 봐서는 조사실처럼 보이는 문을 열면 갑자기 엘리베이터와 비밀계단이 나타난다. 1층 뒷문을 통해 피의자를 데리고 들어와 비밀계단을 통해 5층 조사실로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남영동 보안분실’은 없다. 지난달 27일 남영동 보안분실을 사용하던 경찰청 보안국 보안3과는 홍제동 보안분실로 이전했다. 이제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와 경찰청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입주한 ‘옛’ 남영동 보안분실은 이제 인권기념관으로 환골탈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남영역에서 내려 2분쯤 걸어가면 바로 남영동 보안분실이 나온다. 높다란 담벼락 앞에는 ××러브호텔, ××모텔이 화려함을 뽑낸다. 남영동 보안분실 바로 옆에는 20층도 넘을 것 같은 러브호텔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남쪽 너머에는 국내 유명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단지가 수십층 높이로 솟아 있다. 서슬 퍼렇던 ‘보안’ ‘대공’도 자본의 힘 앞에는 무기력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정문에 들어서니 활짝 열린 철문이 눈에 띈다. 불과 한달 전만해도 굳게 닫힌 철문 앞으로 무전기를 든 의경들이 경비를 서고 있던 모습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그렇지만 보안3과가 이전 이후에도 남영동 보안분실의 그림자는 짙게 남아 있다. 한 인권보호센터 관계자는 “생각을 안하려 해도 과거 이곳에서 사람들이 고문받았다는 생각에 원혼이 서린 듯한 느낌이 든다”며 “밤에는 계단을 이용하기가 겁날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이곳으로 오기 직전 사흘 동안 흉몽을 꿨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남영역에서 내려 2분쯤 걸어가면 바로 남영동 보안분실이 나온다.
이정민기자 
남영역에서 내려 2분쯤 걸어가면 바로 남영동 보안분실이 나온다.

원혼 서린 듯한 느낌

인권보호센터 직원의 안내로 남영동 보안분실을 둘러봤다. 이전 보안3과장 사무실은 이제 경찰청 인권수호위원회 회의실로 바뀌었다. 6층은 인권보호센터가 입주했고 부속건물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사용한다. 5층으로 가서야 이곳이 남영동 보안분실이었던 곳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좁다란 조사실이 한 층 가득 이어져 있다. 모두 16개 조사실로 이뤄진 5층은 조사실 문이 대각으로 위치해 있어 조사실에 있는 피의자는 건너편 조사실에 누가 있는지 전혀 알수 없도록 돼 있다. 기존에는 5층에 조사실이 18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곳은 비밀계단으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박종철군이 물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는 509호실을 빼고는 원형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509호실에 들어서면 바로 앞에 있는 침대와 고정식 책상과 의자, 세면대와 좌변기, 그리고 욕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509호 조사실은 그동안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날 조사실을 둘러보니 조사용 책상을 바닥에 고정하던 나사못이 빠지고 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박정기 옹은 나사못을 집어들더니 “만약 보안3과에서 책상을 치우려고 했던 것이라면 경찰청장의 방침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며 “괘씸하다”고 분개했다. 그는 “이곳은 인권탄압의 상징”이라며 “원형을 그대로 보존해 후세에 산 교육장으로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보안3과 관계자는 “홍제동 분실로 이전하면서 5층 조사실에 있는 책상과 의자를 옮기라고 했더니 직원들이 509호실 책상과 의자도 옮기는 줄 알고 나사못을 뺏던 것”이라며 “509호실은 그대로 두라고 다시 지시해서 놔뒀다”고 해명했다. 그는 “빼버린 나사못은 원래 자리에 끼워 놓아야 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나사못은 두고 왔으니 그쪽에서 다시 끼우면 되지 않겠느냐”고 답변했다.

509호 조사실 일부 훼손돼

건물을 나오면 널찍한 정원이 있다. 담장 주변에도 아름드리 나무들이 시원하게 무리를 이루고 있다. 정원 너머에는 테니스장 2면이 있는데 과거 체력단련장으로 쓰던 곳이라고 한다. 산책로로 잘 꾸며놓은 테니스장 옆길을 따라 돌아가면 길쭉한 모양을 한 주차장이 나온다. 오른쪽은 지하철 1호선 철로가 있고 오른쪽 담장 너머에는 용산 주한미군기지 유류저장탱크가 있다. 주차장 한켠에는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그릴과 간이 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다. 테니스장으로 돌아 나오면서 테니스장에선 인권콘서트를 하고 본관 건물에선 시민단체들이 토론회를 열고 인권체험을 나온 학생들로 붐비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인권기념관 건립준비 박차
시민단체에 문호 개방

경찰청은 인권기념관 건립을 위해 경무기획국 혁신기획과 산하에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한다. 늦어도 광복절 이전까지 구성되는 태스크포스팀은 경정을 팀장으로 해서 남영동 보안분실에 입주해 인권기념관 건립을 준비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태스크포스팀을 통해 인권기념관을 내실있게 준비하고 유족들과 고문피해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청은 인권기념관이 정식으로 개장하면 인권보호센터에 운영을 맡길 계획이다. 안재경 인권보호센터장은 “앞으로 인권기념관 활용방안이 확정되면 명실공히 인권을 상징하는 공간에 걸맞게 운영할 것”이라며 “시민단체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 센터장은 “앞으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처럼 시민단체들이 토론회 등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둘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인권보호센터는 고문피해자와 유족들, 인권단체 관계자들을 대거 초청해 10월 4일 개관식을 열 예정이다. 이날 인권보호센터가 준비하고 있는 ‘인권보호 경찰직무준칙’도 발표한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5년 8월 4일 오후 18시 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09호 22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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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회사 배만 불린 카드연체 판결

지난해 9월 30일 대법원 2부(재판장 유지담, 주심 이강국, 김용담, 배기원 대법관)는 적법한 방법으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았지만 변제 능력을 상실해 연체자가 된 신용불량자에 대해 적극적인 사기의사가 없더라도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신용카드 사용자가 신용카드를 신청할 때 특별히 잘못된 정보를 고의로 신용카드 회사에 제출하지 않고 적법하게 카드를 발급받은 경우는 사기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광주지방법원(2004.12.12.선고2004노2370)의 원심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던 사용자는 6개월 뒤 사정이 변하여 일정한 수입도 없고 재산도 없는 상태에서 신용카드 채무를 막기 위해 이른바 ‘돌려막기’를 하다가 2천여만원의 빚을 더 이상 갚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대법원은 과다한 채무 누적으로 변제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상황에 처했으면서도 신용카드를 사용한 것은 사기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대법원은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한 카드회사의 책임을 도외시한 판결인가 아니면 신용카드 사용자의 도덕적해이에 경종을 울린 판결인가. 무리한 법률적용으로 오히려 채무자의 사회복귀를 어렵게 하는 판결인가 아니면 경제정의를 세우기 위한 판결인가. 대법원 판결은 법리적용과 사회정책 차원에서 어떤 파급효과를 미칠까.

<시민의신문>과 참여연대는 ‘시민포럼-법정 밖에서 본 판결’ 다섯 번째 주제로 ‘카드연체 사기죄 적용 대법원 판결 올바른가’를 정했다. /편집자주

●일시: 2006년 1월 12일 오후 1시 30분     ●장소: 참여연대 2층 강당
●사회: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참가자: 김남근 변호사(부평종합법률사무소) / 임동현 민주노동당 민생보호단 부장
강희정 변호사(법무법인 바로세움) / 서상혁 서울경찰청 수사과 경위 / 석승억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 대표

지난 12일 오후 참여연대2층 강당에서 '카드연체 사기죄 적용 대법원 판결 올바른가'를 주제로 제5회 시민포럼 '법정밖에서 본 판결' 토론회가 열렸다.
양계탁기자

지난 12일 오후 참여연대2층 강당에서 '카드연체 사기죄 적용 대법원 판결 올바른가'를 주제로 제5회 시민포럼 '법정밖에서 본 판결' 토론회가 열렸다.

△한상희: 오늘 다루고자 하는 대법원 판결은 형사정책적 측면에서 IMF 당시 사회적 합의가 깨졌고, 법리적 측면에서 사기죄를 너무 폭넓게 적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국가의 힘을 이용해 일방 당사자가 타방 당사자를 압박하고 자기 이익을 취하는 근대 이전 법률관계로 역행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김남근 변호사 부평종합법률사무소.
양계탁기자
김남근 변호사 부평종합법률사무소.

△김남근: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신용카드회사가 카드연체자를 검찰에 고소ㆍ고발하는 경우가 부쩍 늘면서 카드회사가 검찰을 채권추심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 사회문제가 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신용카드회사가 카드빚 연체자에 대해 사기죄로 형사고소를 하더라도 ‘각하’ 처분을 내려 카드빚 연체자를 사기죄로 형사처벌하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법원에서도 무죄로 판결하는 흐름이 있었다.

카드대란 당시 사회적 합의를 법조계에서 잊어버린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 민변이 검찰청에 정보공개청구한 자료를 보면 1999년 신용카드 연체자에 대한 신용카드 회사의 고소건수가 1천566건이었지만 2000년에는 425건으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2004년에는 무려 5천222건으로 급증했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도 2000년 132건에서 2004년에는 1천360건으로 무려 10배나 늘었다.

강희정
양계탁기자
강희정 변호사, 법무법인 바로세움.

△강희정: 대법원은 과다한 부채 때문에 신용카드로 대금을 변제할 수 없는데도 계속 신용카드를 사용한 것을 사기죄로 판결했다. 사기죄는 간단하게 말해 처음부터 돈을 갚을 능력이나 의사가 없으면서 누구에게 돈을 빌릴 때 성립한다.
 
신용카드회사는 신용평가를 하고 나서 신용카드를 발급하는데 신용카드를 쓰다가 부채가 늘었거나 경제적 사정으로 갚을 수 없는 상태에서 계속 쓰는 것을 사기로 볼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대법원 판결은 신용카드라는 특수성을 무시하고 막연히 부채가 많으면 신용카드를 알아서 쓰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책임을 카드 사용자에게 떠넘겨 버렸다.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사용자가 신용카드를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것을 회사에 고지해야 하는데 현재 법적으로 그런 의무는 없다.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그런 의무를 부여한 게 된다. ‘법률이 없다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는 죄형 법정주의 원칙을 거스른 판결이다.

모든 책임을 카드 사용자에 떠넘겨

석승억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 대표.
양계탁기자
석승억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 대표.

석승억: 변제능력이 없는 채무자에게 채권추심만 하지 말고 변제능력을 키워주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는데 대법원 판결로 그 취지가 무색해졌다. 대법원은 채무자가 부채를 갚기 위해 ‘돌려막기’하는 것을 악의적으로 해석했다.

△서상혁: 경찰 입장에선 마치 우리가 흥신소 직원이 된 것 같을 때가 있다. 조사를 해보니 소액대출은 신분확인만 간단히 하면 1~2백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고소고발은 최후 수단으로 남기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작년 서울지방경찰청에서는 신용카드와 관련한 고소를 13만건이나 받았다.
 
7만여명이 사기죄로 입건됐고 기소된 사람은 1만5천여명이었다. 개인 의견을 말한다면 이런 상황은 경찰관이 적정 업무를 초과하는 일을 하면서도 자긍심을 느끼지 못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이번 판결로 그런 경향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임동현 민주노동당 민생보호단 부장.
양계탁기자
임동현 민주노동당 민생보호단 부장.

△임동현: 정부가 어떤 구실을 했는가를 짚어봐야 한다. 미성년자 카드발급, 길거리 카드발급, 서비스 한도 폐지 등은 모두 정부가 허가해 준 것들이다.
 
정부는 경기부양책으로 카드사용을 방치하면서 구제책은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개인회생제와 파산면책제도가 있다고 하지만 채권추심을 일단 피하기 위해서 신청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김: 정부나 대법원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할지 모르지만 채권추심기관, 금융기관과 정부의 도덕적 해이도 살펴봐야 한다. 카드를 만들 때 거짓으로 신용평가를 받았다면 사기죄가 성립한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길거리 등에서 미성년자, 대학생들에게도 별다른 절차도 없이 카드를 발급해준 것은 카드회사였다. 카드 사용한도를 한달에 몇백만원으로 해 준 것도 카드회사다. 채무자 뿐 아니라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카드회사 도덕적 해이는 어떡할 건가

△임: 재산이 있는데도 남의 돈 빌려놓고 안갚는 게 도덕적 해이다. 그럴 경우 현행법상 강제집행을 하면 된다. 그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상정해놓고 몰아붙인 게 대법원 판결이다.

서상혁 서울경찰청 수사과 경위.
양계탁기자
서상혁 서울경찰청 수사과 경위.

△서: 수사를 하다 보면 ‘피해자’가 더 얄미운 경우가 있다. 주요소에서 일하던 한 30대 남자가 동생 주민등록번호로 카드를 발급받으면서 그래도 되냐고 물어보니 카드회사 직원은 상관없다고 했다. 카드회사는 나중에 ‘돌려막기’ 방법까지 알려주며 채무를 갚으라고 종용했다.
 
편법으로 카드 발급해주고 돌려막기 방법까지 알려주다가 나중에 고소해 버렸다. 한 카드회사는 인천에 사는 한 가출청소년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곳을 정식직장인 것처럼 기재하도록 해서 카드를 발급해 주기도 했다.

△강: 무절제하게 카드를 사용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을 전과자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민사상 문제는 민사로 해결해야 한다. 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채무자를 형사처벌하는 게 아니라 회사 스스로 구조개선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판결은 신용카드를 계속 부실하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400만 신불자 벼랑으로 내몬 판결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양계탁기자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한: 신용카드회사는 카드를 발급할 때 신용조사하고, 발급 후 사용내역을 보면서 신용정도를 조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조치도 없이 계속 쓰게 내버려뒀다. 신용불량을 방임했거나 조장한 면도 있지 않을까. 대법원 판결로 인해 개인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까지 국가가 부담하는 문제도 생겼다. 기업 자생력을 국가가 막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든다.

△임: 수수료율을 포함한 카드 이자율이 30%가 넘는다. 이자가 너무 많다. 과거 1998년에는 금리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자제한법 폐지 이후 개인 대상으로 공격적인 행위를 카드회사들이 했다. 그 책임을 지금 채무자들이 지고 있다. 과잉대부를 엄격히 금지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 카드회사는 마감 강제집행 안내 통지장, 독촉장 등으로 위협하고 심지어는 밤에 아이들 있는 집을 방문해서 압류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한다. 그런 불법채권추심을 막는데 공권력이 나설 필요가 있다. 금융감독원이 불법채권추심신고센터를 운영하지만 감사원 자료 보면 70% 이상 민원을 카드회사로 돌려보낸다.

△석: 신용카드회사는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양 추심하는 과정에서 돌려막기, 연대보증 등을 통해 더 많은 채무를 만들어 놓고는 채무자에게 죄를 떠넘기고 있다. 신용카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모집인이 허위정보를 고지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카드회사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한: 이 판결이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 같다. 당장 채무자에게 이번 판결을 들이밀 것 같은데.

△임: 벌써 그렇게 되고 있다. ‘못 갚으면 사기죄’라고 점잖게 협박한다. 채권추심 독촉장에는 사기죄 언급이 있는데 카드 발급할 때 그런 내용을 설명해주거나 약관에 적시하는 건 없다.

△김: 형사정책 차원에서 앞으로 만만치 않은 후유증이 있을 것이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월 13일 오전 10시 20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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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남영동분실서 박종철 열사 19주기 추모제 열려

1987년 1월 13일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 서울대 대학생 박종철군은 바로 다음날 고문 끝에 사망했다.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지고 19년이 흘렀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남영동 보안분실은 이제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가 입주했고 인권기념관으로 바뀔 준비를 하고 있다. 바로 그 곳에서 박종철 열사 19주기 추모제가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 옹 등 40여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3일 열렸다.

박종철 열사 19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한 학생이 박종철 열사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강국진기자 
박종철 열사 19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한 학생이 박종철 열사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박종철 열사가 숨을 거둔 옛 남영동분실 509호 조사실.
강국진기자 
박종철 열사가 숨을 거둔 옛 남영동분실 509호 조사실.
한 추모제 참가자가 박종철 열사 영정 앞에 '열사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자'라고 쓴 피켓을 올려 놓았다.
강국진기자 
한 추모제 참가자가 박종철 열사 영정 앞에 '열사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자'라고 쓴 피켓을 올려 놓았다.

옛 남영동분실을 찾은 시민·학생들은 7층 강당에서 박정기 옹과 박경서 인권대사(경찰청 인권수호위원장)의 인사를 들은 다음 곧바로 박종철 열사가 사망했던 509호 조사실로 향했다. 미리 준비한 흰 국화를 헌화한 이들은 ‘벗이여 해방이 온다’는 노래를 부르며 박종철 열사의 뜻을 기렸다.

박정기 옹은 “작년까지는 서울대 교정에서 추모제를 했지만 올해는 종철이가 죽은 이곳에서 종철이를 만나고 싶었다”며 “그 때 그 자리를 후배 여러분들이 봐주는 것이 종철이 아버지로서 크나큰 영광이다”이라고 밝히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두번 다시 종철이가 겪은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며 “지난 일을 되뇌이며 일생의 기억으로 남겨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509호 조사실을 원형 그대로 보존해준 경찰 당국에 고맙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끝에 숨진 옛 남영동분실 509호 앞에서 연설하는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 옹.
강국진기자 
박종철 열사가 고문끝에 숨진 옛 남영동분실 509호 앞에서 연설하는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 옹.
박경서 인권대사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마치 예수의 죽음이 부활로 이어졌듯이 한국 민주화로 이어졌다”며 “우리가 할 일은 열사의 뜻을 어떻게 심어 나가느냐에 있다”며 “한국이 인권선진국으로 도약하도록 힘을 합치자”고 강조했다.

추모제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의 안내를 받으며 옛 남영동분실을 견학했다. 한 학생은 “이 자리에 오니 많이 부끄럽다”며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종철 열사와 같은 해 대학에 입학했다는 김학규 박종철 열사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형식적 민주화는 이뤘지만 박종철 열사가 그토록 갈망했던 실질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우리의 과제”라며 “오늘 자리를 앞으로 살아가는데 근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월 13일 오후 16시 5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2호 2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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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인권운동 위기 처해 있다&quot;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위기에 처해있는가? 적지 않은 전문가와 인권운동가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국가는 약해지고 시민사회는 분열된 상태에서 활력이 예전같지 않다. 이 와중에도 사적영역은 끊임없이 위협받는다. 인터넷실명제, CCTV, 두발자유화 등 많은 인권쟁점들이 사적영역을 두고 벌어졌다. 인권운동에 대한 자기성찰과 자기비판이 인권운동 내부에서도 나온다. <시민의신문>은 올해 인권현안과 인권운동을 평가하고 내년을 전망하는 기획대담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참가자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일시: 12월 21일 오후2시
■장소: 시민의신문 회의실

△오창익: 올해 인권상황을 돌아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변화가 거의 없었다. 구체적으로 인권현실이 개선된 것도 별로 없고 많은 분야에서 후퇴도 보인다. 정부는 긍정적인 구실을 못했다. 그렇지만 일부에서 얘기하듯 낙담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일부에선 ‘신자유주의 경찰국가화’를 얘기하지만 그 정도로 급격한 후퇴라고 보진 않는다. 너무 단선적으로 정세를 보는 건 문제가 있다.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로비에서 열린 '마음놓고 학교가기' 포스터 시상 및 집중단속 유공자 포상식에서 허준영 경찰청장이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이정민기자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로비에서 열린 '마음놓고 학교가기' 포스터 시상 및 집중단속 유공자 포상식에서 허준영 경찰청장이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한상희: 올해 여러 쟁점에서 보면 국민들 수준에서는 인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지식도 많아졌다. 그 점은 긍정적이다. 고전적인 인권문제를 넘어서 좀 더 사회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인권을 다루려는 노력이 많이 나왔는데 그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문제는 국민들의 의식변화를 정부 차원에서 제도화 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정권 차원에서 성과만 신경쓰다 보니 정책과정에서 인권을 무시하는 면이 많아졌다. 올해 정부는 국민들의 인권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인터넷실명제는 반인권 결정판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시민의신문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오: 참여정부 얘기를 조금 더 하고 싶다. 정권의 의지와 태도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는 인권의 기준에서 정책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노골적이다. 그나마 김대중 정부는 노벨상 수상 영향도 있고 해서 외국이나 인권단체 시각을 많이 의식했다.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참여정부와 여당 구성원들의 이력이나 성향만 봤을 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왜 ‘참여정부’가 인권진전에 도움이 안될까. 내가 보기엔 그들이 인권에 관심도 없고 인권투쟁이 이전보다 정권에게 위협을 주지 않는 면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권운동이 정권에게 끊임없이 긴장을 줘야 하는데 겉보기와 달리 침체돼 있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본다.

△한: 이전에는 인권운동이 정권의 정당성을 건드리는 거시적 차원에 집중했다. 이제는 미시적 차원으로 넘어갔다. 정권이 인권운동을 두려워할 이유가 적어졌다. 정권차원에서 인권을 실천하고 개혁한다고 말은 하는데 구호와 이념을 빼면 남는 게 없다. 그 빈 공간은 ‘관료적 판단’이 차지하고 실천을 담당한다. 정권이 관료들에게 장악당하는 양상이다. 그것 때문에 개혁을 외치는 사람이 가장 반개혁적인 방안을 들이밀게 된다.

인터넷실명제가 대표적이다. 관료적이고 행정편의적인 발상에서 인권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정책이다. 인터넷 실명제를 보면 게시판이 주된 규제대상이다. 그런데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게시판으로 규정하다보니 전체 인터넷을 규제하는 양상이 돼 버린다. 인터넷상에서 사이버 폭력이 일어나는 구조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당장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고 손쉬운 대안만 들고 나왔다. 본질적인 문제와 대안을 인권의 기준으로 따지지 않는다.

386은 이미 기득권세력

△오: 정권에서 말하는 구체적 개혁이 온통 관료 손에 맡겨져 있다. ‘개혁적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들이 공부가 부족해서 그럴까? 인권감수성이 부족해서 그럴까? 그럴 수도 있다. 오해를 각오하고 말한다면 그들이 이미 인권에서 기득권을 가진 세력, 심하게 말해서 ‘인권의 반동’이 돼 버린 측면이 더 크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들은 이미 주류세력이다. ‘어제 혁명적 인권담론이 오늘 상식이 되고 내일은 반동이 된다’는 명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게시판 ‘나도 한마디’는 실명게시판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자유토론방도 실명제로 하려다 반대에 부딪친 적이 있다. 과거 ‘민주화운동’이 지금 어떻게 ‘반동’으로 가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국회의원들이 사이버상 명예훼손을 가장 큰 인권문제로 꼽는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유, 누리꾼의 자유로 인해 가장 피곤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교수.
시민의신문 
한상희 건국대 법대교수.

△한: 어떤 사람이든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인권침해를 할 수 있다 뜻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그걸 생각지 않고 과거 운동했던 기억만 간직하고 있는 정치인이 적지 않다. 자신은 인권과 민주의 화신이고 따라서 선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자기가 가진 정치권력이 그 자체로 반인권 측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권력은 다른 사람을 강제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효율과 인권, 혹은 합리와 인권의 대립구도가 분명해지고 있다.

△오: 효율과 인권의 대결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효율이 강해지면서 사적영역 침범으로 이어진다. 사적영역에 대한 인권침해가 예전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제는 국가권력 뿐 아니라 지방권력도 작용하고, 지방의회도 작동하고, 지역주민 자체도 작동한다. 다변화되고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 과거 대학 정문에서 경찰이 불심검문 할 때는 쟁점이 명확하다. 가방 속을 들여다보는 경찰은 가해자였다. 대응방식도 단일했다. 이제는 가해자도 불분명해지고 난해해지고 교묘해졌다. 가해자와 피해자도 뒤섞인다.

△한: 자기 자신이 인권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인권의식은 높아졌는데 인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기희생도 필요하다는 인식은 아직 자리잡지 못했다. 국민의 대다수가 원한다는 이유로 두발자유화, 인터넷 실명제 등을 주장하지만 그걸 원하지 않는 소수자 인권을 보호해주는 것이 바로 대다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전제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사이비 인권이 횡행한다

△한: 인권 구도에서 또다른 변화는 기업이나 시장에서 재산권, 경영권 등을 인권으로 포장해 개인들이 가진 사생활권, 노동권, 생존권 등 인권담론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최근 그런 종류의 사이비 인권담론이 많이 나타났다. 그건 인권을 ‘이 인권과 저 인권의 선택사항’으로 물타기하는 담론조작이다. 인터넷실명제를 보자.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확립하자는 주장은 인권의 요구다. 하지만 그로 인해 명예훼손을 당하는 사람의 인권은 별개로 보호해야 할 문제다.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은 대립되는 담론이 아니다.

△오: 의권, 변호사권 등도 이권을 인권으로 포장하는 사례들이다. 누구도 인권을 거부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이제는 너도나도 인권을 들먹인다. 반인권 태도를 갖기 보다는 사이비 인권을 만들어 인권담론 속에 반인권적인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북한인권문제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권운동 일부에서는 ‘전선운동에 인권운동이 복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선운동에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인권운동 내부에 여전히 구시대적 접근이 있다. 전반적으로 인권운동이 시대변화에 제대로 조응하지 못했다고 본다. 상당히 무책임한 면도 있었다. 본인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수없이 많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건 관성이다. 관성과 운동이 같이 갈 수는 없다. 특히 연대운동에 대한 고질적인 관성이 대단히 심하다. 나는 그런 면에서 인권운동은 위기라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조직이 회계감사를 비롯한 평가와 성찰 기능이 없어졌다. 그냥 앞으로 갈 뿐이다. 브레이크도 없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운동을 비판하면 불순한 책동으로 치부해 버린다. 내부비판은 금기시하고 내부성찰은 없는 사이 인권운동은 잡일에 시달리며 삼팔선은 혼자 지키고 있다. 나는 지금 인권운동이 위기라고 생각한다. 돌파구가 잘 안보이는데도 운동가들 사이에 위기의식이 별로 없다. 지금 활동하는 인권단체 가운데 5년이나 10년 후에도 비전을 갖고 운동하는 단체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살아남을 인권단체가 없다

△한: 가끔 왜 한국 시민단체들은은 왜 똑같은 이슈를 갖고 싸우면서도 서로 다르다고 말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인권단체들도 인권단체와 다른 분야 단체가 무엇이 다른지 스스로 보여줘야 한다. 인권운동이 해야 할 일이 많다. 과거에는 국가가 주도권을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삼성을 비롯한 경제권력이 국가를 주도한다. 그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난다.

△오: 지금 구조는 인권운동가를 소모시키고 고갈시키고 황폐하게 만든다. 바쁘기만 하고 남는 게 별로 없다. 일단 권하고 싶은 건 관성적인 연대를 지양하자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를 해체하고 사안별로 연대해야 한다고 본다. 인권단체 연대체가 전선운동을 지키는 투쟁 수단이 돼선 안된다. 한정된 역량을 지혜롭게 써야 한다.

△한: 국가인권위원회 얘기도 하고 싶다. 향후 운동과정에서도 제도권 내에서의 인권운동이란 측면에서 인권위 역할이 중요하다. 인권위는 지금까지 스스로 인권의제를 발굴한 적이 한번도 없다.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시급하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극단론부터 배제하자”
북한인권문제를 보는 시각

“북한인권문제는 극단론을 배제하는 게 우선이다. 현재 시민사회에는 ‘공화국에는 인권문제가 없다’는 극단과 ‘북한에만 인권문제 있다’는 극단이 존재한다. 먼저 실체에 대한 극단을, 그 다음에는 ‘어떻게’라는 문제에서 극단을 배제해야 한다. 체제붕괴론 뿐 아니라 ‘정부는 교류협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정어린 조언조차 하지 말자’는 것도 극단이다. 정부는 가만있고 민간단체만 얘기해야 한다는 것도 극단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와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실체라는 측면에서 극단적인 목소리가 극단적으로 크고, 접근론에서도 극단론이 횡행하며 불순한 정치적 의도도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인권에 대해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이 극단론과 극단론자들을 배제해 나가는 운동을 해야 한다”며 “그때서야 비로소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국가단위에서 북한 인권 얘기하는 것은 필요할 때도 있고 껄그러울 때도 있다”며 “정부 부근에서 북한인권 얘기하는 ‘아웃소싱’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냄새가 나면서도 정부가 주도하진 않는 인권담론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며 정부가 무조건 입닫고 있다는 것도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오 국장은 이와 함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언제까지 기권만 할 것인가에 대한 프로그램도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국진 기자
2005년 12월 26일 오전 8시 2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29호 6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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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가가 말하는 인권운동 위기론

현직 인권운동가가 현재 활동하는 인권단체 대부분이 5년이나 1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아 논쟁이 예상된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지난 21일 <시민의신문> 기획대담에서 ‘인권운동 위기론’을 주장하며 이같이 밝혔다.

오 국장은 “기존 운동의 성과로 커진 영향력만을 향유하려는 관성은 위험하다”며 “특히 연대운동에 대한 고질적인 관성이 대단히 심하다”고 지적하면서 인권단체연석회의 해체를 주장했다. 그는 “인권단체연석회의를 해체하고 사안별로 인권단체가 연대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며 “인권단체가 단순히 전선운동을 지키는 투쟁 수단으로만 돼선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한정된 역량을 지혜롭게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재봉 화백

오 국장은 “관성에 빠진 인권운동”을 지적하며 “내부성찰 기능이 사라진 사이 인권운동은 격무에 시달리며 ‘삼팔선은 혼자 지키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인권운동이 시대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즉자적인 대응만 남발한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을 지목했다. 그는 “국가보안법과는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며 지난해 무기한 단식을 했던 1천명 넘는 사람들이 지금은 다 어디에 있느냐”며 “프로그램이 없는 운동으로는 정권은 고사하고 시민들도 설득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오 국장은 이와 함께 참여정부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정권에서 말하는 구체적 개혁이 온통 관료 손에 맡겨져 있다”며 “‘개혁적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들은 이미 인권에서 기득권을 가진 세력, 심하게 말해서 ‘인권의 반동’이 돼 버린 측면이 더 크다”며 인터넷실명제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기도 했다.  

오 국장과 함께 대담에 참여한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도 “정권차원에서 인권을 실천하고 개혁한다고 말은 하는데 구호와 이념을 빼면 남는 게 없고 그 빈 공간을 ‘관료적 판단’이 차지하고 실천을 담당한다”고 꼬집었다.

한 교수와 오 국장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먼저 극단론과 극단론자들을 배제해야만 건설적인 논의가 가능하다”며 일부 반북성향을 가진 단체 뿐 아니라 북한인권문제에 소극적인 단체들도 함께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는 북한인권문제를 얘기하면 안된다는 것도 또다른 극단”이라며 “정부가 ‘아웃소싱’을 통해 북한인권문제를 건설적인 방향에서 접근할 것”을 제안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5년 12월 26일 오전 8시 32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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